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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IKH MANSOUR BIN ZAYED AL NAHYAN - 만수르의 오일머니 파워 ‘무섭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 세계에 ‘만수르 열풍’이 불고 있다.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UAE)의 부총리이자 이 나라를 이루는 7개 토후국 중 가장 크고 부유한 아부다비의 로열패밀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얘기다. 그는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하더니 뉴욕시티 FC도 창단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족 만수르.
아부다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있다. ADIA는 자산 규모를 밝힌 적이 없지만 국제경제계에서는 3000억(약 300조원)~8750억 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포브스는 아부다비의 알 나흐얀 가문의 재산을 1조 달러 정도로 추정한다.

그 부의 원천은 물론 석유와 가스다. 아부다비는 매년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아랍에미리트(UAE) 전체 석유생산의 95%, 가스 생산의 6%를 차지한다. 또 지금까지 발견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9%, 가스 매장량의 5%를 차지한다. 에너지만 갖고도 상당 기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나라는 인구 1인당 석유와 가스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이웃 국가인 카타르에 이어 세계 2위다. UAE의 2013년 국내총생산(GDP)은 3900억 달러 규모다. 1인당 GDP는 4만3185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를 뒤흔든 재정 위기 속에서도 8~9%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자기 이름으로 개인투자 한 최초의 UAE 부자

아부다비의 에미르(군주)이자 UAE 대통령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재산이 230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왕족 순위 2위다. 중동 사막지대에서 부의 상징이라 불리는 낙타도 1만4000마리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분원을 유치해 아부다비를 중동의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할리파의 동생인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최근 세계 스포츠계에 중동 오일달러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2008년 UAE 두바이의 기업인 술라이만 알 파임과 함께 태국 총리 출신의 기업인 탁신 친나왓으로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팀을 사들였다. 국제무대에서 생소한 인물이었던 그는 세계에 해외 투자의 선봉장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11일 포브스닷컴은 그를 ‘페르시아만의 새로운 억만장자’로 표현했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1년 전만 해도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이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에게 다소 생소했다. 적어도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 39세의 그는 아부다비의 왕족 출신으로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부총리 직을 맡고 있다.

그의 자산 중 대부분은 상속받은 것으로 그의 가문은 1970년대 석유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둬 15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투자에 나선 최초의 UAE 억만장자다. 첫 공식 투자는 맨시티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맨시티 인수와 동시에 59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을 들여 브라질 선수 호비뉴를 영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 달인 10월 바클레이스 은행이 중동 자본 유치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96억 달러를 투자해 국가 구제금융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맨시티를 사들인 그는 6년간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어 팀을 최고 수준으로 키웠다. 세계에서 가장 자금력이 풍부한 축구클럽이 된 맨시티는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호비뉴를 영입하는 등 지금까지 3억 달러 가까운 돈을 들여 우수 선수들을 줄줄이 데려왔다.

엄청난 투자의 효과는 2011/12년 시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맨시티는 막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상대로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드래포드에서 6대 1로 대승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맨체스터의 두 팀인 맨유와 맨시티의 대결을 맨체스터 더비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맨시티가 이 같은 대승을 거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듬해 5월 14일 맨시티는 맨유와 승점이 동률인 상황에서 퀸즈파크 레인저스와의 마지막 경기를 이겨 44년 만에 시즌 우승을 거뒀다. 퀀즈파크 레인저스는 이 패배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탈락했다. 맨시티는 지난 5월11일 치른 2013/1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2대 0으로 물리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무승부만 기록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리함으로써 2위인 리버풀을 승점 2점차로 느긋하게 제쳤다. 꾸준한 투자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만수르의 맨시티는 올해 중앙 수비수 엘리아큄 망갈라를 3200만 파운드(약 552억원)에 영입했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으로부터 재정적 페어플레이(FFP·수입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는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여파로 자제한 것이 이 정도다. 야야 투레, 사미르 나스리,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 쟁쟁한 멤버들이 가득하다. ‘첼시의 레전드’라고 불리던 프랭크 램퍼드는 미국 뉴욕시티 이적 후 재임대 형식으로 맨시티에 합류했다.

만수르는 미국 스포츠, 특히 축구 시장을 노리는 해외자본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미국 5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늦게 출범한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아이스하키(NHL)와 농구(NBA)를 따돌리고 미국 내 3위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MLS는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관객 수 1만8608명을 기록했다. 미식축구(NFL·6만8397명)와 야구(MLB·3만504명) 다음이다. 전 세계 프로축구 리그에서 10위권에 들었다. 여기에 만수르가 가세한 것이다.

이미 2008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시티를 운영한 그는 MLB 명문 뉴욕 양키스와 손잡고 뉴욕을 연고로 하는 20번째 MLS 프로축구팀인 뉴욕시티FC를 창단했다. 다비드 비야(스페인), 프랭크 램퍼드(잉글랜드) 등이 뉴욕시티FC 유니폼을 입고 내년 3월 MLS에서 뛴다. 만수르가 스포츠 투자를 강화하기 시작할 당시 그의 부하직원이 했다는 “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말이 한때 그의 발언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해외 투자로 아부다비도, 아부다비 왕자 만수르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2008년 만수르가 인수한 맨체스터 시티는 2011/12, 2013/14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했다.


맨시티 인수 후 선수 영입에 3억 달러 들여

한국에서도 만수르는 위력을 발휘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7월 13일 첫 방송한 ‘만수르’ 코너가 2회분인 7월 20일 방영분부터 ‘억수르’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석유공사 측에서 거래국 주요 인사인 만수르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코너이름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수르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보는 그의 가문이다. 그의 가문에 대한 정보는 그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나흐얀 가문의 자이드의 아들 만수르라는 뜻이다. 이름 맨 앞에 셰이크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이슬람 율법학자나 부족 지도자, 이슬람 군주의 가문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여성에겐 셰이하라는 존칭을 붙인다.

만수르의 아버지인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은 아부다비의 에미르, 즉 이슬람 세습군주였다. 이름에 술탄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두고 러시아 차르나 몽골 칸과 동급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빈 술탄은 술탄의 아들이란 뜻으로 자이드의 부친 이름이 술탄이었다. 술탄은 이름으로도 많이 쓰인다.

자이드는 1971년 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7개의 토후국이 독립할 당시 이를 결집해 UAE라는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독립 당시 가장 크고 인구와 자원이 많으며 강했던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UAE의 대통령을, 두 번째로 큰 두바이의 에미르가 총리를 맡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 자리를 33년간 유지하다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아부다비의 에미르는 독립 전인 1966년부터 38년간 맡았다.

자이드는 생전에 여섯 차례 결혼해 19남 9녀의 자녀를 뒀다. 첫 부인 소생인 장남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부다비의 에미르 자리를 이어 받았으며 UAE의 대통령직도 당연히 물려받았다. 그의 이복동생인 모하메드는 아부다비의 왕세제가 돼 차기 대권 계승자가 됐으며 UAE군 부사령관을 맡고 있다. 만수르는 이 두 사람의 이복동생인데 아버지 자이드의 셋째 부인 파티마의 넷째 아들로 권력에서 거리가 멀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만수르의 동복형제들이다. 만수르의 생모 파티마는 6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들은 하나 같이 똑똑하고 유능하다. 이들 여섯 명은 어랍어로 바니 파티마, 즉 파티마의 아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UAE와 아부다비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아부다비 군주와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파티마의 장남인 함단은 이복동생 술탄과 함께 UAE의 공동 부총리를 지냈으며 UAE의 외교장관을 맡았다. 현재는 아부다비 서부지역의 주지사다. 만수르는 2009년 이복동생 사이프와 함께 이들로부터 공동 부총리를 이어 받았다. 하자는 2006년 퍼스트 걸프 뱅크(현 FGB) 회장으로 선출됐고 동생인 타눈은 부회장을 맡았다. 만수르는 그전까지 이 은행의 회장을 맡았다 하자에게 넘겨줬다. 아부다비에 본부를 둔 이 은행은 1979년에 생겼으며 UAE에서 가장 큰 자산 규모를 자랑한다. 만수르의 동생인 압둘라는 UAE 정보문화장관을 지낸 뒤 2006년 2월부터 외교장관을 맡고 있다.

만수르는 UAE의 내각위원회 의장, 투자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으며 최고석유위원회와 국제 석유투자회사, 아부다비 투자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라의 돈을 만진다는 이야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우주여행을 추진하는 버진 갤럭틱과 아랍 세계의 주요미디어인 스카이뉴스 아라비아를 비롯한 벤처 및 주요 기업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의 오너라는 사실이다. 2008년 맨시티를 구입해 최근까지 투자 드라이브를 이어오고 있는 바로 그 회사다.

만수르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2년제 대학인 산타 바바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뒤 UAE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해 1993년 졸업했다. 1997년 아버지인 자이드가 대통령으로 있던 대통령실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복형인 할리파가 뒤를 잇자 대통령 담당 제1장관을 맡았다. 과거 대통령 위원회와 대통령 법원을 합친 막강한 자리였다. 그는 왕세자가 된 이복형 모하메드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일을 했다.

만수르는 부인들 역시 만수르만큼 화제다. 첫 번째 부인은 알리아 빈트 모하메드 빈 부티 알 하메드 전 총리의 딸이다. 둘 사이에 자이드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다. 그는 2005년 5월 둘째 부인인 마날 빈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과 결혼해 2남 2녀를 두고 있다.

마날은 두바이의 에미르이자 UAE의 총리인 모하메드의 딸이다. 마날은 두바이의 왕세자인 함단의 누나이기도 하다. UAE 여성위원회 의장으로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담당하고 있다. 미모가 뛰어난 마날은 UAE의 최대 에미르 가문인 아부다비의 나흐얀 가문과 서열 2위 격인 두바이의 알막툼 가문을 잇는 가교 역을 하고 있다. 이런 마날을 부인으로 뒀다는 사실이 만수르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만수르의 개인 재산은 얼마일까? 그는 2009년 포브스가 선정한 억만장자 순위에서 49억 달러의 재산으로 10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포브스는 2010년 그의 재산의 상당액이 개인 자산이 아닌 아부다비의 국가 자금이라는 판단 아래 억만장자 순위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국가자금이든 개인재산이든 그가 쓸 수 있는 자금은 천문학적인 규모다. 그간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 50억 달러를, 맨시티 선수를 영입하는 데 3억 달러를 퍼부었는데 이는 그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만수르의 힘이다.

201409호 (201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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