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셰 가문, 포르셰 팔아 움켜쥔 폴크스바겐1960년에 독일 연방정부는 폴크스바겐을 부분적으로 민영화했다. 지분 60%를 국민주 형태로 매각하고, 나머지 40% 지분은 연방정부와 니더작센주 정부가 각각 20%씩 보유했다. 독일 연방정부가 1987년에 폴크스바겐 지분을 매각해 니더작센주 정부가 최대 주주가 됐다.1937년 설립된 폴크스바겐과 1931년 설립된 포르셰의 연결은 포르셰 박사의 비틀 설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에도 포르셰의 비틀 모델에 대한 특허권을 바탕으로 계속 이어졌다. 포르셰 박사는 1남(Ferry) 1녀(Louise)를 두었는데, 그의 사위였던 안톤 피에히(Anton Piëch, 1894~1952)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를 지내기도 했다. 1948년에는 포르셰 가문의 2세대인 페리 포르셰, 안톤 피에히, 당시 폴크스바겐의 사장이었던 하인츠 노르트호프 등 3자가 모여 두 회사 간 관계에 대해서 합의했다. 그 내용은 폴크스바겐이 1954년까지 비틀 특허료를 지급하는 대신, 포르셰가 스포츠카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폴크스바겐에 공급하고, 폴크스바겐 오스트리아 판매권을 포르셰 가문에 부여하는 것이었다. 포르셰는 폴크스바겐의 후원하에 명품 스포츠카 제조사로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포르셰 박사는 포르셰 지분을 아들 페리 포르셰와 페리의 아들 4명(친손주 4인)에게 각각 10%씩 총 50%를 상속하고, 딸 루이제 피에히와 그녀의 3남 1녀(외손주 4인)에게 각각 10%씩 총 50%를 물려주었다. 포르셰 가문의 2세대인 페리와 루이제 사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들의 자녀인 3세대 후손들은 1970년대 초 포르셰를 함께 경영하면서 갈등을 겪었다.당시 포르셰의 3세대 친손주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셰는 911 모델을 설계했고, 한스-페터포르셰는 생산을 담당했다. 한편, 3세대 외손주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 1937~2019)는 연구개발을 담당했고, 한스 미켈 피에히(1942~)는 판매를 담당했다. 포르셰 917 경주용 차량 모델과 관련해서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직계 포르셰 3세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모든 3세대 후손이 포르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포르셰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1993년 포르셰 최고경영자로 임명된 벤델린 비데킹(Wendelin Wiedeking)은 2005년 포르셰 가문에 폴크스바겐 인수계획을 제안했다. 포르셰 가문의 가부장 역할을 해오던 볼프강 포르셰(Wolfgang Porsche, 1943~)의 리더십하에 포르셰는 보유현금과 카타르 국부펀드의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폴크스바겐 주식을 사들였다. 인수 추진 과정에서 사촌 사이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와 볼프강 포르셰는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2008년 포르셰는 폴크스바겐 지분을 35.79%까지 끌어올렸지만,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자금난에 봉착했다. 폴크스바겐 인수를 위해 끌어온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포르셰 가문은 폴크스바겐과 협상을 진행했다. 2009년 포르셰 가문은 포르셰를 폴크스바겐에 매각하여 부채를 갚고, 포르셰자동차지주회사를 통해서 폴크스바겐의 과반 의결권을 보유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포르셰가 폴크스바겐의 100% 자회사로 완전히 편제되면서 이 모든 과정이 일단락됐다.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승리, 볼프강 포르셰의 패배처럼 보였다.그런데 끝난 게 아니었다. 2015년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 빈터콘(Martin Winterkorn)은 그룹의 새로운 성장 전략을 제시했는데, 피에히가 그 전략에 반대했다. 이때 포르셰 가문, 니더작센주 정부, 노조 등이 모두 빈터콘을 지지하자 피에히는 사면초가에 놓이게 됐다. 그는 빈터콘을 비난하면서 결국 폴크스바겐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2015년 9월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터졌고 빈터콘도 사임했다. 2017년에 피에히는 폴크스바겐 관련 자신의 모든 지분을 친동생인 한스 미켈피에히에게 매각했고 2년 뒤 2019년, 세상을 떠났다.범포르셰 가문 내 40여 년에 걸친 내홍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3세대 볼프강 포르셰와 한스 미켈피에히가 중심을 잡고, 4세대 후손들도 감사이사회에 포진해있다. 범포르셰 가문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지만, 전문경영진, 독일 정부·노조와 협력해 폴크스바겐을 계속 성장시킬 것이다.-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