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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트레바리는 어떻게 독보적인 커뮤니티가 되었나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유료 독서모임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31)와의 인터뷰 말이다. 창업 5년 차에 접어든 트레바리(‘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함. 또는 그런 성격을 지닌 사람’)는 2030세대에서 소위 알 사람은 다 아는 ‘힙’한 커뮤니티가 됐다.

▎위워크 강남 2호점 12층에 입주해 있는 트레바리 사무실에서 만난 윤수영 대표. 사진촬영이 어색하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짧게는 ‘돈 내는 독서모임’, 길게는 ‘독서를 매개체로 다양한 사람과 함께 지적 갈증을 해소하는 모임’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서비스 출시 당시, 이 모임이 지금처럼 거대 커뮤니티 플랫폼이 될 거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 트레바리가 외부투자를 받은 건 2019년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유치한 50억원이 처음이다. 창업 이후 4년간 나홀로 성장을 이룬 후에야 벤처캐피털업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창업 초기 수년간 투자가 없으면 ‘데스밸리’를 넘기 힘든 스타트업 신에서는 희귀한 사례다. 특이 사항은 사업 규모 및 투자금액 대비 언론 노출 빈도수가 많았다. 그만큼 트레바리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이가 많았다는 반증이다. 윤 대표는 “우리 서비스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며 “매년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걱정은 많지만, 매일 출근길이 행복하다”고 입을 열었다.

2015년 9월 80여 명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2019년 12월 기준 6000여 명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돈을 내가며 독후감을 작성해 모르는 사람들과 토론까지 해야 하는 이 서비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연평균 30%씩 늘어난 셈이다. 참가자들은 적게는 19만원에서 많게는 40만원이라는 금액을 지불하고 4개월간 이 독서클럽에 참여한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기 힘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관점을 습득하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곳이 그만큼 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싸고, 힘들고, 두려운 독서모임에 6000명이 모인 이유


▎트레바리가 2020년 1월 강남역 부근에 오픈하는 독서모임 전용 빌딩 예상 이미지. 건물 최고층에는 재즈 클럽
매개체는 책이다. 한 달에 한 번, 책 한 권을 읽고 모여 생각을 나눈다. 현재 트레바리에서 운영되는 북클럽은 380여 개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이 모임이 5년 넘게 이어져온 배경에는 꽤 탄탄한 운영 노하우가 있다. 참가자들이 돈을 내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도록 ‘강제성’을 의무화한 것이다. 윤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비싼 돈 내고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는 것처럼”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독서를 강제하기 위해 트레바리에 가입한다. 대표적인 것이 모임에 앞서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400자 독후감이다. 멤버들은 독후감을 쓰면서 생각을 정제하고 가다듬는다. 모임 이틀 전까지 홈페이지에 독후감을 올려야 하는데 글자수가 한 자라도 모자라거나 데드라인이 1초라도 지나면 제출할 수 없다. 수준 높은 토론을 위해 준비된 멤버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No pain, no gain’이라고 했던가. 혼자만의 치열한 사고를 통해 빚어 올린 한 사람의 가치관은 동일한 프로세스를 거친 멤버들의 그것과 만나 서로의 관점을 넓혀주는 도구가 된다.

한 달에 한 번, 3시간 40분간 이어지는 토론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뒷풀이로 이어진다. 윤 대표는 현재 압구정, 안국, 성수, 강남에 있는 4개 아지트에 이어 2020년 1월에 강남에 다섯 번째 아지트를 오픈한다. 독서모임 공간 확장과 더불어 재즈바와 F&B 등 트레바리만의 감성과 색깔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커피와 위스키 ‘덕후’인 윤 대표는 메뉴 선정부터 인테리어까지 직접 관여하고 있다. 이 공간이 트레바리의 문화적 감수성과 취향을 대변하는 아지트로 거듭날 수 있게 말이다. 독서모임 이외에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스타트업이 하던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 골로 간다. 지금 하고 있는 걸 압도적으로 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트레바리만의 또 다른 경쟁력은 섭외력이다. 트레바리에서는 클럽장 100여 명이 전문 분야와 관련된 클럽들을 이끌고 있다.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황두진 건축가, 이승규 스마트스터디 공동창업자,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 정혜승 전 대통령비서실 디지털소통 센터장, 신기주 전 에스콰이어 편집장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클럽장으로서 책을 선정하고 토론을 이끌며 전문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얼마 전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스캐터랩’의 김종윤 대표와 함께 AI관련 기사를 읽고 책이나 논문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IT업계를 이해하는 클럽도 시작했다. 최근에는 트레바리의 콘텐트를 눈여겨본 외부 기업들로부터 B2B로 별도 클럽 개설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트레바리의 중심, 윤수영이라는 인물

트레바리를 초창기 때부터 이용해오고 있는 멤버 중 한 명은 윤 대표의 리더십과 인간적인 매력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윤 대표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시절 가까운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 지금의 트레바리의 시초가 된 모임을 만들고 운영한 바 있다. “누구보다 술을 사랑하지만, 술만 마시는 게 지겨웠다”던 그는 “술만 마시지 말고 책이라도 읽고 만나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에 동의한 지인들이 하나둘 모여 트레바리의 시초가 된 북클럽 활동을 함께했다. 대학 졸업 후 2014년 1월 다음(Daum)에 마지막 공채로 입사한 그는 몇 개월 만에 큰 위기를 맞았다. 당시 PC 기반의 국내 IT 공룡이었던 다음이 모바일 기반의 신생 업체인 카카오에 인수합병되면서 많은 동료의 퇴직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윤 대표는 공교롭게도 모바일 콘텐트 관련 부서 소속이라 구조조정은 면했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는 이 경험으로 생존과 경쟁력이라는 화두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된다. “이대로는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도 못 하고, 돈도 많이 못 벌고, 경쟁력 있는 사람도 못 될 것 같았다”고.

그래서 1년 만에 다음에서 나와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참고로 트레바리는 윤 대표가 두 번의 실패를 거친 뒤 세 번째로 시도한 사업 아이템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다를 업으로 삼기 위해 대학 시절 뜻을 같이했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다시 설득했다. 삼성전자 전략마케팅팀을 그만두고 트레바리에 합류한 후배도 있다. 트레바리를 직접 경험해보고 입사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한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뽑아서 그런지 출근할 때 설렌다”고도 했다. 트레바리가 동종 서비스나 커뮤니티들이 있었음에도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나와 관심사나 가치관, 취향이 같은 사람들과 제대로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이 어디에도 없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간혹 대화가 안 통하는 독불장군식의 멤버가 들어오면 클럽 운영에 지장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젠더 감수성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매너가 부족한 분들은 문화적으로 압박을 가하려는 노력을 한다”면서 “유쾌하면서도 정중하고, 도전적이면서도 무례하지 않은 언행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문화와 서비스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스펙 쌓기’, ‘취업’ 이후에 맞닥뜨리는 본질적인 성장 욕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는 시대다. 트레바리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들어봤다.

이해봄 | 28세, 넥슨 개발기획, 2019년 5월 시작

묘한 해방감과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대화에서 오는 지적 만족감이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내 생각과 무엇이 다른지 듣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다양한 인사이트와 전문가의 의견까지 한 번에 들을 수 있다.

유민초 | 30세, 트레바리 경영지원셀 크루, 2017년 5월 시작

어렸을 때 반에서 1년 동안 한마디도 해보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어울리는 무리가 달라서 같이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트레바리에서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서로에게 더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황고운 | 32세, 교사, 2016년 1월 시작

트레바리에서 4년을 채웠다. 교사라 일상이 단조로운 편이었는데, 이곳에선 책 읽기는 기본이고, 매일 저녁 강연이나 체험 이벤트가 있다. 독후감 쓰자고 모이는 번개도 있고, 함께 뮤지컬을 보거나 요가를 하기도 한다. 시즌을 마무리할 땐 수백 명이 모여 춤도 췄다. 직업군도 천차만별이다. 30년 동안 만난 사람을 다 합쳐도 트레바리에서 만난 사람만큼 다양하지 않았다. 책을 굳이 함께 읽는 이유는 다르게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다. 토론을 마칠 때면 사고 회로에 길을 하나씩 더 내는 기분이 든다.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 젠더 이슈에 대해 토론 모임을 하다가 ‘젠더 교육을 하는’ 교사가 됐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책을 읽던 사람들이 본업과 연결하거나 본업을 뒤집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의 교집합을 트레바리 안에서 찾아가는 모습을 꾸준히 봐 왔다. 한때는 대학 교양강좌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보면 평생교육센터 같기도 하다. 4년간 트레바리에서 읽은 책이 90여 권, 독후감은 60여 편이더라. 평생 유지하고 싶은 습관이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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