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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타운에 입주해도 신탁이 답 

 

문선영 변호사
노년의 자산가들은 금전, 주식, 부동산 관리를 주로 신탁에 의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니어타운에 들어가는 입소보증금까지 신탁으로 관리·보전하고 있다. 살아생전과 사후, 그 사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니어타운에서도 신탁은 또 다른 힘이 돼주고 있다.

은퇴 후 시니어타운에 입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서 시니어타운에 간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요즘은 비교적 여유 있는 노년층이 택하는 곳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실제 최근 시니어타운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가 하면 교통이 편리한 수도권 근교를 선호하기도 한다. 고급 리조트나 호텔처럼 잘 가꿔져 있고, 다양한 서비스를 갖춘 곳이 대부분이다.

시니어타운에는 독립된 주거생활을 하는 데 문제없는 만 60세 이상 부부가 주로 입주한다. 입소민인 노령층을 위한 특화 서비스와 의료서비스도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 시니어타운에 들어가려면 전세보증금과 비슷한 입소보증금을 내고, 거주하는 동안 생기는 비용은 따로 낸다.

물론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노쇠함이 더해진다. 내 재산을 여생에 온전히 쓸 수도 있어야 하고, 더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자식들이 다투지 않게 재산도 잘 나눠줘야 한다. 혹시 부모가 치매라도 걸리면 재산관계가 더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도 있다. 시니어타운에 입주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재산관리를 주체적으로 하고 싶어 한다. 시니어타운에서 여생을 온전히 보내기 위해서라도 재산관리는 어쩔 수 없는 과제다.

상속도 문제다. 유언으로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유언은 본인이 사망했을 때 내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결정할 뿐이다. 살아생전 재산을 관리해주진 않는다. 자기 재산을 맡기고 노후를 위탁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는 실제로 허다하다. 그래서 신탁은 시니어타운에 들어가기 전은 물론, 들어간 후에도 힘을 발휘한다. 시니어타운에서 신탁에 재산관리를 맡긴 두 가지 사례를 살펴봤다.

사례 1. A씨는 남편과 외동딸이 먼저 사망하여, 시니어타운에서 혼자 여생을 보내고 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도 있어 노후에 돈 걱정은 없다. 하지만 요즘 부쩍 기억력이 나빠진 듯해 걱정이다. 자신이 치매에 걸리게 되면 은행에서도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어 금융자산 처리를 해줄 수 없다고 한다.

매월 들어가는 시니어타운 비용과 혹여 큰 수술을 하게 될 때 들어갈 목돈도 나 대신 누가 관리해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 가족은 형제자매뿐인데, 모두 미국에 있어서 한국에 들어올 때 A씨를 챙겨주기는 하지만 늘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A씨는 은행과 유언대용신탁계약을 체결하여,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신탁하면서 자신의 노후를 케어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정해 놓았다. A씨가 치매에 걸리거나 스스로 은행 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에도, 자신이 거주하는 시니어타운의 비용처리 방법을 신탁에서 처리하도록 정해 놓은 것이다. 또 A씨에게 수술비 등 목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해도 신탁재산에서 수술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했다.

A씨가 사망한 이후에는 고마웠던 형제자매들에게 어느 정도 재산을 분배해주고, A씨가 평생 후원해온 사회단체에 남은 재산을 모두 기부하는 것도 약정해 두었다. 유언장과 달리, A씨가 사망하면 은행에서 직접 약정 내용대로 재산을 사후수익자들에게 각각 지급해준다. A씨는 자신이 눈감은 뒤에도 재산이 자신의 유지(遺志)대로 집행된다는 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스스로 노후를 준비한 A씨는 이제 남은 생에대한 불안감이 없다. 신탁재산으로 맡겨 두었어도 본인이 건강한 동안에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재산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자유와 안정을 모두 잡은 셈이다.

사례 2. 시니어타운에서 만난 또 다른 고객 C씨 부부는 자녀가 4명이다. 자녀들은 이미 40~50대 성인이고, 각자 가정이 있다. 부모님의 지원을 특별히 더 많이 받은 자녀도 있고, 자신은 상대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서운하게 생각하는 자녀도 있으며, 이혼한 자녀도 있고, 사업을 하다가 파산한 자녀도 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가족사가 있다. 이는 자식이 부모한테 상속이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상속을 미리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C씨 부부는 부동산을 매도하여 상속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C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고, 큰 건물이라 가액이 상당해 오히려 부담이 됐다.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도 고민됐다. 어느 한 자녀가 먼저 부모 재산을 처분하면 분쟁의 불씨는 더 커질 게 자명해 보였다.

C씨 부부는 건물 및 여타 재산을 신탁재산으로 은행에 위탁하고, 은행을 통해 건물의 매각과 상속업무를 진행하는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유언대용신탁계약을 통해 C씨가 사망할 경우 수탁자인 은행은 부모가 정해놓은 내용대로 자녀들에게 집행까지 해주게 되어, C씨 부부는 근심을 덜 수 있었다.

신탁은 유언장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다. 안정적으로 재산을 지키면서 사후처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준다. 입소보증금도 신탁할 수 있어 시니어타운에 사는 한 누가 함부로 그 돈을 찾아갈 수 없다. 입소보증금과 함께 수반되는 권리도 신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상담 고객 중 자식 한 분은 직접 신탁관리를 맡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 재산관리를 은행에 맡겨 낼 보수가 아깝다고 생각한 탓이다. 당사자 간 임의로 신탁계약을 체결해 신탁재산을 맡기고 신탁하는 것을 ‘민사신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당사자 간 약속으로, 말 그대로 믿고(信) 맡기는(託) 것이다. 이렇게 맡긴 신탁재산은 대내외적으로 수탁자의 소유나 다름없다. 신탁재산이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반면 공식 신탁업자는 법으로 규제를 받는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신탁업자 인가를 받고, 신탁업을 수행하는 금융기관(일부 은행 등)과 신탁계약을 하는 경우 ‘상사신탁’이라고 한다. 상사신탁은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신탁법, 자본시장법의 규제도 받는다. 신탁업자는 신탁재산을 종합적으로 위탁 받을 수 있는 인가를 내려면 자기자본금 250억원 이상을 구비해야 한다. 민사신탁으로 생긴 문제를 상담하다 보면 영화 [불한당]에서 배우 설경구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 한다, 상황을!”

- 문선영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변호사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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