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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 김장욱 신세계아이앤씨 대표 

인문학도와 공학도의 특별한 30년 우정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전공, 성격, 학교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모든 게 다르다. 그럼에도 운명처럼 3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단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업계의 리더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와 신세계그룹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김장욱 신세계아이앤씨 대표 이야기다.

▎2월 18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소프트뱅크벤처스 사무실에서 문규학(오른쪽)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와 김장욱(왼쪽) 신세계아이앤씨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가 2월 19일 해외 출장을 앞두고 있어 설 연휴 마지막 날 인터뷰를 진행했다.
#. 1988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한 후 택한 직장은 삼보컴퓨터였다. 컴퓨터를 잘 몰랐던 인문계 졸업생이 택한 직장은 ‘난다 긴다 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의 사관학교였다. 정철· 허진호·박현제 등 ICT 고급 인재가 모여 있었다. 당시 직원 모두에게 컴퓨터가 지급됐던 곳은 삼보컴퓨터가 유일했다고 할 정도. 그런 기업에 컴퓨터도 잘 모르는 이가 인력개발팀 소속으로 입사했다. 신입사원으로 지내던 어느 날 회사 게시판에 ‘바이러스가 나왔으니 조심하라’는 글이 올랐다.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가서 소독약을 천에 묻혀서 PC 자판을 닦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깔끔한 후배’라고만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도 계속 자판을 닦는 모습을 보고 선배가 그 이유를 물었다. “바이러스가 걸렸다고 해서요”라고 답했다. 그만큼 컴퓨터와 ICT 산업에 무지했던 인문학도였다. 현재? 그는 한국 창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인사로 꼽힌다. 그는 기술혁신이 이뤄지는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벤처캐피털을 운영하고 있다. 문규학(54)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당시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의 연구실에 대학원생들이 모였다.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밤까지 진행되는 정기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인터넷 아버지’로 불리는 전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연구실에는 긴장감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연구실의 적막을 깬 사건이 벌어졌다. 한 대학원생이 주제를 발표하고 있었다. 목이 말랐던 다른 학생이 연구실에 마련된 간식에서 병 음료수를 잡았다. 병따개를 찾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병따개가 아닌 도구를 이용해 음료수 병따개를 열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연구실에 갑자기 ‘뻥’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발표를 듣고 있던 전길남 교수가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그 후 연구실에 있던 대학원생들은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니까 편법이 판을 친다’ ‘임시방편이 아닌 제대로 일해야 한다’ 등의 따끔한 조언을 전 교수로부터 2시간 동안 들어야만 했다.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이 즈음부터 그의 철학은 ‘엔지니어는 완벽해야 한다’가 됐다. 대학원 졸업 후 삼보컴퓨터에 입사했다. 전 교수의 많은 제자가 자리를 잡고 있던 기업이었다. 그는 깐깐한 엔지니어로 소문이 났다. 서류 한 장에도 자를 대고 수치를 잴 정도였다. 그는 현재 신세계그룹의 디지털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장욱(52) 신세계아이앤씨 대표다.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의 성격과 지향점이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컴퓨터를 전혀 몰랐던 인문계 졸업생과 완벽함을 추구했던 깐깐한 공학도가 3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오는 게 신기했다. 관심사도 다르고 성격도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보완재 역할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난 아직도 술병 뚜껑을 숟가락으로 따는 사람이 있으면 뭐라고 한다”며 웃었다.

MBA 유학길 같이 갈 정도로 신뢰 두터워


▎1990년대 초반 삼보컴퓨터에서 인연을 맺은 후 3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문규학 대표(왼쪽)와 김장욱 대표(오른쪽). 우정을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1991년 삼보컴퓨터 회장 직속 전략비서실에서 처음 만났다. 회사에서 인정받은 덕분에 1992년 무선호출사업(나중에 나래이동통신으로 설립됨)의 정부 허가를 받기 위한 태스크포스에서 함께 일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문 대표는 “김 대표와 나는 서울 개포동에 살았는데, 걸어서 3분 거리였다”면서 “집에서 당시 태스크포스 사무실이 있는 안산 공장까지 김 대표를 차에 태우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문 대표에게 IT 업계의 혁신과 사람 이야기를 해줬고, 문 대표는 김 대표에게 문학과 역사 등 인문학 정보를 들려주는 식이었다. 김 대표는 “그때 문 대표의 리더십과 인품에 반했고,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문 대표가 김 대표와 각별한 사이가 된 계기가 또 하나 있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김 대표는 문 대표에게 MBA 유학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문 대표는 “김 대표의 제안이 없었으면 현재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며 “그 제안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됐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당시 일을 떠올리며 “원래부터 경영에 관심이 많았고, 기회가 되면 MBA에 도전하려고 했다”면서 “문 대표에게 나중에 경영을 하려면 MBA를 하는 게 좋다면서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 문 대표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드렉셀대학으로 MBA 유학을 떠났고, 김 대표도 비슷한 시기에 U.C 버클리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도 두 가족은 함께 미국 여행을 다니면서 우정을 쌓았다.

문 대표는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투자사 소프트뱅크 테크놀로지 벤처스에서 심사역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MBA 취득 후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컨설턴트로 경력을 쌓아나갔다.

각자의 길을 가던 두 사람, 이번에는 문 대표의 제안으로 다시 한번 뭉치게 됐다. 바로 벤처캐피털 소프트뱅크벤처스를 한국에 설립하는 데 같이하자는 것. 이 말을 듣고 김 대표는 “그래, 같이하지 뭐”라고 대답했다고. 2000년 1월 두 사람은 소프트뱅크벤처스 부사장으로 다시 뭉쳤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 대표는 “문 대표가 하자고 하니까 고민 없이 결정했다”며 웃었다. BCG보다 연봉이 낮았음에도 문 대표의 권유로 바로 자리를 옮겼다.

2년 후 김 대표는 발모어 파트너스(Valmore Partners)라는 투자사를 창업했다. 문 대표는 “김 대표가 벤처 투자보다 M&A 같은 적극적인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6년 동안 투자사를 운영한 후 2007년 SK텔레콤 글로벌 사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기업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문 대표는 “이 친구는 기업 내에서 정치적인 행동이나 언사는 무척 싫어하지만, 자기의 자유를 희생할 줄 아는 균형감을 갖췄다”면서 “투자자로 일 하다가 대기업으로 진로를 바꿨지만,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문 대표의 평가대로 김 대표는 이후 SK홀딩스, SK플래닛을 거쳐 2013년 6월 신세계그룹 전략실에 합류했다. 2014년 12월 신세계아이앤씨 대표로 선임됐다.

1997년 4월 설립된 신세계아이앤씨는 IT 시스템 개발 및 운영사였다. 김 대표의 취임 이후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김 대표는 “신세계그룹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계열사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간편결제 SSG페이와 SSG카드다. 김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간편결제의 필요성을 이야기를 했고, 아이앤씨가 사업주체가 됐다”면서 “쿠폰사업·기프티콘·카드발급·배달 등 데이터 마케팅부터 핀테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만들어 벤처투자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출액도 매년 상승하고 있다. 2015년 2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후 2016년 2900억원, 2017년에는 32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표에게 김 대표의 장점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경영대학원을 나온 재원이지만 그를 보면 철학자나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특히 약자의 편에 서는 변호사가 잘 어울리고, 가끔 보면 세속을 초월한 선각자의 모습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 역시 소프트뱅크벤처스 설립 이후부터 벤처캐피털 업계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의 한국 내 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는 ICT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콘텐트·AI·기술기반 스타트업 투자로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운용 중인 펀드 규모가 5700억원이고 현재까지 220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벤처캐피털 한 분야에 집중한 이유를 묻자 “도전적인 분야이고 중독성도 있다”며 웃었다.

김 대표는 문 대표에 대해서 “리더십과 통찰력이 뛰어난 분이다”면서 “세련되고 매력적인 사람이고, 겸손한 게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표에게 배워야 할 점은 “책임감과 설득력 그리고 인품”이라며 “오랫동안 소프트뱅크벤처스를 이끌면서 VC업계의 리더로 자리를 잡을 수 있던 덕목”이라고 말했다.

바쁜 일정 탓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술잔을 기울여도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는 두 사람. 특히 문 대표는 “김 대표를 보고 싶으면 주말에 산에 가면 볼 수 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다는 자체로 위안을 준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의 미래가 궁금했다. 문 대표가 김 대표를 보며 말했다. “김 대표처럼 스타트업 생태계도 알고 대기업의 조직운영 노하우까지 아는 이는 드물다”면서 “김 대표가 구글의 애릭 슈미트(전 구글 지주사 회장)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이 말을 들은 김 대표도 “기업에 몸이 메인 상태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나중에 그런 제안을 해오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함께 웃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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