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들의 사명 변경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최근 5년 동안 사명을 바꾼 기업만 해도 연 평균 83곳이 넘는다. 지난해에도 73개 기업이 기존에 쓰던 사명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코넥스시장 제외) 41개보다 많다. 올해만 해도 벌써 46곳(5월 31일 기준)의 상장사가 이름을 바꿨다. 사명이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인지도와 신뢰성의 척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명 교체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사명을 교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 간 인수합병(M&A)에 따라 주인이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2009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M&A만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명목상 회사) 설립이 허용되면서, 스팩과 일반기업의 합병상장으로 인한 사명 변경이 매년 꾸준히 발생한다.잦아진 계열사 간 합병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STX메탈은 계열사인 STX중공업에 흡수 합병되면서 ‘STX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6월 18일 기준 STX중공업은 강덕수 전 대표이사의 배임혐의로 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지난해 합병한 포스코계열사 성진지오텍과 포스코플랜텍은 합병 후 이름을 포스코플랙텍으로 바꿨다. “유사한 업종의 계열사를 합쳐 어려운 경기를 이겨내고 시너지를 내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김태영 성균관대 교수(경영학)는 말했다.경영 전략상 사명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삼강이다. 지난 4월 종합식품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롯데푸드로 사명을 바꿨다. 우리들생명과학(현 우리들휴브레인)은 6년 전 중소기업 제약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종합헬스케어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의지를 담아 상호를 수도약품에서 우리들생명과학으로 바꿨다. 그리고 지난 4월 우리들휴브레인으로 또 한 차례 사명을 교체했다.사명변경은 기업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경영성과에 영향을 미칠까. 윤성용 외국어대 교수(경영학)는 “단기적인 기업 경영성과에는 영향이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 부의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사명 홍보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만 고려해도 단기적으로 경영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다”고 한국전략경영연구원의 김덕영 연구원은 말했다.국내에서는 사명교체 후에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 기업을 찾기 어렵지만 해외에는 간혹 있다. 일본의 전기전자제조업체 소니다. 설립 당시 소니의 기업명은 도쿄쓰신코쿄(Tokyo Tsushin Kogyo)였으나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958년 소니로 바꿨다.오히려 국내에는 인지도가 높은 사명과 유사한 상호를 사용하다 소송당한 회사가 있다. 지금은 일본 투자회사인 에스비아이(SBI)홀딩스에 인수돼 SBI저축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한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다. 2011년 7월, 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건설 등 9개 범현대 계열사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상대로 특허청 상표심판 및 부정경쟁행위방지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상호에 ‘현대’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유에서다.당시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하면서 범현대계열사로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의 관계를 묻는 문의가 이어지자 현대 측이 소송 제기를 결정한 것이다. 특허심판원은 현대 계열사가 낸 서비스표등록 무효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현대’라는 명칭이 현대그룹 소속 기업뿐 아니라 이미 다른 기업의 이름으로 여러 건 등록돼 있어 유사 여부와 상관없이 상표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반대로 인지도를 고려해 사명을 바꾸지 않았다가 곤란에 처한 경우도 있다. 바로 동양생명이다. 2010년 동양그룹에 의해 사모투자회사인 보고펀드에 매각됐다. 동양그룹이 가진 동양생명의 지분은 동양증권이 보유한 3%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