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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토스랩 대표 

4000개 기업이 반한 협업 툴 ‘잔디’ 

코로나19 이후 직장 풍경이 확 변했다. 재택근무는 흔해졌고, 출근하더라도 대면 회의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업무 협업 툴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유명 벤처캐피털(VC)도 국내 1위 협업 툴 ‘잔디’를 운용하는 토스랩에 140억원을 투자하며 힘을 보탰다

▎김대현 토스랩 대표는 “ 회사는 언제나 혁신을 위해 효율성과 생산성 두 가지를 개선하고자 한다”며 “혁신할 ‘무언가’를 내놓으려면 가장 먼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무의 가장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김대현(37) 토스랩 대표가 협업 툴 ‘잔디’를 소개하며 꺼낸 첫마디다. 지난 9월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김 대표는 “회사는 언제나 혁신을 위해 효율성과 생산성 두 가지를 개선하고자 한다”며 “혁신할 ‘무언가’를 내놓으려면 가장 먼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모바일 협업 앱 잔디는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카카오톡 등 기존 메신저와 유사한 형태다. 서비스 초기였던 2015년만 해도 잔디처럼 대화형 기반을 표방한 협업 앱은 미국 업무용 메신저 슬랙뿐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협업 앱도 대화 기반 기능을 필수로 넣고 있다. 김 대표처럼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협업 툴은 단순한 업무용 메신저가 아니라 업무 환경을 바꾸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협업 툴은 이제 한 기업의 각종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업무 활용도가 높아지니 수요 기업은 늘고, 협업 툴 시장은 한층 커졌다. 글로벌에선 미국이 이 시장을 주도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티카는 전 세계 협업 툴 시장 규모가 올해 119억 달러(약 13조8000억원)에서 2023년 135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아마존과 다년간 파트너십을 맺어온 미국 협업 앱 슬랙은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시가총액은 144억 달러(2020년 9월 17일 종가 기준)가 넘는다.

국내 시장도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라인웍스(네이버), 브리티웍스(삼성SDS), 플로우(마드라스체크), 팀즈(마이크로소프트), 슬랙(슬랙코퍼레이션) 등이 한국 협업 툴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지난 9월 16일엔 카카오까지 잔디와 슬랙처럼 업무용 메신저 형태를 표방한 ‘카카오워크’를 출시하며 업무 앱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카카오란 공룡이 뛰어들긴 했지만, 아직 국내 협업 툴 1위는 토스랩이 운영 중인 잔디다. CJ, CJ E&M, LG CNS, 무신사, 넥센타이어 같은 국내 중견기업과 대기업도 잔디를 사용 중이다. 투자사들도 토스랩의 성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9월 초 토스랩은 소프트뱅크벤처스 주도로 SV인베스트먼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머스트자산운용, 스파크랩스, 신한캐피탈, 티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40억원 투자를 유치하면서 1위 굳히기에 나섰다.

유명 창업자와 벤처캐피털(VC) 파트너도 대거 토스랩 편에 섰다. 토스랩은 신현성 티몬 창업자,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현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파트너), 이준효 SBI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용 챗봇 서비스를 하는 센드버드의 김동신 대표와 클라우드 매니지먼트 기업 베스핀글로벌의 이한주 대표를 자문단에 끌어들였다. 창업 베테랑까지 우군으로 확보한 김 대표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국내 협업 툴 업체로선 올해 첫 투자 유치다.

그렇다. 2014년 12월 출범한 뒤 지금까지 약 270억원을 투자받았다. 특히 올해 9월엔 코로나19 상황에도 2019년까지 유치한 자금을 합한 것보다 많은 140억원을 추가로 유치했다. 사용자 200만 명, 사용팀 21만8526개(2020년 1월 기준) 등 수치로만 보면 지난 5년간 3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시장에서 잔디의 성장세를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유명 창업자도 대거 합류했다.

창업 전 또는 후부터 꾸준히 잔디를 도와줬던 이들이다. 특히 신현성 티몬 의장은 토스랩의 투자자이자 티몬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다. 티몬이 창업했을 때 무심코 공고를 보고 덜컥 지원한 것이 인연이 돼 2015년까지 로컬사업부 총괄을 맡아 함께 일했다. 강준열 파트너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며 토스랩 사업에 조언을 해줬고 나머지 창업자도 B2B 사업을 일군 업계 선배로서 업계 네트워크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떤 도움인지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해달라.

토스랩의 기술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몇 해 전 강준열 파트너에게 토스랩의 기술 인프라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비용과 퍼포먼스가 적정한지 고민하던 때였다. 강 파트너는 주저 없이 지금보다 절반의 비용으로 3배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파트너는 네이버, 카카오에서 임원을 거치면서 많은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한 바 있다. 평소 개발자 출신이 아니어서 망설였던 바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됐다.

창업 전엔 뭘 했나.


대학에서 교통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첫 직장도 국내 교통결제서비스 사업자인 티머니였다. 그곳에서 티머니 교통 솔루션을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몽골 등 해외에 계약하고 판매하는 일을 맡았다. 2012년 티몬에서 IT 신사업을 사업화해본 경험을 가진 이를 찾는다고 했고, 자유로운 조직문화에 이끌려 자리를 옮겼다. 조직문화는 달랐지만, 업무 협업의 방법엔 딱히 정답은 없어 보였다. 회사 덩치가 커질수록 의사결정 과정과 정보가 공유되기 쉽지 않았다. 창업을 결심한 후 티몬에서 나왔고, 신현성 티몬 의장이 협업 앱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토스랩을 창업하게 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 코로나19 이후 일평균 신규 가입자가 80% 가까이 늘었다. 평소 하루에 350명 정도가 가입했는데 올해 들어 매일 900명 가까이 가입하고 있다. 업무 방식을 바꾸는 건 사실 기업의 기술 인프라를 바꾸는 것이라기보단 기업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잔디를 인지한 전환점이었다면, 반강제적으로(?) 비대면 상황을 조성한 코로나19는 잔디 도입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만든 계기였다. 어떤 상황에도 업무를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잔디는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 가입자와 달리 기업 고객을 설득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슬랙, 팀즈, 카카오워크까지 막강한 경쟁자들이 나서고 있다.

외국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도 협업 툴 도입에 적극적이다. 업무량은 그대론데, 근무시간을 줄었으니 비효율적인 과정을 걷어내 산출물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기업 수요가 늘어나 협업 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국내 최초로 협업 툴을 내세운 까닭에 기업의 선택 목록에 꼭 오른다. 우리는 아시아 지역에 특화된 협업 툴임을 늘 강조한다.

다른 서비스와 차별점은.

서비스, 비즈니스, 보안 크게 세 가지 측면에 방점을 둔다. 먼저 서비스 측면에서 기능과 사용성을 현지화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선 조직도를 두고 소통할 대상을 찾는다. 슬랙은 조직도보단 직접 연락하는 방식이 우선이다. UI도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메신저 방식을 택했고, 감정 표현을 할 수 있게 이모티콘도 활성화했다. 할 일 관리나 다른 서비스와 연동하는 기능도 탑재해 ‘올인원(All in One)’ 전략을 구사한다. 비즈니스 측면에선 발 빠른 대응력을 강조했다. 아시아 권역에서는 실시간으로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다. 다른 해외 협업 툴은 기업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2~3주가량 걸린다. 서비스를 결제할 때도 현지 화폐를 쓸 수 있게 해 기업의 환리스크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노력했다. 보안 문제는 세계 최고 보안을 자랑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 기반 클라우드를 이용해 신뢰를 얻고자 했다.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화를 표방했다.

그랬다. 현재 사용자 유입국을 보면 60개 국이 넘는다. 주요 매출국도 한국·대만·베트남·일본 등이고, 동남아시아와 두바이를 중심으로 중동 지역 마케팅·세일즈에도 신경 쓰고 있다. 현재 대만 협업 툴 시장에선 1위를 달리고 있고, 일본에선 현재 고객사만 600여 개가 넘는다. 지금은 일본 정보통신 회사 비전과 손잡고 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계획 중이다. 베트남과 두바이에선 지난해 지역 스타트업 대회에 출품한 잔디가 우승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글로벌 시장이 더 커질 것 같다.

글로벌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코로나19 이전엔 북미·유럽 등 선진 기업이 도입을 주도했다면 최근엔 아시아, 중동 지역 기업에서도 도입 사례가 늘고 있다. 원래는 많은 기업이 페이스북 메신저나 왓츠앱 등 일반 메신저를 업무에 활용했다. 하지만 여기엔 묘한 모순이 있었다. 국내 직장인 23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업무 커뮤니케이션에서 ‘개인용 메신저 사용’을 가장 큰 고민이라고 꼽았다. 잔디 도입 후 만족하는 이유에 대해선 사내 미팅은 29%, 사내 이메일은 82% 줄고, 생산성은 56%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잔디가 코로나19 이후 더 분명해진 직장인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욕구와 한층 철저해진 업무 환경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운 셈이다.

목표는 뭔가.

미국과 유럽에 슬랙이 있다면, 아시아에선 잔디가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목표다. 특히 기업 대상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원래 이 시장은 사내에 시스템을 구축해 직접 운영하는 온프레미스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기업들이 외부 기업의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를 필요한 만큼 사서 쓰는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경영관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설치하는 게 아니라 정기구독 형태로 이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해외 주재원이나 사업 파트너와도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글로벌 협업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잔디는 도입을 망설이는 기업이 있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어떻게 효율적인 업무 진행이 가능한지 직접 컨설팅해주고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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