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에 말이 필요없다. 사용자의 뇌신호를 분석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할 수 있고, 역으로 사용자의 뇌에 전기자극을 가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 사진:KE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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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 카피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정천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주축으로 한 연구 컨소시엄(이하 연구팀)은 말 없이 생각만으로 외부기기를 제어하거나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물리적 매개체)를 개발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쌍방향 신경 인터페이스를 ‘B2X’라 명명했다. ‘Brain to X’를 줄인 말로, X는 컴퓨터, 스마트폰, 휠체어 등 외부기기를 비롯해 타인의 뇌를 가리킨다.이 기술을 사용하면 의사소통 과정에 말이 필요하지 않다. 사용자의 뇌신호를 분석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할 수 있고, 역으로 사용자의 뇌에 전기자극을 가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B2X는 국내외 청각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할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 BMI(Brain to Machine Interface·뇌-기계 인터페이스) 분야 신산업 육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BMI
▎정천기 교수 연구팀은 말 없이도 외부기기를 제어하거나 타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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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I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개발에 뛰어들 정도로 전 세계에서 미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메타는 2017년 뇌 언어중추를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테슬라는 뇌에 칩을 이식해 컴퓨터와 연결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특히 BCI(Brain to Computer Interface·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세계경제 포럼 10대 유망기술(2014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10대 차세대 기술(2011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10대 유망기술(2009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BCI와 BMI라는 용어를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전 세계가 BMI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양한 고차원 분야에서 미래지향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IoT)과 연동해 뇌신호만으로도 가전제품 등을 제어하는 스마트홈 시장을 개척할 수 있으며, 뇌신호를 자동차, 드론 등을 다루는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과도 연계할 수 있다. BMI는 생물학적 뇌를 모사한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반도체, 네트워크 등 타 기술과 융합하면 다양한 산업 분야에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의학적 기대 효과도 상당하다. 거동이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이 BMI를 이용하면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작동하거나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또 차세대 뇌질환 의료기기 시장을 선도하고 청력 치료 수술 등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인공지능(AI)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치료 및 진단도 가능하다.
향후 5년간 디코딩 기술 고도화정 교수 연구팀의 B2X는 디코딩·인코딩 기술(소프트웨어)과 주사기로 뇌 표면에 넣을 수 있는 최소 침습 무선 전극(하드웨어)으로 구성된다. 특히 연구팀의 최소 침습 전극 개발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기존 인터페이스들이 뇌 손상 및 감염 위험도가 높았던 탓에 연구팀은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필요성을 절감해 새로운 전극 개발에 돌입했다.정 교수는 “기존 인터페이스들은 전극의 넓이만큼 두개골을 열어야 하는 등 수술 위험이 상당하다”며 “뇌 표면 전극과 외부 분석 시스템을 유선으로 연결할 경우에는 뇌가 감염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반면 정 교수 연구팀이 개발해낸 ‘주사기 주입식 최소 침습 무선 전극’은 기존과 비교해 뇌 손상 및 감염 위험도가 크게 낮다. 주사기로 주입하기 때문에 두개골을 넓게 열 필요도 없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삽입형 인터페이스들을 통틀어 가장 위험도가 낮은 전극”이라고 강조했다.이 전극은 뇌 수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정 교수는 “최소 침습 전극은 응용 범위가 넓기 때문에 대중화가 가능하고 이에 따라 시장 규모 역시 확대될 수 있다”며 “BMI 시장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한편 디코딩·인코딩 소프트웨어는 생각만으로 외부에 정보를 전달하고, 반대로 뇌 전기자극만으로 외부 정보를 수신하는 기술을 뜻한다. 그중 데이터 해독을 뜻하는 디코딩은 B2X의 핵심기술이다. 사용자가 음성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디코딩해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기술을 말한다.정 교수 연구팀은 향후 5년간 디코딩 기술을 고도화해 변환된 말소리가 실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용자의 뇌신호를 분석한 뒤 이를 말소리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로써 연구팀은 신경망 모델 기반의 ‘음성 예측·재생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다.인코딩은 말소리와 글자 없이 뇌 전기자극만으로 외부의 언어정보와 센서정보를 뇌에 직접 전달하는 기술이다. 정 교수는 “음성 의사소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뇌 자극으로 음소적 언어정보뿐 아니라 상위 단계인 의미정보까지 사용자의 뇌에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