올림픽·월드컵축구 다음가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F1은 연간 20조원대 시장으로 ‘비즈니스 레이싱’으로 불린다.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은 올해 마지막 소문도 나와
10월 4일부터 3일간 전라남도 영암 서킷에서 포뮬러1(F1) 코리아 그랑프리가 개최됐다. 올해로 4회째다. 해마다 수백억원의 적자가 나 한국에서 열리는 마지막 대회가 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난 지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우승은 예상대로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의 제바스티안 페텔 선수가 차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대회 2연패다.페텔은 한국 경기에 이어 10월 13일 일본 스즈카 서킷에서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도 우승해 사실상 올해 드라이버 챔피언을 확정지었다. 지난 8월 벨기에 그랑프리부터 5개 대회 연속 우승이다. 일본 경기까지 드라이버 포인트는 297포인트로 2위 페르난도 알론소(페라리)와의 격차가 무려 90점이다. 남은 4개 대회에서 10포인트만 획득하면 4년 연속 F1 챔피언에 등극한다. 4년 연속 제패는 미하엘 슈마허 등 역대 단 두 차례 뿐이다. 페텔은 올해 열린 15개 대회 가운데 9차례나 정상에 올랐다.F1은 자동차 레이스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또 레이스를 넘어선 첨단 기술과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 경연장으로 유명하다. 흔히 모터 스포츠는 자동차 신기술의 인큐베이터라고 말한다. 1886년 가솔린 자동차 등장 이후 ‘얼마나 잘 달리느냐’가 신기술의 바로미터였다. 모터 스포츠에 사용된 기술은 곧바로 양산차에 접목됐다. 레이싱 서킷은 어떤 주행시험장보다 까다로워 자동차 성능을 시험하는 데 안성맞춤이다.F1은 종종 첨단 과학에 비유된다. 길이 5㎞가 넘는 서킷을 시속 300㎞를 넘나들며 한 바퀴 돌았을 때 단축하는 랩타임이 1000분의 1초(0.001초)까지 계산된다. 서킷을 보통 50바퀴 이상 달려 승부를 낸다. 100분의 1초 승부를 하는 100m 달리기보다 더 촌각을 다툰다.한국은 그동안 세계 자동차 생산 5위(중국·일본·미국·독일 다음)국가의 위상과 걸맞지 않게 F1과 인연이 멀었다. 제지기업인 세풍이 1997년 전북에 F1을 유치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접어야만 했다. 이후 F1을 운영하는 세계자동차연맹(FIA)은 2000년 중반까지 한국을 불신해 왔다.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이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고 한국의 경제력(교역규모)이 세계 10위권까지 올라오면서 한국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됐다. 결국 201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F1이 열렸다. 한국은 국제 스포츠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는 강국의 면모를 살려왔지만 유독 모터 스포츠는 불모지였다. F1을 통한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과 F1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본다.F1은 연간 20조원대의 거대자본이 움직여 ‘비즈니스 레이싱’이라고 불린다. 한 번 대회를 유치하면 통상 3,4년마다 재계약한다. 유치권료는 관중이나 모터 스포츠 열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통상 200억∼300억원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국가적 혼란이 없는 한 매년 경기가 열린다. F1이 열린 도시는 엄청난 경제효과를 누린다. 전세계 19개국을 순회하며 경기를 치르는 F1은 경기당 평균 20만 명(연간 400만 명) 이상이 관람한다. 연간 128개국 50억 명 이상이 시청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F1 경제 효과는 연간 20조원대우선 광고와 방송권, 입장 수입만 합쳐도 연간 4조원대다. 경기에 참가하는 12개팀에 대한 기업 후원도 4조원에 달한다. 세계 188개국에 연간 20회 생중계되는 미디어 효과도 엄청나다. F1 열기가 높은 유럽에서는 계속 재방송되는데도 시청률이 높아 글로벌 기업들은 F1을 주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판단한다.F1이 열리는 전남은 우리나라 8개 도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다. 전남도 측은 “매년 수백억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와 600명이 넘는 고용창출이 기대된다”며 “국내 글로벌기업에는 월드컵·올림픽축구에 이은 새로운 빅 마케팅 시장이 열리는 셈”이라고 주장한다.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으로 한국전쟁으로 인한 후진국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발돋움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는 외환위기로 훼손된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고 신뢰도 회복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은 월드컵축구·올림픽을 모두 개최했으면서도 F1을 하지 않은, 또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에 F1을 열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바다가 보이는 시내 도로를 서킷으로 사용해 절경으로 유명한 도시 국가 모나코는 F1 경제 효과의 대명사다. 유럽 부자들의 축제의 장이다. 경기장과 마주한 작은 항구에는 수백억원이 넘는 대형 요트 수 백척이 정박해 경기를 지켜본다. 잡지 ‘비즈니스 F1’에 따르면 예선을 포함해 매년 5월 말 3일간 열리는 모나코 F1의 경제효과는 2100억원(1억5000만 유로)에 달한다. 서킷이 보이는 몬테카를로 지역의 특급 호텔은 하루 숙박만 500만∼1000만원으로 치솟는다. 가격이 10배까지 뛴다.영국 버밍햄의 시골 농촌지대였던 실버스톤 시는 1950년대 F1 유치를 통해 전 세계 모터 스포츠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실버스톤 경주장 운영과 이벤트 유치를 통한 고용효과만 8100명에 이른다.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부터 국제사회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말레이시아 비전 2000’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선도 사업으로 자동차경주장(서킷)을 만들어 1999년 F1을 유치했다. 이후 매년 5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F1을 보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입국한다.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 팀의 차량과 레이싱복에 스폰서 로고가 가득 붙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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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상하이에 20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대규모의 대형 경주장을 건설, 2004년 F1을 유치했다. 지난해 상하이 F1의 경우 27만 명이 입장했다. 입장권 판매수익 3000만 달러, TV 광고 및 중계권 수입 5000만 달러, 관광 수입 7500만 달러 등 경제유발 효과가 2억 달러로 추산됐다.오스트리아의 스포츠 음료회사인 레드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F1 마케팅을 통해 세계적인 회사로 도약했다. 국내에서도 카페인 음료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케팅으로 유럽 시장에서 선두에 올라선 뒤 F1을 통해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에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 가운데 F1 스폰서는 LG전자가 유일하다. 한진해운은 2005년까지 르노팀을 후원했다.F1이 열리기 전인 1950년 이전까지 자동차 신기술로는 4륜구동이나 터보 엔진이 대표적이었다. 지금은 자동차 가솔린 엔진의 기본 사양이 된 DOHC 엔진도 F1에서 알파 로메오가 첫선을 보였다. 대부분 기계공학을 이용한 신기술이었다.1980~90년대 F1 경주에서 안전한 코너링을 돕는 각종 기술이 선보였다. 주행 중 돌발상황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장치뿐 아니라 사고 위험에서 운전자를 보호해 주는 전자식 서스펜션 또는 브레이크 장치, 빙판 길이나 비가 올 때 바퀴의 헛도는 것을 방지하는 트랙션 컨트롤 등이 대표적이다. 핸들 뒤에 달린 막대기 모양의 패드로 기어를 변속하는 패들 시프트도 F1에서 나왔다. 1989년 페라리팀이 이를 처음 사용했다. 선수가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 빠르게 변속할 수 있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F1 경주차에는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공기역학 기술이 접목된다. 경주차 앞뒤에 날개를 달았다. 비행기처럼 부양(浮揚)력을 얻기 위한 날개가 아니라 지면 접지력을 크게 하는 다운 포스를 만들기 위해서다. 다운 포스는 경주차가 주행할 때 지면으로 가해지는 힘을 말한다. F1 경주차는 시속 30㎞ 이상으로 달릴 때 2000㎏이 넘는 다운 포스를 만들어 낸다.이승우 모터 스포츠 평론가는 “이론적으로만 계산하면 슈퍼카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의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F1 경주차는 터널의 천정에 붙어서 거꾸로 달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서 F1 내년 개최 불투명안전기술 발전에도 한몫했다. 1997년 영국 F1 그랑프리가 열린 실버스톤 서킷에서 지안 카르로 피지켈라 선수가 시속 22㎞의 속도로 달리다가 벽을 들이받았다. 일반 양산차였다면 영락없는 참사였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부상 없이 옷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면서 차량에서 나왔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F1 경주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 비행기처럼 뼈대를 얽어 만드는 모노코크 차체와 6점식 안전벨트 등이 나와 안전한 레이싱이 가능해졌다. 모노코크 차체는 1962년 F1에 참가하는 로터스 팀에서 처음 선보였다.1984년에는 차체에 탄소섬유 소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탄소섬유 소재의 모노코크가 갖춰진 F1 차량은 충격을 잘 견뎠다. 탄소섬유는 강철보다 2배나 단단하고 무게는 20%에 지나지 않는다. 선수를 안전하게 보호해 ‘서바이벌 셀’이라고도 한다. 모노코크는 충돌 시 조각조각 부서지면서 충격을 분산한다. 운전석에 불이 나면 화재경보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해 불을 끈다. 하지만 반드시 차량이 단단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탑승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외형이 찌그러지면서도 충돌 충격을 흡수하는 디포메이션 시스템, 탑승자를 보호하는 좌석 등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운전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6점식 안전 벨트다. 전투기 조종사가 사용하는 안전벨트나 베이비 시트의 안전벨트와 비슷한 형태다. 사고 충격 때 드라이버의 몸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시트에 고정한다. 에어백이 없어도 되는 이유다.10월 16일 열린 전남도의회 도정(道政)질문에서는 F1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회 지속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남도는 4년 동안 F1을 개최하면서 지방채만 2484억원을 발행했다. 재정자립도가 16.3%에 불과하다. 올해도 1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첫 해 500억원 넘는 적자에서 해마다 적자 폭이 줄고 있다.이처럼 적자가 나는 이유는 매년 200억원이 넘는 대회 유치료에 이를 메워 줄 대기업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서다. 대회 타이틀 스폰서의 경우 최저 100억원 정도를 내야 한다. 한국 이외에는 타이틀 스폰서가 대부분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국영기업인 정유회사 페트로나스가 맡았다. 중국 상하이 대회는 UBS(스위스 금융그룹), 인도는 에어텔(국영통신회사) 등이 참여한다. 싱가포르는 정부 관광청이 주도한다.호주는 콴타스항공, 아부다비도 헤티하드항공이 타이틀 스폰서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적자가 나도 F1에 국가적으로 지원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올림픽·월드컵과 달리 F1은 국가 대항전이 아닌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다. 또 조직위원회 역시 올림픽위원회 같은 국제 기구가 아닌 개인이라는 점이다. F1 운영위원회(FOM)는 영국의 부호 버니 에클레스톤이 좌지우지한다.더구나 F1 운영위는 내년 코리아 그랑프리 개최 시기를 4월로 앞당겼다. 올해 10월에 경기가 열리고 불과 6개월 후다. 대회 준비 자체가 버거워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GP코리아 김기홍 편집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청자가 감소하고 주요 자동차 기업이 빠지면서 광고 효과가 점점 불투명해지는 F1에 한국이 ‘봉’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며 “F1 운영위와 협상을 통해 수백억원이 넘는 개최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뮬러1(F1) 1950년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첫 레이스가 열린 이래 올해로 64년을 맞은 세계 최대규모의 모터 스포츠다. F1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최하며 유럽·아시아·중동·남미·오세아니아 등 19개국에서 20경기(유럽에서 2번)가 개최된다. 챔피언은 매 경기의 득점 합계로 결정된다. 드라이버와 참가팀(컨스트럭터) 챔피언십으로 나뉜다. 팀은 12개, 드라이버는 24명이 경합한다. 각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하면 25점이 주어진다. 2위부터 10위까지 각각 18-15-12-10-8-6-4-2-1점이 부여된다.
FI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미국 AAA, 일본 JAF, 독일 ADAC 등 200여 개국 자동차 관련 조직을 회원으로 거느린 UN 협력 국제기구로 자동차 경주의 룰을 만드는 단체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주로 유럽 자동차 선진국의 발언권이 세다. 모터 스포츠 관련해 메이커들을 상대로 한 각종 인증, 모터스포츠 규정 제정, 친환경 기술개발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