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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세훈 인투코어 테크놀로지 대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반한 유망주 

반도체는 공정에 플라스마를 도입하면서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라는 새 집적회로를 개발했고, 2차 혁명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 공정 장비와 부품은 해외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플라스마 기술 스타트업이 반도체 공정 국산화에 도전장을 냈다.

▎인투코어 테크놀로지는 지난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다수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에 장비를 납품했다. 엄세훈 대표는 “물량은 많지 않지만 미국 기업 한두 곳 말고는 플라스마 활성종 공급장치를 양산하는 곳이 없다”며 “양산 공급계약에 성공하면 국산 장비로 납품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스마는 어떤 상태에 에너지를 가하면 액체에서 기체가 되고, 더 큰 에너지를 쏘면 원자핵과 전자까지 나뉜 이온화된 상태가 됩니다. 질소, 산소, 물 분자를 플라스마 기술로 원자 같은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습니다. 처음엔 산업 현장에서 쏟아지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분해하고 재결합해 액체 연료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인투코어’(EN2CORE)라는 회사 이름도 환경(Environment)+에너지(Energy)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 이유죠.”

지난 7월 15일 대전비즈센터 인투코어 본사에서 만난 엄세훈(45) 대표가 한 말이다. 2014년 인투코어도 신재생, 환경에너지 시장을 타깃으로 출발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정상 회의는 “이산화탄소 배출은 십수 년간 계속해서 증가해왔고, 이로 인한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각종 기후재난을 인류가 마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직도 중국, 미국, 인도는 이산화탄소를 대규모로 배출하고 있고, 한국도 배출 증가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나 된다. 엄 대표가 기술을 펼칠 판을 잘 읽은 셈이다.

하지만 인투코어는 창업 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계인을 향한 경각심과 시장의 수요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냥 관련 시장이 없었다. 엄 대표는 플라스마 기술을 반도체 분야에 응용하기로 하고, 반도체 제조공정용 장비 개발에 매달렸다.

정부도 인투코어의 노력을 알아봤다. 2016년 12월 중소벤처기업부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에 선정됐고, 이듬해 8월 인투코어가 개발한 고밀도 활성종 공급장치(Remote Plasma Source, 이하 RPS)를 삼성전자에 납품했다. 이어 9월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대 출자자로 나선 2000억대 규모의 반도체성장펀드 1호 투자 대상 기업이 됐다.

납품 성과도 이어졌다. 지난해엔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도쿄 일렉트론(TEL), 램리서치(LAM Research), 한국 세메스(SEMES)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에도 납품했다. 물론 물량은 테스트 장비 수준이지만, 공정 안정성만 검증되면 수천억대 주문이 이어질 수 있다.

엄 대표는 “플라스마 활성종 공급장치는 미국 기업 한두 곳 말고는 국내에서 양산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이 분야에서 처음으로 국산화 장비를 반도체 공정에 대규모 납품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얘길 좀 더 들어봤다.


▎인투코어는 현재 플라스마 활성종 공급장치 외에도 반도체 후공정에서 폐가스를 정화할 스크러버,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변화하는 시스템도 주력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플라스마 기술, 반도체 공정에 어떻게 쓰이나.

앞서 플라스마 기술이 원자핵이나 전자로 쪼갤 수 있다고 했다. 붙어 있던 분자를 쪼개면 다시 결합하려는 힘이 몇 배는 커진다. 반도체 웨이퍼에 입혀야 하는 화학물질을 더 고르고 균일하게 입힐 때 그 성질을 이용한다. 당연히 제작 환경의 청정도도 높아지고 반도체 공정 집약도가 높아지면서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워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삼성전자가 초미세 반도체 양산을 위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빛을 이용한 반도체 제조 과정인데, 웨이퍼에 미세한 전기회로를 여러 개 깎아내기 전에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기존 작업 환경에서는 빛으로 밑그림을 그리기도 어렵고, 여기에 맞춰 깎기도 어렵지만, 플라스마 환경에선 가능하다. 반도체 칩이 더 작고 고용량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도입해야 하는 기술이다. 이건 다른 공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적용해 웨이퍼에 전기적 특성을 갖는 분자 또는 원자 단위의 물질을 입히는 증착 공정과 특수한 가스를 주입해 불필요한 회로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세정하는 식각 공정에 효과가 크다.

경쟁사보다 앞서나.

경쟁사가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 타사의 RPS 장비는 통상 감광액을 제거하거나 웨이퍼를 세정 또는 연마하는 공정에 쓴다. 하지만 우리 장비는 반도체 전 공정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미국의 M사 정도가 우리 제품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제품을 만들지만, 작동 구조가 복잡하고 반도체 공정마다 적용하려면 쉽지 않다. 반면 우리 장비는 작동 구조가 단순해 기존 공정에 적용하기 쉽고, 그간 적용하지 않았던 공정에 장착하는 것도 쉽게 만들었다. 글로벌 장비회사에서 테스트용으로 받아준 건 이런 장점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온화된 기체인 활성종(중성기체) 처리 용량도 타사 제품보다 몇 배나 뛰어났다.

인투코어 RPS만의 기술이 있나.

크게 두 가지다. 전력을 비교적 적게 쓰고도 플라스마 방전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독자 개발 안테나(H2L2-ICP 기술)와 전력을 정교하게 제어해줄 기술(SOSWIT 기술)이다. 대부분의 반도체 장비 업체는 전력 제어 부분에선 타사 인버터를 사서 끼운다. 하지만 우리는 플라스마 상태를 유지하려면 강한 유도전기장이 필요하기에 전력 제어 기술을 원천화해야 했다. 회사 기술팀도 크게 보면 플라스마와 전력 전문가로 나뉜다. 국내외 특허는 이미 확보해둔 상황이고, 글로벌 회사도 몇 달씩 테스트해도 문제없었다.

비교적 초기 스타트업인데 생산 능력을 갖추었나.

자체 생산설비를 완전히 갖춘 건 아니다. 한국에선 외주 생산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어서 우리가 일단 원모델을 테스트하고 개발해 부품 설계까지 마치면 조립은 외주업체가 맡는 식이다. 물론 최종 검수는 우리가 한 후 납품한다. 처음엔 생산 공장을 확보하는 문제로 골치가 아팠는데 이렇게 해결하면 다른 기술 스타트업들도 제품 생산에 도움이 되겠더라.

회사에 박사급 전문가가 유독 많다.

그게 우리 전 재산이다. 사실 우리 회사의 일부 전신이 미국 기업에 인수된 플라스마트다. 공동 창업에 뛰어들었고, 당시 일했던 직원 몇몇도 지금 인투코어에서 일하고 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허진 부사장은 카이스트 플라스마 전기·전자 공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국내외 굴지의 반도체 장비 업체에서 연구원과 임원을 역임했다. 해외로 떠나려던 허 부사장을 감동적인(?) 호소로 공항에서 붙잡았다. 이 밖에 이윤성 연구소장, 손영훈 수석연구원, 박세홍 수석연구원 등 박사급 연구진이 전체 직원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창업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한텐 사람이 전부다.

일하는 방식이 특이하다고 들었다.

특정 소속 부서를 정하지 않는다. 테스크포스(TF)팀도 뭔가 차출됐다는 느낌 때문에 일 능률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겸직 체제를 도입했다. 직원마다 업무량은 항상 고려해 배분하지만, 능력 있는 직원은 이 부서 저 부서 요원으로 활약한다. 일시적인 업무 로드가 걸릴 수는 있지만, 전 직원이 회사 업무 전반을 경험할 수 있어서 협업 의지는 더 강해진다. 보통 기술 회사에서 부서 간 알력이 심하고 서로 싸우는 일이 다반사인데 우리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연구개발(R&D)도 중요하지만, 생산부터 최종 판매, 사후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RPS 외에 다른 장비도 개발했나.

두 장비가 더 있다. 반도체 후공정에 쓰일 폐가스를 정화하는 스크러버, 이산화탄소와 메탄(CH4) 변환 시스템이다. 스크러버는 어느 정도 개발을 완료했고, 반도체 공정 적용 전 성능을 테스트 중이다. 다른 하나는 환경 분야 장비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합성하는 장비는 대구시와 실증 시설을 구축했다. 원래 사업 과제였지만, 정부, 기업 등 각종 시장 참여자들이 같이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장기 과제로 미뤄뒀었다. 물론 지금도 대구시, 한국화학연구원, 환경부, 대성환경에너지와 손잡고 총사업비 40억원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 내에 플랜트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곳에선 매립지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가지고 매일 50㎏ 정도의 메탄올을 생산하고 있다. 수소도 따로 포집할 수 있고, 촉매합성 공정을 달리하면 항공유, 디젤 등 각종 에너지류 생산도 가능하다.

수소충전소 구축도 가능하겠다.

그렇다. 수소차 도입엔 언제나 충전소의 안전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쓰레기 매립지에 충전소를 구축해 플라스마 기술로 그때그때 수소를 생산하면 거대한 충전 탱크도 필요 없다. 쓰레기 매립 차량을 수소차로 바꾸고, 매립지 유휴지에 태양광을 깔아 플라스마 발생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면 그야말로 친환경 생태계가 구축된다. 창업 당시부터 이걸 꿈꿨지만, 한 기업의 의지만으론 불가능해 정부, 지자체, 대기업, 연구원 등을 설득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환경에너지까지, 사업 범위가 너무 넓은 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물론 비즈니스의 축은 반도체 공정 장비와 환경에너지가 맞다. 하지만 효율화된 반도체 공정은 에너지를 적게 쓰고, 그래도 나오는 폐가스까지 정화하는 과정 전반을 플라스마 기술이 관통한다. 환경보호와도 맞닿아 있기에 비용 절감보단 ‘환경보호’란 당위성이 거대한 사업을 일으킬 바탕이 될 수 있겠다.

힘든 점은 없었나.

투자 받기가 정말 어려웠다. 기술을 설명하고, 장비를 만들어 상용화 가능성까지 내비쳐도 시원하게 투자해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글로벌 굴지의 반도체 기업이 알아줘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환경 기술을 표방했을 땐 시장 자체가 없어 당황했다. 그래서 당당히 글로벌 기업에 제품을 납품해 매출을 일으켜 연구개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악착같이 제품 개발에 올인한 이유다.

인투코어는 정부가 육성하겠다고 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대표 기업 중 하나다. 해외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RPS를 국산화했다. 내년쯤 대규모 반도체 공정라인에 대량 납품하는 데 성공하면 국산화 제품으로 반도체 라인 양산 공급에 성공한 최초 사례가 된다. 엄 대표는 “정식 공급에 성공하면 연간 500~1000대까지 납품하게 되고, 유지·관리 비즈니스까지 더해지면 수천억대 매출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의 소회와 바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반도체 분야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기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입장벽도 높았죠. 기존 기업의 텃새부터 제조업을 모른다는 의구심 등. 스타트업이 기술 제조업에 뛰어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기술 자부심이 있어도 시장을 좀 더 좇아야 하고, 비즈니스 기회가 생긴다 싶으면 빨리 피벗팅(Pivoting)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부심이 밥을 먹여주진 않습니다. 저 혼자라면 더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전 오너보단 파트너로 불리며 직원들과 이익을 공유하고 달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

202008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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