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우 유중문화재단 이사장이 캐슬린김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예술법 체계화 분야에서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영리·비영리·공공·사설 등 부문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며 마당발 인맥을 자랑한다. 한국 아트마켓에서 작가를 비롯해 컬렉터-화랑-경매회사 등 관련 업계 모두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는 평가다. 단순히 그림에 관심 있는 법조인이 아닌, 한국 아트마켓의 중심에 서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 김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주]
캐슬린김 변호사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예술법이 필요한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예술법·예술시장 전문가다. 객체적 예술 애호가에서 주체적 이해와 통찰을 얻고자 옥션하우스인 크리스티 뉴욕의 부설 대학원에서 ‘예술사와 예술시장: 근대와 현대(History of Art and the Art Market: Modern and Contemporary)’를 전공하며 예술 현장에 발을 디뎠다. 현재 법무법인 리우에 소속되어 있고, 뉴욕주변호사협회의 예술법·엔터테인먼트법·스포츠법 분과, 뉴욕시변호사협회, 뉴욕카운티변호사협회의 지식재산권법 분과 멤버로 활동 중이다.김 변호사가 주로 활약하는 분야는 문화예술 및 지식재산, 국제 비즈니스다. 2014년부터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문화예술경영MBA 과정) 겸임교수로서 예술법, 엔터테인먼트법, 지식재산법 등의 과목도 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또는 지자체 등 공공기관과 미술관, 관련 협회와 단체, 예술시장에서 예술가나 예술계 종사자 대상 교육과 프로그램 개발 등에도 참여 중이다. 무엇보다 문화예술 분야 정책 개발, 연구·리서치 등에도 관심을 두고 함께하고 있다.최근에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기관인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리걸 랩(legal lab) 자문위원을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 단체, 문화재단, 학회 등에서 이사나 감사 등의 역할을 하며 법률가로서 문화예술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예술과 예술시장, 관련 법, 최근에는 콘텐트와 테크놀로지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저서로는 『예술법 Art Law』(학고재, 초판 2013, 개정판 2021, 846면), 곧 출간될 공저 『NFT와 현대미술』(서울대미술관, 2022)이 있다. 2016년부터 2년간 미술잡지 [월간미술]에 ‘변호사 캐슬린김의 예술법 세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고, 이후 여러 매체에 국내외 최신 판례 소개 등 예술과 법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스스로를 예술과 법, 글로벌 예술 현장을 연결하는 ‘조정자’이자 ‘통역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로스쿨 1학년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여러분은 이제부터 법률이라는 제2외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그동안 이해하고 있던 통념과 상식을 모두 잊어라. 그리고 본인이 ‘논쟁(argument)’을 잘해서 법률가 자질이 있다고 믿는다면 당장 다른 길을 찾아봐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법률 언어(정확히는 법률을 해석하고 추론하고 분석하고 적용해서 최선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세스)는 일반 언어와 다르다. 또 송무 분야와 달리, 비즈니스 변호사(transactional lawyer)는 다투는 직업이 아니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제공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일반 언어와 예술가의 언어는 또 다르다. 법률 언어라 해도 나라마다 다른 법제와 관행, 문화를 갖고 있어 또 한 번 해석과 조율이 필요하다. 이 사이에서 서로의 이해를 돕는 ‘가교’ 역할이 내 몫이다. 변호사로서는 주로 글로벌 프로젝트의 협상이나 계약, 비즈니스 컨설팅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역시 법제·문화·관례·직종이 다른 시장참여자들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 또는 ‘게이트 키퍼’ 역할인 것 같다.
미국 변호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로스쿨 진학 전에는 국제정치를 전공했다. 국제사회 일원으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국제정치는 뭐랄까, 확고한 권력관계와 그 현상에 대한 연구, 아니면 이상적 세계를 향한 추상적 당위에 관한 연구 같은 느낌을 받았다. 뒤늦게 인과가 분명한 분석, 논리적 추론, 문제해결을 좋아하는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제‘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는데, 국제 공법도 법학에서는 신생 분야이다 보니 모든 것이 미확정적이었다. 명확한 논리적 추론을 미덕으로 삼는 다른 법학 분야와 달리 결국 국제‘정치’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곧 흥미를 잃었다. 로스쿨에 재학하는 동안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정신과 인류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부끄럽게도 나는 그럴 만한 인성이나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술법 전문가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나.그러던 중에 지식재산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 비즈니스 관련 수업들을 들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에겐 생소하던 지식재산권 관련 새로운 이론과 판례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때 예술법(art law)이라는 전문 분야가 있으며, 미국에는 이미 여러 권의 예술법 교과서와 커리큘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술에서 삶의 활력과 안식을 얻던 나로서는 가장 매력을 느끼는 두 개의 분야이자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분야인 예술과 법학이 만나는 지점이라니 전율이 느껴졌다. 나는 훌륭한 판결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논리와 추론의 대향연을 즐기는 사람인데, 미국 연방대법원의 명판결문과 뮤지엄에 걸린 마스터피스를 마주할 때 느낀 지적 희열과 감동이 유사하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결국 ‘남’의 일을 대리하는 것인데 그런 ‘남’이 예술가나 예술계 종사자처럼 흥미로운 사람들이라면 일이 얼마나 즐겁겠나. 그래서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 예술법을 체계화·전문화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현재 동시대 예술을 주도하고 있고, 전 세계 예술가와 종사자들이 몰려드는 가장 큰 아트마켓인 뉴욕에서는 예술계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이나 법률가의 중요성을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술법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이나 전문 변호사, 예술인을 위한 변호사 단체, 예술법 연구자가 많다. 아직은 작은 시장이지만 너무나 큰 가능성을 갖고 있는 한국에 ‘예술법’이라는 학문이나 프렉티스 분야를 수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국에 돌아와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우리 예술계에 예술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미술법’ 대신 ‘예술법’이라는 개념을 설파했는데, 미술을 풀이하면 ‘아름다운 기술’이라는 뜻으로, 이는 전근대적 개념이다. 예술은 말 그대로 ‘기예와 학술’을 일컫는다.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포함한다. 그중에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시각예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술이라는 표현보다 시각예술이라는 표현이 적확하다고 보고 선호한다. 뮤지엄(미술관과 박물관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음악을 연주한다. 르네상스 이후 분화되었던 예술과 기술이 다시 만나고 있고, 다른 산업·장르 간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나누던 시기가 있었고, 당대 권력자나 다수가 보기에 아름다운 예술이 좋은 예술이라고 정의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기에 그것을 표현한 것도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예술의 경계를 미술로 한정하는 것은 좁다고 생각한다. 더 포괄적이고 다양하고 다원적인 현대예술의 세계를 품어낼 수 있는 예술법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자고 했다.
예술법에 대한 책도 쓰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예술법이라는 용어를 우리 예술계와 학계, 법조계에 공식화하고 예술법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처음 출간했다. 국제 예술법의 신선한 조류를 소개하고 싶었다. 때마침 강의 교재도 필요했다. 제대로 된 예술법 책 한 권에 욕심부리고 싶었다. 한 권으로 출간하려다 보니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했지만. 홍익대학교에서 예술과 법으로 강의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와서 2014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이후 여러 대학에 예술법 강의가 개설되고, 후배 변호사들이 스스로를 예술법 변호사 또는 예술법 전문가로 부르게 된 그 엄청난 변화에 지극히 감사한다. 그간 예술가나 예술계 종사자들도 법적 권리의식과 법적 책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예술법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여러모로 보람되고 감사한 일이다.
최근 자주 불거지는 저작권 이슈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최근 ‘아트 테크’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업태가 등장하고 있다. 한 업체에서 작품을 구매(만)한 뒤 그 업체에 위탁 보관하면서 해당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서 구매자에게 ‘저작권료’를 수익으로 분배한다는 광고를 봤다. 또 다른 업체는 작고한 한국 대가들의 이름으로 유사한 작품(정확히는 위작)의 이미지를 NFT로 만들어 판매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트 컬렉터를 대상으로 강의를 많이 하는 편인데 상당수의 컬렉터가 작품을 소장하면 원하는 대로 사용해 수익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작품 구매자는 작품의 원본, 즉 유체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지식재산(IP)’이라고 하는 무체 재산, 정확히는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인 작가의 권리이다. 저작재산권이야 재산적 권리이기 때문에 다른 재산처럼 양도나 이용허락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실물 작품의 권리 양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교재 등을 복제해주는 ‘복사집’이라는 게 아예 없고, 어릴 때부터 책을 복제하거나 소프트웨어나 음원을 내려받는 것은 범죄이고, 어떤 글이든 타인의 글을 가져다 쓸 때는 줄마다 인용 표시를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서구권에 비해 ‘저작권 문화’라는 것이 다소 뒤늦게 생성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최근에는 작가들 스스로 권리의식이 향상되고, 일반의 저작권에 대한 이해도 크게 높아진 것 같다.
저작권침해에 대한 다양한 견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예술법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지만 저작권은 예술 창작이나 이용에서 핵심이다. 저작권법의 입법취지는 저작자(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함으로써 더 좋은 저작물(예술)을 생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예술이라는 분야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차용예술’을 생각해보자. 차용 또는 혼성모방은 그냥 대놓고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저작권침해다. 예술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과 창의의 영역인데 법률이 예술가들을 재단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영미권 법률가들이 개발한 법리가 바로 예술적 차용의 길을 열어주게 된 ‘공정이용 법리(fair use doctrine)’다. 원본을 가져다 쓰되 전혀 다른 새로운 메시지나 의도를 가진 예술인 경우, 원작자의 허락 없이 써도 된다는 것이다. 원본은 새로운 예술 창작을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예술과 법은 자유와 규율같이 성질이 전혀 다른 것들의 조합이다. 법은 예술가들보다 항상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다. 예술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포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법의 제정·개정 절차를 고려한다면) 법은 과거에 합의한 내용들이다. 예술가들은 법, 질서, 관념 등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항상 이를 뛰어넘고자 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는 현대예술계에선 그만큼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은 사건이 많다. 예술과 법이 만나는 이러한 긴장 관계가 예술법의 매력인 것 같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예술법 체계를 간략히 비교한다면.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데, 미국, 특히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는 아무래도 세계 최대 예술시장이다 보니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사건이 발생하고, 예술법 컨설팅 분야도 발달할 수밖에 없다. 뉴욕주변호사협회나 뉴욕주 중 맨해튼 변호사들 모임인 카운티변호사협회의 예술법 분과 활동이 크게 도움이 되는데, 예술법 변호사들끼리 서로 견고한 커뮤니티를 구성해 함께 학습하고, 연구하고, 클라이언트를 리퍼해준다. 매일 구성원들이 커뮤티니 게시판에 업로드하는 사건 이야기만 들여다봐도 동시대 예술 시장이나 예술법 시장의 추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더 나아가 예술계와도 함께하는 세미나나 콘퍼런스를 자주 열어 교류한다. 물론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보노 활동도 다양하다. 그에 비해 아직은 예술시장이 작다 보니 판례도 거의 없고 기준에 대한 명확성이 떨어진다. 시장이 점점 커지고, 예술 생태계가 변화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관습이나 관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술, 특히 시각예술과 관련한 송무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분쟁이 발생해도 그냥 누군가 피해를 감수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예술법 상황은 어떤가.한국은 형사상 명예훼손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있는 나라이다 보니 예술창작의 자유, 예술표현의 자유, 예술비평의 자유에 제약이 적지 않아 보인다. 실제 송사에 휘말리지는 않더라도 형사처벌이나 재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예술의 자유, 예술표현의 자유, 예술평론의 자유가 위축되는 측면이 있다. 예술의 근간은 물론이고 표현의 자유를 근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근간도 취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언론에 기고한 칼럼 때문에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미술평론가의 사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예술 창작 방식을 무려 ‘사기죄’로 기소한 사례, 저작인격권에 대한 몰이해로 세계적 설치예술가의 작품(심지어 유작)을 한 지자체가 무단으로 철거했던 사례도 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은 해외 유명 작가가 아니었거나 해외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더불어 작가나 저작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서구 문화권은 전시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 서두에 “위대한 작가님을 우리 미술관 전시에 모시고 싶다”고 언급하며 시작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많은 계약서는 다소 위압적이다. 특히 커미션 워크의 경우 저작권 일체를 미술관이나 공공기관, 지자체 등 전시 주최에 귀속하는 경우가 많아 놀랐다. 이는 시각예술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저작권 계약의 디폴트룰은 라이선싱 계약인데 우리는 불필요하게 양수도계약을 요구하는 편이다.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아트마켓 큰손으로 떠오른 MZ세대 컬렉터들이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팬데믹 여파와 미국 등 각국 정부의 금리 및 거시경제정책 등의 영향으로 인해 전 세계 예술시장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까지 감행하는 예술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전시장이나 아트페어 방문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유행할 정도로 예술시장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굉장히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우려도 된다. ‘아트 테크’라는 마법의 단어가 연일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작품만 구매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호도하는 이도 많다. 아트 테크는 원래 ‘Art+Technology’, 즉 기술기반 매체 예술을 일컫는 표현인데 한국에 들어와서 재테크의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아트마켓이 뜨겁다 보니 향유나 소장보다는 아트 투자 또는 아트 재테크란 말이 훨씬 많이 회자되는 듯해 아쉽다. 예술 투자는 원래 오래 보고 싶은 예술가를 후원하거나, 장기적 관점에서 소장한 예술품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순수예술이라 분류되던 시각예술 분야가 산업화되고 대중화되면서, 또 일부 작품들의 수익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작품을 투자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확산되는 것 같다. 아트 컬렉팅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부합하는 작가 또는 삶에 위안을 주거나 에너지와 기쁨을 주는 작품을 발견하고, 그 작품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고,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가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데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작품을 구매하거나 주위의 말이나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예술과 예술가에게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작가를 스스로 발굴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마음으로 컬렉팅에 입문하면 좋겠다.
미술품을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말라는 말씀이다.국제 상거래의 기본 원칙은 “구매자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라틴어 법률 용어 ‘Caveat Emptor’이다. 이는 예술시장에도 유효하다. 투자상품이나 재테크 목적만으로 미술시장을 바라보거나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예술 투자를 선택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다. 세상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예술 투자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주식이나 다른 금융상품처럼 수치화하거나 가치평가를 할 수도 없고, 정보 비대칭성도 있기 때문에 특히 많은 공부와 시간이 필요하다. 소위 ‘플립’이라고 하는, 바로 사서 바로 팔아 쉽게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은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자칫 위작을 구매하거나 에디션이나 문화상품을 원화로 착각해서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매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띄워 자전거래로 가격을 부풀리거나 ‘리딩’하는 세력도 있는 것 같다. 다른 투자와 마찬가지로 기본 원칙에 입각해 출발하면 좋겠다.
대한민국 아트마켓과 관련해 활동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멘토 변호사님의 영향을 받아 오래전부터 예방 법학, 예방 법률을 외치고 다녔다. 분쟁이 발생하고, 분쟁을 법원으로 가지고 가는 순간 양 당사자가 이미 패배자이다. 소송경제 입장에서 보면 제아무리 불리한 합의도 소송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귀찮고 머리 아프다고 뒤로 미루지 말고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협의하고, 충분히 상호 이해하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당하는 것을 예방하고 최선의 비즈니스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예방에 실패해 분쟁이 발생한다면 그다음엔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예방 비용은 분쟁 비용, 분쟁해결 비용보다 훨씬 싸다. 그런데 우리 예술계 문화는 사적 관계와 비즈니스 관계를 분리하지 않는 경향이 큰 것 같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오래된 관습이나 관례를 넘어서는 것도 주저한다. 글로벌 아트 신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차이가 더 확연하게 보인다. 미술관 같은 기관이나 갤러리, 심지어 작가 스튜디오에도 인하우스 변호사가 있고, 모든 프로젝트에 변호사가 참여해 권리와 책임, 역할에 대해 명확히 하는 측과 그렇지 못한 측의 결과는 빤하다.다음으로 예술가는 대자유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세상의 온갖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이다. 하지만 발은 땅에 딛고 살 수밖에 없다. 그 땅이 현실이고 법과 제도다. 법의 핵심은 계약이다. 계약은 당사자 간 사적 자치에 기반한다. 서로가 서로를 합리적이며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대한의 이기심을 발휘하는 인간이라고 전제한다. 그런데 한국 예술시장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면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우리 사이에 계약서가 왜 필요하며, 알아서 다 잘해줄 텐데 왜 따지냐…. 심지어 ‘작가가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저작권 같은 무체 재산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먼저 예술가가 각성해야 한다. 권리의식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다. 권리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도 놓쳐선 안 된다. 우리 미술계도 달라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는 최후의 보충적 개입에 한정된다. 시장 변화에 대한 적응, 그 전제로서의 상호 윈윈을 위한 계약관계의 공정성, 그 전 단계로서의 예술가의 권리와 책임의식,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나는 자칫 주변인 혹은 경계인일 수 있다. 예술법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예술 전문가이면서 법률 전문가여야만 한다. 예술과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예술가와 예술시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수 있겠나. 자칫 변호사로서도 부족하고, 예술 전문가로서는 더 턱없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염려가 늘 잠복 중이다. 그럼에도 길항관계를 형성하는 예술과 법의 경계를 오가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기를 즐긴다.『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라는 책이 있다. 저자 프레드 로델은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 헌법학을 가르친 법학자인데 ‘법률업’을 고등사기술(high-class racket)이라고 부르며 법조계의 배타성과 이기심, 엘리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법은 언제나 판매 대상이며, 대체로 최고 가격을 제시한 입찰자의 편에 선다고도 했다.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늘 그러한 비판을 자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