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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그룹과 포르셰 가문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과 포르셰는 사실 인연이 깊다. 전설의 차, 폴크스바겐 ‘딱정벌레(비틀)’도 알고 보면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개발했다. 그리고 이제는 포르셰 가문이 폴크스바겐을 이끌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Volkswagen) 그룹은 폴크스바겐주식회사를 주력사로 아우디, 포르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12개 유명 자동차 브랜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 기업집단이다. 2020년 기준으로 폴크스바겐 그룹의 매출액은 2229억 유로(약 305조원)이며, 종업원 수는 66만3000명에 이른다. 2020년 폴크스바겐 그룹의 차량 판매 대수는 915만 대로 근소한 차이로 도요타에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이전에는 3년 연속 세계 1위였다.

그룹의 주력사인 폴크스바겐은 1937년 히틀러 정부의 어용노조였던 독일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이 설립했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 최고의 자동차 엔지니어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 1875~1951) 박사에게 모든 독일인이 탈 수 있는 국민차 설계를 의뢰했고, 그렇게 시작해서 나온 모델이 폴크스바겐의 상징인 비틀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군용차량을 생산하며 성장한 폴크스바겐은 전후 영국 군정의 관리를 받다가 1949년부터는 독일 연방정부의 감독하에 100% 국영기업이었다.

폴크스바겐은 1964년 아우디 인수를 시작으로, 1986년에 스페인의 세아트, 1994년에 체코의 스코다, 1998년에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2008년에 스웨덴 트럭 브랜드인 스카니아, 2011년에 독일 트럭 브랜드인 만(MAN), 2012년에 이탈리아의 오토바이 브랜드인 두카티 및 포르셰를 인수하여 오토바이, 일반 승용 및 프리미엄 자동차와 명품 스포츠카, 트럭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1년 9월 현재, 폴크스바겐 그룹의 사업지주회사인 폴크스바겐주식회사의 최대 주주는 포르셰자동차 지주회사(Porsche Automobil Holding SE)로, 폴크스바겐 의결권의 53.3%를 보유하고 있다. 포르셰자동차 지주회사는 포르셰의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3대 및 4대 후손들이 직간접적으로 100% 의결권을 보유한 범포르셰 가문의 지주회사이다. 100% 독일 국영기업이었던 폴크스바겐의 경영권이 어떻게 포르셰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포르셰 가문, 포르셰 팔아 움켜쥔 폴크스바겐

1960년에 독일 연방정부는 폴크스바겐을 부분적으로 민영화했다. 지분 60%를 국민주 형태로 매각하고, 나머지 40% 지분은 연방정부와 니더작센주 정부가 각각 20%씩 보유했다. 독일 연방정부가 1987년에 폴크스바겐 지분을 매각해 니더작센주 정부가 최대 주주가 됐다.

1937년 설립된 폴크스바겐과 1931년 설립된 포르셰의 연결은 포르셰 박사의 비틀 설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에도 포르셰의 비틀 모델에 대한 특허권을 바탕으로 계속 이어졌다. 포르셰 박사는 1남(Ferry) 1녀(Louise)를 두었는데, 그의 사위였던 안톤 피에히(Anton Piëch, 1894~1952)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를 지내기도 했다. 1948년에는 포르셰 가문의 2세대인 페리 포르셰, 안톤 피에히, 당시 폴크스바겐의 사장이었던 하인츠 노르트호프 등 3자가 모여 두 회사 간 관계에 대해서 합의했다. 그 내용은 폴크스바겐이 1954년까지 비틀 특허료를 지급하는 대신, 포르셰가 스포츠카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폴크스바겐에 공급하고, 폴크스바겐 오스트리아 판매권을 포르셰 가문에 부여하는 것이었다. 포르셰는 폴크스바겐의 후원하에 명품 스포츠카 제조사로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포르셰 박사는 포르셰 지분을 아들 페리 포르셰와 페리의 아들 4명(친손주 4인)에게 각각 10%씩 총 50%를 상속하고, 딸 루이제 피에히와 그녀의 3남 1녀(외손주 4인)에게 각각 10%씩 총 50%를 물려주었다. 포르셰 가문의 2세대인 페리와 루이제 사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들의 자녀인 3세대 후손들은 1970년대 초 포르셰를 함께 경영하면서 갈등을 겪었다.

당시 포르셰의 3세대 친손주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셰는 911 모델을 설계했고, 한스-페터포르셰는 생산을 담당했다. 한편, 3세대 외손주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 1937~2019)는 연구개발을 담당했고, 한스 미켈 피에히(1942~)는 판매를 담당했다. 포르셰 917 경주용 차량 모델과 관련해서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직계 포르셰 3세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모든 3세대 후손이 포르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포르셰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1993년 포르셰 최고경영자로 임명된 벤델린 비데킹(Wendelin Wiedeking)은 2005년 포르셰 가문에 폴크스바겐 인수계획을 제안했다. 포르셰 가문의 가부장 역할을 해오던 볼프강 포르셰(Wolfgang Porsche, 1943~)의 리더십하에 포르셰는 보유현금과 카타르 국부펀드의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폴크스바겐 주식을 사들였다. 인수 추진 과정에서 사촌 사이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와 볼프강 포르셰는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2008년 포르셰는 폴크스바겐 지분을 35.79%까지 끌어올렸지만,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자금난에 봉착했다. 폴크스바겐 인수를 위해 끌어온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포르셰 가문은 폴크스바겐과 협상을 진행했다. 2009년 포르셰 가문은 포르셰를 폴크스바겐에 매각하여 부채를 갚고, 포르셰자동차지주회사를 통해서 폴크스바겐의 과반 의결권을 보유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포르셰가 폴크스바겐의 100% 자회사로 완전히 편제되면서 이 모든 과정이 일단락됐다.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승리, 볼프강 포르셰의 패배처럼 보였다.

그런데 끝난 게 아니었다. 2015년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 빈터콘(Martin Winterkorn)은 그룹의 새로운 성장 전략을 제시했는데, 피에히가 그 전략에 반대했다. 이때 포르셰 가문, 니더작센주 정부, 노조 등이 모두 빈터콘을 지지하자 피에히는 사면초가에 놓이게 됐다. 그는 빈터콘을 비난하면서 결국 폴크스바겐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2015년 9월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터졌고 빈터콘도 사임했다. 2017년에 피에히는 폴크스바겐 관련 자신의 모든 지분을 친동생인 한스 미켈피에히에게 매각했고 2년 뒤 2019년, 세상을 떠났다.

범포르셰 가문 내 40여 년에 걸친 내홍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3세대 볼프강 포르셰와 한스 미켈피에히가 중심을 잡고, 4세대 후손들도 감사이사회에 포진해있다. 범포르셰 가문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지만, 전문경영진, 독일 정부·노조와 협력해 폴크스바겐을 계속 성장시킬 것이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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