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오해와 진실(3) 

‘디자이너 베이비’는 오지 않는다 

이기준 객원기자
인류 최초로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배아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지난 10월 중국 연구진은 HIV 감염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잘라낸 배아에서 건강한 쌍둥이가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전자 편집으로 부모 입맛에 맞는 태아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 베이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기술은 그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기자들은 영화를 즐겨 인용한다. 어려운 내용을 전달해야 할 때 관련된 영화만큼 쉽고 빠르게 독자를 이해시킬 수단은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달 화제의 영화는 단연 [가타카]였다. 지난 10월 중국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가타카]는 유전자 편집으로 우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회를 그려낸 SF 영화다. 유전자 편집 아기가 최초로 탄생했으니 머지않아 그 영화와 같은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젠쿠이 실험이 남긴 의문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이해를 돕는 데 탁월하긴 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있다. 영화를 바탕으로 현실을 이해하려 하면 늘 오해가 생기는 이유다. 이 오해는 진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를 가려버린다. 유전자 편집 기술도 그렇다. 유전자 편집 아기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이 기술로 영화처럼 유전자를 편집해 부모의 입맛에 맞는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쯤 가능해질지 기약할 수도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됐던 허젠쿠이 중국 선전남방기술과학대 교수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허젠쿠이가 했다고 주장하는 일은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 수정란에서 HIV 감염에 관여하는 유전자 CCR5를 제거하고, 이 수정란을 착상시켜 아이를 만든 것이다.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HIV는 CCR5를 통로로 삼아 인간의 면역체계에 침투한다. 허젠쿠이는 아버지가 HIV 보균자인 두 딸의 수정란에서 CCR5를 제거함으로써 이 아이들이 HIV에 감염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허젠쿠이가 아주 좋은 일을 한 것 같다. 허젠쿠이는 이 시험 결과를 통상적으로 학회지나 연구 기관에 발표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알리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공식 발표에 앞서 AP통신 기자에게 연구 과정을 공개하며 기사화 시기를 조율했고, 보도가 나간 뒤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튜브에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는 동영상 5개를 연달아 올리며 “그 가족에게 이 시험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들을 대신해 비난을 받겠다”고 순교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허젠쿠이가 실시한 시험이 아주 위험할 뿐만 아니라 새롭지도 않고 할 의미도 없었던 실험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타카]와 같은 상황을 우려해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HIV 보균자라고 해서 자녀가 반드시 HIV에 감염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감염되지 않도록 사전에 안전하게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얼마든지 있다. 줄리언 사불레스쿠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 실험은 건강하고 평범한 어린이들에게 별다른 이득을 주지도 못하면서 유전자 편집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허젠쿠이가 무슨 목적으로 이번 유전자 편집 실험을 단행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일각에선 단지 자기 PR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제약업체 노바티스의 데릭 로 이사는 “유전자 편집한 배아를 착상시키는 것은 오래전부터 가능했지만 실행할 만큼 무모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라며 “허젠쿠이가 인간 유전자 편집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축하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불완전한 도구 크리스퍼


학자들이 허젠쿠이의 실험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허젠쿠이가 배아 유전자를 편집해서 착상시켰기 때문이다. 인간 유전자 편집 자체는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미 암이나 각종 희귀병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 치료는 성체 줄기세포를 대상으로 하며, 오랫동안 실험을 거쳐 그 유전자를 편집해도 안전하다는 과학적 검증이 끝난 뒤에야 아주 제한적인 조건하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배아 유전자는 다르다. 정자, 난자, 배아 등 생식세포에 있는 유전자를 편집하면 그 생식세포로 탄생하는 인간의 모든 세포가 바뀐다. 또 그렇게 편집된 유전자가 후대로 이어지게 된다. 배아 유전자를 편집했을 때 그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체에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 각국이 배아 유전자 편집까지는 허용하지만 이를 수정시키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다. 적지 않은 학자가 허젠쿠이의 실험으로 CCR5가 제거된 아이들이 인플루엔자,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등 CCR5가 관여하는 다른 질병에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배아 유전자 편집이 위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유전자 편집에 사용되는 크리스퍼 자체의 불완전함이다. 크리스퍼는 다른 유전자 편집 도구에 비해 효율적이고 사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완벽한 것은 물론 아니다. 현재 크리스퍼의 한계로 지적되는 두 가지는 표적 이탈(off target)과 모자이키즘(mosaicism)인데, 두 가지 모두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

검증되지 않은 위험성

표적 이탈은 말 그대로 크리스퍼가 표적 이외의 유전자까지 잘라버리는 경우다. 이는 크리스퍼뿐 아니라 모든 유전자 편집 도구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지만, 크리스퍼의 표적 이탈 확률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통상적으로 크리스퍼의 표적 이탈 확률은 1~5% 정도다. 아주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신중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수치다. 표적 이탈로 인해 어떤 유전자가 영향을 받을지 모르고, 그로 인한 결과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허젠쿠이의 실험으로 태어난 쌍둥이가 유전자 변형으로 감기에 걸리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바이러스에 취약해졌는데, 운 좋게 감기에 걸리지 않고 자녀를 낳아 대가족을 이뤘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다가 만약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감기에 걸리면 일가족이 감기에 몰살당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배아에서 편집된 유전자는 대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정한 상상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유전자 치료법은 배아 편집을 하지 않음에도 표적 이탈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암 환자의 T세포를 편집해 암세포에 대한 공격성을 높이는 CAR-T 시술은 크리스퍼보다 표적 이탈 확률이 낮은 도구인 탈렌(TALEN)을 사용하며, T세포를 몸 밖으로 꺼내서 편집한 뒤 다시 집어넣는 절차를 거친다. 또 시술 이후에도 15년 동안 표적 이탈이 발생하는지 검사를 받는다.

크리스퍼의 문제는 또 있다. 만약 유전자 편집이 끝나기 전에 수정란이 분열을 시작한다면 이 배아 속에는 편집된 유전자와 편집되지 않은 원본 유전자가 공존하게 된다. 이 현상을 모자이키즘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세포들이 모자이크처럼 섞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유전자 편집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배아 세포가 모자이크되면 터너증후군, 다운증후군 등 선천적 기형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각종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게다가 태어난 아이의 면역세포가 편집되지 않은 세포에서 발현된다면 이 아이는 HIV 면역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 허젠쿠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전자 편집으로 태어난 두 아이 모두가 모자이키즘을 겪고 있으며 그중 한 명은 HIV 면역을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리는 아직 유전자를 모른다

배아 유전자 편집의 두 번째 난점은 인간 유전자에 대한 인식의 한계다. [가타카] 같은 미래가 당분간 도래하기 어려운 것도 이 한계 때문이다. 아무리 완벽한 유전자 편집 도구가 있다 한들 수만 개에 달하는 인간 유전자가 각각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편집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베이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디자이너 베이비는 2000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태어난 애덤 내시다. 내시 가족은 희귀 유전병인 판코니빈혈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고, 애덤의 누나인 몰리는 이미 그 병을 앓고 있어서 치료를 위해선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했다. 애덤의 부모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 기술을 이용해 둘째인 애덤을 낳기로 했다. 형제자매는 조혈모세포가 일치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PGD는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체외 수정한 뒤 유전자 진단을 하고, 그중 정상인 배아만 골라서 자궁에 착상시키는 시술이다. 이 시술로 태어난 애덤은 판코니빈혈 유전자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을 뿐 아니라 탯줄 속의 피를 이용해 몰리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 병을 치료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처럼 좋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시 가족의 사례는 디자이너 베이비를 둘러싼 찬반양론을 일으켰다. 언론들이 내시 가족에 동정심을 표하면서도 이 기술이 향후 태아의 눈 색깔, 키, 지능, 신체 능력 등을 선별하는 데 사용되리라는 우려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유전자 선별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기술이 한 단계 진화하긴 했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우리는 인간 유전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어떤 유전자가 태아의 어떤 특질에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태아의 특질, 이를테면 태아의 지능은 그저 지능에 관련된 유전자 하나를 고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끝에 태아의 지능이 형성된다.

심지어 비교적 단순할 것 같은 키조차도 9만3000여 가지 유전변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불과 697가지다. 또 이 같은 특질은 유전자뿐 아니라 온갖 외부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태어난 뒤에 유전자가 바뀌는 후성적 변이도 고려해야 한다. 어디서부터가 유전자의 영향이고, 또 어느 지점이 환경의 영향인지 인간이 구분해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물론 유전자가 모두 좋은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전자는 우리가 보기에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현상에 모두 관여한다. 이를테면 붉은 머리카락을 발현시킬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 MC1R은 피부암 발병 확률도 높인다. 눈 색깔과 관련된 OCA2와 HERC2는 각종 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등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무한에 가까운 변수를 인간이 모두 이해하고 편집해서 부작용 없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현시점에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이기준 객원기자

201901호 (2018.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