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라(30)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1세대 한국인 유튜버다. 중학생 때 인도네시아로 이민을 간 그녀는 K팝,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문화 전도사로 활약하며 어느새 100만 구독자에게 사랑받는 콘텐트 크리에이터로 성장했다.
SNS와 다양한 OTT 플랫폼이 생기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콘텐트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드라마 [풀하우스], [가을동화] 등이 한국 방영 이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인도네시아 공영방송에서 방영된 데 비해 최근에는 한국에서 방영되면 1~2시간 안에 OTT 플랫폼에서 인도네시아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넷플릭스에서도 한국 콘텐트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인도네시아의 쿠팡으로 불리는 토코페디아는 방탄소년단을 전속모델로 발탁했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다루는 웹 예능 프로그램에 한국인 유튜버 한유라를 MC로 기용했다.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유라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유튜버이자 인플루언서로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의 MZ세대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유창한 인도네시아어와 통통 튀는 성격으로 유튜브와 지상파 방송국을 넘나들며 한국의 매력을 알리는 데 힘쓴 숨은 공신이다.그녀는 유튜브에서 한국에 관한 다양한 콘텐트를 만든다. 특히 인기 있는 K팝의 가사를 설명하면서 아이돌 그룹을 소개하는 콘텐트가 가장 인기가 많다. 또 메이크업 튜토리얼, 한국어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생활 한국어’ 콘텐트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채널과 별도로 한국어 채널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인 14살에 처음 인도네시아에 갔다. IMF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발리에서 관광업을 하던 친척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거취를 옮겼다. 패키지 관광으로 인도네시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히트를 치면서 많은 이가 발리를 찾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친척의 권유로 국제학교가 아닌 발리 현지의 사립 중학교에 진학했고, 인도네시아어를 전혀 못했기에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현지 언어를 전혀 모르니까 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이랑 손짓, 발짓으로 소통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었는데 그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어요.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영어와 수학이 한국보다 쉬워서 인도네시아어를 배우는데 집중할 수 있었죠. 이모가 선교사여서 교회에서 통역을 하게 되면서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어요.”
이렇게 ‘진하게’ 발리 문화와 언어를 익힌 그녀는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장학금을 준다는 소리에 대학교 ‘퀸’을 선발하는 오디션에 출전했고 1등으로 뽑혀 학교에서 유명해졌다. 이때부터 대학 모델로서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대학교 프로모션 활동을 했다. 한국인이지만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녀에게 친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래서 친구들이 물어보는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언어교환 앱 ‘직톡’과 컬래버레이션. /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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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받게 되더라고요. 그때마다 대답을 하기가 귀찮아서 아예 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링크를 전달했죠. 그게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였어요. 친구들이 소녀시대나 슈퍼주니어 노래 가사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제가 인도네시아어로 알려주곤 했죠. 그렇게 만든 영상들이 지금처럼 큰 사랑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당시는 인도네시아에 유튜브가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그녀 이외에는 인도네시아어로 콘텐트를 만드는 한국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이렇게 취미이자 용돈벌이로 하던 유튜브가 본업이 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재직 중이던 이커머스 회사에서 그녀가 맡은 한국 제품 마케팅이 소위 ‘대박’이 난 것. 당시 SK플래닛이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오픈마켓 ‘일레브니아(2017년 살림그룹에 매각)’와 공동 프로젝트를 맡았던 그녀는 신라면 등 한국 인기 제품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홍보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회사에서 아예 유튜브팀을 만들어줘 콘텐트 크리에이터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인 유튜버로 얼굴이 알려지자 현지 방송사에서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트콤에서 엉뚱한 한국인 유학생 역으로 출연하고 영화에도 캐스팅되는 등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기업과 브랜드의 전속모델로도 발탁됐다. 인도네시아 통신사, 화장품, 모바일 게임 등 그녀가 모델로 활동한 브랜드만 5개다. 인도네시아 방송국과 SBS가 합작해 만든 인도네시아판 [런닝맨]의 MC로도 활약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까지 출간했으니 현지에서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게임 앱 광고 모델. /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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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튜버이자 연예인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비자 문제가 항상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외국인이 프리랜서 자격으로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유튜버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도 회사에 직원으로 소속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직장인이자 유튜버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며 그녀의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75만 명을 확보할 만큼 인기가 높아졌을 때 회사와 저작권 분쟁이 발생했다. 회사 채널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자신의 채널에 회사 프로젝트 콘텐트를 올린 게 화근이었다. “주변에 비슷한 사례가 없어서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채널을 없애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죠.”
인도네시아에서 100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자리 잡은 유튜버가 한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인도네시아 구독자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청년들을 도울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가장 큰 목표는 장학금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유학을 희망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려면 한국에서 더욱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Underdogs] 시사회에서. /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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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는 참 애매한 직업이에요.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연반인’이라는 말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죠. 인도네시아에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소속사도 없어서 세금이나 비자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제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려는 후배 크리에이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그녀는 현재 언어 교환 애플리케이션인 ‘직톡’과 협업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국이 문화 선진국으로서 동남아시아 국가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가끔 동남아 국가들을 무시하는 분들이 계신데 인구만 놓고 보면 무시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에요.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7000만 명으로 세계 4위를 자랑하죠. 지금부터 우리가 문화 선진국으로서 이들을 돕고 응원한다면 향후 이들이 더 성장했을 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라고 생각할 거예요. 제가 한국 채널을 만드는 이유도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얼마나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지, 한국 문화에서 얼마나 큰 희망을 얻는지 알리기 위해서죠. 이들이 제 채널에 남기는 댓글 하나하나를 한국에 알리고 싶어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루 좋은 콘텐트를 만드는 것뿐이지만, 한국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더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그녀는 인터뷰 촬영 현장에서 시종일관 SNS로 팬들과 일상을 나누고 소통했다.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나도 받은 그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나가는 다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