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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6) 선택과 집중이 성공 부른다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근 대박을 쳤거나 기사회생했거나 여전히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초일류 기업은 업종 불문하고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선택과 집중에 힘을 쏟았다는 점이다. 선택과 집중은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자 비결이다.

▎라인의 성공적 상장은 SNS 한 우물만 파온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사진은 7월 14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황인준 라인 CFO(왼쪽)와 신중호 CGO(오른쪽 둘째), 마스다 준 CSMO(오른쪽)가 상장을 기념해 타종하고 있는 장면.
두마리 토끼를 좇는다는 말이 의미하듯 목표가 분산되면 달성 가능성이 급격히 작아진다. 실제로 지금 뒷산에 사냥을 나가 집을 뛰쳐나간 토끼 두 마리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우선 신발 끈부터 단단히 조여매야 한다. 평소 체력 단련이 돼 있다면 토끼 잡을 준비는 됐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는 랜덤으로 뛴다. 어디로 뛸지 알 수 없다. 막상 뛰기 시작한 토끼 두 마리 중 한 마리라도 잡으려면 당신의 선택은 자명하다. 한 마리는 포기하고 다른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더구나 어디로 뛸지 모를 토끼를 잡으려면 사력을 다해야 한다. 추격 과정에서 한 눈을 팔거나 방심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눈앞에 있던 토끼가 눈 깜짝할 사이 숲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하나를 골라 열정적으로 파고들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토끼몰이의 은유는 기업 경영에 있어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SNS 한 우물만 파온 ‘라인’의 성공

라인의 성공적 상장을 보자. 라인은 지난 7월 초 일본과 미국 증시 상장을 계기로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다시 한 번 실증했다. 라인은 비좁은 한국 시장을 넘어야 길이 있다는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일본에서 씨를 뿌리고 성장한 기업이다. 일본 증시 상장과 미국 증시의 주식예탁증서(ADR) 동시 상장으로 라인은 단박에 시가총액 10조원 규모의 대형 기업이 됐다. 사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비즈니스로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한 아시아 기업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페이스북·트위터·구글·야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이용되는 SNS와 인터넷 포털은 거의 대부분 미국에서 나왔다. 네이버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세계를 24시간 연결하는 인터넷·모바일 시대에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는 시장에서 1위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외연 확장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에선 카카오톡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어 틈새공략조차 어렵다. 네이버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글로벌 SNS 확보라는 목표를 유지하면서 집중해나갔다. 공략 대상은 아시아 시장이었고 그 중에서도 일본이 꼽혔다. 이번 라인 상장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책임자(CGO)가 2008년 일본에 파견돼 도전에 나섰지만 초기에는 실패를 거듭했다. 실패의 척도는 시장 반응이다. 일본은 갈라파고스 섬 같은 곳이다. 세계 각지에서 인터넷 바람이 불어도 일본에선 약해진다. 여전히 인쇄매체의 힘이 강하고 슬로우 라이프를 선호하는 생활 패턴 자체가 인터넷ㆍ모바일 이용자의 전파 속도를 낮춘다.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고 했다. 2011년 3월 11일은 선택과 집중으로 SNS 한 우물만 파온 라인의 존재감을 일본 열도에 알리는 날이 됐다.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라인의 위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생사를 알 수 없고 재해 지역 안과 밖이 차단되면서 라인은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 됐다. 라인은 이제 일본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은 SNS가 됐다. 일본을 거점으로 대만·태국·인도네시아로 진출하면서 라인 이용자는 2억10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사업을 총괄한 신중호 최고글로벌책임자는 2007년 이해진 네이버 의장에게 영입된 뒤 시장 개척 미션을 받고 일본으로 떠날 때 편도 비행기 티켓을 갖고 한국을 떠났다. 사업에 성공할 때까지 한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사업은 철저하게 현지화 했다. 라인의 대표이사는 일본인이다. 일본과 미국 증시 동시 상장 때 해외 언론이 라인을 일본 기업으로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중호는 일본말을 히라가나부터 배우고 회사의 공식 언어도 일본어로 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래야 사업에도 성공할 수 있다.

네이버가 라인 상장을 통해 당장 황금알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일본에 있는 기업이고 종업원도 대다수가 일본인이고 세금도 일본에서 낸다. 하지만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계속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현재는 일본을 중심으로 동남아에 국한돼 있지만 라인을 키우면서 얻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활용해 무한경쟁에 휩싸인 글로벌 SNS 비즈니스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포켓몬 고(Go)’로 부활한 닌텐도


▎포켓몬고 열풍(오른쪽)은 증강현실 기술을 포켓몬에 결합시키는 아이디어를 결정적으로 받아들인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왼쪽, 지난해 작고)의 판단이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선택과 집중은 닌텐도의 부활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닌텐도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나름 유명한 게임기 회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2008년 들어 급격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전기전자 기업이 줄줄이 부실화하던 와중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다. 견인차는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닌텐도DS·위(Wii) 같은 콘솔 게임기였다. 이에 힘입어 닌텐도는 그해 1조8386억 엔(약 20조원)의 매출과 5552억 엔(약 6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도 닌텐도 같은 걸 만들 수 없겠나”라고 할 만큼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열흘 이상 피는 꽃이 드물다고 했다. 닌텐도는 모바일 환경에 순응하지 못했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가 모바일 세계를 열면서 닌텐도는 최근 5년간 영업적자를 거듭해 깊은 부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시장에서는 이름이 잊혀졌고 모바일 시대의 부적응 자로 낙인 찍혔다. 그랬던 닌텐도가 이번에는 ‘포켓몬고(Go)’를 앞세워 모바일의 강자로 나타났다. 포켓몬고는 구글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나이앤틱(Niantic)의 증강현실(AR) 기술과 닌텐도의 인기 캐릭터 포켓몬을 융합한 모바일 게임이다. 스마트폰에서 이 게임 앱을 실행한 뒤 실제 장소를 비추면 화면에 포켓몬 캐릭터가 나와 현실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다.

업계 1위도 산업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시대에 닌텐도처럼 기사회생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닌텐도는 1889년 화투를 만들던 작은 공장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소비 패턴과 기술이 바뀔 때마다 닌텐도는 변신해 생명을 이어왔다. 그러면서 포켓몬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강력한 지적재산권(IP)을 구축하고 DS·위 같은 콘솔게임도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한 눈을 팔지 않았다. 127년 전 놀이를 선택하고 이후에는 화투에서 비디오게임, 콘솔게임을 거치면서 게임에 집중했고 증강현실 게임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닌텐도 창업자 가문은 끊임없이 연구개발(R&D)에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닌텐도의 엔지니어들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오타쿠’들의 소굴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일반 사무 기업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기업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실적이 없어도 일을 재촉하는 경우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자의 철학이 중요하다.

증강현실 기술을 포켓몬에 결합시키는 아이디어를 결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경영자의 판단이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그는 바로 지난해 56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한 이와타 사토루(岩田聰) 닌텐도 전 사장이다. 그는 존 행크 나이앤틱 대표가 증강현실 기술을 포켓몬에 결합시키자는 제안을 해오자 바로 받아들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그래머 출신인 이와타는 평소 책상머리에 앉아서 평면적인 비디오를 들여다보고 하는 게임이 아니라 인간이 현실과 가까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비디오를 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임기 위가 나오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 마사요시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어 온 것도 선택과 집중에 비결이 있다. 그는 이통통신사업자로 성공한 뒤 끊임없이 정보통신기술(ICT)분야에 투자를 해왔다. 알리바바에 투자해 3000배의 수익을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는 비약적인 기술혁신의 변화만큼 빠르게 투자대상을 옮겨왔다. 최근 10조원을 들여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매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끊임없이 사고팔되 ICT라는 테마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가 ARM을 사들인 것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 PC 기반 반도체보다는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결정적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에 따른 선택이다. 무엇을 하든 하나의 테마에 집중하기 때문에 선견지명도 남다르다.

페이스북·구글 성공 원인도 선택과 집중

페이스북·구글 역시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은 SNS 기술을 기본으로 얼굴 인식 기술을 융합해나가고 있다. 함께 찍힌 사진에 나온 얼굴은 페이스북이 자동으로 연결해준다. 여기에 동영상을 갈수록 많이 활용함으로써 페이스북은 활자 중심의 문화에서 동영상 중심의 문화로 옮겨가는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구글이 검색엔진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선택과 집중의 결과라는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수많은 검색엔진이 등장했고 구글은 오히려 후발주자였지만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검색엔진에만 충실했다. 각종 심층적인 자료와 논문, 데이터는 구글을 따라가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같이 선택과 집중은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자 비결이다. 최근 라인과 포켓몬고는 그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을 뿐이다. 이들의 성공은 새로운 투자처와 신수종 사업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한국 기업에 명쾌하면서도 간단한 교훈을 시사한다. 그 교훈은 선택과 집중이다. 네이버는 시장 수요가 있는 사업으로 SNS를 선택한 뒤 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계속 집중했다. 이는 ‘한 우물을 파라’는 사업 격언과는 조금 다르다. 오래 전부터 파오던 우물이라도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고 우물이 마를 것 같으면 더 매달릴 이유가 없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은 결국 수요가 없는 사업은 버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은 얼마나 선택과 집중에 성공하고 있을까. 삼성은 2010년 5월 ‘삼성의 10년 구상’으로 신수종 사업을 발표했다. ‘2020년 5개 신사업에서 매출 50조원, 고용 창출 4만5000명’. 5개 신사업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였다. 10년간 2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이후 삼성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구상이었다.

어떻게 됐을까. 이 중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셋밖에 없다. 태양전지는 수익성을 낙관하기 어려워 접었고 LED 역시 사업 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삼성처럼 정보력과 기획력이 뛰어난 기업도 급변하는 산업 환경의 변덕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고급 인재들이 머릴 맞대고 짜낸 신수종 사업 가운데 두 개는 이미 선택과 집중 대상에 제외됐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것은 자동차용 전지,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뿐이다. 삼성은 이 분야에서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바이오·제약 부문에서는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전문기업(CMO) 챔피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8년까지 인천 송도에 3공장까지 완공하면 36만L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1위 로젠과 2위 베링거인겔하임을 제치고 바이오의약품 생산 1위 기업이 된다. 현재 로슈(스위스)와 BMS(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미국) 등 글로벌 제약사의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면서 세계 CMO 챔피언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스마트카에 도전하기로 한 결정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자율주행차ㆍ커넥티드카 같은 새로운 자동차는 이름만 다를 뿐 반도체가 관건이라고 봐야 한다. 스마트폰의 강자인 삼성전자로선 스마트폰을 이어나갈 핵심 미래 먹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자동차용 전지와 전자장비(전장)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테슬라와의 경쟁에 나선 중국의 자율주행 자동차 제조업체 BYD에 5000억 원을 투자했다는 소식이 삼성의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산업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금까지 보여준 방향도 선택과 집중이다. ‘신의 한수’는 한화그룹에 넘긴 방산화학 사업 매각이다. 삼성이 아무리 잘해도 한화를 비롯해 세계 일류의 벽을 넘어서기 어려운 분야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연관성 없는 사업은 확장도 금물이지만 보유하는 것도 위험하다. 경쟁력이 없는 분야에서 실탄을 낭비하고 과잉경쟁을 불러일으켜 시장만 어지럽힌다.

LG가 GS와 LS로 갈라져 나가 각자 전문분야를 좁힌 것도 선택과 집중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LG의 가장 큰 고민은 스마트폰이다. 2009년 애플이 스마트폰을 내놓았을 때 삼성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뒤를 따라가 시장 지배자가 됐지만 LG는 재래폰에 머뭇거리다 뒤에 처지게 됐다. 그러나 닌텐도가 보여준 것처럼 현재 펼쳐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LG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최대의 승부처가 될 사물인터넷(IoT)은 무주공산이다. 어떤 방식으로 기회를 포착할지는 순전히 LG의 역량과 경영 판단에 달려 있다. SK와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장수기업으로 꼽히는 듀폰의 최고경영자들은 “변화를 시도하면 60~70% 확률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100% 죽는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듀폰은 화약산업에서 화학 산업을 거쳐 생명과학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현실에 안주해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쇠퇴한 노키아·모토롤라·코닥이 걷지 못한 길이다. 뒤로는 중국 기업에 쫓기고 앞으론 첨단 기업을 뒤쫓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은 바이오·스마트카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계속 진출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따라가되 산업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의미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연세대를 나와 KDI(한국개발연구원) MBA와 동국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201609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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