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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 김승현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디렉터 

아시아 1위 여행 플랫폼을 향한 꿈 

외국인이 편하게 한국 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나선 스타트업 CEO가 있다. 그 생각이 실현될 수 있게 돕고, 외연을 넓히라 조언한 투자자도 있다. 창업하기 전 아이디어만 있을 때부터 이어왔던 두 인연을 만났다.

▎방한 외국인에게 최근 가장 ‘핫’하다는 홍대입구역 부근 패션 편집숍 ‘엠플레이그라운드’ 앞에 선 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오른쪽)와 김승현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디렉터.
“아시아 지역 여행객에게 좀 더 편한 한국 여행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해외시장에만 생각이 꽂혀 있던 적이 있었어요. 정작 그들이 돌아볼 곳은 한국인데요. 제가 좀 일에만 몰두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때 주위를 둘러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 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

“카이스트(KAIST) 자회사인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에서 심사역으로 일할 때 처음 만났어요. 제가 처음으로 반드시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두 회사 중 한 곳이 크리에이트립입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여행 관련 창업 아이템을 찾으려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가판대까지 만들어 장사해봤다고 했었어요.”
- 김승현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디렉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12월 11일 홍대입구 한 카페에서 임혜민(29) 크리에이트립 대표와 김승현(37)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디렉터를 만났다. 국내가 아닌 아시아 지역에서 월간 사용자 100만 명을 넘어선 크리에이트립의 저력이 궁금해서다. 2016년 1월 창업한 이 여행 플랫폼도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정보의 격차’ 해소를 목표로 내걸었다. 특이하게도 타깃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다. 현재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과 동남아 지역 중심으로 고정 회원 수만 수십만 명에 달한다.

비결이 뭘까. 임 대표가 생각한 답은 간단했다. 외국인도 한국에서 한국인이 ‘핫’하게 여기는 장소에서 여행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여행객이 으레 들르는 식당이나 관광지보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곳에서 즐기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말이 잘 통하지 않고, 그런 정보를 얻을 곳도 없다.

그래서 임 대표는 한국인만 알 법한 장소와 놀이를 외국인에게 알려주는 데 집중했다. 실제 크리에이트립 앱을 이용하면 요새 한국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도시와 카페·식당 등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다. 가이드 없이도 충분히 다닐 수 있게 약도를 보여주고, 제휴한 곳이면 할인쿠폰도 준다. 크리에이트립을 이용한 외국인이 남긴 후기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토스뱅크 등 굵직굵직한 곳에 초기 투자한 미국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도 크리에이트립의 문을 두드렸다. 기존 투자자인 베이스인베스트먼트도 후속투자를 결정했다. 올해 벤처업계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두 투자사가 크리에이트립에 34억원을 투자한 것. 초기 투자자로 나섰던 김 디렉터뿐만 아니라 시장의 시선도 임 대표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창업 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완전 초기 투자자였다.

김승현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디렉터(이하 김승현): 카이스트에 있을 때 크리에이트립의 태동을 지켜봤다. 카이스트에는 워낙 기술 인재가 많고, 경영대학원까지 있다 보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기관이 생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는 그렇게 생겨났고, 혁신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그때 임 대표가 보였다.

처음부터 여행을 사업 콘텐트로 잡았나.

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이하 임혜민): 그렇다. 물론 방법은 달랐다.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하진 않았다. 외국계 기업에서 짧은 기간 일하면서 창업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그러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 가게 됐고,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을 창업 아이템으로 삼았다. 평소 외국인과 만나면서 느꼈던 부분을 사업화한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일단 어딜 가야 재미있고, 맛집이 있는지 묻는다. 이미 시장 수요는 그때부터 확인한 셈이다.(웃음)

임 대표를 오랫동안 지켜봤다고 했다.

김승현: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도 여행이란 콘텐트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방법이 문제다. 어떻게 사업화할 것인지는 온전히 스타트업 CEO의 몫이다. 임 대표는 짧은 사회생활 경력을 만회하고자 여행업계를 이해할 수 있는 온갖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한국인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곳을 답사했고, 외국인 관광객이 원하는 상품을 본인이 구성하여 직접 팔아보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 ‘정보의 격차’가 존재하는지, 또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부단히 고민했던 임 대표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꽤 전투적이다.

임혜민: 하나에 꽂히면 가만히 있질 못한다.(웃음) 당장 뭐라도 실행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국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 하는 외국인 여행객이 많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1박 2일 여행 프로그램을 짜보고, 홍삼 판매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나조차도 제대로 된 홍삼을 모르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직접 만난 외국인 관광객에게 얘길 들어보면 ‘뭔가’ 고상한 여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 한국인이 즐기는 그 무언가를 체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졌다.

‘모두가 현지인처럼(Everyone is a local)’을 내세운 이유인가.

임혜민: 그렇다. 우리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주문해 먹고, 한강에서 치킨을 시켜 먹는 일. 이게 다 관광상품이 될 수 있었다. 별도의 프로그램을 짤 필요도 없었다. 그저 언어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도와주고, 제대로 된 정보를 주면 이들도 즐기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이들도 유행에 민감하다. 수백 년 된 고궁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서만 여행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카페, 미용실, 맛집, 네일숍, 캐릭터숍 등 한국에서 유행 중인 콘텐트가 녹아든 곳이라면 어디라도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었다.

실제 빠르게 성장했다. 문제는 없었나.

김승현: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잘나갔다.(웃음) 크리에이트립을 찾는 중화권, 동남아 지역 방문객이 매월 100만 명이나 됐다. 솔직히 놀라웠다. 돈을 써서 이용자를 늘리는 마케팅도 하지 않았는데 가입자와 방문자가 날로 늘어났다. 다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확장 속도가 아쉬웠다. 물론 주관적일 수 있다.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더 빨리 크게 성장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키울 수 있어 보였다. 대만, 홍콩에선 이미 압도적으로 트래픽을 달성했으니 시장의 외연을 넓혀도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조언했다. 여행은 트렌드고, 여행객도 좀 더 빠르게 끌어들인 필요가 있었다. 매출 목표도 좀 더 명확하게 제시했다.

월평균 방문객 100만 명 몰리는 여행 앱


압박이 느껴졌겠다.

임혜민: 아니다.(웃음) 물론 우리 고객들이 전부 해외에 살다 보니 업계 돌아가는 동향이나 성장 방향 등은 더디게 알 수밖에 없다. 모든 걸 잘하면 스타트업이 아니다. 또 내 성격상 어느 한 국가를 타깃 시장으로 삼으면 파고드는 습성(?) 탓에 주위를 잘 살피지 못했다. 파고들지만, 외연 확장에 보수적으로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임혜민: 진정성이다.(스마트폰으로 앱을 열며) 여기 보면 생생한 로컬 정보가 담겨 있다. 처음부터 수익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정보에 집중했다. 우리가 직접 가보지도 않고 긁어온 정보는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늘 지나치는 홍대입구, 혜화역, 신촌역 등 대학가 주변이 외국인에겐 별천지일 수 있다. 이태원만 외국인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도 대형마트에서 장보기, 강변에서 컵라면 먹기, 짜장면·치킨·삼겹살을 먹거나 대학가 주변에서 쇼핑하기 등을 즐긴다. 이미 데이터로도 검증됐다. ‘정보의 격차’ 해소는 이들의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에서 시작됐다.

크리에이트립은 무료다. 비즈니스 모델은 있어야 할 텐데.

김승현: 플랫폼은 이용자가 생명이다. 단순히 유료 서비스로 전환한다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게 아니다.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즈니스 기회는 무궁무진해진다. 한국 곳곳을 즐기는 외국인을 보면서 단순히 먹고, 보고, 즐기는 것 그 이상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행을 왔으니 적당한 숙소도 필요하고,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병원을 찾는 이도 상당히 많다.

서비스가 외국어다. 원래 외국어를 잘했나.

임혜민: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다.(웃음) 관련 학교를 졸업했다고 모두가 잘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외국인과 영어, 중국어로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회사 구성원 대부분 외국어에 능통하다. 서비스 수요자 타깃을 외국인으로 잡다 보니 외국어 능력은 필수다. 현재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 한국을 찾는 관광객 3명 중 1명이 우리 앱을 사용하니 더 그렇다. 영어 서비스에도 공을 들였다. 기존 콘텐트 원문을 단순히 번역하는 게 아니고 영어권 사용자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콘텐트와 UI를 다시 구성했다. 실제 여행지를 방문했을 때 혼동하지 않도록 한국어도 병기했다.

옆에서 보기엔 어땠나.

김승현 나도 해외여행을 즐기는데 해외에 나가면 현지인이 즐기고 추천하는 곳에 가고 싶다. 인지상정 아니겠나.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도 같은 마음일 거다. 임 대표는 그들의 마음을 잘 읽어낸 거다. 여행업계의 글로벌화가 서로의 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잘될 서비스라 믿었다. 심플했다.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도 고객이 될 수 있겠다.

임혜민: 궁극적으론 쌍방향이 돼야 한다. 지금은 워낙 한국 문화를 즐기려는 수요가 많아 이들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진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한국에서 먹고 소비하는 행위를 통합해야 한다. 그냥 우리 플랫폼 안에서 먹고, 자고, 즐기는 모든 행위가 이뤄지게 하는 게 목표다. A부터 Z까지. 일종의 수평 확장 커머스다. 플랫폼을 운영하다 보면 기상천외한 수요를 발견할 때가 있다. 광장시장 이불이 그렇다. 동남아도 밤에는 춥다. 광장시장, 남대문시장에서 가서 다양한 이불을 본 외국인들은 흔쾌히 지갑을 연다. 이런 것도 로컬 정보 그 자체다.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가던 그들이 맞닥뜨린 건 ‘중국’이다. 크리에이트립이 중국어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아직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진 않았다. 임 대표, 김 디렉터 모두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중화권 공략에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수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 진출에 실패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임 대표가 천천히 걸어가는 우보(牛步), 말 그대로 돌아가는 우회(迂廻) 전술을 구사하는 까닭이다. 김승현 디렉터도 “중국 시장에 섣불리 문을 두들기기보다는 대만부터 공략한 임 대표의 전략 덕분에 사드 보복에도 끄떡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혜민 대표는 중국 시장 얘기에 목표를 덧붙였다.

“이용자 대부분이 대만인과 홍콩인, 혹은 중국계 동남아시아인이라는 한계를 지닌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어 서비스를 내놓으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권 국가도 아우르고자 합니다. 동시에 중국 관광객을 위한 계획도 준비 중입니다. 저가 패키지 상품으로 한국 여행에 실망했던 이들에게 ‘한국만의 진정한 매력’을 보여주면 철옹성 같던 시장도 열리지 않을까요?”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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