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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금융지주사(8) 

먹성 좋아진 은행들의 M&A 전쟁 

김영문 기자
M&A로 재미를 본 4대 시중은행이 다시금 인수합병 경쟁으로 맞붙을 참이다. 우리은행은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늘어난 실탄으로 어떤 매물을 사들일지 고민이다. 수년간 M&A에 나섰던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자산 규모도 1000조원에 육박한다. 더불어 금융산업의 과점화 논란도 커지고 있다.

‘동양생명, ABL생명, 교보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등.’

하반기 인수합병(이하 M&A) 시장에서 금융권이 노리는 매물들이다. 예상거래가만 6조원이 훌쩍 넘는다. 인수 후보로는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은행 등이 유력하다. 이유가 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업계 1위 경쟁 수단으로 M&A를 택했기 때문이다. 실제 LIG손해보험과 현대증권이 KB금융 손에 들어갔고, ING생명은 신한금융 품에 안기며 오렌지라이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주사 전환을 앞둔 우리금융도 M&A 매물 탐색에 여념이 없다. 벌써 사모펀드 웬투시를 통해 아주캐피탈을 사실상 인수했다.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자산만 326조원이 넘는데 지주사로 전환하면 쓸 돈은 더 많아진다. 출자 여력도 7000억원대에서 7조원대로 10배 가까이 늘어난다. 은행은 ‘은행법’에 따라 출자 한도가 자기자본의 20%로 제한돼 있지만, 금융지주는 자기자본의 130%까지 출자할 수 있다.

하반기 우리은행이 금융사 매물시장에서 거물로 떠오르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미 시장엔 롯데그룹의 금융계열사 지분이 우리은행으로 넘어갈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롯데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금융·보험업을 하는 회사 주식을 갖고 있을 수 없다는 조항(공정거래법 제8조)에 걸려 지주회사 체제 안에 있는 롯데카드·롯데캐피탈·롯데손해보험 등 12개 금융계열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하면 출자 여력 10배 커져


우리은행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인수 업종으로 자산운용, 캐피털, 부동산신탁, 증권, 보험 등 금융업계 전 범위로 넓혀 살펴보고 있다. 최근 우리금융재보험·우리생명보험·우리손해보험·우리재보험·우리리츠운용·우리AMC·우리부동산신탁·우리자산관리·우리금융투자·우리리츠AMC·우리종금증권·우리금융에프앤아이·우리자산신탁 등 비은행 계열사의 상표 등록까지 이미 해둔 상황이다.

우리은행에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분야는 보험이다. 시장에서도 동양생명과 ABL생명, KDB생명,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의 인수자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우리은행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우리은행은 내친김에 뉴욕, 런던, 인도, 싱가포르 등 6개국에 IB데스크를 차리고 해외 매물까지 넘보고 있다. 물론 급하다고 아무거나 삼킬 태세는 아니다. 우리은행 한 관계자는 “인수 자금 규모가 큰 증권사나 자본비율 규제가 임박한 보험사 인수는 나중에 고려하고, 소규모지만 수익성이 높고 은행 영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금융사를 중심으로 사들여 *자기자본비율 하락 이슈에도 대응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자기자본비율 하락 이슈 - 우리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금융감독원이 금융사 전체에 적용한 ‘표준등급법’을 사용하면 3월 말 기준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총자본 비율 15%대에서 지주회사 전환 시 신설 지주회사의 총자본 비율이 10% 내외 수준으로 5%포인트 급락할 것으로 보여 당장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다. 현재 BIS 권고비율은 8%다.

자기자본비율 이슈가 크긴 하다. 금융감독원이 ‘표준등급법’을 우리은행에 적용하기로 원칙을 정한 상황에서 각 은행 특성을 고려한 ‘내부등급법’ 적용엔 1년이란 승인 심사 기간이 필요해 난항이 예상된다. 결국 표준등급법을 적용하면 위험가중 자산이 35~40% 늘어나고 M&A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막상 따져보니 ‘큰손’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었던 우리은행이 ‘빈수레가 요란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이 M&A 시장의 강자로 뜨고 있지만, 사실 몇 년간 국내 비은행 금융사를 사들이며 몸집을 키운 곳은 KB금융이다. 우리파이낸셜(2014년, 현 KB캐피탈), LIG손해보험(2015년, 현 KB손해보험), 현대증권(2016년, 현 KB증권), 현대저축은행(2016년, 현 KB저축은행)이 최근 4년 사이에 KB금융의 지붕 아래로 들어왔다.

덕분에 KB금융은 2017년 말 기준 자산 436조7800억원으로 신한금융을 10조원 넘게 앞서며 1위 수성에 성공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300조원을 밑돌던 KB금융의 자산 규모가 1.5배 가까이 늘었다. 순이익도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1조9150억원을 기록해 올해 연말 결산이 끝나면 순이익 4조원 시대를 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M&A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인수한 회사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KB캐피탈은 업계 1, 2위를 다투던 현대캐피탈과 아주캐피탈 목을 조이고 있고, KB증권도 자기자본 기준으로 업계 3위로 뛰어올랐다. 은행이 기존 업무로 수익을 내기 힘든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마음이 급해진 신한금융도 똑같은 방법으로 뒤를 바짝 쫓았다. 9월 5일 자산 기준 6위 생명보험사인 ING생명을 2조2989억원에 인수해 오렌지라이프로 간판을 바꿔 단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자산 규모 31조원에 달하는 오렌지라이프를 삼키면서 신한금융은 10월부로 자산 규모 면에서 KB금융을 20조원 가까이 앞섰다. 6월 이후 기준을 다시 따져보면 KB금융 자산 규모는 436조3000억원, 신한금융은 484조8000억원을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금융사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굿모닝증권(2002년, 현 신한금융투자), 조흥은행(2003년, 현 신한은행), LG카드(2007년, 현 신한카드) 등으로 이어지며, 계단식으로 성장세를 밟아온 신한금융이 거둔 또 한 번의 M&A 성과였다.

KB금융도 1위 탈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공식 석상에서 생명보험사를 추가로 인수할 것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여기에 NH농협금융, 하나금융까지 보험사, 증권사를 인수하겠다며 M&A 시장에 가세할 참이다.

결국 금융업계 M&A 시장이 달궈진 건 ‘수익 다각화’ 때문이다. 은행에 지나치게 집중된 사업 구조를 바꿔보려는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연말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 금융지주의 비이자 이익 비율은 50% 수준에 달하는 데 반해 국내 금융지주의 비이자 이익 비율은 15% 선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차례 M&A를 거치면서 지난해 KB금융과 신한금융의 비은행 순이익 비중을 30~40%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IMF 외환위기로 강제 통합한 은행, 이젠 과점화 논란

금융지주 입장에선 M&A는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하지만 한 발 뒤로 물러나 시장에서 보면 독과점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효과가 어떻든 몇몇 금융지주가 국내 금융시장 전체를 독식하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당국도 금융업계 전체가 과점화로 흐를 수 있다는 논란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30여 개가 넘었던 은행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4개로 줄였기 때문이다. 당시 강화된 논리가 은산분리로, 대기업(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소유하는 데 제한(의결권 4%, 비의결권 10%)을 두는 제도다. 당시 돈줄에 목말라하던 기업이 은행을 차려 사금고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후 시중은행은 금융지주 공룡으로 덩치가 커졌고, 독과점을 강화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부작용은 15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독식하면서 은행이 사상 최대 이자이익을 거두는 결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중은행이 올린 이자이익만 19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에서 4대 시중은행은 절반이 넘는 10조8000억원을 가져갔다. 신용평가회사 한국신용평가(KIS)가 분석한 국내 은행 전체의 대출금 시장점유율도 쏠림 현상을 지적한다. 2015년 말 기준임에도 KB국민(13.9%), 우리(13.3%), KEB하나(12.6%), 신한(12.4%) 등 4대 시중은행이 52.2%를 넘어섰다. 반면 SC, 씨티 등 외국계 은행은 물론 부산, 대구 등 주요 지방 은행들도 2% 이하의 점유율을 보였다.

이 격차는 최근에 더 벌어졌다. 4~5개 금융지주사 계열의 은행들이 서비스 경쟁을 하지 않아도 고객을 뺏기지 않는 구조다. 정부도 이를 신경 쓰는 눈치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8월 6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금융산업은 대표적 독과점 내수산업으로 경쟁이 상당히 제약되고 규제 속에 안주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되레 규제를 더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금융과 비금융 분야까지 융합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어 차라리 금융지주가 지배 가능한 업종 규제를 풀고 업무 영역을 오히려 넓혀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행권 내에선 사실 불만이 꽤 크다. 익명을 원한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100대 은행을 키우겠다며 은행업계의 강제 통폐합을 주도한 게 정부였다”며 “이제 와서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자 은산분리 얘기를 꺼내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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