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 1단계: 후계자를 현장에 보내라후계자가 회사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회사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 일에 관한 기본적인 업무 능력을 기르고 사업에 필요한 대인관계를 넓힐 수 있어 경영자로 성장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회사 밖에서의 업무 경험은 후계자에게 필수 과정이다. 그러면 얼마나 경력을 쌓아야 할까?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 또는 최소 한 번 이상 승진을 해보는 것이 좋다. 만일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후계자가 해외에서 MBA를 취득하고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기본 실무부터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중소기업은 제품이나 생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경영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계자가 입사해 처음 할 일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현장 분위기와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영업이나 자재 구매 업무를 맡아 제조 현장을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업승계 2단계: 관리자로서 리더십 개발후계자가 기본적인 실무를 익히고 나면, 그다음은 리더로서 능력과 자질을 계발할 차례다. 이 시기에 있는 후계자는 이미 일정 기간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회사의 이러저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후계자를 관리자로 훈련시키고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등 리더십 계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후계자 교육이 꼭 경영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체계적인 후계자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오너의 직관이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후계자를 양성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후계자가 특별한 지식이나 스킬을 익힐 뿐 아니라 비즈니스와 경쟁 환경 등 폭넓은 관점을 갖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로서 성숙한 리더십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홍콩 중문대 조지프 판 교수는 “창업주들의 능력과 카리스마, 인맥 등이 대물림 과정에서 약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런 무형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임무”라고 했다.
가업승계 3단계: 경영권의 점진적 이전가족기업 전문가들은 가업승계를 릴레이 경주에 비유한다. 아무리 각자 기술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난 선수들일지라도, 경주에서 이기려면 바통을 제대로 주고받아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업승계에서도 경영자와 후계자 간에 바통을 넘기는 기술이 필요하다. 즉 후계자가 리더로서 역량을 갖추게 되면, 경영자의 권한과 책임을 후계자에게 건네주는 단계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 단계는 승계의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이전 단계까지 승계가 원활하게 진행되었음에도 더는 경영권이 이전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단계가 되면 후계자들은 대부분 사장 또는 부사장 직함을 갖고 영향력 있는 직위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오너경영자와 후계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많은 기업이 이 단계에서 바통을 떨어뜨리거나 넘기지 않고 계속 쥐고 있는 실수를 범한다.오너경영자가 권한과 책임을 후계자에게 이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경영권 이전 단계에서 많은 기업이 오너경영자와 후계자 간 갈등을 겪는다. 많은 경영자가 자신이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여기거나 후계자가 아직 미흡해서 경영권을 넘겨주기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후계자들은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원한다. 그래서 권력 이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급함을 느낀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세대 간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가업승계 4단계: 아름다운 은퇴후계자가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고 리더십을 갖추게 되면 경영자는 일선에서 물러나고 후계자가 드디어 새로운 경영자가 된다. 그런데 경영권을 승계했다고 해서 모든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기업과 일반기업은 승계 후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일반기업은 승계 과정이 짧으며 승계 후 이전 경영자가 회사에 잔류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가족기업은 승계 시점을 명확하게 정하기가 어렵다. 이전 경영자가 은퇴 후에도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며 일상적인 일에 개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1~2년 뒤에 경영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은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만약 이전 경영자가 은퇴 후에도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 깊이 관여하면 후계자의 통제력은 약화된다. 이는 회사 내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도전과 직원들의 혼돈, 부자 갈등으로 이어져 회사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이전 경영자는 참견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새로운 경영자가 자신감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회사 밖에 거처를 두는 등,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이상의 승계 프로세스에 김 회장의 사례를 비춰보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후계자가 외부에서의 경력 없이 바로 회사에서 일을 시작해 다양한 업무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둘째, 근무 경력이 5년에 불과해 관리자로서 경험과 역량이 부족하고 리더로서 준비가 안 되어 있음에도 공동대표를 시킨 것이다. 즉, 역할과 직급의 갭이 너무 컸다. 셋째, 공동대표를 시켰으면 후계자의 능력 범위 내에서 업무를 하나씩 위임하며 리더로서 훈련을 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모든 업무를 통제하며 후계자에게 사장으로서의 입지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또 김 회장이 후계자에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본 것도 문제였다. 정작 문제는 승계 프로세스가 잘못되었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김 회장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가업상속지원제도를 활용한다고 해서 후계자를 공동대표로 하는 방식이 중소기업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후계자에게 능력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누구나 김 회장과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중소기업 경영자라면, 상속지원제도에 억지로 승계 프로세스를 꿰어 맞추기보다는 승계는 최소 10~15년에 걸쳐 준비해야 하는 장기 프로세스임을 기억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