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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유언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
4월 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대한항공은 ‘바람 앞에 촛불’이 된 듯하다. 조원태 사장의 3세 경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을 보면서 한국 가족기업이 가야 할 길을 짚어본다.

경영자에게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각자 서로 다른 꿈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모든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자녀들이 싸우지 않고 서로 사이 좋게 기업을 잘 이끌어가면 좋겠다.”

얼마 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별세했다. 그 또한 여느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가 자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가족들이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연 자녀들이 부친의 유지를 이어 기업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양호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18년 간 경영 수업을 거쳐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직에 올랐다. 부친인 창업주가 타계한 이듬해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라 10년 넘게 한진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는 45년 동안 근무하며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시장에서도 압도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특히 올해는 대한항공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므로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많이들 놀랐고, 안타까워했다.

평생을 회사 일에 전념했던 까닭일까? 비즈니스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그였지만 근래 들어 자녀 교육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그로 인해 2014년부터 이어진 가족들의 ‘갑질 논란’의 나비효과로 급기야 경영권을 잃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들이 협력해서 기업을 잘 이어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창업주 부친의 경영철학과 기업이념을 잘 이어서 회사를 한 단계 성장, 발전시킨 그는 자녀들도 유업을 잘 이어가기를 원했을 거다. 하지만 조 회장 자신도 형제들과 상속을 놓고 분쟁을 겪었듯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당부 이전에 가족분쟁을 예방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틀을 잘 마련해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한 가족이나 가문이 기업을 경영하거나 지배하는 기업을 가족기업이라고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전 세계 기업의 80~90%가 가족기업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지만 연구에 따르면 가족기업은 비가족기업에 비해 더 높은 성과를 내며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시기에 더 빨리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기업의 경영자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는 직위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자원을 배분할 수 있고, 장기적 관점의 투자는 미래 가족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이러한 투자 방식은 임기가 짧은 경영자가 실행할 수 없고, 다른 경쟁기업이 모방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강점에도 족벌경영이나 부적합한 가족 구성원의 경영 참여, 오너에 집중된 의사결정구조 등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특히 가족 간 갈등이나 분쟁은 세대 이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자칫 기업의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연구에 따르면 세대 이전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비즈니스 문제보다는 가족 간의 문제가 더 컸다. 가족문제가 세대교체 실패 원인 중 80%를 차지할 정도니 말이다. 조 회장의 경우에도 45년 동안 회사를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 놓았지만 결국 가족문제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해외의 장수 가족기업은 대부분 가족과 기업 모두에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들은 기업활동의 방향과 성과를 감독하기 위해 이사회가 있는 것처럼, 가족들이 합의한 규정과 가족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가족 갈등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여기에는 상호 규약이 발달한 서양의 문화적 배경도 한몫한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지배구조를 갖췄던 것은 아니다. 이들 역시 초기 1~2세대에는 많은 가족 갈등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욕심을 부리면 가족의 공동 자산인 기업이 훼손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고, 가족간에도 통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분쟁을 예방하고 결속을 유지할 수 있는 가족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반면, 아시아 기업들은 이제 2세대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가족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가족 갈등은 법정 분쟁으로 비화된다. 해외 장수 가족기업의 사례에서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지 살펴보자.

가족의 소유권 철학, 합의가 우선!

가족기업도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유권을 가진 이들이 기업의 중심이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가 지배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만, 2, 3대로 이전되면서 소유권이 가족들에게 분산된다. 이렇게 주식을 소유한 가족이 많아지면 소유권 문제를 서로 합의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주주들이 가족기업을 유지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소유권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다. 만일 가족기업을 유지하기로 했다면 소유권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며, 가족들이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어떻게 유지할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가족기업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거의 대부분이 소유권과 관련된 것이다. 세대를 넘어가면서 가족기업으로서의 영속성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주총회와 별도로 가족주주 간 소유권 이슈에 관해 토론할 포럼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장수 가족기업들이 수대에 걸쳐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초기부터 가문 내에서 기업을 이어간다는 꿈을 공유하며 가족들이 협의하여 이에 걸맞은 소유권 규정을 명확히 한 덕분이다.

가족 소통을 위한 시스템 구축

기업이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가면 가족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가족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결속이 약해진다. 따라서 장수기업들은 서로 가족이라는 동질성과 결속을 강화하고 가족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정기적으로 가족모임(포럼)을 갖는다. 이 포럼에서는 매년 2박 3일 정도 전체 가족이 모여 가족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며, 기업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가족 구성원들에게 책임의식을 심어주려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미래의 꿈과 비전에 관해 토론하고 공유하여 가족과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한다.

특히 후세대들에게 가족의 가치와 전통, 기업의 역사, 윤리의식을 가르치는 등 후세들이 어려서부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쓴다. 그들은 가족기업의 영속성을 위해서 가족 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여러 세대를 거치며 학습해 알고 있다.

가족 통제하는 규정 수립

장수 가족기업들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가족들이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문서로 작성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서로 작성된 규약을 가족헌장이라고 한다. 만일 가족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가족기업의 영속성에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결의하는 것이 가족헌장이다. 가족헌장의 내용이나 운영방식은 가족에 따라 다르지만, 장수기업들은 가족들이 함께 공식적인 가족헌장을 개발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족 간 협약이나 공동의 비전 없이 한 기업이 동일한 가족 내에서 수대에 걸쳐 존속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장수 가족기업들은 가족헌장을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고 갈등을 예방할 뿐 아니라 후세를 위해 가족의 유산을 보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활용한다. 따라서 가족 간 갈등을 예방하고 협력해 기업을 이어가기를 꿈꾸는 가족기업들은 가족헌장을 제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 5명 중 1명이 가지고 있다는 스와로브스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브랜드는 124년 된 가족기업이다. 이들은 1895년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에서 시작해 크리스털 액세서리의 세계적인 리더로 5대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가족경영과 핵심기술의 철저한 보안에 있다. 창업자인 대니얼 스와로브스키는 세 아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똑같이 배분했다. 그리고 형제들은 앞으로 모든 지분을 가족 내에서만 거래하고 후대에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현재 약 150명에 이르는 스와로브스키 일가가 회사 오너십을 나눠 가지고 있으며 5세대들이 경영 전반에 포진해 있다. 이러한 원칙이 1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절대 권력이 생기는 것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지분율이 아무리 높아도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이들은 가족헌장이나 고용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은 가족회의에서 합의하고 명문화했기 때문에 가족 간 갈등이나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스와로브스키사의 가족과 직원이 공유하는 비전은 ‘크리스털을 통한 즐거움과 매력’이다. 이는 회사의 전략방향의 기준이 되며, 현재 기업에 참여하는 4, 5대 가족들은 공통의 비전을 기반으로 한 핵심 사업에만 집중한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녀들이 싸우지 않고 협력해서 기업을 잘 이끌어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막상 이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다. 경영자들은 자신이 건재할 때 100년이 넘어서도 변하지 않을 가족의 전통과 유산을 구축하고 자녀들과 함께 갈등 예방을 위한 시스템도 만들고 훈련해야 한다. 해외 장수기업 대다수가 이런 부분에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곳들이다.

201905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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