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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3D 애니메이션 ‘넛잡’ 으로 할리우드를 홀리다 

 

사진 지미연 기자
국내 강소기업인 레드로버가 제작한 극장용 3D 애니메이션 <넛잡: 땅콩도둑들>이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하회진 레드로버 대표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때도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하회진 대표는 3D 모니터 제작업체인 세븐데이타를 설립하면서 경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3D모니터를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사명을 지금의 레드로버로 바꿨다.
6년 전의 일이다. “배급사 선정은 됐습니까?” 극장용 3D 애니메이션 <넛잡: 땅콩도둑들> 제작을 막 시작한 2009년 말, 제작비를 지원해줄 투자회사를 찾은 하회진(49) 레드로버(REDROVER) 대표가 인사를 마치자마자 들었던 말이다. 자본금 100억원대 수준의 중소기업이 애니메이션 제작과 동시에 배급사를 선정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배급사를 선정했느냐는 그 질문은 사실상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자체 배급사를 가진 세계적인 기업인 월트디즈니 정도는 돼야 제작과 동시에 배급사를 선정할 수 있었다. 당시 다른 투자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하 대표가 <넛잡>으로 미국 할리우드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 대부분 믿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성공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 말이 터무니없어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레드로버는 결국 증자를 단행하고 관계기관을 부지런히 뛰어다닌 끝에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넛잡>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순제작비용만 4000만 달러(약 440억원), 광고홍보(P&A)비용으로 3500만 달러(약 385억원) 등 8000만 달러(약 866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됐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썼다는 영화 <설국열차> 제작비 450억원의 2배에 가까운 규모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많은 비용이 투입된 만큼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제작만 제대로 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2014년 1월 17일 <넛잡>은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북미지역 3472개 극장에서 개봉하는데 성공했다. 작품을 할리우드시장에 가장 먼저 선보이겠다는 약속을 보란 듯이 지킨 것이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기대이상이었다. 미국 개봉 열흘 만에 입장료 누적 실적이 4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당장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다. 1950년대 후반, 뉴욕 공원에 사는 동물들의 겨울나기 식량창고인 떡갈나무를 실수로 불태워 버리고 쫓겨난 다람쥐 설리와 생쥐 버디를 비롯한 동물 친구들이 땅콩가게의 땅콩을 훔치기 위해 펼치는 좌충우돌 탐험 이야기가 북미지역 아이들의 마음을 훔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들도 호평을 내놓았다. <넛잡>은 2014년 3월 3일 미국 NBC의 ‘투데이 쇼’에 올해 주목할 만한 영화로 선정됐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영화예매 사이트 판당고(Pandango)의 영화평론가 타라 맥나마라(Tara McNamara)는 “<넛잡>은 ‘올해 가장 기대되는 패밀리 무비’다. 비교 가능한 또다른 애니메이션이 개봉하지 않는 한 높은 흥행수익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넛잡>은 지난해 북미지역에서만 극장상영 수익과 DVD 판매 수익을 합해 총 9000만 달러(약 984억6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레드로버는 미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지난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200개 국가에서 <넛잡>을 개봉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지난해 12월 26일 개봉하는데 성공했다. 애초 레드로버는 미국과 중국 동시개봉을 추진했지만 중국이 자국영화 보호를 위해 펼치고 있는 스크린쿼터제에 가로막혀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개봉은 늦었지만 실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중국에서 개봉한 첫 주말에만 253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달성했다. 개봉 9일 만인 지난 1월 3일에 누적수익 490만 달러(약 52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3년간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미스터고> 1814만 달러, <설국열차> 1198만 달러, <만추> 1049만 달러에 이어 4위의 성적이다.

중국 개봉 9일 만에 490만 달러 수익


▎<넛잡: 땅콩도둑들>은 2014년 1월 17일 미국 개봉을 시작으로 지난해 한 해 동안 전 세계 200개 국가에서 개봉했다. 올해는 일본과 룩셈부르크 개봉을 앞두고 있다
<넛잡>보다 2주 앞서 중국에서 개봉한 <명량>(425만 달러)과 <뽀로로의 슈퍼썰매 대모험>(111만 달러) 보다 좋은 실적이다. 하 대표는 그래도 아직은 배가 고픈 눈치였다. 그는 “<넛잡>이 중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기분이 좋지만, 그만큼 일찍 개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가 좋은 성과에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 대표는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얘기를 들려줬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중국 기업의 한 임원과 만났는데, 그분이 제 앞에서 <넛잡>DVD를 꺼내놓더라고요. 아무래도 저와 만난다고 하니까 일부러 <넛잡> DVD를 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 말씀이 시내 가판에서 <넛잡> DVD를 7개나 깔아놓고 팔고 있더랍니다. 인기 있다는 최신 미국영화도 많이 놓고 팔아봐야 2~3개였다고 하니 그만큼 중국에서 <넛잡>의 인기가 좋았었다는 것이죠.”

하 대표에 따르면 가판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중국 영화관에서 정식 개봉하기 전에 불법 DVD를 통해 <넛잡>을 만난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람객 몰이를 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던 것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서일까. 하 대표는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현재 제작이 한창인 <넛잡2>는 미국·중국·한국 동시 개봉을 추진할 생각이다. <넛잡>의 성공으로 인지도를 높여놓은 만큼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했다.

<넛잡>의 성공으로 대번에 국내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자리 잡은 레드로버는 하 대표가 창업한 회사로는 두번째다. 홍익대학교 금속공학과에 다니던 시절 그는 창업은 꿈도 꾸어보지 않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졸업후 전공과는 거리가 먼 반도체회사에 입사했다. 첫 직장은 미국·프랑스·대만 등에 있는 반도체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다국적기업으로, 제법 규모가 컸다. 그렇게 10년을 한 직장에서 다녔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놔두지 않았다. 1999년 반도체시장에 찬바람이 불자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가 레이오프(lay-off)를 결정했다. 그 역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자의반타의반 창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됐다. “친한 친구와 둘이서 창업을 모색했어요. 대만에서 휴대전화 부품을 수입해와서 국내 휴대전화 제작업체에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죠. 준비기간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접어야 했어요.”

당시 그는 수입해온 부품을 휴대전화 사업 진출을 준비하던 국내 H대기업에 판매하기로 하고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 초 H기업이 돌연 휴대전화사업을 접으면서 사업 진행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의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제가 사업을 시작할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준비하던 사업을 포기한 하 대표는 그 길로 다시 샐러리맨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후 레드로버의 모체인 ‘세븐데이터’를 설립하게 된다. 세븐데이터는 3D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모니터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처음에는 하 대표를 포함해 세 명이 시작했다. 그 중 한명은 당시 충북대학교 김남 교수가 연구 중이던 3D 모니터에 별도로 자금을 투자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아직 3D 모니터에 대한 정보가 적을 때였다. 그는 “3D 모니터를 접했을 때의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너무나도 강렬했다”고 말했다. “3D 모니터만 있으면 집에서도 현실감 있는 영상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건 무조건 되는 아이템’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 초기에는 제품 제작에만 몰두했다. 3D 모니터가 실용화에 앞서 연구단계에 있었던 만큼 제품화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는 2005년 국내 연구기관에 3D모니터 제품을 처음으로 판매했다. 당시 레드로버가 생산한 3D모니터는 3D모니터의 대표적인 구현방식인 액티브와 패시브를 모두 구현하고 있어 해상도가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도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정부에서 레드로버의 3D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3D모니터의 교체주기가 길다 보니 시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 대표는 그래도 낙담하지 않았다. 작은 시장을 한탄하기보다는 3D모니터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한 노력끝에 2006년에 처음으로 3D 콘텐츠 게임인 ‘로보칸’을 선보였다. ‘로보칸’은 국내에서 개최한 ‘제1회 우수게임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지만 시장에서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그는 이 시기에 회사명을 지금의 레드로버로 바꾸었다.

하 대표가 3D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운좋게도 <넛잡>을 공동 제작한 캐나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툰박스와의 인연도 이때 이뤄졌다. 두 회사가 손잡고 공동 제작한 작품 1호는 TV 애니메이션 <볼츠앤블립>(Bolts&Blip)이었다. 하 대표는 이때 피터 레페티오티스(Peter Lepeniotis) 감독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피터 감독이 <볼츠앤블립>을 프로듀싱하기 전에 ‘설리 스쿼럴’이라는 2분 남짓의 단편영화로 상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작품이 아주 재미있었죠. 그래서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함께 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했던 겁니다.”

피터 감독은 하 대표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해서 <넛잡>이 만들어지게 됐다. 작품의 스토리는 2003년 개봉한 미국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동물과 사람의 언어가 달라 일어나는 해프닝을 이야기로 다루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넛잡’으로 했죠. 잡이라는 단어가 직장이나 일이라는 뜻이 있지만, 은어로는 ‘훔치다’라는 뜻이 있거든요.”

주인공은 피터 감독의 단편영화 ‘설리 스쿼럴’의 주인공이었던 설리로 정했다. 설리의 친구들인 버디(생쥐)와 앤디(다람쥐), 쭈글이(불도그) 등의 캐릭터도 이같은 협업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영화에 등장할 주요 캐릭터가 정해지자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 대표는 “다람쥐들이 돈이 가득 든 자루를 너트자루로 오해해 훔치는 이야기를 스릴 넘치면서 재미있게 써 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 선택한 사람이 2007년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각본을 쓴 론 캐머런(Lorne Cameron)이다.

하반기에 <스파크>로 홈런 기대


하 대표는 작품이 실패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 철저한 시장 파악을 병행했다. 다각적으로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장을 분석한 결과 미국 어린이들은 미키마우스와 같은 쥐 캐릭터에 친숙함을 느껴 호감이 높다는 걸 알게 됐다. 피터 감독의 영화 <설리 스쿼럴>의 주인공인 다람쥐가 미국시장을 공략할 캐릭터로 정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토대로 콘티가 짜여졌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작품인 만큼 작품의 배경 역시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1959년 미국의 공원으로 설정했다. 작품 안에는 한국의 보편적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우정과 단결심, 협력 등을 녹여냈다. 이렇게 세심하고 철저한 과정을 거쳤기에 미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레드로버는 2015년 하반기 개봉을 앞둔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크>(SPARK)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스파크>는 주인공인 원숭이를 비롯해 동물 캐릭터들이 우주에서 벌이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개봉이 아직 멀었는데도 미국 배급사들의 반응은 뜨겁다. “<스파크>는 제작비 120억원을 잡고 제작을 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아무래도 영상의 질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미국 배급사에서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영상미를 높여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서 60억원을 추가 투자해 제작했습니다.” 하 대표는 내심 <스파크>에 대한 기대가 큰 눈치였다.

레드로버는 <넛잡>과 <스파크>의 개봉을 발판으로 올해는 중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영화 개봉에만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공동제작하거나 레드로버의 작품을 배급할 수 있는 협력 기업을 발굴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최근에는 중국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4D·5D 특수영상 시스템 구축 사업 진출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들과 만나 논의를 하고 있다. 레드로버는 ‘3D 입체 테마파크 사업’, ‘4D시네마 구축 사업’, ‘360도 입체 특수 영상관 사업’ 등과 관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두려움도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크릿>이라는 책을 참 좋아합니다. 그 책을 읽다보면 ‘하고자하는 일을 자신의 물건 등 모든 것에 주입하면 무언의 힘들이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무슨 일을 할 때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작은 물건까지도 제 마음을 인식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해낼 수 있다고 깊이 믿지요. 저는 그게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하 대표만의 ‘시크릿’이 또 한번 홈런을 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 글 정혜선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201502호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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