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찬 웨어펀 회장은 국내 명품사업 1세대로 불린다. 30년 가까이 고급 패션브랜드를
수입해 유통했다. 그의 아들 권문수씨는 주목 받는 패션 디자이너다.
▎권기찬 웨어펀 회장과 아들 권문수 ‘문수 권’ 대표. 다른 듯 닮은 생김새처럼 옷 입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패션에 대한 열정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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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입고 인터뷰하려고?” 권기찬(64) 웨어펀 회장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아들 권문수(35)디자이너(MUNSOO KWON 대표)에게 한마디 했다. 청바지에 직접 디자인한 스웨터와 재킷을 입고 온 권 대표는 머쓱한 듯 자리에 앉았다. 인쇄소에서 오는 길이라는 그는 인터뷰보다는 두고 온 상품 카탈로그에 관심이 가 있는 듯했다.부자(父子)가 오랜만에 마주앉은 이곳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오페라갤러리. 권 회장이 명품 수입 사업과 함께 꾸려온 살뜰한 공간이다. 권 회장은 1986년 수입 자유화가 시행되자 패션 브랜드 수입·유통업체 웨어펀인터내셔널을 창업했다. 이전에는 패션과는 거리가 먼 건설회사 해외 주재원이었다. 그는 한국외대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근무했다. 산유국들이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면서 중동 붐이 일어 유명 백화점이 리야드에 하나 둘 들어오던 때다.
이탈리아·프랑스 정부에서 훈장 받은 아버지권 회장은 중동과 유럽을 자주 오가며 명품 브랜드를 접하게 됐고, 결국 패션사업에 승부를 걸게 된다. 사업 초기에는 명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싸워야했고, 외환위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애지중지 사업을 키워 나갔다. 지난해 5월 롯데백화점에 아이그너, 겐조, 소니아리키엘등 패션브랜드 국내판권을 매각하기 전까지 패션사업가로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28년이다.패션사업을 접은 그는 앞으로 문화예술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화사업은 오래 전부터 권 회장의 관심사였다. “사업을 시작하고 2년쯤 지나니 내가이 사업을 왜 하는가 하는 본질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문화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패션은 문화사업의 일종이잖아요. 패션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웨어펀이라는 회사명을 찬찬히 뜯어보니 ‘재미(fun)를 입는다(wear)’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그는 패션사업을 할 때도 ‘옷 장수’에 머무르지 않고 옷에 깃든 가치와 역사, 철학까지 전하려고 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2006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2013년에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기사장을 받았다. 두 나라에서 기사장을 받은 한국인은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권 회장은 스스로를 옷을 잘 입으면서 별나게 입는 사람, 근사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 옷 이야기로 혼자 3시간을 떠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동 시절보다 좀 더 오래 전이다. 학생 때부터 그의 ‘옷 사랑’은 유명했다.대구에서 자란 권 회장은 중학생 때 양키골목이라 불리던 교동시장을 찾아 구제 옷을 구입하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시간만 나면 서울 동대문 시장, 도깨비 시장(황학동 벼룩시장)에 드나들며 쇼핑에 심취했다. “하여간 남들하고 똑같이 입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 주로 양품(수입상품)을 찾아 돌아다녔어.” 대학생 때 이미 명동에 외상을 해주는 단골 양복점이 있었다. “옷을 직접 수선해서 입기도 했는데 주인이 내가 디자인한 재킷, 셔츠를 쇼윈도에 걸어두고 이따 와서 찾아가라고 했어요. 사람들한테 인기가 좋았거든.” 교복은 물론 군복까지 고쳐 입었다는 대목에서 조용히 있던 아들 권 대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계셨던 부대, 군기가 영 아닌데요~.”권 대표는 아버지에게 옷에 대한 애정을 물려받았다. 그는 중학생이 되자 버스를 타고 30분씩 걸려 이태원에 힙합 스타일 옷을 사러 다녔다. 사실 패션 DNA는 3대에 걸쳐 내려왔다. 권 회장 역시 모직회사에 다녔던 아버지에게 옷을 배웠다고 했다. 어린 문수는 아버지 권 회장의 해외출장에 자주 동행했다. 상품 주문, 거래처 미팅, 파티 현장에도 참석했다. 옆에서 보는 게 다였지만 패션사업 환경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는 권 대표다. “원단, 디자인을 익히고 옷을, 옷의….” 아들의 말문이 막히자 권 회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옷의 가치를 보는 눈이 생겼지.” “맞아요. 제가 옷을 워낙 꼼꼼하게 봐서 여자친구가 같이 쇼핑하면 무척 피곤해해요.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쇼핑하면 제가 힘들다니까요(웃음).”권 대표가 2011년에 선보인 ‘문수 권(MUNSOO KWON)’은 20대 중반~40대 중반을 겨냥한 남성복 패션 브랜드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편집숍과 현대백화점 편집숍 등에 입점했다. 심플하고 실용적이면서 숨은 디테일이 특징인 문수 권은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권 대표는 지난해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가 개최하는 ‘CFDK 어워드’에서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상’을 받았다.미술대학에 다니던 권 대표는 군대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때 새해에 세배를하고 나면 항상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넌 꿈이 뭐냐’, ‘커서 뭐 될래.’ 그 질문이 참 싫었는데 그때 제 표정을 보고 아버지가 왜 답답해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는 입대 전까지 자신이 온실 속 화초로 자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고생이란 걸 해봤어요. 그 고생을 하고 나니 제대하면 뭘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했죠. 내 꿈은 뭘까.” 군 복무를 마친 권 대표는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AAU(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입학해 패션을 공부했다. 졸업하고 톰브라운, 헬무트랭, 로버트 겔러 같은 유명 브랜드에서 인턴십을 거쳐 남성복 버클러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패션브랜드 창업한 디자이너 아들
▎서울컬렉션에 선보인 권문수 디자이너의 작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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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 권은 외국에서 먼저 알려졌다. 권 대표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2012년 글로벌 패션 박람회인 미국 뉴욕 캡슐쇼에 참가했다. “유명 패션 블로그인 ‘하이프비스트’가 제 컬렉션을 포스팅했어요. 그 뒤로 라스베이거스 워크룸, 파리 캡슐쇼, 베를린 캡슐쇼 등에 참가했고 일본, 홍콩에도 진출했습니다.”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은 절반 정도다. 2013, 2014년에는 서울 패션쇼에 섰다.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에 세 번 참가했고, 지난해 10월 ‘2015 SS 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에서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요즘 주변에서 아들 칭찬이 종종 들려요. 디자이너로서 역량뿐 아니라 성품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아주 기쁩니다.” 권 회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들의 결심이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명품 수입 사업을 이어받을 줄 알았어요. 아니면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이라 미술가나 미대 교수가 될 줄 알았는데 패션디자이너라니. ‘니가 하고 싶으면 해라’고 했지만 썩 좋지는 않았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놈이 유학 가서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 졸업전시회 때 많이 기특했어요.”권 대표는 사업 초기에 자본금, 사무실 임대 등 일부 권 회장의 지원을 받았다. 권 대표는 “남들보다 편하게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아버지 후광을 입고 디자이너 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무실 임대 외에 다른 지원은 일체 받지 않는다고 했다. 사업상 일은 모두 독립적으로 처리한다. 권 대표가 “굳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감출 필요도, 알릴 필요도 없다”고 하자 권 회장이 “‘홀로서기’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난 서운하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부자는 닮은 듯 달랐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특히 말투에서 성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권 회장은 말이 빠른 편인데도 끊김 없이 유창하다. 권 대표는 조용하고 말이 느린 편이다. “나는 어릴 때 남자다워야 한다고 교육받았는데 문수는 좀 달랐어요. 태권도, 권투 같은 운동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흥미를 보이지 않더라고.” 권 회장 역시 영화배우와 미대 진학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했다. 권 대표는 “아버지가 롤모델”이라며 “조용한 성격인 저와 다르게 항상 에너지 넘치고 선구자 역할을 하시는 점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옷 입는 취향 역시 완전히 다르다. 권 회장은 화려하고 디테일이 드러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권 대표는 깔끔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 권 대표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제 옷을 입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제가 디자인하는 목적이니까요. 너무 과한 옷은 저한테 안 맞아요. 하지만 아버지와 서로 취향은 존중합니다. (웃음)”아들의 말을 듣고 권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과 관련한 대화를 자주 하느냐?’고 권 대표에게 묻자 권 회장이 “나는 얘기하고 싶은데 아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또 다시 서운함을 내비쳤다. 권 대표가 서둘러 변명에 나섰다. “아버지와 제가 하는 일이 반대인 셈이잖아요. 저는 디자이너고 아버지는 상품을 보완해 유통하는 MD(상품기획자)고요. 또 아버지는 브랜드를 수입하고 저는 디자인해서 외국에 팔잖아요. 바빠서 자주 대화할 기회는 없지만 ‘이 원단을 왜 사용했는지’, ‘왜 이 부분을 이렇게 디자인했는지’ 아버지 질문에 대한 예상 답안은 늘 준비해놓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 “늘 겸손하라”한창 사업에 몰두하는 아들을 보며 권 회장은 새삼 세월이 흘렀음을 알게 된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패션사업을 했지만 경제 생태계가 바뀌면서 더 이상 성장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어요.” 중소기업으로 브랜드를 확장해나가는데 한계에 부딪혔다는 얘기다.권 회장은 롯데에 브랜드 판권을 매각한 뒤로 오페라갤러리와 지난해 12월 새로 개관한 사진 갤러리 ‘옐로우 코너’에 집중하고 있다. 오페라갤러리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체인 형 갤러리로 뉴욕, 런던, 싱가포르 등 10여 개국에 지사가 있다. 서울점은 권 회장이 2007년 10월에 열었다. 이 갤러리는 주로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취급한다. “갤러리를 소유하고 싶어서 이 사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서울 시민에게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몰에 있는 옐로우코너는 합리적 가격에 사진 작품을 살 수 있는 갤러리로 프랑스에 본사가 있다. “5년 동안 전국 대도시에 10개 이상의 옐로우 코너를 열 계획입니다. 오페라갤러리는 샤갈, 달리 같은 거장의 작품을 만나는 희소성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옐로우 코너는 좀 더 대중적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올 봄 경기도 안성에 미술관도 개관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권 회장이 25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며 모은 그림 300여 점이 전시된다. “지역 주민들이 질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아버지는 패션계를 떠났고 아들은 이제 막 날개를 달았다. 권 회장은 아들에게 “늘 겸손하라”고 말한다. 그때문인지 권 대표의 과거 인터뷰 기사에서 ‘겸손하다’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는 “아직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고 한참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겸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웃었다.권 회장이 물었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냐’고. 권 대표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권 회장은 “어떤 옷을 만들든 그건 너의 취향이다. 다만 너의 옷으로 사람들에게 문화적 가치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