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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3) 

리더가 입을 닫아야 하는 이유 

이훈범 대기자 lee.hoonbeom@joongang.co.kr
리더라고 어디 전지전능한가. 리더의 잘못된 생각이 수정되지 않고 아래에까지 그대로 전달돼 행해지면 조직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터다. 분명 리더의 목소리는 중요하지만, 리더는 말을 아끼기도 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소통을 위해서다.

▎사진:이정권 기자
소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혈류가 원활하게 돌아야 신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듯, 소통이 활발해야 어떤 조직이든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다. 혈액과 마찬가지로 소통 역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필연적으로 생기는 노폐물을 조직 밖으로 배출하는 순환기능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혈류와 소통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혈류는 위로부터의 움직임, 즉 동맥이 더 힘차게 돌아야 한다. 그래야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신선한 산소와 영양소가 말단 기관까지 골고루 전해질 수 있다. 소통은 반대다. 아래서부터의 움직임이 활기차야, 즉 하의상달(下意上達)이 막힘없이 이뤄져야 조직의 건강성이 유지된다. 입으로 섭취한 영양소가 혈관을 통해 말단기관까지 전달되는 인체와 달리, 조직은 말초신경계에서 수집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상부로 전해져 취합되고 다듬어져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인 까닭이다.

물론 리더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최상위자의 뜻이 최하위자에게까지 정확하게 전달돼야만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리더라고 어디 전지전능한가. 리더의 잘못된 생각이 수정되지 않고 아래에까지 그대로 전달돼 행해지기만 한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터다. 일사불란한 조직은 일사불란하게 망할 뿐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리더는 말을 아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소통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예를 들어보자.

고대 로마에 가이우스 마르키우스라는 전설적인 장군이 있었다. 그는 기원전 5세기 전반 이탈리아반도 남부에서 세력을 형성하던 볼스키족을 무찔러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성장할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었다. 볼스키족의 도시 코리올리를 빼앗은 그에게 로마 시민들은 ‘코리올라누스’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 밖에도 그는 위기 때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냄으로써 로마를 지켜낸 수호신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 그를 포함시켰으며, 이를 토대로 셰익스피어는 『코리올라누스』라는 희곡작품을 쓰기도 했다.

기원전 454년 코리올라누스는 십수 년 동안 걸어온 군인의 길을 접고 정계에 입문한다. 집정관 선거에 입후보한 것이다. 당시 집정관 선거에서 후보들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철학과 포부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모든 후보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침을 튀기며 장시간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코리올라누스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단상에 오른 뒤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흉터 수십 개가 드러났다. 그가 로마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전투에서 입은 상처였다. 흉터가 증명하는 코리올라누스의 애국심과 용기에 청중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머릿속에 다른 후보들의 연설 내용은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한마디 실언으로 추방된 전쟁 영웅

리더는 이래야 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간단하고 명료한 한마디에 그쳐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코리올라누스는 대단히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하지만 입이 화근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에 자신감에 차 거만해진 나머지 말이 많아진 것이다. 그는 투표 당일 마치 집정관이 된 것처럼 원로원 의원들과 귀족들에 둘러싸여 투표 장소인 포럼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장황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선거에서 이미 승리한 것처럼 말했다. 그는 과거 전투에서 쌓은 공적을 일일이 나열하며, 자신이 과거 로마를 위해 싸웠듯 앞으로 로마에 커다란 부를 가져다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반대자들에게는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고, 자신의 편만 즐거워하고 많은 사람이 불편해할 야유를 유머랍시고 던졌다.

이 전설적인 장군이 어리석은 허풍선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로마 시민들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반대표를 던졌고 코리올라누스는 낙선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면서 로마 시민들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마침내 복수의 기회가 왔다. 코리올라누스는 또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하고야 만다. 어느 날 정복지에서 식량을 잔뜩 실은 배가 로마에 도착했다. 원로원은 이 식량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줄 계획이었다. 반대자도 거의 없었고 무난하게 투표로 승인되는 듯했다. 이때 코리올라누스가 발언권을 신청하고 나섰다. 그는 식량을 공짜로 나눠주는 것은 로마 시민들을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몇몇 원로원 의원이 동조하자, 코리올라누스는 한 걸음 더 나가고 말았다. 그는 시민의 대표인 호민관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력을 귀족이 독점해야 한다는,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발언이었다.

분개한 로마 시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원로원은 부랴부랴 식량 무료 배급을 결정하고 시민들을 달래려 했지만, 시민들은 코리올라누스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는 수 없이 코리올라누스는 시민들 앞에 서야 했다. 하지만 그는 사과 대신 오만한 말투로 변명만 일삼았다. 심지어 시민들이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그가 말을 이어갈수록 시민들의 분노도 따라 커졌다. 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코리올라누스에게 “입을 닥치라”고 외쳤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자 호민관들은 회의를 열고 코리올라누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귀족들이 중재에 나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에서 영구 추방됐다.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로마를 살려냈던 전쟁 영웅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로마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말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칫 목숨으로 바꿔야 할 빚을 지기도 하는 것이다. 잘 나간 말은 고작 눈앞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뿐이지만, 잘못 나간 말은 백 리 밖의 사람들까지 분노하게 만든다. 여기서 쉬운 결론이 나온다. ‘말을 아끼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얘기다.

리더의 말은 더욱 그렇다. 윗사람의 말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증폭되기 마련이다. “어떤 일을 검토해보라”는 회장의 지시가 말단 사원에게 전달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을 성사시키라”는 주문으로 변해버리기 십상이다. 그 일이 수지가 맞는 일이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조직은 커다란 손해를 입고, 그저 검토해보라던 회장이 잘못을 모두 뒤집어쓰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큰 원칙만 말하고 세세한 사항은 말을 아끼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가 말하는 것도 다른 게 아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앞세우면 모든 일에 균형을 잃는다.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면 아랫사람에게 속임을 당하기 쉽다. 구변이 좋고 영리하다고 자부하면 아랫사람이 빌붙어 일을 꾸민다. (그렇게 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위치가 바뀌게 되고) 위아래가 그 할 일을 바꾸면 나라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한비자』 제8편 ‘양권’)

한비자는 극단적으로 “군주는 술에 취한 듯 멍한 태도로 신하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입을 남보다 먼저 놀려서는 안 되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시늉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신하는 안심하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되므로 그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다. 그 말에는 시비할 점이 있겠지만 군주는 시치미를 떼고 듣고 있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군주가 신하의 말을 듣고 좋아하면 신하는 그 점을 이용해 아첨할 것이며 신하의 말을 듣고 싫어하면 원망을 사게 된다. 그래서 군주는 즐거워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도를 터득해야 한다.”

『한비자』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말을 절제하는 강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도 젊었을 때는 말하기를 좋아했고 논쟁도 즐겼다. 하지만 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 귀족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루이 14세는 자신이 입을 자주 열지 않음으로써 귀족들을 통제할 수 있음을 체득하게 됐다.

어떤 문제를 놓고 프랑스 왕정의 대신들이 두 진영으로 갈라진 적이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논의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에 대신들은 각 진영의 대표를 선정해 루이 14세한테 설명하고 최종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왕을 접견한 양측 대표는 서로의 입장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루이 14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설명을 마친 뒤 대답을 기다리는 대표들에게 루이 14세는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생각해봅시다.”

이후에도 왕은 문제와 관련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몇 주일이 지난 뒤 대신들은 루이 14세가 이미 결정을 내렸음을 그의 행동을 보고 알게 됐을 뿐이다. 물론 그 후에도 그 문제에 대해 말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침묵으로 신탁을 보여준 루이 14세

이처럼 루이 14세는 말을 다스릴 줄 알았다. 누구도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반응을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부를 하고 비위를 맞출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말 없는 왕 앞에서 계속 말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게 됐고, 그럴수록 왕에게 맞설 무기를 잃었다.

이탈리아 작가 프리미 비스콘티는 소설 『루이 14세』에 이렇게 썼다.

“왕의 얼굴을 한번 보라. 그의 표정은 도대체 읽을 수가 없다. 각의를 열 때가 아니면 국사를 입 밖에 내는 법이 없다. … 그 결과 루이 14세가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을 듣는 사람은 마치 신탁에서 나오는 말처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짐이 곧 국가”라는 루이 14세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루이 14세는 말을 아낄 줄 아는 리더의 예일 뿐이다. 절대왕정을 이끈 지도자의 예를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다. 루이 14세는 침묵으로 얻은 무기를 대부분 신하들을 옭아매는 데 썼다. 그보다 훨씬 모범적인 예는 중국 최고의 성군인 당 태종에게서 찾는 게 맞다.

당 태종은 반대로 말재주가 비범했다. 어지간한 신하는 그의 논변을 당해내지 못했다. 풍부한 자료와 인용으로 반박하니 신하들은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다. 정관 원년에 어사대부 두엄이 저회도란 인물을 추천할 때 황제와 나눈 대화다.

“저회도는 간언을 잘합니다. 수양제가 강도로 유람하고자 할 때 오직 저회도만 안 된다고 간언했습니다.”

“저회도가 옳다고 생각했으면 그대는 왜 간언하지 않았소?”

“그때는 저의 지위가 낮아 간언해도 듣지 않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세충(수의 군벌 중 하나로 정나라 황제를 참칭한 인물) 밑에 있을 때는 벼슬이 높았는데 왜 간언하지 않았소?”

“간언을 했으나 그가 듣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간언을 거부했는데 그대는 어찌 화를 면할 수 있었소?”

“….”

“지금 그대는 높은 지위에 올랐는데 간언을 잘할 수 있겠소?”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겠습니다.”

당 태종은 그제서야 웃음을 지었다. 두엄의 얼굴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유계라는 인물이 상소를 올렸다.

“폐하께서 기쁜 얼굴로 허심탄회하게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인다 해도 아랫사람들은 감히 논박을 펼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폐하께서 신령스런 지혜를 발휘하고 하늘이 내려준 변론술을 구사해 옛 논거를 자유자재로 인용하시는데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어찌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 태종이 답했다.

“숙고하지 않으면 신하들을 마주할 수 없고, 말을 하지 않으면 짐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소. 그래서 논변을 펼치며 논증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오. 요즘 들어 신하들과의 토론이 매우 번거로웠소.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며 교만하게 군 태도는 아마도 이로부터 비롯됐을 것이오. 형체와 정신과 마음과 기운은 마땅히 이처럼 낭비할 수 없는 것이오. 오늘 그대의 정직한 직언을 들었으니 마음을 비우고 간언을 받아들여 짐을 바르게 고칠 것이오.” (『정관정요』 ‘신언서’)

모두에 말했던 리더가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터다. 리더가 말을 아껴야만 아래서부터 다양한 의견이 활발하게 올라올 수 있다. 말없이 그러한 소통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잠시만 소홀해도 소통의 통로는 막혀버린다. 리더는 막힘을 뚫을 수 있는 말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한비자의 얘기를 한마디만 더 듣자.

“성인은 도를 지키며 신하에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말하게 해 그에 따라 일을 부여하고 성과를 기다린다. 군주가 재능을 보여주지 않으므로 신하는 겉치레를 하지 않으며 거짓을 꾸미지 못한다.” (『한비자』 제8편 ‘양권’)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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