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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KTB금융그룹 회장 

한국 부동산 투자 시장의 개척자 

장진원 기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은 오롯이 개척자에 의해 열리게 마련이다. 이병철 KTB금융그룹 회장은 2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부동산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KTB금융그룹도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IB와 채권에 강한 투자 전문 금융사로서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 중이다.

국내 부동산시장의 투자 양상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이후다. 부동산이 ‘사는 집’을 넘어 투자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다. 그전까지 은행 대출 끼고 산 집값이 올라 더 큰 집으로 이사하는 데 만족했던 부동산 투자 양상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 해외 자본이 국내 우량 자산을 헐값에 매입했던 수모는, 역으로 당시 후진적 관행에 익숙했던 국내 투자자들이 부동산을 새로운 투자처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부동산이 주식이나 채권처럼 합리적·과학적인 투자가 가능한 상품이란 사실을 알게 된 부동산 투자 시장은 이후 리츠(REITs)와 부동산펀드, 해외부동산펀드 투자 열기를 불러왔다. 한국에서 부동산이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기존 금융상품을 대신할 대체투자상품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부동산은 이제 얼마든지 유동화가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리츠 시장은 올해 상반기 현재 국내에 출시된 상품만 299개, 시장 규모는 68조4000억원에 달한다. 2010년 7조6000억원이었던 리츠 자산 규모는 10년 남짓한 사이 9배나 성장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리츠만도 13개에 이른다.

2004년 들어선 관 주도의 부동산신탁 시장에 민간 부동산신탁사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본격적인 성장세를 맞은 부동산신탁 시장은 현재 신탁 전문기업만 14개사, 수탁고는 277조4000억원(2020년 기준)에 달한다. 이 밖에도 올 8월 현재 국내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국내와 해외 펀드를 더해 125조4000억원 수준이다. 글로벌 대체 투자 시장의 핵으로 꼽히는 미국 지역에 투자한 해외부동산펀드 투자액만 21조원(2020년 4월 기준)이 넘는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투자 비중을 크게 늘려온 국내 금융사 및 국민연금 등 대형 연기금이 포진한 한국은 이미 국제 부동산시장에서 ‘큰손’으로 대접받고 있다.

리츠, 민간 신탁, 부동산펀드 국내 ‘1호’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부동산시장에는 국가경제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외환위기에 이어 뉴밀레니엄을 거치며 비로소 금융 선진국의 투자 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리츠, 민간 중심의 부동산신탁,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 국내부동산펀드와 해외부동산펀드 등이 모두 이 시기를 전후해 도입했다. 놀라운 건 부동산 투자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이러한 방식이 모두 한 사람의 전문가 손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이병철 KTB금융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01년 ‘JW에셋’이라는 부동산 투자회사를 세우고 국내 1호 리츠를 설립했다. 2004년 들어선 공기업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부동산신탁 시장에 진출해 국내 1호 민간 부동산신탁회사인 ‘다올신탁’을 세웠다. 이어 2006년에는 역시 국내 첫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다올자산운용)를 설립해 국내 1호 부동산펀드를 출시했다. 다올자산운용은 투자 범위를 해외로 넓히며 국내 1호 해외부동산펀드 시대도 열었다. 그가 업계에서 ‘부동산 투자의 귀재’, ‘한국 부동산업계의 빌 게이츠’라 불리는 배경이다.

이 회장이 개척한 부동산 투자 1호 사업들은 현재 그 규모가 크게 성장해 국내 부동산 투자 및 대체투자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투자 방식에 머물러 있던 국내 금융사들의 신수익원으로 부동산이 탄탄하게 자리 잡는 데도 이 회장의 공이 컸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평가다.

1968년 경북 문경에서 나고 자란 이 회장은 서울 태릉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하던 이 회장은 “IMF 외환위기 여파를 부친의 사업도 피해가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 형편은 일찍부터 직장생활이 아닌 사업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결정을 돌아보던 이 회장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취업해 직장인으로 사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절실함에서 출발한 거죠. 운 좋게 처음 들어선 길이 부동산이었는데 그때가 막 서른이었습니다. 2001년 국내에 처음 리츠를 선보였을 때가 33살, 민간 부동산신탁사를 세웠을 때가 36살이었요. 어떤 업종이든 시장을 선점한 1등이 있었는데, 리츠를 비롯한 부동산 투자는 그렇지 않았어요. 기존 강자들의 경쟁이 없는 시장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외환위기 이후 급변한 투자 환경은 부동산 투자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뒤흔든 계기가 됐다. 외국인에게 부동산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고, 심지어 외자유치라는 명목으로 세제 혜택까지 주어지자 세계적인 투자회사(IB)들은 폭락한 국내 유망 자산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해외 자본이 헐값에 국내 대형 빌딩을 사들여 큰 이익을 보는 현장을 목격한 이 회장은 “부동산 투자 시장의 체계화와 전문화가 한국에도 절실한 상황이었다”고 돌이켰다.

마침 부동산 투자 시장 선진화에 공감한 정부도 2001년 7월 부동산투자회사법(리츠법)을 시행해 새로운 투자를 위한 물꼬를 텄다. 리츠법 시행과 동시에 JW에셋을 설립한 이 회장은 그해 12월 국토해양부로부터 국내 최초로 리츠 자산관리사(AMC) 인가를 받아 1호 리츠인 ‘교보메리츠CR리츠’를 설립했다. 총자본금 840억원 중 473억원은 발기인 등의 출자를 받아 조달했고, 나머지 금액은 일반공모로 모집했다. 대한항공의 서울 등촌동 연수원, 부산 사직동 삼익아파트와 덕천동 사원아파트, 김해 내동 사원아파트 등 건물 4곳을 825억원에 사들인 후 다시 임대해주는 세일즈 앤드 리스백(Sales & Leaseback) 방식이었다.

한국 최초로 리츠가 출시되자 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부동산시장에 비로소 소액투자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기금과 기업들도 이때부터 리츠 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처음 문을 연 국내 리츠 시장은 올해 6월 기준으로 총 299개, 자산규모 68조4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투자 산업으로 변모했다. 초기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800% 넘게 커진 셈이다.

부동산도 합리적·과학적 투자 가능하다


이 회장은 리츠법 도입 초기부터 시장의 성공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 선진국의 사례를 직접 들여다보고 공부할수록, 주식이나 채권처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투자가 부동산에서도 가능함을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부동산 투자는 기업도 개인도 그저 한국식 관행에만 의존하는 비합리적 투자가 대다수였어요. 외환위기를 계기로 결국 한국 시장도 빠른 시간 안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리츠 설립 때는 정부 부처에 해외 리서치 자료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제도 안착에도 기여했죠. ‘해외에는 이미 어마어마한 규모의 리츠 전문사들이 있고, 이들이 수십조원 규모의 펀드를 굴린다’며 시장 활성화의 순기능을 정부에 피력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시장 강제 개방으로 인해 해외 자본이 막대한 수익을 챙겨갔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 회장은 오히려 시장의 가능성을 파고들었다고 회고했다. 빠른 속도로 회복되던 경제성장률과 부동산 투자 산업이 초기에 머문 상황을 고려하면, 국내 부동산 가치 상승이 필연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남들보다 몇 발자국 빠른 대응은 2004년 국내 첫 민간 부동산신탁회사인 ‘다올신탁’ 설립으로 이어졌다.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이 존재하던 다른 업종과 달리 유수의 대기업조차 부동산 투자기법 선진화나 금융기법에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렇다 해도 공기업이 주도하던 부동산신탁에 36세의 젊은 사업가가 내민 도전장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도전을 앞두고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대신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했죠. 리츠나 신탁사 설립을 결정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기업마저 관심이 없는 틈새시장이었어요. 반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거란 믿음이 확고했죠. 첫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금수저도 아니었기에 스스로를 믿고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시장을 개척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진심을 다했죠. 고비 때마다 좋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운 좋게 비즈니스 기회도 연이어 찾아왔습니다. 리츠에서 신탁으로, 다시 자산운용사로 커가며 사업 기회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운이 좋았다’는 겸손 뒤에는 이 회장 특유의 현장 중심 경영이 숨어 있다. 2006년 국내 첫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다올자산운용(현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설립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올자산운용 초기에 이 회장은 국내 오피스 및 미분양 아파트, 부실채권(NPL)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자산을 보유한 펀드 운용에 나섰다. 부동산신탁을 넘어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 시대를 연 다올자산운용은 국내 부동산펀드의 효시가 됐다.

선제적인 투자 기법은 다올자산운용을 업계를 리드하는 부동산 투자의 강자 반열에 올려놨다. 특히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몰고 온 리먼 브라더스 파산 직후 펀드를 조성해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인 일화는 지금도 업계의 전설로 통한다. 당시 이 회장은 14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 반포자이아파트를 사들여 연 10% 이상 수익을 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전국에 미분양아파트가 16만 호가 넘었습니다. 중견 건설사들이 연쇄적으로 부도 처리되면서 자칫 금융권 전반으로 위험이 전이될 상황이었죠. 답은 결국 현장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침체기라 해도 유망한 틈새시장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반포자이아파트는 일시적 미분양 상태일 뿐, 강남을 대표하는 자산이 될 거라 확신했고, 실제로 지금 강남에서 가장 고가 단지가 됐습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이례적으로 상품의 독창성을 인정해 다른 회사가 일정 기간(9개월) 동안 유사한 펀드를 설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기도 했다. 다올자산운용에서 시작된 국내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는 올 8월 현재 143개사로 늘었다. 현재 국내 운용사가 설정한 부동산펀드 규모는 124조4000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대체투자 시장 큰손으로 떠오른 한국


부동산펀드라는 새 시장을 개척한 이 회장은 2006년 들어 부동산 대체투자 시장에서 또 한 번의 역사를 썼다. 국내 최초로 해외부동산펀드를 설정해 글로벌 투자시대를 연 것이다. 다올자산운용은 당시 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중국 상하이 푸동지구 마린타워 매입에 나섰다. 건물 전체가 아닌 일부 매입이었지만, 한국의 첫 해외 대체투자 사례로 의미가 깊은 행보였다. 이후 이 회장은 국내 대형 기관투자자들과 함께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해갔다.

“고비마다 좋은 분들을 만나는 운이 따랐다”던 이 회장의 회고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2010년 전격적으로 이뤄진 하나금융그룹의 다올신탁·자산운용 인수를 말한다. 이 회장은 이때를 경영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리먼 사태가 터지자 국내 부동산시장도 급격한 침체를 맞았습니다. 부동산신탁과 자산운용의 지속성장도 한계에 부딪쳤죠. 때마침 비은행 부문의 수익 확대가 시급했던 하나금융그룹의 니즈와 비즈니스를 더 크게 키우려던 제 희망이 타이밍상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김승유 회장님과의 만남이 결정적이었죠.”

인수가격 조정과 고용승계 등으로 난항을 겪던 협상은 김 전 회장과 이 회장의 담판으로 마무리됐다. “단순히 좋은 기업을 인수하려는 게 아니오. 함께 일하고 싶은 당신을 사려는 거요”라는 김 전 회장의 진심은 단단했던 이 회장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기에 충분했다. 이 회장은 “당시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김 전 회장님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금융그룹 편입으로 이 회장은 불과 43세 나이에 하나금융지주 부동산그룹장을 맡았다. 김 전 회장은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그룹 전반의 부동산 관련 인력을 이 회장 아래 편입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거대 금융지주의 자본력과 네트워크에 이 회장의 투자 노하우가 더해지자 국내 부동산 대체투자의 이정표를 세운 빅딜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2010년 3억3300만 달러에 사들인 샌프란시스코 웰스파고 본사 건물이 대표적이다. 국내 금융사 최초의 미국 부동산 투자였다. 이어 2013년에는 미국 워싱턴 하버 오피스빌딩 매입, 콜로니 유럽데이터센터 재간접 펀드 설정에 이어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주정부 경찰청사를 사들였다. 2016년 들어선 미국 뉴저지 노보노르디스크 본사, 워싱턴DC 나사(NASA) 빌딩, LA 드림웍스 본사 투자 등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트렌드를 주도해나갔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해외 자본들이 국내 부동산을 헐값에 매입해 엄청난 수익을 챙기는 걸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우리도 반드시 글로벌 부동산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주요 선진국 시장 분석과 해외 네크워크 확보에 지속적으로 투자했죠. 마침내 2010년 미국 시장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샌프란시스코 웰스파고 본사 건물을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국내 운용사들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섰는데, 현재 해외부동산펀드 규모가 60조원을 넘겼다 하니 저 스스로도 놀랄 정도입니다.”

해외 대체투자 시장의 초석을 닦은 이 회장의 투자는 업계에서도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고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선진국 대도시의 랜드마크 빌딩 위주의 투자는 이후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방식은 한국 금융사들이 국제 부동산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철저하게 보수적인 국내 기관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해외투자를 시작한다면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사업 준비에 나섰습니다. 주요 글로벌 시장을 분석한 결과 투자 안정성과 수익 변동성 측면에서 철저하게 선진국 대도시의 A급 빌딩 위주로 투자 대상을 설정하는 게 현실적이었죠. 부동산 투자는 로컬 어드밴티지가 명확한 영역입니다. 그 나라의 대형 플레이어와 손잡고 공동투자를 해 리스크를 헤지(hedge)하는 원칙은 지금도 고수하고 있죠.”

금융은 투명성과 도덕성이 생명이다


2016년 7월, 이 회장은 KTB투자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취임하며 또다시 도전에 나섰다. 보유 중인 하나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2014년 다올인베스트먼트를 창립한 이후다.

“투자회사에 전념하려던 차에 KTB투자증권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금융지주라는 큰 조직에 몸담아보니 거대 자본과 네트워크의 저력을 알게 됐죠. KTB는 주축인 증권을 비롯해 자산운용,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 등 작지만 다양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면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죠.”

자기자본만 수조원대에 이르는 초대형 IB의 규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KTB투자증권은 IB와 채권에 강한 투자 전문 금융사로서의 강점이 확실한 금융사다. 이 회장은 KTB 합류 직후, 기존의 백화점식 경영으로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KTB가 가진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카테고리 킬러 전략을 구사했다. 2018년 그룹 경영권을 확보해 회장에 취임한 이후로는 이러한 전략을 더욱 강화해나갔다. 그룹의 중장기적 성장이 필요한 안정적 수익구조를 구축하는 한편, 계열사 간 협업과 시너지 창출에 매진했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지난 3년여간 KTB금융그룹은 실적, 기업가치, 사업경쟁력에서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또 한 번의 ‘이병철 매직’이다.

“그룹에 합류하자마자 ‘Back to the Basic’을 천명했습니다. 우린 초대형 IB 같은 백화점이 아닙니다. 현재 잘하는 것, 지금보다 나아질 것 하나 정도를 빼곤 다 버렸죠. 많은 경영자가 비즈니스 영역을 키우고 사람도 그만큼 채우려 해요. 그 사이 부실은 더 커지게 마련이죠. 우리가 잘하는 걸 강화하는 일이 급선무라 판단했습니다.”

이 회장은 주식과 채권 중심의 기존 비즈니스에서 폭넓은 기초자산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수익원 다변화에 나서는 등 수익구조 개선에 착수했다. IB와 채권 등 기존 강점을 극대화하면서도 장외파생상품 등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에도 새로 진출했다. 규모에 비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지닌 강점도 십분 활용했다. 우수한 계열사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한편 협업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도 새로 개발해 고객군을 넓혀나갔다.

이 회장 부임 이후 대대적으로 이뤄진 경영혁신 성과는 실적으로 증명됐다. 그룹의 맏형 격인 KTB투자증권은 증권사로 전환한 이후 반기 최초로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했다. 당기순이익도 928억원을 올려, 상반기에만 지난해 연간 순이익(760억원)을 훌쩍 뛰어넘으며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 최고의 부동산 투자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역량은 KTB투자증권에서도 국내외 부동산 대체투자 부문의 두드러진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KTB자산운용에서 KTB투자증권의 자회사로 개편한 KTB뉴욕(KTB New York)을 주축으로 선진국 주요 지역의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올해로 예정된 KTB네트워크 상장도 또 다른 성장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국내 1세대 VC이자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토스(비바리퍼블리카) 투자자로 유명한 KTB네트워크는 운용자산 1조1195억원의 업계 최상위권 업체로 꼽힌다. 지난해 순이익 358억원에 이어 올 상반기에만 영업이익 543억원, 순이익 441억원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KTB네트워크의 상장 후 기업가치가 7000억원대에 달해 VC 업계 대장주가 될 거란 기대가 크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유진저축은행의 100% 대주주인 유진에스비홀딩스의 지분 90.1%(KTB투자증권 60.2%, 기관 등 제3자 29.9%)를 취득하기로 결의하며 사업 영역을 소매금융 부문으로 넓히는 승부수를 던졌다. 유진저축은행은 지난해 기준 총자산 2조9842억원을 기록한 업계 7위권 저축은행이다. 지난해 순이익 519억원을 비롯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16.3% 등 알토란 저축은행으로 꼽힌다.

“증권, 자산운용, VC, PE, 신용정보 등 증권 중심 사업구조에 소매금융 포트폴리오를 더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하면서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무엇보다 회사를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 변화가 고무적입니다. KTB 구석구석에 젊고 능력 있는 인재가 많은데도, 너무 긴 시간 동안 정체되면서 분위기 자체가 얼어 있었죠. 이익이 나 보너스가 나오고, 18년 만에 배당도 하고, 저축은행 인수에 새로 상장할 계열사가 업계 대장주라는 소리가 들리니 분위기 자체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경영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죠.”

Back to the Basic. 인터뷰 말미에 이 회장은 앞으로의 경영 비전을 설명하며 다시 한번 ‘기본’을 강조했다. 부동산 투자업계에 뛰어든 이후 단 한 건의 부실 사업도 발생하지 않은 비결이었다.

“금융 하는 사람은 모두 남의 돈 만지는 사람입니다. 투명성과 도덕성이 금융의 제1 원칙이죠.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금융사로서 자격이 없어요. 제가 그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온 경영 원칙도 ‘원칙준수와 고객지향’입니다. 현재 KTB금융그룹의 비전이기도 한데, 정도를 걷는 기업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업종이나 포지션에도 예외는 없어요.”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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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호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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