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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년 카길, 성장 비결 

 

세계 최대 곡물회사로 알려진 카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어 보인다. 미국 곡물 수출의 25%, 미국 정육 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카길 가문의 사업 방식을 소개한다.

카길(Cargill)은 미국의 대표적 비상장 가족소유 기업으로 미네소타주 웨이자타(Wayzata)에 본사를 두고 있다. 카길은 세계 최대 곡물회사로 잘 알려졌지만,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기록들을 갖고 있다. 카길은 세계 최대의 쇠고기 분쇄육 공급회사이기도 하다. 미국 곡물 수출의 25%, 미국 정육 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내 맥도널드 매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계란을 카길사가 공급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주로 사용되는 앨버거(Alberger) 공정 방식의 소금을 생산하는 미국 내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연어양식용 사료 공급회사도 카길의 자회사이다.

카길은 현재 곡물, 사료, 정육, 식품 분야를 넘어 금융, IT, 해상운송, 바이오, 화장품 등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한 혁신적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카길이 공급하는 가축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축산 농부는 사육하고 있는 각각의 소가 사료를 얼마나 먹고 우유를 얼마나 생산하는지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카길의 2020년 매출액은 1344억 달러(약 159조원)이다. 전 세계 70여 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직원은 15만5000명이다. 카길이 만약 상장기업이었다면 포천글로벌 500대 기업 중에서 15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거대 기업 카길의 소유주는 카길-맥밀런(Cargill-MacMillan) 가문인데, 현재 90여 명에 이르는 후손이 회사 주식의 88%를 보유하고 있다. 카길 주식을 보유한 후손 중에서 무려 14명이 재산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의 부자라고 하는데, 한 가문에서 이렇게 많은 수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고 한다.

카길은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5년에 설립돼 156년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 156년의 성장과 기업 승계 과정을 살펴보자.

창업주 윌리엄 카길(William W. Cargill, 1844~1909)은 20대 초반 아이오와주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 사업이었던 곡물창고 회사를 세웠다. 당시 미국 농부들은 생산한 곡물을 오래 저장할 시설까지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로 인한 손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곡물창고업은 곡물 출하 시점과 최적 판매 시점을 조절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되었다. 미국 횡단철도가 서부로 나아갈 때마다 카길은 저장시설, 터미널, 곡물용 엘리베이터 등 곡물 거래 및 운송을 위한 제반 시설들을 세우며 회사를 키웠다.

창업주 윌리엄이 1909년 사망한 이후 회사 경영은 사위인 2세대 존 맥밀런 시니어(John MacMillan Sr., 1869~1944)가 맡았다. 회사 지분은 1912년에 상속되었는데, 장녀 에드나(Edna Cargill MacMillan, 1871~1963)와 그녀의 남편 존 맥밀런을 합쳐 2/3, 아들 오스틴 카길(Austen Cargill, 1888~1957)에게 1/3이 상속됐다. 존 맥밀런이 회사 경영을 넘겨받았을 당시 카길은 과거 몬타나 관개수로 사업에 대한 투자 실패로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존은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과 채무연장 등으로 회사를 회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존 맥밀런은 1936년까지 회장으로 재임하며 카길의 기틀을 잡는 한편, 자신과 부인이 상속받은 회사 주식 2/3를 두 아들인 존 맥밀런 주니어(John MacMillan Jr., 1895~1960)와 카길 맥밀런 시니어(Cargill MacMillan Sr., 1900~1968)에게 각각 1/3씩 물려주었다.

3세대 존 맥밀런 주니어는 1936년부터 1960년까지는 회장으로 일하며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카길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3세대 존 맥밀런 주니어가 1960년 사망한 이후 카길-맥밀런 가문은 전문경영인 어윈 켈름(Erwin Kelm, 1911~1994)을 최고경영자로 선임해 1977년까지 17년 동안 회사 경영을 맡겼다. 어윈은 카길의 현대화 및 국제화의 기틀을 다졌다.

1977년에는 카길 맥밀런 시니어의 아들인 4세대 휘트니 맥밀런(Whitney MacMillan, 1929~2020)이 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1995년까지 18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카길의 제품 라인을 코코아, 커피, 땅콩, 육류, 고무, 양모, 철강, 고무, 석유, 화학제품 및 금융 서비스 등으로 확대했고, 카길은 글로벌 상품 시장의 큰손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1995년 휘트니가 퇴임한 이후 현재까지 카길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카길-맥밀런 가문의 후손들은 협약을 체결하고, 가문에서 6명을 뽑아 회사 이사회 멤버로 참여시키고 있지만, 일상적 경영활동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회사 지분이 세대를 거쳐 계속 분할 상속되면서 나타난 지분 분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카길-맥밀런 가문의 후손들은 회사 설립 100년이 된 시점인 1965년 웨이크로스(Waycrosse)라는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후손들의 지분 관리 및 재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했으나, 지금은 모든 가문 구성원 간 유대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여러 세대 및 지파를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카길-맥밀런 가문 내 유대감은 일부 후손들이 카길 주식을 상장하여 현금화하려는 두 차례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토대가 되었다. 처음 요구는 1992년에 있었는데, 당시 카길은 종업원지주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가문 후손들에게 카길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현재 회사 지분의 12%는 카길의 임직원이 보유하고 있다.

한편, 2006년에는 당시 생존 후손 중 가장 많은 지분인 17%를 보유하고 있던 창업주의 친손녀 마거릿 카길(Margaret A. Cargill, 1920~2006)이 상속인이 없이 사망했다. 마거릿의 지분은 신탁에 맡겨졌고, 이 신탁의 주요 수혜자는 자선사업 목적으로 설립된 마거릿 카길재단이었다. 자선 목적을 위해 현금을 원했던 마거릿의 뜻을 이룬 동시에 그녀의 카길 지분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가문의 영향력 아래 계속 놓이게 되었다. 이는 그녀가 사망하기 2년 전인 2004년에 카길이 비료사업부를 상장 비료회사인 모자이크(Mosaic)사와 합병해 우회상장을 했기 때문이다. 마거릿의 카길 주식과 모자이크사의 주식을 교환하는 형태로 현금화해주는 통로를 만들어준 것이다.

카길-맥밀런 가문의 후손은 이제 7세대에 이르렀다. 가문 내 지분은 계속 희석되고 있지만, 패밀리 오피스를 통한 후손 간 유대감 강화를 통해서 앞으로도 카길은 비상장 가족기업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112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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