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힐풀앤빌라(BAYHILL POOL & VILLA)는 건물 스스로가 액자가 되어주었다. 콘크리트와 천연 대리석, 나무로 이루어진 이 다채로운 프레임, 직선의 액자 속 베이 언덕의 풍경이다.
살면서 누구나 다시 떠올리고픈 순간이 있다. 이런 순간 중 하나가 신혼여행(honeymoon)이다. 가장 빛나고 가장 럭셔리한, 떠올리기만 해도 입 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블링블링한 순간이 그리워질 때, 잠시나마 그 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특효약이 바로 ‘세컨 허니문(second honeymoon)’이다. ‘허니문’이란 단어는 납덩이같던 심장을 풀무질하여 일상의 무게를 꿀처럼 달콤하고 달처럼 둥실거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그래, 그럼 어디로 갈까. 문제는 이름난 고급 호텔도 허니문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선 왠지 평범하게 느껴진다는 거였다. 욕심을 부렸던 신혼여행 장소는 투명한 프라이빗 비치에 야외 욕실에 버틀러까지 딸린 몰디브 풀빌라였기에 고급을 표방하는 웬만한 장소는 이제 평범하게 느껴진다.한 없이 높아진 눈을 충족할만한 장소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세컨 허니문의 장소로 낙점을 받은 곳은 바로 베이힐풀앤빌라. 베이힐풀앤빌라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고급 풀빌라다. 우리는 호텔동 보다는 건물 전체를 통째로 여유롭게 쓸 수 있는 빌라동으로 정했다. 이것은 여행 주제에 걸맞은 탁월한 선택이었는데, 건물 안팎 곳곳에서 아름다운 서귀포의 바다와 하늘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컨 허니문을 위한 탁월한 선택
▎숨이 탁 트이는 넓고 끝없는 하늘까지 다 담아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추상화 앞에 선 기분을 들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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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은 특정 순간에 찍은 몇 개의 장면으로 마음속에 기록된다. 여기 새겨진 한 장의 사진은 영영 잊히지 않고 일상의 건조한 순간마다 보석함을 열 듯 떠올리는 장면이 된다.치열하고도 원색적인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꺼내먹을 초콜릿을 최대한 저장하고 싶은 마음을 읽은 것처럼 베이힐앤풀빌라는 건물 스스로가 액자가 되어주었다. 발걸음과 눈길이 닿는 공간마다 감각적인 앵글이 돼줬다. 콘크리트와 천연 대리석, 나무로 이루어진 이 다채로운 프레임은 제주의 오밀조밀한 돌담과 낮은 지붕들 사이로 부는 바닷바람을 오롯이 담아내는 액자자체의 장식이 배제된, 모던한 프레임이었다.숙소를 선택한 오션빌라는 특별히 풍경이 아름다웠다. 압권은, 편안한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창을 가리고 있던 스크린을 올리는 순간이다. 6m 이상의 2층 높이를 가득 채운 통창을 통해서 둥글고 낮게 얽힌 검은 돌담, 그 너머 오밀조밀한 마을, 그 너머 바다, 숨이 탁 트이는 넓고 끝없는 하늘까지 다 담아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추상화 앞에 선 기분을 들게 한다.사실 딱딱한 직선의 미니멀함은 마음의 번잡함을 정갈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의 판타지 실현의 가능성은 목적지보다 스스로의 마음상태가 좌우한다고 했다. 아무리 최고의 장소라고해도 여행자의 마음의 사정까지 도와줄 수 없지만, 추측컨대 건축가는 이 리조트를 찾는 이들의 필요와 이곳의 존재의미를 가장 잘 파악해냈기에 이유가 분명한 모던함으로 2015년도에는 건축가협회상도 받았을 것이다. 과도한 장식이나 소품들로 취향이나 분위기를 강요하는 대신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도록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모던함은 흔히 차갑지만 제주라는 섬에서 이곳은 섬세하고 다정하다.어메니티도 컨셉에 충실하다. 영국 황실에서 애용한다는 밀러 해리스(Miller Harries)의 르 쁘티 그랭(Le Petit Grain)은 풀향기가 담고 있는 순수한 싱그러움과 묘한 설레임 외엔 안정감을 분산시키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섞이지 않았다.사실 ‘세컨 허니문’은 희망일 뿐, 이제 겨우 배밀이를 시작한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로맨틱하기를 기대한건 욕심일 수 있다. 하지만 허니문이 아니면 어떠랴, 마음만은 충분한 휴식을 제공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찬찬히 보니 이번 여행을 가장 유감없이 누린 사람은 다름 아닌 10개월짜리 아들이었다. 사진 속 녀석은 엄청나게 행복한 표정이었다. 비록 바닥에서 10cm 높이였지만 천연 대리석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수영장 뷰를 즐기고, 넓디넓은 바닥을 신나게 기어 다니고, 폭신한 침구 위를 구르고, 선물로 받은 장난감 오리와 함께 물놀이도 했다.통상 복층 통유리의 장점이 경치와 채광이라고 한다면, 단점은 열손실이라고들 한다. 아무래도 창이 크면 실내 온도가 내려갈 수 있는데, 베이힐풀앤빌라는 단열기능이 매우 훌륭한 창을 사용해 열손실을 막았다. 실제로 영하 5도의 날씨에도 웃풍이나 한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어린 아이가 통유리 바로 앞에서 놀아도 걱정 없을 만큼 따뜻했다.거실 한쪽이 통유리라면, 다른 한쪽은 벽돌 마감을 했다. 모던함은 약간 지루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고벽돌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로 균형을 잡는다. 바닥은 천연대리석이다. 견고하면서도 밀도가 부드럽고 고급스럽다.
럭셔리 풀빌라가 주는 섬세한 호사
▎수영장은 적절한 높이의 현무암 벽을 활용해 외부 시선을 차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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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노출 콘크리트 마감을 선택한 곳이 많다. 특히 거푸집에 송판을 덧대 무늬를 만든 노출 콘크리트는 햇빛이 비치면 은근하게 나무의 질감을 드러내 단조로움을 덜었다.벽지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촌스러운 몰딩도 전혀 없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규격의 문 대신 좁고 높은 문을 적용해 공간을 더 시원하고 세련되게 보이도록 했다. 일 층과 이 층 곳곳에 탁 트인 전망은 콘크리트 구조와 어우러져 갤러리처럼 다양하고 재미있는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수영장은 적절한 높이의 현무암 벽을 활용해 외부 시선을 차단했다. 전면유리로 거실과는 완벽히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 전체 디자인에서 유일하게 약간 겉도는 느낌을 주는 월풀은 의외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시설 중 하나였다. 아기를 재우고 난 후, 우리는 영하의 한기가 가득한 밖으로 나갔다. 반짝거리는 수영장을 바라보며 온몸을 따끈한 물에 담그자 묵은 피로가 입김처럼 사라졌다.
직선과 곡선이 만들어낸 치유의 공간
▎침대 맞은 편 가로로 길게 난 창문이 보여주는 풍경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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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공간이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준다면,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의 2층은 좀 더 프라이빗한 느낌이다. 직선의 단정한 공간에서 창밖 제주의 아기자기한 곡선을 구경해보자. 부드러운 해안선과 현무암들, 아련한 섬의 실루엣도. 빌라의 정원에는 구불구불한 감나무와 금귤나무, 빨간 열매가 달린 먼나무가 있다. 그리고 멀리 구불구불한 올레8길과 둘레둘레 돌아가게 설계된 오솔길, 화산석으로 만든 울퉁불퉁한 담장도 보인다. 침대 맞은 편 가로로 길게 난 창문이 보여주는 풍경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바로 옆 테라스는 생동감 있는 제주의 색깔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다. 구비된 뱅앤올룹슨 스피커에 블루투스로 음악을 틀어놓고, 귤 몇 개와 책 한권 들고 틀어박히니 더 바랄 게 없다.직선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액자’라는 물건은 어떤 장면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빌라 속, 거대한 액자 속에서 액자 밖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그림인지, 우리가 그림이 된 건지 알 수 없어졌다. 그리고는 한 발자국 걸을 때 마다, 눈이 올 때마다, 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벽면의 창들은 액자가 되어 내 마음속의 것들을 조용히 보여주었다.베이힐풀앤빌라는 가격만 보면 다소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빌라 크기에 따라 1박에 50만원에서 14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결과적으로 전체 비용을 정산하니 ‘세컨 허니문’으로는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일단 빌라에서 4~10인 숙박비를 해결할 수 있고, 해외로 나갔다면 감당해야했던 비행기 삯이 빠진다. 신혼여행지였던 몰디브는 직항이 없어 두바이를 경유했다. 몰디브 말레국제공항에 도착한 이후에도 리조트가 있는 섬까지 다시 경비행기나 스피드보트를 타야하기 때문에 교통비가 만만치 않았다. 반면 제주도는 특가항공을 이용하면 교통비가 크게 들지 않는다. 주말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교통비는 몰디브의 10분의 1 수준이다. 간단한 요리도 해먹을 수 있어서 가까운 시장에서 장을 봐다가 멋지게 세팅 된 식탁에서 분위기를 내며 식사 할 수도 있다.한편 베이힐풀앤빌라의 미니바나 편의용품은 편의점 수준으로 합리적이다. 객실은 몰디브의 풀빌라보다 훌륭하고, 비슷한 수준의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고, 레스토랑과 음식, 서비스 수준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개인해변과 개인 버틀러가 없다는 것 빼고는 오히려 더 편하고 고급스럽다. 게다가 휴가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주말에 다녀올 수 있다.
참 하나 더, 비행기 시간이 아무리 촉박해도 꼭 아침은 먹고 갈 것. 식사는 육개장과 전복죽, 그래놀라 세트와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인공조미료 없는 건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먼저 나오는 식전 빵이 맛있다. 겉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빵 3총사를 놓치지 말자.한 차례 서귀포 동문시장에서 횟감을 사러 나갔던 것만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리조트에서 보냈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거실 통유리 가득 들어오던 하늘과 싱그러운 바다 내음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거 아무래도 조만간 세 번째 허니문을 가야하려나.- 글 문희철 기자·사진 박찬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