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극장의 함정 vs 금 모으기 

 

김광기 포브스코리아 편집인

일본 경제가 다시 급류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다.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2년 12월 아베신조 정권 출범 이후 올여름까지 1년 반 동안 순풍에 돛단 듯 기세등등했던 일본이 아니었나? 지난 4월의 소비세 인상(5%→8%)이후 내수 소비가 다시 얼어붙은 게 직격탄으로 꼽힌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아베노믹스 처방으로는 경제를 되살리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그만큼 일본 경제는 뼛속 깊이 골병이 들어있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다시 가속도가 붙은 엔화약세(엔저) 현상도 이젠 달리 봐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돈을 풀어 의도적으로 엔저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통화전쟁론’보다는, 경제가 워낙 취약해 통화가치도 저절로 떨어지고 있다는 ‘허약체질론’이 더 잘 들어맞는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정·관계와 재계에서도 “엔저는 수출에 별 도움이 안 되면서 수입 물가를 올려 서민생활만 고달프게 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3번째 화살인 ‘구조개혁과 임금상승을 통한 성장전략’은 이미 부러져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에선 잃어버린 20년을 두고 ‘극장의 함정’에 빠졌다는 자성론이 인 적이 있다. 경제가 침몰하는데, 국민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안타까워하기만 할뿐 힘을 모아 맞서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내 일인데도 남의 일인 양 구경만 했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 등장 이후 일본은 극장화에서 한동안 벗어나는 듯했다. 아베 총리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이젠 달라지는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지금 일본 국민은 다시 자포자기 증상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될 것이란 우려가 요즘 부쩍 제기된다. 1990년대 초 일본과 지금의 한국이 성장률·경상수지·금리·환율·인구구조 등 여러 구석에서 매우 흡사한 점에 비추어, 한국 경제도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경고음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도 아베노믹스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란 전망이 가세한다. 2개의 화살(재정과 통화 방출)만 쏘았을 뿐, 3번째 화살(구조개혁)은 여전히 과녁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다른 길을 갈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정신과 의지는 깨어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보여준 ‘금모으기’ 운동 같은 것 말이다. 지금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정작 위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똘똘 뭉쳐 난국을 정면 돌파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예컨대 구조개혁을 위한 각종 법 개정과 공무원 연금개혁 같은 것도 결국 국민이 압박을 가해 성사시킬 것이란 얘기다.

한국에 대한 평가는 바깥에서 더 후한 편이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들은 최근 한국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G20 중 최우수 성장전략으로 평가했다. 한국이 성장전략을 실행하면 2018년 GDP가 현 추세보다 4.4%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6년 뒤인 2020년에는 4만 달러를 넘어서 일본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IMF와 OECD의 장기 경제전망을 근거로 LG경제연구원이 추정한 결과다. 올해 일본과 한국의 1인당 소득은 각각 3만6800달러와 2만7500달러로 약 30%의 갭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두 나라의 실질 성장률 격차(3%포인트)와 환율 흐름 등을 감안한 때 2020년이 되면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분석이다. 만약 남북한의 경제 교류·협력의 물꼬가 다시 터진다면 그 시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지금부터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일본식 극장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게 기본 전제다.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 경제의 구조개혁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남북한 관계도 개선하는 포용력을 보여야 하겠다. 선거가 없는 내년은 다시 맞기 힘든 골든타임이다.

201412호 (201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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