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UT OF OFFICE - 사무실을 나온 CEO①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 | 스포츠와 컬렉션의 공통점 ‘중·독’ 

 

최은경 포브스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매일 ‘경영 전쟁’을 치르는 CEO는 바쁘다. 가득 쌓인 서류철, 빽빽한 일정표와 사투를 벌이는 사무실은 이들에게 전쟁터다. 하지만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려면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뜻밖의 장소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연인으로서 CEO를 만나본다. 첫 번째 민낯의 CEO는 미술품 경매시장을 이끈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다.

6년 째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김순응 대표.
일렁이는 수면에 내리쬐는 햇빛. 둑 너머 순환도로는 아직 출근길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따금 물살이 넘실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조용하고 한가롭다. 지난 7월 28일 오전 한강 잠원지구 수상스키장의 모습이다. 멀리서 ‘부우우웅’ ‘철썩’ ‘부우우웅’ ‘철썩’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터보트에 매달린 줄을 잡고 웨이크보드를 타는 김순응(61)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다.

군살 없는 구릿빛 상체에 무릎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려 날렵하게 보드의 방향을 바꾸고 발 밑 보드를 손으로 턱턱 잡는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촤아아악~’ 멋들어지게 보드를 세운 김 대표가 물속으로 잠시 사라졌다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두세 번 이곳에서 웨이크보드를 탄다. 웨이크보드는 보트에 매달린 줄을 잡고 물위를 달리며 묘기를 부리는 수상 스포츠로 웬만한 젊은 사람도 도전하기 어렵다. 김 대표가 이 위험한(?) 줄을 잡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당시 케이옥션 대표이던 그는 주말을 이용해 몸을 단련해왔다.

3년 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주영삼 기계체조 국가대표 감독에게 기계체조를 배우고 있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주로 구르기, 공중돌기 등의 마루 운동을 하는데 “기술을 익히면 몸을 자기의지대로 쓸 수 있어 넘어져도 덜 다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주 감독은 처음에 김 대표를 받아주지 않았다. 훨씬 젊은 40대도 한 달을 못 가 다들 그만둘 만큼 힘들고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태연하게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면 된다”며 웃었다. 운동하고 나면 발목, 무릎, 허리, 어깨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손을 못 올리고 걷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프다고 하면 오지 말랄 것 같아 꾹꾹 참으면서 1년을 버텼더니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었단다.

“웨이크보드와 기계체조는 모두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기 어렵고 부상 위험이 따르는 운동입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기술을 하나씩 익힐 때는 세상을 내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어요.” 김 대표는 5년 전 체중을 10㎏가량 감량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웨이크보드를 즐기려면 무릎, 허리에 부담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탄다. 경력 15년 차다. 그냥 슬로프를 내려오는 수준이 아니라 트릭(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가 익스트림 스포츠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마음은 몸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명상으로는 잡념을 완전히 떨치기 어려워요. 하지만 몸이 극한 상황에 놓이면 잡념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는 최고령 웨이크보더다. 이곳에서 함께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20~30대 동료들은 “김 사장님이 롤 모델”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옆에 있던 젊은 웨이크보더가 끼어들었다. “대개 30대 후반에 운동을 그만둡니다. 위험하니까요. 그런데 김 사장님을 보면서 계속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김 대표는 젊은 사람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웨이크보드의 장점이라고 했다.

중복인 이날 김 대표가 삼계탕을 “쏘겠다”고 하자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무척 즐겁습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놀다 보니 복장도 젊어져요.” 그는 요즘 몸에 꼭 맞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는 골밀도 나이가 20대라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친구들이 저더러 미쳤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웃음)

위험을 즐기는 그의 성격은 일과도 관련 있다. 김 대표는 2001년 서울옥션 사장을 맡아 연이어 흑자를 내고 2005년 하나은행·학고재와 함께 케이옥션을 설립했다. 미술 경매의 베테랑인 그는 원래 은행원이었다. 하나은행에서 23년 동안 기획부장, 싱가포르지점장, 홍콩지점장, 자금본부장으로 일했다.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1978년 신입행원 때였다. 대출을 받아 그림을 사기도 했다. 30여년 동안 500점 넘는 작품을 모았다. “미술,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제 본성인 듯해요. 대개 사람들은 술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만 저는 이런 취미를 즐기면서 위안을 얻거든요.”

안정된 은행을 그만두고 미술계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말렸지만 그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을 번다”며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술 마실 때 미술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했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 대표는 “컬렉션과 익스트림 스포츠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게 중독이에요.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도전하면서 성취를 느끼는 거요. 컬렉션도 마찬가지거든요. 쇼핑 중독 아시죠? 이 작가다 싶으면 집요하게 사 모아요.” 2011년에는 케이옥션을 나와 1인 기업을 차렸다. 미술교육부터 컨설팅, 평론, 전시기획, 작품 거래 중개, 작가 지원까지 미술 산업 전반을 다루는 김순응아트컴퍼니다. 특히 중점을 둔 분야가 젊고 유망한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이면서 제가 자신 있는 일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돈이 되는 일이지요.” (웃음)

그는 투자에 성공한 작가로 작고한 장욱진·김흥수·손상기·오윤 작가와 오치균 작가 등을 꼽았다. “모두 5년 안에 그림 값이 10배 이상 올랐습니다.” 4~5년 전부터는 이진용, 마리 킴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김순응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한 작품 20점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작품들은 100% 낙찰됐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오치균 작가의 ‘사북의 개나리’로 1억3000만 원에 팔렸다.

김 대표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독서와 사색,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로 얻은 직관이 나만의 기준”이라며 “작가의 독창성과 열정, 철학과 인성을 중요하게 본다”고 답했다. “신진 작가 발굴은 벤처회사에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력이 있음에도 저평가된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김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은 아직 저평가됐다”며 “글로벌 미술시장이 활기를 되찾아 전망이 밝다”고 자신했다. 그는 앞으로 해외에서 네트워크를 넓히며 꾸준히 유망 작가를 발굴할 계획이다. “회사를 벗어나 한강에 나오면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자유롭습니다. 이제 ‘김순응’이라는 브랜드로 제3의 인생을 살게 됐으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려고 합니다.”



일렁이는 수면에 내리쬐는 햇빛. 둑 너머 순환도로는 아직 출근길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따금 물살이 넘실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조용하고 한가롭다. 지난 7월 28일 오전 한강 잠원지구 수상스키장의 모습이다. 멀리서 ‘부우우웅’ ‘철썩’ ‘부우우웅’ ‘철썩’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터보트에 매달린 줄을 잡고 웨이크보드를 타는 김순응(61)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다.

군살 없는 구릿빛 상체에 무릎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려 날렵하게 보드의 방향을 바꾸고 발 밑 보드를 손으로 턱턱 잡는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촤아아악~’ 멋들어지게 보드를 세운 김 대표가 물속으로 잠시 사라졌다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두세 번 이곳에서 웨이크보드를 탄다. 웨이크보드는 보트에 매달린 줄을 잡고 물위를 달리며 묘기를 부리는 수상 스포츠로 웬만한 젊은 사람도 도전하기 어렵다. 김 대표가 이 위험한(?) 줄을 잡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당시 케이옥션 대표이던 그는 주말을 이용해 몸을 단련해왔다.

3년 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주영삼 기계체조 국가대표 감독에게 기계체조를 배우고 있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주로 구르기, 공중돌기 등의 마루 운동을 하는데 “기술을 익히면 몸을 자기의지대로 쓸 수 있어 넘어져도 덜 다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주 감독은 처음에 김 대표를 받아주지 않았다. 훨씬 젊은 40대도 한 달을 못 가 다들 그만둘 만큼 힘들고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태연하게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면 된다”며 웃었다. 운동하고 나면 발목, 무릎, 허리, 어깨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손을 못 올리고 걷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프다고 하면 오지 말랄 것 같아 꾹꾹 참으면서 1년을 버텼더니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었단다.

“웨이크보드와 기계체조는 모두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기 어렵고 부상 위험이 따르는 운동입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기술을 하나씩 익힐 때는 세상을 내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어요.” 김 대표는 5년 전 체중을 10㎏가량 감량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웨이크보드를 즐기려면 무릎, 허리에 부담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탄다. 경력 15년 차다. 그냥 슬로프를 내려오는 수준이 아니라 트릭(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가 익스트림 스포츠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마음은 몸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명상으로는 잡념을 완전히 떨치기 어려워요. 하지만 몸이 극한 상황에 놓이면 잡념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는 최고령 웨이크보더다. 이곳에서 함께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20~30대 동료들은 “김 사장님이 롤 모델”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옆에 있던 젊은 웨이크보더가 끼어들었다. “대개 30대 후반에 운동을 그만둡니다. 위험하니까요. 그런데 김 사장님을 보면서 계속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김 대표는 젊은 사람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웨이크보드의 장점이라고 했다.

중복인 이날 김 대표가 삼계탕을 “쏘겠다”고 하자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무척 즐겁습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놀다 보니 복장도 젊어져요.” 그는 요즘 몸에 꼭 맞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는 골밀도 나이가 20대라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친구들이 저더러 미쳤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웃음)

위험을 즐기는 그의 성격은 일과도 관련 있다. 김 대표는 2001년 서울옥션 사장을 맡아 연이어 흑자를 내고 2005년 하나은행·학고재와 함께 케이옥션을 설립했다. 미술 경매의 베테랑인 그는 원래 은행원이었다. 하나은행에서 23년 동안 기획부장, 싱가포르지점장, 홍콩지점장, 자금본부장으로 일했다.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1978년 신입행원 때였다. 대출을 받아 그림을 사기도 했다. 30여년 동안 500점 넘는 작품을 모았다. “미술,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제 본성인 듯해요. 대개 사람들은 술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만 저는 이런 취미를 즐기면서 위안을 얻거든요.”

안정된 은행을 그만두고 미술계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말렸지만 그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을 번다”며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술 마실 때 미술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했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 대표는 “컬렉션과 익스트림 스포츠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게 중독이에요.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도전하면서 성취를 느끼는 거요. 컬렉션도 마찬가지거든요. 쇼핑 중독 아시죠? 이 작가다 싶으면 집요하게 사 모아요.” 2011년에는 케이옥션을 나와 1인 기업을 차렸다. 미술교육부터 컨설팅, 평론, 전시기획, 작품 거래 중개, 작가 지원까지 미술 산업 전반을 다루는 김순응아트컴퍼니다. 특히 중점을 둔 분야가 젊고 유망한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이면서 제가 자신 있는 일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돈이 되는 일이지요.” (웃음)

그는 투자에 성공한 작가로 작고한 장욱진·김흥수·손상기·오윤 작가와 오치균 작가 등을 꼽았다. “모두 5년 안에 그림 값이 10배 이상 올랐습니다.” 4~5년 전부터는 이진용, 마리 킴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김순응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한 작품 20점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작품들은 100% 낙찰됐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오치균 작가의 ‘사북의 개나리’로 1억3000만 원에 팔렸다.

김 대표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독서와 사색,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로 얻은 직관이 나만의 기준”이라며 “작가의 독창성과 열정, 철학과 인성을 중요하게 본다”고 답했다. “신진 작가 발굴은 벤처회사에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력이 있음에도 저평가된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김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은 아직 저평가됐다”며 “글로벌 미술시장이 활기를 되찾아 전망이 밝다”고 자신했다. 그는 앞으로 해외에서 네트워크를 넓히며 꾸준히 유망 작가를 발굴할 계획이다. “회사를 벗어나 한강에 나오면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자유롭습니다. 이제 ‘김순응’이라는 브랜드로 제3의 인생을 살게 됐으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려고 합니다.”

201409호 (2014.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