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폭발적으로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해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암호화폐 가격도 오르고, 상장 주식의 가격도 오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상장 기업인 초기 스타트업의 가치도 올라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창업팀에 비해 언제나 돈이 더 많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투자처를 찾기 위해 경쟁한다. 단순히 돈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투자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돈들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할까. 많은 벤처캐피털이 서로 돈을 싸 들고 가서 왜 우리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를 어필하는 색다른 경쟁이 요즘 초기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은 회사를 더욱 성장시키고, 고객들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 벤처캐피털이 찾는 1순위 고객들이 유능한 창업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경쟁은 불가피한 미래였을 것이다. 벤처캐피털이 단순히 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를 원하는 회사들을 줄세울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끝났고, 이제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벤처캐피털이 스스로의 차별화 요소를 생각하고 고민해서 시장에서 그 역량을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벤처캐피털도 스타트업처럼 생각해야 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A 벤처캐피털도 10억을 투자할 수 있고 B 벤처캐피털도 10억을 투자할 수 있다면, 보통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 현재 회사 가치를 무리하게 올릴 수도 없고, 필요한 금액의 2배를 유치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는 선택을 받고 누군가는 투자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무엇을 보고 판단하게 될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벤처캐피털 스스로가 자신만의 개성과 강점을 확실히 해서 이를 효과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마치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스타트업이 본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러하듯 말이다.

이러한 경향은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의 본고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투자를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빠른 투자 의사결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곳도 있고, 투자 전담 인력들 외에 더 많은 성장 지원팀을 꾸려 경쟁력을 어필하는 곳들도 있다.

심지어 초기 투자 검토를 대면 미팅 없이 데이터에 근거해서 스프레드시트를 공유하면 이를 분석해서 바로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곳들까지 생겼다. 시장이 확대되고 공급자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공급자들 사이에 수요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움직임이 생기기 마련이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 인해 초기 스타트업들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졌다고 얘기하기보다는, 벤처캐피털 또한 스스로 먼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진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벤처캐피털도 스타트업처럼 말이다.

-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