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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액셀러레이터를 만나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미국 벤처의 산실을 물으면 실리콘밸리라는 답이 먼저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넓은 나라다. 샌프란시스코 반대편 대서양의 뉴욕, 그리고 남부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에서도 수많은 벤처 기업이 있다. 실리콘벨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IT 중심지다. 뉴욕과 텍사스에서 다양한 벤처기업의 육성을 도와온 액셀러레이터 3인을 만나 각각의 특징과 한국 벤처인에게 필요한 조언을 들었다.

▎ERA가 배출한 기업들의 로고가 한쪽 벽면에 붙어 있다.
뉴욕 최초의 액셀러레이터 ERA | 세계 진출 꿈꾼다면 영어 공부 게을리하지 마라


▎무라트 악티한노그루 ERA 대표 / 중앙포토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 ‘아이 러브 뉴욕’이 써 있는 각종 기념품…. 사람들이 ‘뉴욕’이라는 도시명을 들으면 떠올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뉴욕이 미국의 숨은 ‘스타트업 성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보기술(IT) 창업의 요람’이자 B2B(기업간 거래) 사업이 활발한 실리콘밸리와 달리 뉴욕은 소비자를 직접 겨냥한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창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의 창업 열풍 중심에는 뉴욕 최초의 액셀러레이터 ERA(Entrepreneurs Roundtable Accelerator)가 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ERA가 배출한 스타트업은 총 115개 기업. 이들은 뉴욕을 주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RA는 미국 매사츄세츠공대(MIT)가 뽑은 15대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뉴욕의 많은 창업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무라트 ERA 대표가 요즘 눈길을 주고 있는 곳은 바로 한국이다. 지난해 6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서울에서 개최한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코리아’ 행사를 통해 한국의 창업 열기를 접한 것이 계기다. 이후 무라트 대표는 코트라 뉴욕 무역관과 손잡고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비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무라트 대표는 “훌륭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IT 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은 정부와 스타트업 기업 모두 창업에 열정적”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최근 뉴욕에 있는 ERA를 직접 방문해 무라트 대표를 만나봤다.

창업인들을 위한 정보 공유의 장으로 출발

어떤 계기로 ERA를 시작했나.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199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그래픽 회사에서 일했다. 1998년 뉴욕으로 건너와 창업을 하기도 했고 2003년에는 일본에서 소니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창업인들을 위한 정보 공유의 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2007년 뜻을 같이하는 기업들의 빈 사무실을 활용해 한 달에 한 번 스타트업을 위한 행사와 강연을 진행하는 비영리 단체를 시작하게 됐고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들의 성공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2011년부터 ERA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는 1년에 두 번, 스타트업 10개씩을 선정해 육성한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십 개의 회사를 뽑아 키우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소수의 기업을 집중적으로 돕고 있다. 매번 2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육성 프로그램에 도전한다.

육성 프로그램의 내용이 궁금하다.

ERA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초기 투자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도록 성장 동력을 부여하는 기관이다. 너무 기술적인 분야에 집중하는 기업은 선발하지 않고 소비자 중심의 기업을 선발하고 있다. 함께 할 스타트업을 선정하면 그 회사의 지분 8% 가량을 받고 4만 달러(약 4700만원)를 투자한다. 이들 기업은 4개월간 맨하탄 중심부에 위치한 ERA에 입주해 무선 인터넷·클라우드 서비스 등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인프라를 무료로 사용하게 된다. 육성 기간 동안에는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각 분야 전문가 300여 명의 집중적인 도움을 받으며 사업 모델을 구체화 시킨다. 마지막 달에는 투자자들을 초청해 입주 기업들이 자신들의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인맥을 다지는 사교의 장으로도 활용되는데 뉴욕의 비슷한 액셀러레이터가 주최하는 행사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한국 기업 3곳 선발해 3개월간 집중 교육

최근 한국 기업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지난해부터 KOTRA·한국창업진흥원·중소기업청 등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중기청과 시범 사업을 통해 한국 기업 3곳을 선발해 3개월간 집중 교육하기도 했다. 한국 방문 때 인연을 맺었던 스타트업 ‘아이쉐어링 소프트’는 올해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ERA의 정규 육성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발달된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을 창업에 연결시키고 있다. 창의적이며 열정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은 창업자들이 많다. 한국 정부가 창업 지원과 해외 진출 사업에 적극적인 것도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세계 시장을 꿈꾸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많다.

한국에서 발굴한 기업들은 모두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초기 시장부터 국내 시장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도전하는 것이 좋겠다. 문제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이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가능성 있는 사업이 해외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스타트업의 경우 글로벌 진출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창업자라면 매일 영어 공부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뉴욕의 IT 창업 키우는 워크벤치 | 목표로 하는 지역에 문화·언어적으로 접근해야


▎제시카 린 워크벤치 공동대표.
실리콘밸리가 아닌 뉴욕에도 정보기술(IT) 기업을 키우는 액셀러레이터가 있다. 2013년 문을 연 워크벤치가 그 주인공이다. 워크벤치는 초기 창업 기업을 뽑는 ERA와 달리 이미 사업을 시작해 가능성을 인정 받은 유망 기업을 키우는 곳이다. 지원 기업을 선발하는 과정도 좀 다르다. 워크벤치가 눈 여겨 본 기업에 직접 입주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선발된 12개 IT 기업은 1년간 워크벤치가 제공하는 사무공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며 전문가 그룹의 지원을 받고 투자처와 사업 파트너를 소개 받는다. 제시카 린 워크벤치 공동대표는 "좋은 기술은 세계 어디서든 통한다"며 "소비자와 IT 기술의 접점을 찾으려면 문화적 접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워크벤치에서 열린 기업인 강연회에 참가한 스타트업 관계자들.
일반적으로 IT 관련 창업은 실리콘밸리에서 이뤄지지 않나.

실리콘밸리에서 기반을 닦은 기업들도 자신들의 개발한 기술을 사용할 업체를 찾으려면 어차피 뉴욕으로 건너와야 한다. 그럴 바에는 기술 수요가 있는 현장에서 창업을 하는게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뉴욕 맨하탄에 수많은 기업들이 IT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수요가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기업을 찾고 있다.

눈여겨 보는 기업들은 어떤 곳들인가.

기업들의 IT 인프라를 개발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인력관리(HR), 데이터 센터, 사이버 보안 등과 관련된 기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는 갓 창업한 기업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업력이 있는 곳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워크벤치에 입주한 12개 기업들은 직원수가 10~12명 정도의 스타트업이다.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하라

입주 기업에 대해서는 어떤 지원을 하나.

우리는 입주 기업 전부에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이미 설립한 기업들이라서 지분을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무 공간에 대한 약간의 임대료를 받는다. 뉴욕 중심가에서는 임대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저렴한 비용만 받는다. 이들 기업의 경우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대기업과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크벤치는 모건스탠리, 시스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52개 회사와 손잡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입주 기업을 위한 각종 행사와 강연을 진행하고 필요시에는 사업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다. 일단 기업이 커갈 수 있도록 1년간 도운 후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 적정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다.

한국에도 해외를 겨냥한 IT 창업이 늘고 있다.

기술이 좋다면 어디서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만큼 잘 겨냥하느냐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 x.ai의 경우 인공지능(AI) 분야 중에서도 비서 서비스에 특화돼 있는 기업이다. 이곳은 고객에게 e메일을 보내 약속을 잡고 일정을 관리하는 AI 서비스만 집중적으로 개발한다. AI 기업이라고 해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하나에 집중해서 그것에 파고드는 것이 더 가능성 있다. 한국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면 목표로 하는 지역에 대해 문화적·언어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텍사스 실리콘힐 벤처의 요람 텍 렌치 | 실패에서 배우려면 위험요인을 예측하고 관리하라


▎케빈 콤 텍 렌치 대표 / 중앙포토
텍사스의 주도는 오스틴이다. 석유화학과 목축이 발전한 지역이었다. 변화는 2000년대 초반 시작됐다. 오스틴 북부에 정보통신(IT) 기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토롤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AMD, 삼성이 자리잡았다. 마이클 델이 차고를 개조해 글로벌 IT기업 델을 창업한 곳도 오스틴이다. 기업인이 모이자 오스틴 시는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각종 세금을 감면해줬고, 인프라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덕에 오스틴 실리콘힐은 미국 중남부에서 가장 많은 벤처를 배출하는 산실로 자리잡았다. 오스틴의 대표 액셀러레이터로 텍 렌치가 있다. 케빈 콤 텍 렌치 대표는 기술 벤처 기업를 지원하며 제품 상용화를 이끌어내며 명성을 쌓았다. 최근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인큐베이터(Social Impact Incubator) 3위로 꼽히기도 했다. 케빈 콤 대표를 만났다.

한국 벤처 산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엔 미국에서 접하지 못한 흥미롭고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있다. 최근 KOTRA가 주최한 행사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코리아 참석을 위해 방한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필요성을 해결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벤처 기업인들을 여럿 만났다.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소셜임팩트에 초점을 툰 엑세스 ICT와 루씨드 랩스(Looxid Labs)이 기억에 남는다. 엑세스 ICT는 청각 및 시각 장애인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오디오 설명과 영화·TV 자막을 생성하는 모바일 앱 서비스다. 루씨드 랩스는 신경이 마비된 환자들의 눈 움직임 정보와 뇌파 정보를 통해서 개인의 인지 상태를 분석하는 웨어러블 헤드셋을 개발한 업체다.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놓고 고민 중이다.

구체적으로 협업을 진행 중인 기업이 있는가.

리니허브의 이계원씨, 유니로보틱스 원종호와 안데니스가 있다. KOTRA와 텍 렌치 협업을 통해 빠르게 성장 중인 기업이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성공 가능성을 지닌 그룹과 협력해야

한국 기업인들이 미국에 진출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가.

보유한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며 성장할지 미리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파트너가 중요하다.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실패해도 괜찮다.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요인의 예측과 수용을 해야 한다. 그 위험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둘째, 성공 가능성을 지닌 그룹과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사회 자본과 금융 자본을 들 수 있다. 종종 창업가들의 성공 계기가 투자를 많이 받는 것보다 지역 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공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오스틴을 한국 기업인에게 추천하는 이유다. 실패하며 배울 수 있는 장소다.

당신은 어떤 기업에 관심이 있는가.

인류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 있다.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세부적인 관심 분야로 의료 분석, 정보기술, 수질 관련 기술, 전자상거래가 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기업인을 만나고 싶다. 이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01612호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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