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노르웨이 오슬로(Oslo) 

오슬로 항구에 세워진 두 랜드마크 

오슬로는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하지만 항구 주변에는 옛 건물보다는 20세기 이후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중에서 20세기의 오슬로 시청사가 노르웨이 민족 정체성을 보여주는 랜드마크라면, 21세기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의 수도가 북유럽의 문화도시임을 전 세계에 천명하는 랜드마크이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바다에 떠다니던 빙산이 육지에 얹혀 있는 듯하다. / 사진:정태남
바다와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과 호흡하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인구 약 70만 명이 사는 아주 쾌적한 도시이다. 오슬로는 지금부터 거의 1000년 전 바이킹 시대였던 11세기 중엽에 창건된 고도(古都)인데, 1624년부터 1924년까지 300년 동안은 크리스티아니아(Kristiania)라고 불렸다. 이 도시명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1577~1648)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오슬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연륜 있는 도시이지만 항만 지역에는 옛 건물보다는 20세기 이후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특히 21세기를 맞으면서 항만 지역은 대대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도시 풍경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사실 유럽 여러 나라의 수도 중에서 이곳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오슬로 항만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한 언덕 위에는 옛 항구를 방어하던 요새가 있는데, 바다에서 항만 쪽을 바라보면 랜드마크 두 개가 눈에 띈다. 요새 서쪽 항만에 있는 20세기의 오슬로 시청사와 동쪽 항만에 있는 21세기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이다.

20세기의 건축물, 오슬로 시청사


▎노르웨이 화가들의 그림으로 장식된 오슬로 시청사 홀. / 사진:정태남
오슬로 시청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매년 12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이 건물은 기능주의 스타일로 디자인되어 우람하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간결함과 소박함을 보여준다.

오슬로 시청사는 올해 개관 70주년을 기념하는데 시청사 건립 계획은 1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에 오랫동안 속해 있던 노르웨이는 1814년 스웨덴에 합병됐다가 1905년에 독립한 다음,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새로운 ‘크리스티아니아 시청사’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1915년에 설계공모전이 열렸고, 노르웨이 건축가 아르네베르그와 포울손의 설계안이 당선됐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착공이 미루어졌다. 그 사이 1924년에는 수도명이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옛 이름 ‘오슬로’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설계변경을 거쳐 마침내 많은 시간이 흐른 1930년대 초반에 건립 공사가 시작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등으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1950년에야 준공됐다.

오슬로 시청사는 첫인상이 좀 무뚝뚝하여 친근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큰 홀에 들어서면 노르웨이 화가들이 그린 커다란 벽화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화 제작에는 뭉크를 포함하여 노르웨이 화가 28명이 참여했는데 이 그림들은 노르웨이 역사, 민족 정체성과 미덕을 애국적인 관점에서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스타일의 그림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동유럽과 북유럽의 많은 국가가 채택한 예술운동인 ‘민족 낭만주의’의 일환으로 민족 정체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벽화 중에 바이킹 시대의 성인 할바르를 주제로 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그의 형상은 바다 쪽으로 향한 시청사 정면 윗부분도 장식하고 있다. 그는 오슬로의 수호성인이다.


▎바다에서 본 오슬로 시청사. 두 탑이 마치 등대처럼 보인다. / 사진:정태남
한편 시청사가 들어선 항만 지역은 피페르비카(Pipervika)라고 불리는데 ‘피페르’는 ‘피리 부는 사람’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강한 바람’을 의미한다. 한편 비카(vika)의 어근 비크(vik)는 바다에서 육지 안쪽으로 깊게 파고든 협만(峽灣)을 뜻한다. 여기서 파생된 말이 비킹(viking)인데,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바이킹’이다.

그러고 보면 오슬로 시청사는 8세기 말에서 11세기 중엽에 걸쳐 유럽의 바다와 강을 주름잡던 바이킹의 진취적 기상을 상기해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높이 솟은 두 탑이 바이킹의 세계였던 바다를 지켜보며 등대처럼 서 있는 것 같다.

문화도시 오슬로의 상징,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로비 공간. / 사진:정태남
오슬로 항만 지역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세워진 건축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이다. 오페라의 전당 신축 계획은 21세기가 도래하기 직전인 1999년에 결정됐고 이에 따라 국제 공모전이 열렸다. 전 세계에서 제출된 350개 계획안 중에서 스뇌헤타(Snøhetta) 건축디자인회사의 계획안이 선정됐다. 스뇌헤타는 노르웨이의 국제적인 건축디자인회사로, 이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등을 설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 건립 중인 부산 오페라하우스도 스뇌헤타의 디자인이다.)

이리하여 2003년에 착공, 예정보다 이른 2007년에 완공됐고, 2008년 4월 12일에 노르웨이 국왕, 덴마크 여왕, 핀란드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노르웨이는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같은 나라와 달리 오페라의 전통이 강한 나라는 아니다. 노르웨이는 19세기에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897)와 같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했지만, 아쉽게도 그는 오페라를 한 편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르웨이가 오페라와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소프라노 키르스텐 플라그스타트(Kirstin Flagstad, 1895~1962) 같은 아주 유명한 노르웨이 출신의 오페라 가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그녀는 특히 바그너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오페라 평론가들은 그녀를 ‘세기의 목소리’라고 칭송했다.

그녀의 동상이 향하고 있는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를 보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사선으로 처리된 면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하얀 이탈리아 대리석과 화강석으로 마감된 오페라하우스의 외관은 맑은 날, 흐린 날, 비오는 날, 저녁이나 밤, 눈 덮인 겨울날 등 계절과 시간에 따라 각각 다른 미묘한 느낌을 던져준다. 또 바다 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보면 마치 바다에 떠다니던 빙산이 육지에 얹혀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광경에 보조를 맞추듯, 바다에는 [그녀는 누워 있다](She Lies)라는 제목의 ‘ 빙산 조각’이 조류와 바람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이 작품은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이탈리아 여류 조각가 모니카 본비치니가 철과 유리로 제작한 것인데, 독일 화가 카스파 프레드리히(1774~1840)의 작품 [얼음바다]를 연상하게 한다.


▎노르웨이 소프라노 플라그스타트의 동상이 지켜보는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 사진:정태남
오페라하우스 입구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 않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에는 널따란 로비 공간이 펼쳐지고, 높이가 자그마치 15m나 되는 유리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또 로비 공간 안쪽에는 물결치는 듯한 형태의 벽이 펼쳐지는데, 모두 목재로 마감해 외부의 차가운 느낌을 주는 유리와 대리석과 대비를 이루며 따스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 오페라하우스가 지닌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지붕 위로 한 번 걸어가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서 한번 올라와보세요’라고 초대하는 듯하다. 사실 비스듬한 평면으로 조성되어 계단 없이 걸어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옥상 테라스가 매우 인상적이다. 즉, 완만한 경사의 긴 램프를 따라 하이킹하듯 지붕 위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 건물 자체를 먼저 자연스레 즐겁게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열리는 야외 공연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2008년에 문을 열자마자 첫해에만 130만 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그해에 세계적인 건축상인 ‘세계 건축 페스티벌 상(World Architecture Festival Award)’에 이어 2009년에는 유럽연합의 현대건축상인 ‘미스 판 데어 로에 상(Mies van der Rohe Award)’을 수상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니까 오슬로 시청사가 노르웨이 민족 정체성을 보여주는 랜드마크라면 거의 60년 후에 세워진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의 수도가 북유럽의 문화도시임을 전 세계에 천명하는 랜드마크인 셈이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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