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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12) 

디지털 민주화 선봉 엑세서빌리티 디자인 

엑세서빌리티 디자인은 우리말로 하면 ‘접근성 디자인’이다. ‘접근하다’는 의미의 Access와 ‘할 수 있음’을 뜻하는 Ability를 합친 단어다.

▎마이크로소프트 Xbox의 엑세서빌리티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유저. 현존하는 제품 중 접근성이 가장 사려 깊게 적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이동성이 제한된 게이머의 요구를 충족하도록 스위치, 버튼, 마운트 및 조이스틱 같은 외부 장치를 연결해 맞춤형 컨트롤러 환경을 만들 수 있다. /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접근성’은 문맥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지만, 디자인 업계는 사용자의 신체적 특성이나 지역, 나이, 지식수준, 기술, 체험 같은 제한 사항을 고려해 최대한 많은 사용자가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고 이를 평가할 때 쓴다. 웹사이트를 디자인할 때 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 못한 사용자도 대부분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체 크기나 서체와 배경 색상의 대비 강도를 조정하는 것이 접근성 디자인의 좋은 예다.

이상적으로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의 평등한 사용을 보장하는 이러한 접근성은 프로덕트를 만들 때 당연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접근성 이슈가 있는 사용자는 높은 장벽에 맞닥뜨릴 때가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기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판매량을 올릴 수 있도록 건강한 성인만을 타깃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기업의 이윤 추구가 최고의 가치인 만큼, 이런 행동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프로덕트를 사용할 때 누구든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엔 인간의 기본권 문제로 귀결된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인간의 존엄보다 높게 자리할 수 없다는 명제는 기업과 대중 모두 인지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의 평등한 사용성 보장은 디지털 세상 속 시대정신에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접근성 디자인이 잘 적용된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선 어떠한 측면에서 노력해야 할까?

첫걸음은 대중의 인식 변화


접근성의 범용적 확산을 위한 대중의 공감대 형성은 가장 중요한 출발선이다. 기술 발달이 자본주의 논리로 이익을 충족하기 위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닫혀 있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진보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성 디자인의 고려와 적용은 기술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용자가 접근성 측면에서 불만을 느꼈을 때 나 자신에게 국한된 불편으로 치부하기보다, 이 문제가 어떠한 보편적 결함을 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과 함께 따져볼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한다.

프로덕트를 만든 회사에 접근성 디자인과 관련된 문의를 할 수도 있고, 다양한 SNS 채널에서 느낀 점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 전 접근성 전문가이자 유튜버인 루시 그레코(Lucy Greco)는 자신이 구매한 LG의 신형 세탁기를 리뷰해 유튜브에 올렸다. 시각장애인인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왜 이 세탁기의 조작 패널과 앱 모두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사용하기 불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앙 메인 조작 다이얼은 시작점과 한계점이 없이 돌아가고, 돌릴 때 나는 소리로 어떤 기능을 작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 등 자세한 부분을 언급했다.

그녀의 지적이 공론화된 이후, LG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위원으로 위촉하겠다며 적극적으로 해결 의지를 밝혔다. 그녀가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영상을 만들어 대중과 공유하지 않았다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다른 소비자는 여전히 제품을 사용하며 고통받았을 것이고, 제조사인 LG도 자사들 디자인의 부족한 점을 메울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문제의 지적, 이에 대한 합리적 수용은 디지털 시대 프로덕트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가장 기본적 전제이다. 이는 소비자와 제조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정부 관련 기준 마련은 변화의 촉매제


▎www 창설자이자 W3C 관리자인 팀 비머스 리는 “장애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하는 것이 웹의 절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 사진:Paul Clarke
W3C(국제민간표준화기구, World Wide Web Consortium)는 웹 주소 첫마디인 ‘www’를 사용하는 모든 웹의 보편적인 기준 및 사용 가이드를 만드는 국제 민간 기구다. 이곳에서는 WCAG(W3C Accessibility Guidelines)와 같이 프로덕트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디자인 가이드를 통해 대중의 인식 제고와 실제 접근성 향상을 기업이 실천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등 민간 기구에서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업계 통용 스탠더드를 만들거나 특정 사한에 관해 전문적 시각을 제안할 뿐이지 강제성은 없다. 그렇기에 접근성 이슈에서 정부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미국의 ‘U.S. Section 508’ 법령은 미국 내 모든 정부 기관의 ICT(정보 및 의사소통 수단,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가 법령이 정한 접근성의 기본 스탠더드를 반드시 갖출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정보가 담긴 모든 환경(웹·모바일·PDF·소프트웨어 등)을 접근성 측면에서 사용자가 불편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한다.

이 법령은 국가 관련 콘텐트나 플랫폼에 한정돼 적용되기 때문에 큰 임팩트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법령이 가진 파급력은 실제로 엄청나다. 미국의 U.S. Section 508과 유럽의 ‘EN 301 549’ 같은 접근성 관련 국가 기준은 실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사용자가 몰려 있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정부가 사용하는 서비스 혹은 플랫폼이 이러한 빅테크 기업의 프로덕트나 인프라스트럭처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당 기준에 부합해야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사업도 수주할 수 있다.

실제로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치열하게 경합했던 미 국방성의 클라우드 플랫폼 수주전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정된 많은 이유 중 하나로 꼽힌 것이,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하드웨어·OS·비즈니스 서비스 등이 호환성 측면에서 정부 기준에 더 부합한다는 점이었다. 접근성도 결국엔 호환성(Compatibility) 이슈의 하나로 여겨지는 만큼 이를 만드는 기업 입장에서 필수 고려 사항이 되어가는 추세다.

전략적 행보에 나선 글로벌 기업들

이처럼 접근성에 대해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 정책과 법령이 갖춰짐에 따라 최근 들어 기업들이 이 이슈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에서도 언급한 기준들(미국 U.S. Section 508, 유럽 EN 301 549, W3C의 WCAG 등)을 접근성 디자인의 기본 바탕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한 발 더 나아가 접근성 디자인을 회사 발전의 척도를 과시하는 데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9년 슈퍼볼 광고에서 “우리 모두가 승리한다(We all win)”라는 제목으로 Xbox 게임기의 엑세서빌리티 컨트롤러를 전면에 소개했다. 이 제품은 현존하는 제품 중 접근성이 가장 사려 깊게 적용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30초에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고,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업 광고의 월드컵이 슈퍼볼 광고다. 여기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제품 성능 광고가 아닌, 모든 사용자가 함께할 수 있는 제품을 추구하는 회사의 접근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으며, 천문학적인 수준의 마케팅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접근성을 고려한 프로덕트 자체가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가 만들어준다면 기업은 얼마든지 투자에 나설 것이다. 반대로 이를 고려하지 않는 비즈니스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접근성 관련 이슈는 사람들이 취지에 공감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민간의 인식 개선과 참여,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질수록 기업 입장에서 프로덕트의 접근성 향상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를 통해 기술과 프로덕트의 발전이 기업의 이윤 추구를 넘어 모든 사람을 향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접근성을 통해 진정한 기술 민주화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웹의 힘은 그 광범위함에 있다. 장애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하는 것은 절대적인 강점이다.” - www 창설자이자 W3C 관리자, 팀 비머스 리(Tim Berners-Lee)


※ 이상인 MS 디렉터는… 이상인 마이크로소프트(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미국의 디지털 디자인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딜로이트컨설팅 뉴욕스튜디오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한 그는 현재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 속해 있는 55개 서비스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이다.

202105호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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