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실리콘밸리에서 떠오르는 꿈의 직장이 있다. 1990년대를 풍미한 DVD 대여점이 이젠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1인 미디어 시장을 연 세계 최대 콘텐트 회사가 됐다. 전 세계 1억3700만 회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의 일터는 마치 영화 속 세계를 걷는 듯한 창작의 공간이다.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에 위치한 넷플릭스 오피스는 마치 영화관 내부 조명으로 실제 영화관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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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발칵 뒤집어놓은 한 문서가 온라인에 공개됐다. ‘넷플릭스 컬처 데크’. 자유와 책임 문화로 창의적인 조직으로 이끈 넷플릭스 기업 내부 문서였다. 인터넷에서 조회수만 1800만 회를 기록하며 넷플릭스는 구글, 페이스북 등과 함께 ‘꿈의 직장’으로 단숨에 떠올랐다.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네크워크 서비스로 날아오르고 있는 이 기업은 사실상 개인의 문화 향유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모바일 기반의 콘텐트 유통인 스트리밍 기반 동영상 서비스로 대박이 터져서다. 인터넷에 연결된 스크린 디바이스만 있으면 TV 시리즈,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1700여 개가 넘는 영상물이 가득한 ‘나만의 비디오방’이다. 지금은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회원 약 1억3700만 명을 보유하게 됐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넷플릭스 성공을 ‘스토리’라고 자부하듯, 이야기들로 가득한 영화와 드라마들을 뒤섞은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넷플릭스 임직원들도 이런 콘텐트의 소비자임을 일깨워준다.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무제한으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업무 환경이 펼쳐진다. 넷플릭스는 2015년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에 있는 본사(HQ) 건물을 증축했다. 오피스 빌딩 두 개가 세워졌고, 면적도 약 2만2500㎡ 정도 확장됐다. 전혀 다른 두 가지 건축 스타일을 구현했다. 프로덕트팀과 기술팀 등이 일하는 모던한 스타일과 다른 건물은 고풍스러운 스페인 고전 건축 양식을 따라 설계했다. 로스가토스강(Los Gatos Creek)을 중심으로 두 단지로 나뉜 오피스는 4만5000㎡ 규모다.로스가토스 오피스 증축 공사는 폼포건축(Form4 Architecture)이 맡았다. 디자인과 설계는 전반적으로 넷플릭스의 따뜻함(warmth)에 초점을 맞췄다. 나무와 식물들을 중앙 벽면에 전면 배치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녹색이 주는 안정감을 실내 벽에 반영한 셈이다. 폼포건축은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건축에서 흔히 말하는 ‘인간적 척도(human scale)’라는 측면에서 따뜻한 모더니즘을 풍기는 업무 공간을 만드는 것과, 업무와 소셜 공간의 차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도 “시장 환경이 변하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기업문화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업무 공간에도 ‘소통과 역동성’의 넷플릭스 문화를 반영했다”고 말한다.오피스는 넷플릭스 사이트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영상 콘텐트들 사이로 걷는 듯한 착각을 준다. ‘넷플릭스 테마랜드’에 온 듯하다. 가판 형식의 영화 포스터가 즐비하고, 회의실은 각 넷플릭스 콘텐트들로 채웠다.일반적으로 오피스 공간에는 천장 높이, 의자 색상, 조명 등 다양한 디자인 기법이 활용된다. 로스가토스 오피스에는 층층이 쌓아 올리는 레이어링, 압출, 건축 볼륨 연결 등 세 가지 기법을 사용했다. 특히 자연조명이 건축 형태를 잘 드러낼 수 있게 했다. 건물 외관에도 신경 썼다. 정면은 알루미늄 패널과 외벽 아래로 깊이 내려오는 건물 지붕 내물림, 은빛 금속 패널 등이 조화로운 모양을 이룬다. 외벽에 창문을 설치하는 방식(펀치드 오프닝: punched opening)과 건물 외벽 전체를 유리로 덮는 건축 기법(커튼월: curtain wall)을 활용해 독창적인 조합을 이뤘다.콘텐트 유통 회사답게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이 다채롭게 반영된 업무 공간엔 이들이 자랑하는 기업문화가 스며 있다. “절차나 통제보다 직원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경영진은 큰 맥락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직원들 자율성에 맡긴다. 직원들은 스스로 목표와 업무를 설정하고, 출퇴근 시간과 출장 일정도 자유롭게 계획한다.직원들을 위한 스트리밍 상영관도 있다. 주로 넷플릭스의 새로운 시리즈가 공개될 때 로스가토스 오피스에서는 피에스 드 레지스탕스(The pièce de résistance: 레지스탕스의 단편이라는 뜻으로 특정 프로그램 혹은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를 의미함)라는 메인 상영실을 사용한다. 직원들에게는 마치 영화 시사회에 초대된 듯한 설레는 일과 중 하나라고 한다. 업무와 놀이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었다.가족이나 반려동물을 데리고 출근하는 건 물론이고, 메인 로비에서 오후 4시마다 팝콘을 튀겨내 마치 영화관에 온 듯 팝콘 향이 가득하다.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다양하다. 각 층 팬트리 룸에 비치돼 있는 음료는 물론, 충전기, 어댑터, 배터리, 마이크, 케이블과 같은 오피스 액세서리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전자제품 자판기도 마련돼 있다.영화의 도시 할리우드에 있는 신사옥도 마찬가지다. 스튜디오팀과 마케팅팀 등이 근무하는 이곳은 총면적 2만8000㎡ 에 달하는 선셋 브론슨 스튜디오에 자리 잡고 있다. 임직원들과 방문객들이 넷플릭스 콘텐트에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오피스에서도 오롯이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절차나 통제보다 자발적인 책임감을 높이는 회사
▎넷플릭스 로스가토스 오피스는 휴게 공간과 사무 공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빨간색 카펫과 조명이 어울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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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보상, 승진, 해고가 확실한 회사다. 회사의 9가지 핵심 가치(판단, 소통, 영향, 호기심, 혁신, 용기, 열정, 정직, 이타심)에 따르는 대가는 바로 성과로 드러난다. ‘애매한’ 성과를 내는 인재는 원하지 않는다. 줄곧 강조하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사내 문화가 다소 살벌해 보이기도 하지만, 넷플릭스는 “어른을 어른답게 대우해주면 우려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넷플릭스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업무 공간으로 회의실을 꼽았다. ‘자유로운 토론과 투명한 소통’이 중요한 가치 중 하나여서다. 신입부터 경영진까지 자유로운 대화에 매우 익숙하다.회의실은 개방된 업무 공간으로 꾸몄다. 넷플릭스를 소재로 인기 영화 또는 TV 드라마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용도도 가지각색이다. 로스가토스 오피스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회의실은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직원들 질문에 대응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오픈 세션을 진행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페리스의 해방(Ferries Bueller’s Day Off)’ 회의실은 각종 영화 상영과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때 주로 사용된다.세계 각국에 포진한 넷플릭스 오피스에 대해서도 물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우린 본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운을 떼며 “본사와 지사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각 나라 상황에 맞게 각자 방식대로 팀을 구성해 일한다”고 강조한다. 즉 로스가토스 오피스와 동일한 콘셉트나 분위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문화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일본 넷플릭스 오피스는 류큐 스타일 다다미 매트로 된 상영실을 갖추고 있다.넷플릭스가 ‘개인 맞춤형’인 점이 기업문화로 발현되는 지점이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맞춤형 서비스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넷플릭스의 콘텐트들은 1인 맞춤형 추천으로 약 7만 가지로 구분돼 있다. 광고나 약정도 없이 무제한으로 골라 볼 수 있으니, 회원 수가 끊임없이 늘고 있다. 한마디로 ‘취향 저격’인 셈이다. 미디어 패러다임에 따라 진화를 거듭했다. 세계 처음으로 DVD대여 서비스 정액제 시스템을 도입했고, 동영상 서비스 산업을 넘어 이제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세계 영상 제작 산업에서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12월 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넷플릭스의 2019 라인업에서 헤이스팅스 대표는 넷플릭스 직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97년 새로운 영상 소비시대를 구상했던 사람들은 많은 콘텐트를 확보하고 제작해 언제 어디서나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연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을 ‘스토리텔러’라 부른다.” 2018년 중반에 발표한 1년 투자예산만 80억달러(8조9320억원). 현재 이 기업의 매출은 40억 달러로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4억280만 달러를 기록했다. 월트디즈니를 꺾은 지는 오래다. 우리는 넷플릭스를 ‘콘텐트 유통계의 공룡’이라 부른다.
▎스크린 벽면을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로 도배한 할리우드 오피스 내부. 할리우드 오피스 로비의 벽면은 대형 스크린으로 구성돼 있어, 다양한 영상이 재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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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다양하게 꾸며진 벽면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트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로스가토스 오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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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널찍하게 활용해 쾌적함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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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가토스 오피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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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캐릭터 스티커가 붙은 회의실. 회의실 이름에는 오리지널 콘텐트 제목이 사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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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상영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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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가토스 휴게 공간. 곳곳에 넷플릭스 콘텐트를 크게 붙여두었다. /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피스스냅샷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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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