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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김원의 스포츠 & 비즈 (1) 

2016 프로야구 도약 찬스냐 침체 위기냐? 

정영재 선임기자·김원 기자
지난해 12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최한 윈터미팅에서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지금 프로야구가 발전하고 있지만, 잘 나갈 때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16년 한국 프로야구는 성장과 정체의 길목에 서 있다.

▎꽉 찬 야구장과 텅 빈 야구장, 2016년 한국 프로야구는 성장과 정체의 길목에 서 있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34년 동안 총 1억4000만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연간 관중 수는 프로 첫해 158만명에서 지난해 762만명(포스트시즌 포함)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5개 스포츠 전문채널이 전 경기를 생중계하고, 미디어에서는 프로야구 관련 콘텐트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국제대회에서 승전보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프로야구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졌다.

이처럼 프로야구가 지속적으로 파이를 키워가고 있지만 “지금이 프로야구의 가장 큰 위기”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들린다. 우선 선수 몸값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비용이 크게 늘었다. 자유계약선수(FA)의 연봉 총액이 100억원을 육박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구단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는 제 10구단 kt위즈가 1군 무대에 합류하면서 팀당 경기 수가 144경기로 늘어나 관중 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메르스 등 예기치 못한 악재를 만나 목표로 했던 800만 관중에는 못 미쳤다. 그렇지만 신설된 와일드카드 결정전(정규시즌 4-5위간 경기)이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시즌 막판까지 5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흥행을 이끌었다. 전체 입장 수입을 관중 수로 나눠 계산하는 경기당 객단가는 2014년 9489원에서 지난해 9929원으로 상승했다. 구장별 좌석 가격이 오르면서 실제 관중당 입장료가 늘어난 것이다. 입장 수입은 2014년 692억원에서 810억원으로 118억원(17%)이 뛰었다.


▎지난해 야구대표팀에서 프리미어12 우승을 이끌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박병호와 김현수. 스타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한국 프로야구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낙관론 | 매출 증대, 신축구장 효과

구단 매출의 증가도 긍정적인 신호다. 독자 생존의 길을 걷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의 약진이 돋보인다. 프로야구 구단들이 모기업의 재정 지원을 받는 것과 달리 넥센 히어로즈는 야구단 이름을 빌려주는 네이밍 마케팅 등 ‘남다른 길’을 걸어 왔다. 감사보고서 기준 히어로즈의 매출액은 2012년 222억→2013년 230억→2014년 31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는 강정호 포스팅 금액(약 50억원)을 포함해 350억원으로 뛰었다. 새해 첫 주에는 박병호(미네소타) 이적료 150억원이 구단 통장에 꽂혔다. 이장석 히어로즈 구단주는 “메인 스폰서인 넥센타이어의 후원금이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두 배 뛰었다. 중계권료도 서서히 오르고 있다. 올해 이적료ㆍ스폰서수입ㆍ중계권료ㆍ입장수입ㆍ광고 등을 합쳐 매출 500억원을 올린다면 흑자도 바라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10개 구단 중 6개 구단의 지난해 입장수입도 2014년에 비해 늘어났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은 전년 대비 28억원이 증가했고, LGㆍ한화 등도 20억원이 넘게 올랐다.

올 시즌에는 신축구장 효과도 볼 수 있다. 넥센이 1만2500석 규모의 목동구장을 벗어나 1만8076석인 고척돔으로 이전하면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본다. 라이온즈파크는 국내 최초의 8각형 구장으로 쾌적한 관람환경을 제공한다. 지하철 역에서 5분이면 경기장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관중석 2만4000석에 최대 수용인원은 2만9000명에 달한다. 시민야구장(1만 명)의 두 배 이상 관중을 모을 수 있다.

지난해 야구 대표팀의 인상적인 활약도 프로야구 흥행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표팀은 국가대항전인 ‘프리미어12’ 4강에서 숙적 일본에 0-3으로 뒤진 9회 4-3 대역전극을 펼쳤다. 결승에 오른 한국은 ‘야구 종주국’ 미국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동안 야구 대표팀의 활약은 프로야구 흥행의 보증수표로 작용했다.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우승한 뒤 그 해 총 관중은 전년보다 123만명 증가한 563만 명이 됐다. 이듬해 초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2012년까지 관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오랜 진통 끝에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것도 호재다. 개정된 스포츠산업진흥법에 따라 기업이나 단체가 공공체육시설을 최대 25년까지 위탁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프로 구단들도 지자체로부터 합리적인 비용에 구장을 장기 임대해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단들이 야구장 내 매점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고, 이는 관중 유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관론 | 몸값 급등, 모기업 의존


▎지난해 후반기 한국에 와 인상적인 피칭으로 올해 재계약한 한화 로저스. 인상적인 피칭으로 자신의 몸값을 올렸다.
프로야구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순이익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FA 시장이 커지고, 각 팀이 앞 다퉈 정상급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구단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게 늘었다. 에이전트(선수 대리인) 제도가 도입되면 비용이 더 늘어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올 시즌을 앞두고 80억원대 선수가 2명(정우람ㆍ김태균, 4년 84억원) 나왔다. 삼성에서 뛰던 박석민은 NC와 계약하면서 최초로 90억원(4년 최대 96억원)을 돌파했다.

외국인 선수의 경우 과거엔 전성기가 지나 MLB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주로 한국에 왔지만 요즘은 다르다. 현재까지 계약을 마친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30.28세다. 젊고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한국 무대를 노크하면서 선수들의 몸값도 껑충 뛰었다. 29명의 외국인 선수와 계약하는 데 구단들이 쓴 돈은 총 2524만 달러(약 303억원)다. 선수당 평균 87만 달러(약 10억원)로 66만 달러(약 8억원)였던 지난해보다 31% 증가했다.

한화 투수 에스밀 로저스(31)는 190만 달러(약 23억원)에 재계약했고, KIA는 투수 헥터 노에시(29) 영입에 170만 달러(약 20억원)를 투자했다. 2014년 1월 외국인 선수의 몸값 상한(30만 달러)과 재계약시 연봉 인상률 제한(25%)이 폐지된 후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실제 선수들에게 투자하는 비용은 이를 상회한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대니얼 김 MLB 해설위원은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요즘 프로야구 팬들은 응원 팀이 꼴찌를 하는 것보다 투자에 인색한 ‘짠돌이 구단’으로 비치는 걸 더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장은 “메이저리그 구단 경영은 ‘이익 극대화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기량이 뛰어난 수퍼 스타를 영입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또한 관중을 끌어들이고 이익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수익이 아니라 구단 이미지를 우선하는 ‘승률 극대화 모델’이다. 이미지 개선의 방법은 오로지 하나, 승리 뿐이다. 승률 극대화 모델에서는 모기업의 투자와 정책적 방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모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야구단도 휘청거리게 된다.

광고비 위주의 매출 포트폴리오도 위기에 노출돼 있다. 넥센을 제외한 프로야구단 매출에서 광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구장과 선수 유니폼에는 수십 개의 광고가 붙어 있다. 광고 수입의 대부분은 모기업 계열사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이 모기업들이 수십 개의 영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야구단이 광고를 유치하는 데 제약이 많다. 동종ㆍ유사업계 광고 유치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MLB의 경우 광고비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입장료과 중계권료 수입이 전체 구단 수입의 90% 가까이 된다.

국내 빅스타들이 메이저리그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야구팬들로서는 반갑겠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올 시즌 빅리그에서 뛰게 될 코리안 메이저리거는 추신수(34ㆍ텍사스 레인저스)ㆍ류현진(29ㆍLA 다저스)ㆍ김현수(28ㆍ볼티모어 오리올스)ㆍ박병호(30ㆍ미네소타 트윈스)ㆍ강정호(29ㆍ피츠버그 파이리츠)ㆍ오승환(34ㆍ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총 6명이다. 최근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이대호(34), LA 에인절스 최지만(25)까지 합류한다면 최대 8명이 된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박찬호(43)ㆍ서재응(39)ㆍ최희섭(37ㆍ이상 은퇴)ㆍ김병현(37ㆍKIA) 등이 MLB에서 활약할 당시 프로야구는 침체 일로를 걸었다. 2002ㆍ04년 프로야구 평균 관중은 5000명을 넘지 못했다. 95년 1만820명을 찍은 이후 관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다 다시 1만명대를 회복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딴 2008년이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빅리그행 러시가 프로야구 흥행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티켓 파워를 가진 수퍼 스타의 부재는 흥행에 암초와 같다. 프로야구 평균 관중은 2012년 1만3747명을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정체하고 있다. 일부 인기 구단의 성적에 따라 흥행 지표가 널뛰기 하는 것도 문제다. 관중 정체를 겪은 최근 3년동안 이른바 엘롯기(LGㆍ롯데ㆍKIA) 중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은 2013ㆍ14년 LG 밖에 없다.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이자 『한국의 야구 경제학』을 쓴 이영훈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의 홍보 수단으로만 여겨졌던 야구단 운영에도 수익성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야구단도 승리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수익 증대를 위한 마케팅을 하게 됐다. 넥센 히어로즈가 적자에서 벗어나 손익을 맞추는 정도로 성장하면서 모기업의 지원 없이도 자생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기적으로 안정 단계에 접어든 한국 프로야구는 더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대책은 수익선 다변화, 중계권료 현실화


넥센처럼 자립 경영을 불가피하게 선택한 구단도 있고, 삼성처럼 변화를 시도하는 구단도 있다. 한 때 FA 시장을 주도하며 ‘돈성(돈+삼성)’이라는 오명을 얻은 삼성은 외부 FA 영입을 줄이고 선수 육성에 힘쓰면서 프로야구 최초로 정규시즌 5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말에는 효율적인 구단 운영을 위해 광고ㆍ홍보 전문 회사인 제일기획에 편입됐다. 이른바 ‘묻지마 투자’에서 ‘합리적 투자’로 방향을 튼 것이다.

프로야구단이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형적인 수익 구조를 탈피하는 게 시급하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정희윤 소장은 “다양한 좌석 상품의 개발로 팬들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객단가를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계권료의 현실화도 중요한 과제다. KBO는 지난해 3월 계약기간 4년, 중계권료 360억원(연간)에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과 계약을 갱신했다. KBO가 KBSㆍMBCㆍSBS 등 지상파 3사 컨소시엄과 계약했고, 케이블TV는 중계권 대행사 에이클라를 통해 판매했다. 인터넷ㆍ모바일 중계권료(200억원 추정)는 별도다. MLB 사무국이 지난해 ESPNㆍFOXㆍTBS 등 전국 네트워크 3사와 맺은 중계권 계약은 온라인 및 모바일 방송권리를 포함해 8년간 124억 달러(약 14조7240억원) 규모다. 각 구단은 연고 지역의 케이블 방송과 중계권 계약을 별도로 체결한다. 이영훈 교수는 “MLB에서는 중계권을 쪼개 팔면서 경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쓴다”고 말했다.

KBO 윈터미팅에서 발표를 한 메이저리그 인터내셔널(MLBI) 크리스 박 수석부사장은 “비용ㆍ수익만 중시해서는 안 된다. 20년간 성장했다고 앞으로의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며 “(MLB에서) 관중 수는 늘지 않았지만 관중 1인당 수익은 늘었다. 팬들이 더 즐거운 경기를 보고 강력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영재 선임기자·김원 기자

정영재 : 2012~15년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스포츠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겸임교수와 한국체육정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원 : 중앙일보 스포츠부에서 야구ㆍ배구ㆍ모터스포츠ㆍ미식축구ㆍ뉴스포츠 등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통계와 데이터, 경제현상을 바탕으로 스포츠를 조망하는 글을 쓴다.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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