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만들자.” 올해 초 권용원(53) 키움증권 대표가 신년사를 통해 밝힌 포부다. 최근 키움증권은 이 계획을 실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오던 우리자산운용 인수를 확정지었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12월 24일 우리자산운용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실사와 가격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본입찰에서 제시한 인수가격인 780억원보다 3.2% 할인된 755억원에 우리자산운용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지난 2월 20일 최종 결정했다.

이번 우리자산운용 인수가 키움증권의 저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2000년 1월 온라인 증권사로 출범한 키움증권은 온라인 브로커리지에 특화된 중소형 증권사로 자리매김했다. 키움증권은 온라인 브로커리지에서 시장점유율 12.5%(2013년 9월 약정기준)로 업계 1위이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모바일 트레이딩 시장에서도 1위를 달린다.

3월 7일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만난 권 대표는 우리자산운용 인수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우리자산운용 인수는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 온 일이라 성취감이 크다”고 권 대표는 말했다. 그의 다양한 기업 인수합병(M&A) 경험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취임 때부터 준비한 자산운용사 인수

공학도 출신인 권 대표는 1986년 21회 기술고시에 합격하면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다우기술 부사장이 되면서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업계에 발을 들인 건 2007년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다. 키움증권을 총괄한지는 올해로 6년째다. 권 대표는 다우기술 대표로 있을 때 크고 작은 기업 인수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기업 인수에 있어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를 통해서다. 기업 인수를 결정할 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건 가격이다. 하지만 권 대표는 매도자와 매수자간의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기업 인수는 가격 조건을 따지는 치열한 게임입니다. 그래서 팔고 사는 기업간의 신뢰가 중요해요. 매수자는 매도자에게 기업운영에 대한 확신을, 반대로 매도자는 매수자에게 기업 매각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 진정성이 서로 확인되면 인수 과정이 막힘없이 잘 풀려나갑니다.”

권 대표는 기업 인수를 확정 지을 때면 꼭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에 위치한 한식집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음식점이지만 권 대표에게는 특별한 곳이다. 그가 처음 인수합병을 진행하면서 찾았던 곳인데 그 당시 성과가 좋았다. 인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표끼리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할 때 그 한식집을 찾으면 결과가 좋았다고 한다. “미신을 잘 안 믿는데 그곳에 가면 편안해집니다. 하지만 우리자산운용은 공개경쟁입찰방식이라 이 식당을 이용하지는 못했다며 권 대표는 웃었다.

시간을 갖고 보험사 인수 추진

사실 키움증권의 자산운용사 인수는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대상이 우리자산운용이 됐을 뿐이다. 권 대표는 2009년 키움인베스트먼트에서 키움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산운용사 설립을 비롯해 저축은행 인수와 IB, PI(자기자본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다. 2010년 인도네시아 동서증권의 지분 69.98%를 인수하고 이듬해 현지 법인을 출범시키고 키움자산운용을 설립했다. 2012년 3월에는 삼신저축은행을 인수해 키움저축은행으로 사명을 바꿨다.

“당시 기자회견을 마치고 언론사 기자와 소주를 한잔했습니다. 그 분이 기자회견에서 너무 많은 계획을 이야기했다며 걱정하더라고요. 하지만 임기 전에 그 계획들을 하나씩 이루고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우리자산운용과 시너지를 내는 게 키움증권의 과제다. 이를 풀어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키움자산운용과의 합병이다. 시장에서는 우리자산운용이 키움자산운용과 합병할 것이란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수탁고 22조원으로 업계 9위인 우리자산운용이 키움자산운용(수탁고 8600억원)과 합병하면 업계 순위가 두 단계 뛰어 업계 7위로 올라선다. 키움증권 측은 대주주 승인 등 우리자산운용의 인수 절차를 마무리 지은 다음 합병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우리자산운용사와의 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가 상장지수펀드(ETF)의 영역 확대다. 우리자산운용사는 ETF가 강점이다. 권 대표는 ETF 시장이 국내 출범한 2002년 당시 삼성자산운용과 함께 ETF 도입에 앞장섰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우리자산운용사의 장점으로 ETF, 사모투자펀드(PEF), 특별자산 등 대체투자기구의 운용경험을 꼽았다.

권 대표는 ETF 다음은 펀드라고 했다. “우리자산운용과 함께 인덱스펀드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온라인으로 펀드를 판매하는 만큼 투자자가 이해하기 쉬운 펀드를 만들겠습니다. 또한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펀드와 다른 이색 펀드 출시도 고려중입니다.”

업계에서도 키움증권의 우리자산운용사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 증권사는 우리자산운용을 인수한 키움증권을 ‘종합선물세트’라고 평했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키움자산운용의 유기적 성장에만 기대기에는 올해는 ETF, 온라인 펀드판매 등에서 큰 지형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라며 “역량 강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우리자산운용사 인수는 적절했다”고 설명했다. 원재웅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도 “사업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되고 향후 펀드 슈퍼마켓 및 ETF시장 성장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돼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키움증권의 다음 목표는 보험업 진출이다. 권 대표는 “신사업 측면에서 보험사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급하게 인수를 추진할 생각은 없습니다. 운용사를 인수할 때처럼 업종 공부를 하고 매물로 나온 보험사 중에서 조건이나 기업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적합한 회사가 나오면 인수를 추진하겠습니다.”

권 대표는 현재 시중에 나온 보험사 매물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듯 인수를 천천히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기존 증권사 인수계획도 아직 없다. “키움을 키움답게 유지하고 싶습니다. 주식영업뿐 아니라 펀드와 자산관리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키움증권이 증권사를 인수하게 되면 그때가 바로 오프라인 영업에 진출하는 시기가 될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는 키움증권이 온라인 증권사로서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낼 수 있었던 요인은 키움의 정체성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키움증권이 출범했을 때 온라인은 선택이 아닌 생사가 달린 필수였습니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덤볐습니다. 그렇다보니 대표나 임직원들이 온라인에 신경 쓰는 강도가 다른 증권사와는 남달랐습니다.”

실제로 권 대표는 매일 아침 고객센터에서 올리는 데일리 리스판시브(Daily Responsive)를 확인한다.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이다. 키움증권 고객의 불만이나 요청에 매일 답하고 이를 토대로 매월 말 회의를 갖는다. 고객의 절실한 요구는 업무에 바로 반영한다. 이처럼 14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지금의 키움증권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권 대표는 설명했다.

자산운용사 인수라는 큰 산을 이제 막 넘은 권 대표는 올해 많은 계획을 갖고 있다. 키움증권의 사업 다각화를 위해 대차거래, 온라인 자산관리 등을 준비 중이며, 현재 선전하고 있는 키움증권 인도네시아도 차분하게 성장시킬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