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27) 

회복탄력성 - 마이너스에서 다시 플러스가 되기까지 

사람의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회복탄력성’이 있다. 고난을 겪고 수렁에 빠져도 다시 일어나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본능이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좋은 대인관계가 도움이 된다.

▎오토 딕스 [마이어 헤르만 박사] 1926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완충재 메모리폼(memory foam) 베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그 인기는 엄청났다. 목의 굴곡에 따라 가해지는 압력을 균일하게 분산해주고 원형으로 복원되는 성질이 있어서 목을 보호해주고, 숙면에도 도움을 주는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비싼 라텍스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분명 외부의 압력이 가해졌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사람의 마음에도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힘이 존재한다. 인간의 몸 자체가 항상성을 추구하며 태어났듯이 마음에도 일정 수준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상처 입고, 좌절하고, 실망한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힘을 ‘회복탄력성’이라 한다.

일, 인간관계, 사랑에서 실패했을 때, 혹은 사고를 당하거나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을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상황은 다양하나 어떤 때는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더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큰일을 겪은 이후의 결과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더 큰 절망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감정은 흘러가고 머무는 것이 아닌데도 부정적 감정에 잠식되어 인생의 고난을 만난 그 순간보다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리기도 한다.

러시아 작가 바슈키르체프가 그린 작품 [절망] 속에는 머리를 움켜쥐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보인다. 바슈키르체프는 재능이 많았고 자신의 이름이 화가로서 알려지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결국 그녀는 25살에 결핵으로 건강을 잃게 되면서 예술과 삶,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나마 최악보다 나은 것은 마이너스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다. 한번 일어난 나쁜 일이 자신에게 다시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으며, 한번 낮아진 자존감은 새로운 다른 일이나 관계에 도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고난을 만난 후


▎마리아 바슈키르체프 [절망] 1882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수준은 고난을 만나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이용하여 마이너스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0이 된다면, 이전의 좋지 않았던 상황은 없었던 듯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료와 사진, 연락처 등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테지만, 다시 필요한 사람들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클라우드에서 일부 사진들을 찾고 새 핸드폰에 적응하다 보면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느낀 부정적 감정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난을 만난 후,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플러스가 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역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한 후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독일 작가 오토 딕스는 1914년부터 1917년까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겪었던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예술을 통해 기록해나갔다. 자신이 체험한 전쟁에 입각하여 작품 활동을 해나간 그는 사회의 부정, 퇴폐, 암흑 속에서 꿈틀거리는 인간의 추악함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신즉물주의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사업 과정에서 만난 어려운 상황은 그동안 놓쳤던 부분들을 보충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계기가 되어 더욱 단단한 사업체로 성장하기도 하고, 부부에게 찾아온 이혼 위기는 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은 자신을 지키는 힘을 키워주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회복탄력성은 타고나는 걸까


▎르네 마그리트 [헤겔의 휴일] 1958
시련을 겪어도 툭툭 털고 잘만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 어려움에 마주하면 쉽게 극복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남들보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이전에도 쉽게 이겨내지 못했던 경험이 축적되었기에 부정적 감정에 빠져드는 것 자체가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은 후천적으로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체계적 노력과 훈련으로 회복탄력성을 향상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유의미한 인물로부터 받은 헌신적 사랑과 신뢰였다.

워너 박사는 1954년,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생아부터 18세까지의 추적연구를 실시했다. 환경적 조건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진취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역경을 성숙한 경험으로 바꾸는 능력’, 또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환경에 적응하여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능력’이었고, 워너 박사는 이 힘에 회복탄력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그의 작품 [헤겔의 휴일]에는 우산의 꼭지 대신 물컵이 그려져 있다. 물을 막아야 하는 존재인 우산 위에 물이 담긴 컵이라니.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떠올려보자. 어떤 상황을 그린 것일까.

어쩌면 하늘에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을 뿐인데 소나기를 걱정하여 장우산을 들고 나왔을 수도 있다. 대비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엔 버겁고 거추장스러운 우산이 되어버렸다. 무조건 나쁜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과유불급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고, 또 적절하게 긴장감을 갖고 대처하는 것. 이런 중용이 있어야 좋은 회복탄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는 좋은 회복 탄력성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 이혼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외가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일반적인 성격발달을 고려했을 때 안정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심히 그를 배려해준 외할머니가 있었고, 현명한 어머니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새아버지가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례는 가족이 주는 신뢰와 헌신이 중심이 되지만, 가까운 친구, 연인, 배우자 등 한 사람에게 유의미한 존재의 믿음은 역경을 성숙한 경험으로 바꾸는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

좋은 관계가 만들어주는 성장력


▎칼 라르손 [큰 나무 아래에서의 아침식사] 1895
회복탄력성을 측정하는 척도 KRQ-53은 크게 3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가 자기조절능력(감정조절력, 충동통제력, 원인분석력), 두 번째가 대인관계능력(소통능력, 공감능력, 자아확장능력), 세 번째가 긍정성(자아낙관성, 생활만족도, 감사하기)이다. 나를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얼마나 잘 소통하는가, 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이며, 이 세 가지는 모두 ‘긍정’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확률이 높고, 이는 새로운 기회를 접할 확률을 높여준다. 새로운 것에는 실수가 따를 수도 있지만,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민감하게 스스로 알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또 실수에 대한 피드백을 수용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스웨덴의 국민 화가 칼 라르손은 가족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큰 나무 아래에서의 아침식사]에서도 자신의 가족이 나무 아래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대화, 웃음은 자연스럽게 회복탄력성을 높여주었을 것이기에, 과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던 시대에 비해 지금의 시대는 상대적으로 관계에서 보충할 수 있는 에너지들을 가족 이외의 관계에서 더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가족에게서 신뢰와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끔찍한 악연이고, 고통일 수도 있으며, 연중행사 때 한 번씩 얼굴을 비추어야 하는 의무적인 관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나에게 좋은 관계로 존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나는 누구를 통해 성장하고 위로받고 있는가. 혹시 ‘불편하다’, ‘상처받고 싶지 않다’와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있지는 않았는가.

좋은 대인관계가 회복탄력성을 높여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가 된다면 그 사람은 무너졌을 때도 나를 통해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 때, 사회적으로 성장한 성인은 이를 꿋꿋하게 감내하는 것이 성숙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의 구성에서 30%를 차지하는 것은 인간관계이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혼자서 삼키기보다는 나를 믿고 이해해주는 누군가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줄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면 어떨까.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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