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코로나19 백신용 K주사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가가 있다. 주사기 국산화에 매진해온 조희민 풍림파마텍 대표는 정부, 삼성전자와 협업해 56일 만에 미국 FDA 승인까지 받은 백신 주사기를 개발, 이른바 ‘56일의 기적’을 일궈냈다. 포브스코리아는 전북 군산의 풍림파마텍 본사에서 조 대표를 만나 1979년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해 세계적인 의료기기 제조업체로 성장시킨 이야기와 K주사기 탄생의 내막을 들었다.
“대통령께서 밤잠을 설치실 정도로 고민이 깊으십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한번 해보겠습니다.”이 전화 한 통을 계기로 지방 소도시의 기업가가 내린 결단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다. 1년이 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전 세계인에게 도움이 될 희소식이었다. 그의 결단 이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지난해 12월 24일, 그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관계자, 삼성전자 직원들과 첫 번째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코로나19 백신용 주사기 1000만 개 생산을 목표로 설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국가들이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부족해진 주사기를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던 시점이었다.우선 그는 삼성전자와 함께 금형 제작에 힘을 쏟았다. 중소기업에는 금형 제작이 최소 수개월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협력업체 공장을 총동원했다. 그 결과 단 3일 만에 시제품 금형을 제작했고, 10일 만에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중기부는 각종 행정 절차를 최소화했다. 방역 물품 패스트트랙 절차와 금융권 스마트공장 전용 대출 프로그램으로 행정과 자금 지원을 발 빠르게 도왔다. 식약처도 백신 주사기가 국내외에서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이 같은 협업을 기반으로 그의 회사는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빠르게 갖춰나갔다. 덕분에 생산설비 구축에만 최소 1년 걸리는 기간을 한 달로 단축할 수 있었고, 첫 번째 모임을 가진 지 한 달 만인 1월 말에는 매달 1000만 개 이상의 백신 주사기를 만들 수 있는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민관이 협력해 코로나19 백신용 특수 주사기 대량생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일명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이제 마지막 남은 관문은 미국 FDA 승인. FDA 승인을 받아야만 전 세계에 백신 주사기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도 삼성은 자사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불과 56일 만에 FDA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현재 그는 화이자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세계 20여개 국가에서 2억6000만 개 이상의 백신 주사기 공급 요청을 받으며 수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향후 백신 주사기 생산설비를 추가로 구축해 4월까지 매달 2000만 개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예정이다. 최대 생산 목표는 매달 3000만 개 이상이다.코로나19 진단 키트에 이어 K방역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는 조희민(68) 풍림파마텍 대표의 백신 주사기 개발 스토리다. 지난 3월 8일, 전북 군산자유무역지역에 자리한 풍림파마텍 본사에서 만난 조 대표는 “국가적인 재난을 극복하자는 좋은 취지였기에 제안을 수락했을 뿐인데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듣고 있어 오히려 당황스럽다”며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중기부와 식약처,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사실 저는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영특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죠. 지방에서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정말로 큰 거 바라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평소 신념대로 했을 뿐인데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다 보니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중기부에서 우리가 개발한 백신 주사기를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을 때 우리는 이미 100억원을 투자해 생산 시설을 갖추고 프리필드 유리주사기나 바이알(주사용 유리 용기) 등을 생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모두 중단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겠노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예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가 이 일을 꼭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죠. 물론 이번 프로젝트는 결코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역량과 함께 삼성전자를 비롯한 중기부와 식약처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너지를 낸 덕분이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배가 힘차게 나아가듯 모든 분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의기투합한 것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애써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꼭 전하고 싶네요.”
민관 협력이 일궈낸 크리스마스의 기적
▎지난 2월 18일 조희민 풍림파마텍 대표로부터 최소주사잔량(LDV) 기술이 적용된 백신 주사기 생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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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파마텍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용 주사기는 최소 주사잔량(LDV, Low Dead Volume) 기술이 적용된 특수 주사기다. 일명 ‘쥐어짜는 주사기’로 알려진 LDV 주사기는 안전성과 성능 측면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몸체와 바늘이 붙어 있는 기존 제품과 달리 ‘루어-록(Lure-Lock, 주사기와 바늘 분리를 막는 장치)’ 형태로 분리가 쉽고, 의료진의 찔림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가드 기능까지 갖췄다.무엇보다 약물을 투여할 때 주사기에 남아 버려지는 백신 잔량을 최소화한 것이 핵심이다. 일반 주사기로는 보통 백신 1병당 5회분을 주사할 수 있지만 풍림파마텍의 LDV 주사기로는 백신 1병당 6회분 이상을 주사할 수 있다. 일반 주사기의 1회분당 주사 잔량이 84㎕(마이크로리터) 이상이지만, LDV 주사기는 4㎕ 이하로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백신을 접종할 때 풍림파마텍 주사기를 사용하면 버리는 양을 최소화함으로써 백신을 20% 증산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1000만 명분의 백신으로 1200만 명이 접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조 대표는 “풍림파마텍의 LDV 주사기는 암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라며 “비싼 항암제가 환자들에게 남김없이 투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사기를 개발했고, 그것이 바로 LDV 백신 주사기가 세상에 나오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그동안 국내 전문 의료기기 분야의 발전을 위해 무수한 연구를 해왔다고 자부해요. 의료기기 분야에 종사한 지도 어느덧 25년 세월이 흘렀네요. 지금까지 저와 동고동락해온 임직원들은 해외의 어떤 전문가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해박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어요. 이런 경험과 노하우, 지식이 백신 주사기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우리는 이지-인젝(EZ-Injec)이라고 부르는 K주사기를 제작하고 있는데요. 제약사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개발해주는 방식이죠. 삼성의료원에서 사용하는 고관절용을 비롯해 안과용, 치과용 주사기가 대표적이에요. 사실 백신 주사기는 암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에요. 암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해진 용량을 다 써야 한다는 것인데요. 비싼 항암제를 모두 투약하려면 약병 내부가 코팅돼 있어야 하고, 주사기에도 남는 것이 없어야 하죠. 내용물이 전부 사용되도록 고려해서 주사기를 만들게 됐고, 그것이 바로 백신 주사기가 세상에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죠.”풍림파마텍의 LDV 주사기는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제품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난도 기술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를 단시간에 터득하기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 특허가 출원돼 있어서 모방은 더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령 누군가 어설프게 흉내를 낸다고 하더라도 발각되면 법적으로 책임질 각오를 해야만 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K주사기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우리가 개발한 LDV 주사기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복잡해요. 품질관리 책만 스무 권이 넘을 정도니까요. 바늘도 마찬가지예요. 인체에 직접 인젝션(주사)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세균을 제거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데요. 기구를 세척하는 물 하나도 정화수나 초순수를 넘어 의약품용 물을 사용할 정도예요. 지금까지 그런 과정을 고집스럽게 지켜왔기 때문에 FDA 승인도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기계를 세팅하고 직원을 늘리다 보니 밸런스가 안 맞는 부분도 있어요. 해외에서 요청도 많고 급하게 물량을 늘리다 보니 리스크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품질이 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생산에서 품질관리, 포장, 멸균까지가 하나의 과정인데요. 특히 멸균 과정에서도 안전성 테스트를 거쳐야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어요.”지난 2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생산 현장 방문으로 더욱 유명해진 풍림파마텍의 LDV 주사기는 최근 미국 FDA 승인에 이어 유럽 CE(Conformite Europeen Marking) 인증을 획득하면서 해외 수출도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평가다. 특히 전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용 특수 주사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낸 쾌거인지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풍림파마텍은 현재 글로벌 백신업체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프랑스, 스웨덴, 폴란드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을 검토하고 있다.“현재 미국과 계약이 진행 중인데 굉장히 많은 수량을 원하고 있어요. 매달 2000만~3000만 개 정도를 요청하고 있지만 분기별로 2000만 개 정도 보내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일본에서도 주사기를 요청하고 있는데 아직 고민 중이에요. 사실 일본에는 주사기를 생산하는 좋은 회사들이 제법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우리 같은 시설을 갖추고 주사기를 만들려면 최소 5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해요. 그들 나름대로 알아서 하겠지만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품질도 우리 것에 비해 떨어져서 쉽지는 않을 거예요. 미국과 일본 이외에도 프랑스와 스웨덴, 폴란드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가 수억 개씩 우리 주사기를 원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까진 계획이 없어요. 지방의 작은 기업이 감당할 만한 수준도 아니고, 설령 생산이 가능하다고 해도 국가 간 외교적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막무가내로 돈만 보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백신 잔량 최소화한 K주사기에 전 세계 러브콜
▎최소주사잔량(LDV) 기술이 적용된 백신 주사기. 약물을 투여할 때 주사기에 남아 버려지는 백신 잔량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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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전북 군산시 신영동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한 고려화공약품은 오늘의 조 대표를 있게 한 밑거름이다. 변변한 자본금도 없이 오로지 열정 하나만으로 출발한 그 사업체는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어엿한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조 대표는 “사업 초기에는 물건을 팔아도 수금이 제대로 안 돼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며 “늘 빚에 시달리기 일쑤였지만 정말 일에 심취해서 열심히 산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20대 중반에 사업을 시작했으니 강산이 벌써 네 번이나 바뀌었네요. 직장 생활 없이 군 제대하고 결혼 후에 바로 사업에 뛰어들었죠. 서울의 야간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는데 머리가 좀 나빴던 거 같아요.(웃음) 당시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직원을 뽑는데 2명 채용에 1000명이 지원 했더군요. 당연히 낙방했죠.(웃음) 그때 저한테 공무원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 생각하고 사업을 결심했어요. 사업 자금은 아내 결혼반지를 팔아서 마련했어요. 당시 전주에서 살았는데 친구네 금은방에서 27만원을 쳐주더군요. 그걸로 중고 저울과 중고 자전거를 사고 간판을 만들었죠. 조그만 골목길 모퉁이에 회사를 차리고 공업용 약품과 시험용 분석장비 유통업을 했는데 사업 초반에는 물건을 팔아도 수금이 제대로 안 돼 늘 빚에 시달리기 일쑤였어요. 하지만 한창 젊은 시절이었기에 모든 일에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죠. 한 번은 3일 밤낮을 꼬박 뜬눈으로 일하다가 운전을 했는데 잠깐 조는 사이에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거예요. 300m를 미끄러져 내려갔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죠.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어요.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 일에 심취해서 열심히 산 거 같네요.”올해로 42년 차 경영인에 접어든 조 대표는 스스로를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생기면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1999년 의료기기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사업이 번창할 때는 전국에 대리점을 두고 화공약품 시장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오십을 바라보던 조 대표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료기기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전북 군산의 풍림파마텍 백신 주사기 조립 라인에서 주사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 사진:풍림파마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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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물론이고 미용이나 축산 분야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주사기와 주삿바늘이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산 제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바로 이 시장에 주목했다. 오랜 노력 끝에 주사기와 주삿바늘 국산화에 성공했고, 곧이어 기존 제품과는 소재와 기능이 차별화된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당시 대기업 계열의 생명과학 회사를 거래처로 두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주사기와 바늘은 국산 제품이 전무했었죠. 다국적 기업이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고 전량 수입하다 보니 가격도 비쌌어요. 그때 그 회사가 저한테 R&D를 제안했어요. 국산화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인데 조 대표라면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간의 제 경험으론 무리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기에 해보겠다고 달려들었죠.”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장기간의 준비는 필수였다. 제품도 모르고 시장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 대표는 우선 수입제품 유통을 위한 영업망 구축에 주력했고,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의료기기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그곳에서 다양한 제품을 둘러보던 조 대표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업은 독일의 쇼트(SCHOTT AG)사였다. 137년 역사를 지닌 쇼트사는 특수유리 재료와 부품, 시스템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당시 전 세계 주사기 시장은 미국과 유럽이 이끌고 있었고, 쇼트사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제품을 한국에 들여오기로 결심한 조 대표는 얼마 후 다시 쇼트사 본사가 있는 독일 마인츠로 향했다.“그 회사 담당자들을 만나 저와 계약을 하면 3년 안에 한국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설득했어요. 주변에서는 대부분 달걀로 바위 치기라며 반대가 심했죠. 특히 주사기는 임상실험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것저것 합치면 대략 1억원 정도가 소요됐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비용을 쓰면서 기존에 잘 거래하던 회사를 바꿀 바보가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결국 쇼트사와 약속한 대로 3년 만에 거래처의 50% 이상을 빼앗아올 수 있었어요. 독일 본사에서도 무척 놀라는 눈치였죠.”조 대표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미련하다 싶을 정도의 끈기와 부지런함이었다. 실제로 조 대표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제약회사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7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주일에 한 번씩 방문했다. 나중엔 그 회사 말단 직원들까지 모두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조 대표는 결국 제약사 물량의 50% 계약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100%를 공급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존에 거래하던 미국 회사의 폭리가 심한 것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뢰를 쌓아간 조 대표의 영업 방식이 통한 셈이다.
의료기기 국산화에 매진한 뚝심 있는 기업가
▎전북 군산의 풍림파마텍 백신 주사기 생산 라인에서 직원들이 작업하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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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바로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조 대표가 주사기 수입 유통을 시작한 것은 의료기기 국산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2008년 거래처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조 대표는 쇼트사에 주사기를 직접 제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물론 핵심 원료는 쇼트사에서 공급받기로 했다. 그동안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한 그의 열정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쇼트사는 조 대표의 제안을 수락했고 드디어 국산화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렵게 허락을 받았지만 해외 장비로 생산 시설을 갖추는 데만 500억원 정도가 필요하더군요. 중소기업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생산설비를 국산화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다양한 방법을 찾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기계를 모두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죠. 덕분에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었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 그 기계들은 모두 공장 한쪽에 옮겨놨어요. 백신 주사기를 만드느라 제약회사에 납품할 제품 생산을 잠시 미뤄둔 상태죠. 하지만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만간 생산을 재개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해외에서 수입하기 어려운 제품들을 주로 생산하는데 다른 경쟁사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그런 오랜 경험과 노하우의 집약체가 바로 이번에 선보인 백신 주사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현재 풍림파마텍은 동아제약을 비롯해 신풍제약, 녹십자, 셀트리온 등 국내 80여 제약업체와 병원을 대상으로 의약품 포장용기, 프리필드 주사기, 1회용 주사기 등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주사기와 주사침 같은 직접 주입용 의약품 기구는 국내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조 대표는 풍림파마텍의 새로운 도약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새만금산업단지에서 첨단 의료기기 생산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서는 프리필드 백신용 유리용기와 오토 인젝터 주사기, 안전 주사기, 각종 주사침, 일회용 마스크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포스크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는 언제나 신종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 분야에 투자를 더욱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인류에게 닥칠 질병과 바이러스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 인력들을 키워내고 관련 산업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의료 현장에서 의료기기를 좀 더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에 관련 학과를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풍림파마텍은 국내 의료기기 분야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하는데요. 앞으로도 우리의 앞선 기술력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을 통해 국내 의료기기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현재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비롯해 환자들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 스스로 용량을 조절해서 투약할 수 있는 시스템, 체온이나 혈압, 혈당 등 스스로 건강을 체크해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모두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최근 조 대표는 기존 대표 집무실을 직원들에게 내주고 직원식당 입구에 새로운 집무실을 차렸다. 직원 수가 150명에서 600명으로 급격히 증가한 덕분에 부족해진 회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직원들과 더욱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백신용 주사기를 생산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고 있을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조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국민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이다.“예전처럼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나 지인, 친구, 연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요. 그리고 그런 날이 오기까지 단 1%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고, 보람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