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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학의 최고봉’ 뚜웨이밍 중국 고등인문연구원장 

“정부에게 사회는 명령보다는 협력과 협상의 대상”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세계적인 유교학자 뚜웨이밍(杜维明) 중국 북경대학 고등인문연구원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유교를 믿는 사람은 단순히 생각하고 성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철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뚜웨이밍 원장을 10월 8일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인터뷰했다.

▎한국을 방문한 뚜웨이밍 원장. 그를 빼놓고는 현대 유학·유교의 흐름을 논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적인 유교학자다.
같은 인물을 부르는 말이지만 공자(孔子)·쿵쯔·콘푸키우스(Confucius)·컨퓨셔스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 주연의 중국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2010)를 보고 상당한 ‘문화 충격’에 빠진 독자도 꽤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공자와 주윤발의 공자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공자가 사실은 실제 공자의 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다. 누가 진짜 공자일까.

공자는 누구인가? 그는 세상을 주유하며 어떤 꿈을 꿨을까. 선불교의 주요 화두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만큼이나 그 답이 알고 싶은 질문이다. 또 세속적 관점에서는 일개 ‘실패한 관리’에 불과한 공자는 어떻게 유교의 창시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됐을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도 있는데 왜 유교는 중국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공산주의를 버리고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할 것인가. 한국은 앞으로 유교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세계적인 유교학자 뚜웨이밍(76) 중국 북경대학 고등인문연구원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경희대학교와 (재)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문명전환강좌 시리즈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에서 강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란 뚜웨이밍 원장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린스턴대·UC버클리·하버드대에서 가르쳤다. 그를 빼놓고는 현대 유학·유교의 흐름을 논할 수 없다. 다음은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나눈 인터뷰 요지.

통치자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필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뚜웨이밍 원장. 그는 “공자는 중국의 통일보다는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공자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인류 공동체의 안녕(安寧)을 위해 헌신한 학식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는 은둔자가 아니다’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이해했다. 그는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영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그는 특히 정치 영역에서 세상의 상태를 향상하려고 했다.

그는 상당한 야망을 품었던 것 같다. 요즘으로 치면 총리의 자리에 오르는 게 그의 세속적인 목표였는가.

별로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관리가 되려고 시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인간의 조건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는 정치에 가담한 사람들이 특히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두었지만 그에게 정치 참여는 목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도덕적 품성을 바꾸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했다.

공자는 당시 분열된 중국의 통일을 꿈꿨는가.

그는 중국의 통일보다는 세계의 평화를 추구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수양, 가정 내의 규율, 국가의 가버넌스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 보편적인 평화에 대해 말했다. 또한 평화뿐만 아니라 번영이 그의 관심사였다.

‘유교는 종교냐 아니면 철학이냐’하는 논란에서 당신은 어떤 입장인가.

유교는 종교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적인 철학(religious philosophy)’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유교는 철학이지만,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철학이다. 또한 유교는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신앙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교를 믿는 사람은 단순히 생각하고 성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철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세상을 변화 시켜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 발전에 유교가 어느 정도까지 공헌했는지에 대해 학술적 논란이 있다. 한·중·일과 홍콩·싱가포르·베트남 등 유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모두, 일단 시장경제를 채용한 다음에는 빠른 경제 성장을 체험했다. 유교와 발전은 어떤 관계인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유교는 근대화의 장애물이다’라고 믿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부상은 유교적 교육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서구와는 다른 근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아마도 동아시아 모델은 개인 이익의 극대화보다 협력, 소통, 협업, 상호 존중을 보다 존중한다.

유교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 것이다. 유교는 경제발전에는 좋고 정치에는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유교 입장에서 경제발전 또한 수단이다. 목표가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부자가 돼야 한다. 부(富)를 추구하는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부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통치자는 종복(從僕)이 돼야 한다. 통치자는 사회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발휘해야 한다. 유교는 민주주의적이 아니지만 민본주의적이다. 유교는 인간을 ‘좁게’가 아니라 ‘넓게’ 본다. 인간은 단순히 ‘경제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이며 문화적 존재다. 또한 생태적(ecological) 존재다.

유교가 경제발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어


▎2006년 국내에서 출간된 뚜웨이밍의 저서 『문명들의 대화』
많은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유교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데 큰 관심이 있다. 그들은 『논어』를 중시한다. 유교는 비즈니스에 좋은 체제를 제공하는가.

금융위기 전에는 유교가 동아시아의 활력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은 지나친 국가주의, 정경유착, 인맥에 대한 지나친 의존, 개인의 존엄성이나 인권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 등 부정적인 요소들을 살피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유교를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본다면, 유교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는 아니지만 경제발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유교는 인류의 자기실현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 올바른 인간이 되는 길을 배운다는 게 유교적 휴머니즘(Confucian Humanism)의 가장 중요한 특질이다. 유교는 완전한 인간의 성숙과 번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경제는 인간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측면을 포괄하는 ‘유교 이야기’에서 일부분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유교는 부활하고 있는가.

그렇다. 정부뿐만 아니라 대중 차원에서 그렇다. 부활의 과정은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이다. 유교에 대한 관심은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역사적 기억과 유산을 대폭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잔인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적 연속성은 탄탄하다. 대만·홍콩·싱가포르도 문화적 연속성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불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 유교의 부활은 국가 주도 아닌가.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유교의 부활이 처음 시작된 곳은 학계와 대학이다. 1980년대에 대학생들은 서구에 관심을 가지는 한편 중국의 문화적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교에 대한 문화혁명 당시의 공격을 극복하려고 했다. 정부는 학계·재계 그리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교 부활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한다. 정부는 유교 부활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가담하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유교를 이용해 위계서열적인 통치를 도모하려는 것은 아닌가.

세상은 보다 복잡하게 바뀌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중국 정부가 가장 막강한 세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군림할 수는 없다. 세상이 보다 다원주의적(pluralistic)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부 자체가 다원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사회에 명령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 협력하고 협상해야 한다.

한국의 유교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사실 한국의 유교를 상당히 오래 전부터 연구했다. 1967년부터다. 그래서 퇴계와 다산의 연구에 대해서도 친숙하다. 나는 한국 유학이 유교 전통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본다. 유교는 중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사실 한국의 유교·유학은 중국 중심의 유교·유학에 대한 이해에 도전한다. 그래서 유교·유학(Confucianism)보다는 복수형으로 유교들·유학들(Confucianisms)이라고 해야 한다. 이들 전통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서로 보완관계다. 한국의 유교 전통은 매우 풍성하다. 한국의 유교는 사회적으로나 군주의 권력에 대해 매우 강력했다. 사회적으로 중국 유교는 한국 유교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그가 지닌 특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군주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동등한 위치에서 유교 세계에 참가하는 일개 구성원에 불과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동아시아는 새로운 유교를 창안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또 불가피하다. 유교의 부활과 부흥은 복고적인 형태를 띄면 안된다. 오늘날 세계의 위기와 난제에 대답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일 한국의 인구는 독일과 비슷하다. 한국은 그리스도교 인구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을 ‘유교적 그리스도교인’, ‘그리스도교적 유교인’으로 이해한다. ‘휴머니즘적 유교’와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상호 이해를 넓힐 것이다.

한국 유교가 중국에 가르칠 게 많다

미래의 유교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미래 유교가 ‘영적인 휴머니즘(spiritual humanism)’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영적인 휴머니즘’으로서 유교는 지구를 보살필 것이며 다른 영성 전통을 존중할 것이다. 새로운 유교는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할 것이다. 인류 공동체와 지구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또 그리스도교·이슬람·불교 등 다른 전통을 존중할 것이다.

유교의 ‘하늘’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하나님과 어떻게 다른가.

하늘은 편재하는(omnipresent) 존재다. 하늘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하늘은 모든 것을 느낀다. 그래서 하늘은 모든 것을 안다(omniscient). 하지만 하늘은 전능한(omnipotent) 존재가 아니다. 하늘은 창조주(creator)가 아니다. 우리와 하늘은 우주적 질서에 함께 참가하는 ‘공동창조주(cocreator)’다.

유교를 유럽·미국에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

사실 유교는 16~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啓蒙主義)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라이프니츠, 볼테르,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칸트, 등 유럽 사상가들은 중세 그리스도교와 거리를 두고 싶어했기 때문에 유교가 대안이었다. 이제 지나치게 돈벌이에 치중하는 소유욕에 사로잡힌 개인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이슬람 등 전통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자 한다. 유교 또한 인간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전통의 재해석을 통해 제공할 것이다.

유교가 극복해야할 단점은?

지난 200여 년간 유교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양성평등과 관련해 페미니즘의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유교는 아직 지나치게 가부장적, 위계서열적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유교는 아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 나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 나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유교 전통에서 해답을 추출해야 한다.

유교에 대한 선생님의 공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유교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제 유교는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미국·아프리카의 유교가 돼야 한다. 내가 수행한 작업은 세계라는 공동체에서 유교 세계화의 길을 찾는 것이었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중국식·한국식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들은 동시에 글로벌 시민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뿐만 아니라 천하(天下)의 모든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유교 전통은 매우 풍성하다. 한국은 한자를 버렸기 때문에 유교 전통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태극기나 화폐 속 등장인물만 봐도 얼마나 한국의 유교 전통이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한국 유교는 중국에 가르칠 게 많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도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통해 유교의 가치를 배우기 때문이다.

-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박스기사] 플라톤 아카데미는?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국내 최초로 인문학 지원을 위해 2010년 11월 설립된 재단이다. 설립 목적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 발전과 인격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성찰의 인문학을 심화·확산시킨다”이다.

기원 전 387년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는 그리스 최초의 학교로서 탁월함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공동체로 출발해 서양 문명의 사상적 원류가 됐다. 1462년 피렌체의 유력한 가문의 수장이자 르네상스 예술과 인문주의 운동의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미디치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부활시켜 르네상스와 근대정신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인문학 연구자와 학문 공동체를 꿈꾸며 인문학의 심화와 확산을 위해 노력한다. (재)플라톤 아카데미는 올 한 해 ‘세계지성에게 묻는다: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강좌를 통해 인류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우리 미래를 공동으로 기획하는 장을 펼쳐 내고자 노력해왔다.

201612호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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