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의료 관련 데이터가 한데 모이는 곳. 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다. 심평원은 이 데이터를 의료기관 등 적재적소에 제공함으로써 코로나19 방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마스크 5부제가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었던 것도 심평원 덕분이었다. J포럼 21기 원우인 김선민 심평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3월 일어났던 ‘마스크 대란’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마스크가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는 최후의 방역책이라고 입증되자 수요가 폭증했다. 마스크 사재기 등의 영향으로 전국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고, 평소 온라인 판매가가 한 장에 500원 선이던 KF94 마스크는 5000원대에 육박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약국을 통한 마스크 공적판매를 시작하며 수급 조절에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두 장)으로 마스크 구매를 제한하는 ‘마스크 5부제’다. 이는 7월까지 이어졌다.“마스크 5부제를 신속하게 시행하려면 중복 구매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심평원과 약국 등 의료기관의 전산망이 잘 구축돼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었어요. 주민등록번호만 조회하면 약국에서 마스크를 언제, 얼마나 구매했는지 등 이력을 파악할 수 있죠. 이 데이터가 마스크 5부제 시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약국에 해당 정보들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스크 수급을 공평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5월 12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선민 심평원장(J포럼 21기 원우)은 마스크 5부제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김 원장은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 심평원 기획상임 이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며 “보통 심평원이 하는 일은 의료기관에서 칭찬받는 경우가 드문데 약국 관계자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고 웃어 보였다.그로부터 한 달 후인 2020년 4월 21일. 김선민 원장은 제10대 심평원장으로 취임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한림의대 조 교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 국가인권위 인권연구담당관 등을 지낸 김 원장이 심평원과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2006년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상근평가위원으로 심평원에 입사했고 OECD프로젝트지원단장, 국제협력단장, 인재개발단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외 보건의료의 질 개선에 앞장서왔다.김선민 원장의 취임은 심평원 2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원장 배출’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유리천장’을 깬 김 원장에게 큰 박수와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 원장은 “첫 여성 원장이라는 타이틀도 좋지만 심사평가체계 개편의 초석을 다지고 정보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한 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취임하자마자 진료비 심사와 적정성 평가에 박차를 가했고, 의료 관련 빅데이터를 시스템화해 코로나19 방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심평원이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마스크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을 구축한 것 외에도 코로나19 관련 의료기관 손실보상, 심평원 전문 인력의 선별진료소 파견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기 발견과 신속한 대처다. 팬데믹 초기엔 해외 입국자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됐기 때문에 전파를 막기 위해선 출입국 기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관건이었다. 심평원이 보유한 수많은 데이터에는 출입국 기록도 포함된다. 이 데이터들을 의료기관에 신속히 제공해 선제적 대응을 도왔다.
메르스 때도 비슷한 역할을 했나.맞다. 메르스가 유행할 당시 중동지역의 출입국자 정보를 수집해 의료기관에 제공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로 정보 수집 범위를 넓혔다. 현재 출입국관리사무소, 항공사, 통신회사가 질병관리청으로 정보를 보내면 하루 네 번 그 데이터가 우리에게 공유된다. 매주 OECD에서 보건의료 관련 회의를 하는데, 팬데믹 이후 한국의 데이터 활용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축적해온 정보들을 전산화해놨기 때문에 안전하고 신속한 데이터 교류가 가능하다. 이런 준비가 안 된 국가들은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부러운 시선이 지배적이다.
심평원은 언제부터 데이터를 축적해왔나.현재 심평원은 수많은 보건의료 데이터를 ICT 기반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전엔 병원에서 직접 서류를 작성해 보내면, 심평원 직원들이 일일이 확인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활성화되고 의료기관이 많아지며 도저히 사람이 처리할 수 없을 만큼 심사청구 물량이 늘었다. 연간 15억6000만 건이 넘는 진료비 관련 자료와 9만5000여 개 의료기관 정보가 심평원에 모인다. 정보를 전산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내에 닷컴 열풍이 한창 불던 1999년 무렵 그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문서의 99%를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라고 불리는 전자 데이터 교환 방식으로 전송받고 관리한다. 또 심평원 내에 축적된 데이터들은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만들어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빅데이터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노인들은 여러 의료기관을 동시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오전에는 정형외과에 갔다가 오후에는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 식이다. 이때 예기치 못한 중복처방이 생길 수 있다. 가령 각각 다른 병원에서 같은 성분이 든 약물을 처방하거나 함께 복용하면 위험한 상극의 약물을 처방할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약물 처방 데이터를 제공하는 ‘의약품 안전 사용 서비스’를 개발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현재 환자가 복용 중인 모든 약물의 정보가 표시되는 서비스다. DUR(Drug Utilization Review)이라고 부른다. 애플리케이션도 있기 때문에 일반인도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런 정보를 의료기관에 스스로 공유할 수도 있다. DUR은 2010년부터 서비스되고 있다.
빅데이터 속 민감한 개인정보들은 어떻게 보호하나.수집된 원천 데이터는 비식별화 조치를 하고, 별도의 망 분리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시스템에서 데이터를 제공한다. 또 외부 해킹 등을 차단하기 위한 방화벽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침입방지 시스템 등을 구축하여 DB접근 제어 등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주기적으로 감사도 받는다. 지난해 10월엔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루는 기관으로 선정돼 빅데이터결합전문기관에 지정됐다. 또 개인정보보호 국제표준(IOS27701)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전산자료 이용 기관 우수 사례로도 선정됐다.
해외에서 심평원의 데이터 관리에 관심이 많다.2019년 바레인 측과 계약을 맺고 한국의 건강보험시스템을 구축해줬다. 프로젝트 계약금은 310억원(유지보수 비용 포함)이었다. 덴마크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 덴마크로부터 자국 보건부, 보건의약청과 MOU를 맺고 상호 교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취임 초기 심사평가체계 개편을 과제로 꼽았다. 잘 진행되고 있나.심사평가체계는 의료계의 오랜 요구이기도 하다. 사실 심평원은 그간 “마음대로 진료비를 삭감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적 판결에 법리적 타당성을 부여하듯 우리도 심사하고 조정하고 인정하는 일에 의학적 타당성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국 심평원의 목표는 진료비를 깎는 게 아니라 진료 패턴을 바꾸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계에서도 납득할 수 있도록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생각이다. 최근 그 작업을 시작했다. 또 심사평가 방식에도 변화를 줄 계획이다. 지금의 심사 물량은 심평원 직원 3900여 명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건별 심사에서 기관 단위 심사를 진행하려고 한다.
심평원이 젊어졌다. 소통이 중요할 것 같은데.1970~80년대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완성되며 건강보험 관련 인원을 대폭 늘렸는데, 최근 그분들이 퇴직해 빈자리가 많아졌다. 1년에 400~500명씩 충원한 것 같다. 현재 심평원은 입사한 지 5년이 채 안 되는 입사자가 전체 직원의 42%에 이른다. 평균연령도 39세로 젊은 편이다. 따라서 모든 조직과 기업에서 느끼는 직원 간 세대 차이가 우리 조직에도 존재한다. 취임한 후 젊은 세대를 끌어안고 융합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지금 껏 내가 경험하고 파악한 MZ세대는 명분 없는 일을 시키는 것을 싫어한다. 업무 지시를 받을 때 해당 업무가 조직과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설득만 된다면 어느 세대보다 습득 능력이 빠르고 아웃풋이 높다. 설득을 위해선 소통이 중요한데 내가 터득한 소통 노하우는 ‘리더의 진짜 목소리로 말하자’는 것이다. 조회를 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직원들은 리더가 직접 쓴 내용인지 읽기만 하는지 단번에 알더라.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최근엔 온라인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토론에도 댓글을 달며 소통에 참여하고 있다.
2년여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은. 심사평가체계 개편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다. 남은 임기에 100% 완성은 못 하겠지만 초석을 단단히 다져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하고 싶다. 또 심평원 정보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이미 DUR,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구축했듯 심평원은 IT 활용 능력이 강하다. 이를 더 유용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의료기관 간에 활발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CT, MRI 등 검사 결과를 의료기관들이 공유한다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만 있으면 자신의 의료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구축하고 싶다. 2000년 대 초반은 정보화가 진행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AI, 클라우드 등 새로운 방식의 기술이 시작되고 뿌리내리는 단계다. 선진기술을 도입해 심평원의 데이터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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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포럼은 - 2009년 국내 언론사에서 최초로 시작한 최고경영자과정이다. 시사와 미디어, 경제, 경영, 역사, 예술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좌와 역사탐방, 문화예술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 J포럼은 매년 두 차례(봄·가을) 원우를 선발하여 진행된다. 그동안 졸업생 1000여 명을 배출해 국내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학습과 소통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문의·접수 중앙아카데미 J포럼사무국(02-2031-1018) http://ceo.joongang.co.kr-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