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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하 UL 코리아 사장 

기술 융·복합 최전선에 선 안전 인증기업 

김영문 포브스 기자 ·사진 이원근
UL은 세계적인 안전 인증기업이다. 최근 들어 모바일·전자결제 등 신기술이 쏟아지는 한국은 UL 코리아가 안전 인증의 역할을 맡고 있다.

▎황순하 UL 코리아 사장은 최근 모바일·전자결제 등 새로운 기술적인 도전에도 UL코리아가 선구적인 위치에 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장면 하나.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오전 10시 37분. 미국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출발하려던 일본항공(JAL) 소속 항공기 ‘787 드림라이너’의 화물칸 후미 쪽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항 직원의 신고로 긴급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화재는 곧 진압됐지만 173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은 긴급 상황 발생으로 즉시 탈출하는 소동을 빚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터리팩이 문제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사고 직후 전 세계 모든 보잉 787기종에 대해 전면 운항중단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보잉 측이 배터리·충전기·화재 차단 시스템 등을 재설계한 후에야 운행 재개 허가를 내줬다. 당시 미국 항공당국은 일본의 ‘GS유아사’가 제작한 배터리의 안전성 등 각종 연구 조사를 UL(Underwriters Laboratories)에 의뢰했고, UL은 이에 따라 항공기 장착 배터리에 대한 더 강화된 안전 기준을 제시했다.

“UL은 이미 그 사건보다 8년 전에 대만에 배터리연구소를 세웠고, 산업용 배터리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현재 UL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항공기 배터리 관련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죠.” UL이 어떤 회사인가라는 물음에 황순하(56) UL 코리아 사장이 앞의 사례를 꺼내 들며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 정부 당국도 믿고 의지해


그는 “앞에 거론한 이야기는 미국 정부 당국이 우리 UL을 어느 정도로 신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UL은 미국 최초의 안전 규격 개발기관이자 인증기관으로 공학과 엔지니어링 분야에 기초한 120년 역사의 안전 과학 회사”라고 덧붙였다.

UL은 안전 규격 개발은 물론 국가·기업별 다양한 안전 기준에 따라 수천 종류의 제품을 테스트하고 검증하는 제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전 세계 44개국에 약 1만 명 이상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비영리기관이다. 2012년부터는 일부 비즈니스를 영리로 전환하면서 지난 5년간 32개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등 업무 영역도 넓히고 있다.

회사 회의실 벽면에 크게 자리한 UL 마크를 바라보던 황 사장은 “북미 시장에서 UL 인증을 받지 못하면 판매가 어려워서 UL 인증 스티커 하나에 수천억원의 시장 진출이 달려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 많은 소비자가 매일 아침 켜보는 TV·스마트폰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UL 마크를 접할 만큼 미국 시장 소비자 중 75%가 UL 마크를 신뢰한다는 보고서도 있다”고 덧붙였다.

UL 마크를 다는 것이 의무사항이 아님에도 이 마크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대단했다. 그 비결이 뭘까? 황 사장은 UL의 활동사항부터 소개했다. “학계·업계·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자리를 적극 마련하고 있다.” UL은 실제 매년 4월 시카고에서 연례 회의(UL Annual Meeting)를 열어 세계 각국 UL 임직원과 학계·업계·기관 등의 전문가 약 500명이 모여 1주일간 열띤 토론을 벌인다. 그는 ‘GMA(Global Market Access)’라고 불리는 해외 시장 접근성 지원 서비스 얘기도 꺼냈다. “우리는 약 150여 개 국가에서 요구하는 안전 인증에 관련한 모든 절차에 필요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 점이 시장의 ‘신뢰’를 얻는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간 항공기·발전설비·건축물 등 대규모 하드웨어 인증 업무가 주였던 UL은 전자 기술의 혁신을 거치며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 스마트폰 산업이 세계 전자 시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모바일·전자결제·IT 보안 등 새로운 분야의 시장이 나타난 것이다. 황 사장은 “앞으로 UL의 안전 검·인증 업무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질 것”이라며 “특히 삼성·LG·현대·SK 등 반도체·스마트폰 등 소형 첨단 부품·기기 등을 제조하는 글로벌 기업이 포진한 한국은 북미와 유럽 못지않은 큰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지난 4월 13일 경기도 수원시에 UL 무선시험소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EMC(전자파간섭)·RF(무선)·SAR(전자파 인체 안전성) 등 인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황 사장은 “무선시험소가 없을 때는 국내 기업이 미국을 수시로 왕래하며 인증 작업을 해야 했는데 이번 수원 무선시험소 개설로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스마트폰의 무선 인증 문제 때문에 미국까지 매번 갈 필요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황 사장은 ‘소통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2011년 그가 사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임직원 1대1 면담’이었다. 한 번에 2시간씩 하루에 4~5명과 면담을 했다. 그렇게 200여 명의 임직원과 면담을 하다 보니 3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황 사장은 부임 당시를 떠올렸다. “엔지니어·공학자들이 가득한 이 회사에서 본사 회장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사람들에게 물어라. 그리고 잘 들어라(Ask People, Listen Carefully)’였다.”

사실 그는 조직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알고 있다. 그것만 잘 정리해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황 사장이 오랜 기간 회사생활을 통해 터득한 진리였다.

한창 당시 얘기에 푹 빠져있던 황 사장은 “3년 전부터는 사장실도 없애고 직원들과 똑같은 책상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직원들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파티션도 낮췄다. 이젠 내 동생·후배·식구들 같다”며 주변에 앉아 있던 직원을 둘러보며 웃었다.

황 사장의 격의 없는 노력 덕분일까? 지난 5년간 UL 코리아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 글로벌 임직원 수의 약 2%에 불과 한 230명으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실현하고 있다. 1인당 생산성이 UL 글로벌 대비 무려 3배에 달한다. 실제 이번 무선 시험소 개소를 보듯 통상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UL 코리아는 지역 단위 급으로 위상이 높다.

1인당 생산성은 UL 본사의 3배


▎경기도 수원에 있는 UL 무선 시험소 전경
덕분에 황 사장이 얻은 직함이 또 하나 있다. ‘UL 자동차 부문 총책임자.’ UL의 사업별로 흩어져 있는 자동차 관련 인증 사업을 통합해 육성할 계획으로 이 부문 글로벌 사장 자리에 키스 윌리엄스 UL 회장이 직접 그에게 맡긴 것. 기아차와 대우차를 거친 20년 경력의 자동차 전문가라는 게 이유였지만 그는 오히려 스마트폰 업계와 같이 자동차도 기술적인 혁신을 앞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독일 벤츠·BMW와 같은 엔지니어 중심의 장치 산업인 자동차 분야가 전자부품이 대다수 차지하는 전자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현재도 자동차 부품의 40%가 전자 부품으로 채워진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대표적이다”며 황 사장은 앞으로 다가올 산업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술 융·복합이 빠르게 이뤄지는 변화의 최전선에 UL 코리아가 있다. 만만치 않게 다가올 변화의 도전, 그의 생각을 물었다. “마중지봉(麻中之蓬).” 황 사장의 답이다. 올해로 직장생활 30년째를 맞는 황 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마를 중간에 키워 놓으면 쑥은 굳이 붙잡지 않아도 똑바로 큰다는 뜻입니다. 어떤 변화와 혁신이 있어도 각기 다른 우리 직원 모두가 서로 돕는다면 산업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UL 비즈니스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이원근

201511호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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