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기부 늘어나는 한국하지만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 기부 문화가 정착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른 듯싶다. 영국 국제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하는 기부지수를 보면 한국은 128개국 중 2018년 60위, 2019년 57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9년 1위는 미국이 차지했고 미얀마,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영국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한국 기부자들의 평균 기부금은 되레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기부자의 평균 기부금액은 2011년 2만원에서 2015년 32만6000원, 2019년 40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기부참여율은 낮아졌지만, 기부자 평균 기부금액은 대체로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어떻게 봐야 할까. 코로나19 사태로 기부단체 중심의 오프라인 모금 후원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부 기부단체의 기부금 유용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대중은 직접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기부금 운용을 투명하게 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기부 문화가 정착되면 직접 기부의 한 형태인 유산기부도 늘어날 것이다. 일찍부터 기부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유산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연구소가 발행한 논문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입법과제』에 따르면 전체 기부금 규모에서 유산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7%, 영국 33%, 한국 0.5% 수준이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평균수명이 늘고, 이에 따라 사후 기부가 늘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특히 유산기부 비중이 높은 영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11월 영국의 롤랜드 러드 핀스버리 창업자가 유산기부 캠페인 ‘Legacy 10’을 시작한 이래 유산의 10%를 자선·문화 사업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유언장에 남기는 유산기부 캠페인이 영국 전역으로 퍼졌다. Legacy 10 창시자인 롤랜드 러드는 “경제침체기에 사람들은 큰 좌절감을 느낀다”며 “자신은 해고되거나 임금이 동결되는데 고위층들이 버는 돈은 계속 늘어나고, 재정 적자에 처한 정부가 지원금을 삭감해 자선·문화사업단체들이 운영난을 겪고 있다. 유산기부 운동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 기부받기 꺼리는 비영리단체실제로 상속 외 유산을 기부하겠다는 고객이 많다. 몇 해 전 남편과 사별한 박한숙씨(80·가명)는 해외에 사는 딸에게 재산 일부를 증여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3층짜리 상가는 종교단체에 기부할 생각이다. 하지만 종교단체가 건물 기부를 꺼린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기간 (통상 3년) 이내에 기부자산을 해당 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물을 본래 목적에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팔아 현금화해서 사업 목적에 맞게 써야 하니 종교단체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부동산에 얹힌 대출까지 인수해야 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임대수입을 잘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이 또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문제로 인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법에 따르면 비영리단체가 출연받은 재산이나 출연받은 재산을 수익용으로 활용해 발생한 이익은 오로지 목적사업을 위해서만 활용할 수 있다. 위반하면 증여세와 가산세가 부과된다. 기부받아도 목적사업에 부합한 것인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건물관리도 문제지만, 임대료가 밀리면 또 어떻게 하나.그래서 박씨에게 유언대용 신탁을 권했다. 해당 부동산을 신탁해 사후 종교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남기면 된다. 이렇게 하면 기부자는 부동산을 굳이 현금화하지 않아도 되고, 양도세 부담도 사라진다. 기부를 받는 종교단체도 관리 부담을 덜 수 있다.금융회사가 자산을 관리하니 재산관리나 처분도 투명하고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신탁 계약할 때 관리와 매각을 고려해 계약 내용을 꾸릴 수도 있다. 신탁으로 종교단체에 기부하면 기부자가 사후에 혹시 겪을지 모를 자식과의 유류분 소송에서도 기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지난해 법원도 피상속인 사망 1년 이전에 신탁된 재산은 유류분 기초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