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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반 아워크라우드 아시아총괄대표 

한국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비결 

이스라엘에 기반을 둔 벤처투자회사 아워크라우드 아시아 대표를 만났다. 해마다 2500개 정도 기업을 심사하고 이 중 30개 남짓한 기업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180여 개 기업에 투자했고, 35곳이 엑시트에 성공했다. 이제 이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아워크라우드는 크라우드펀딩 회사다. 150개국 3만여 명 전문투자자가 이곳에 등록하고, 9억 달러(약 1조원) 자금을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아워크라우드는 지난해부터 한국예탁결제원, KEB하나은행, 요즈마그룹과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한국의 알짜 회사를 찾고 있다.
“첫째 CEO, 둘째 CEO, 셋째도 CEO다.”

데니스 반 아워크라우드 아시아총괄대표는 지난달 말 포브스코리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경마에서 어떤 말인지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승리는 기수가 이끈다”며 “시장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창업가는 변하지 않는다. 창업자가 천재라도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투자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투자일수록 창업가의 존재감은 더 무겁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전문회사 아워크라우드의 투자 전략은 통했다. 2013년 설립된 아워크라우드는 지금까지 수만 개 기업을 심사해왔다. 이 회사에 등록된 150개국 3만여 명 전문투자자가 9억 달러(약 1조원) 자금을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반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매해 2000~3000개 기업을 심사하고 이 중 30여 개 기업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180여 개 기업에 투자가 이뤄졌고, 비욘드미트, 코어포토닉스 등 35개 기업이 엑시트(인수합병, 상장 등을 통한 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특히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미트는 지난 5월 미국 나스닥에 공모가 25달러(약 3만원)로 상장해 최근 13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7월 말에는 24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비욘드미트 제품은 올 2월 국내에도 출시돼 8월까지 1만5000팩이 팔려나갔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도 비욘드마트와 협력해 식물성 고기 버거를 시험 판매하기로 하면서 더 주목받았다.

좋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아워크라우드가 시장에서 유명한 건 투자한 기업을 키우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이버보안, 의료, 핀테크(금융기술) 등 기술 분야에서 사업성이 검증된 기업을 고르고, 전 세계 투자자에게 소개한다. 창업자를 보고 엄선해 골랐지만 부족한 게 많을 때는 단순히 돈만 끌어다주기보단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 가르치는 쪽에 주력한다. 반 대표는 “기업 스스로 엄격한 ‘듀 딜리전스(기업실사)’ 역량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좋은 딜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자 이후 관리가 성공적인 엑시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사실 그는 두 번이나 창업해 성공한 창업가였다. 그러다 몇몇 펀드사를 만나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를 접하면서 본격적인 벤처투자자로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젊음’ 하나만으로 버티는 스타트업에 해당 업(業)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가 본 한국 스타트업은 어떨까. 그의 노하우가 보태지면 글로벌로 나갈 수 있을까. 그에게 좀 더 물었다.

한국 창업 생태계는 어땠나.

한국은 정말 알면 알수록 놀라운 나라다. 짧은 시간에 경제 성장과 IT 기술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지정학적 요소부터 자원, 사람, 문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이스라엘과 겹치는 게 많다. 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만큼은 분명 달랐다. 이스라엘의 경우 기술 스타트업들이 한데 뭉쳐 엮이고, 이들에게 전략적 효용성을 투영할 수 있는 투자사들이 달라붙는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글로벌 기업들에 매력적으로 어필하고 비즈니스를 구가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전투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선순환 체계 마련이 필요해 보였다.

한국에 이런 사례가 아예 없었나.

물론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올해 1월 삼성전자가 코어포토닉스를 인수한 건이다. 코어포토닉스는 이스라엘 스마트폰 카메라 솔루션 업체로, 우리가 몇 년 전부터 투자해 공들여온 회사였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후 이 업체가 아이폰7플러스 등 듀얼카메라를 탑재한 모든 아이폰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또 다른 사례는 없나.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투자 건이 많아서 지금 단계에선 밝힐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 한국예탁 결제원, KEB하나은행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올해 3월에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2019 아워크라우드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을 열었는데 한국예탁결제원이 10개 한국 스타트업 홍보를 맡았다. 올해로 4회째인 이 행사엔 1만여 명에 이르는 벤처캐피털(VC), 엔젤투자자, 대기업 관계자가 참석했다. KEB하나은행은 아워크라우드 파트너로 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중인 기술과 궁합이 잘 맞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파트너 투자자와 함께 투자에 나설 생각이다.

한국에선 주로 누굴 만났나.

전 세계 어딜 가도 만나는 이는 정해져 있다. 크게 세 부류다. 먼저 주요 은행이나 운용사 등을 비롯한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만난다. 여기에는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과 한국 대기업도 포함된다. 다음에는 우리가 가진 투자포트폴리오상의 기업이 가진 기술과 잘 맞을 만한 기업 관계자를 찾는다. 어떤 기업엔 아예 맞춤형 투자 상품을 제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투자자들이다. 의외로 공모보다 사모펀드 투자를 선호하는 개인투자자가 많다. 기술 이해도가 높은 고학력, 전문직군 투자자도 꽤 많았다.

한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을 밝힌다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투자기회, 투자자를 찾는 일에 열중했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비교적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을 만났다. 한국은 특이하게 카카오, 네이버, 라인, 쿠팡, 삼성, 현대같이 B2C 비즈니스로 성장한 기업이 많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 중에선 우아한형제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쿠팡, 크래프톤 등을 주의 깊게 살펴봤는데, 이들은 한국 내수시장만으로도 유니콘급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봤다. 쿠팡과 크래프톤의 경우 관계자를 실제 만나기도 했다. 이스라엘엔 이런 대형 B2C 기업이 없다.

이스라엘 기업과 어떤 차이가 있나.

이스라엘은 딥테크(기저 기술)에 집중한다. 즉, 브랜드를 키우거나 사용자에게 직접 파고드는 마케팅보다 글로벌 기업이 쓰는 핵심적인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주력한다. 뚜렷한 브랜드는 없지만,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의 상품이나 기술 곳곳에 이스라엘 기업이 개발한 노력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반면 한국은 브랜드 비중이 상당했고, 스타트업들도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 구축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만큼 내수시장이 크다는 증거다.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기에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우리가 투자했던 이스라엘 인슈어테크(보험산업+핀테크) 기업 *레모네이드도 영국에서 사업을 펼쳤다.

*레모네이드: 설립자 다니엘 슈라이버와 샤이 위닝거가 창업한 인슈어테크 기업. 영국에서 손해보험 사업을 펼치고 있고, 지난해 임대자와 주택소유자 보험 상품으로 42만5000명 고객으로부터 보험료 5700만 달러(약 665억원)를 거뒀다.


한국은 정부 규제가 강한 곳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창업자들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파열음이 나곤 한다. 투자를 받았다고 끝이 아니라 펀딩이 이뤄지는 과정부터 관리돼 성장을 돕는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규제는 엄격해야 한다.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선 엄격한 규제와 더불어 투자자와 피투자자 스스로를 관리 감독하는 듀 딜리전스 과정도 탄탄해야 한다.

투자 프로세스를 설명해달라.

일단 우리를 찾는 기업을 대상으로 심사에 들어간다. 만약 아워크라우드의 검토를 받고 싶은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면 우리한테 언제든 연락해라. 그렇게 파악한 회사의 지적재산권, 기술, 인사, 시장, 잠재력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창업가를 여러 번 만나고 설명을 듣는다. 투자가 결정되면 적절한 투자자를 물색하는 동시에 엑시트 전략도 함께 논의한다. 엑시트에 걸리는 기간은 회사마다 다르다. 어떤 회사는 투자한 지 6개월 만에 인텔이나 구글에 팔린 경우도 있었다.

앞서 듀 딜리전스가 누구보다 엄격하다고 들었다.

그렇다. 듀 딜리전스가 기업실사라는 뜻이지만 그냥 기업의 모든 걸 살펴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타트업 스스로도 듀 딜리전스 능력을 갖춰서 끊임없이 비즈니스 상황을 검토하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면에선 아워크라우드는 막강한 ‘맨파워’를 자랑한다. 이들의 IT와 벤처캐피털 분야 경력을 합치면 수백 년이 될 정도다. 창업자부터 투자자, 군인, 개발자, 기업인, 디자이너 등 구성원의 출신 배경도 다양하다. 이들이 창업가와 기업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힘이다.

한국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조언한다면.

한국 창업가들을 만나다 보니 ‘항상 판매를 마무리 지어라(Always Be Closing)’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이는 세일즈의 ABC(기본)로 여겨져왔다. 이 격언처럼 첫 만남에서 모든 걸 끝내려는 한국 창업가가 많았다. 때론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는 격언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이 분야에선 그렇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비디오게임 같다고 생각해보자. 투자를 받을 상황이나 기업이 성장할 타이밍에도 ‘단계’라는 게 있다.

프레젠테이션 얘기 같다. 어떻게 발표를 해야 좋은가.

3단계를 추천한다. 먼저 투자자를 만나면 명함을 건네고 가벼운 관심만 표현해라. 첫 만남에서 모든 걸 보여줄 수도 없을뿐더러 투자자가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냥 투자자가 질문을 던지길 기다려라.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을 갖도록 노력하자. 회의실에서 독대한 투자자에겐 간명하게 설명하면 좋겠다. 대다수 창업가가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상관없는 얘기를 한다. 이후 투자자 쪽에서 세 번째 만남을 갖자고 한다면 이때가 기회다. 이때 유감없이 모든 걸 보여주자.

한국 스타트업 관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창업가가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딜을 찾고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략이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시장 환경이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창업가만큼은 그대로다. 현실에서 투자 유치는 스타트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더 긴장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돈 때문에 초심을 잃고 사업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일단 자신을 지켜라.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911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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