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콩나물국과 장모님의 초록 시계 

 

어느 순간부터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엔 장모님께서 선물해주신 초록색 줄 시계를 차고 가는 버릇이 생겼다. 무게가 있는 물건을 손목 위에 올려놓는 걸 굉장히 불편해하면서도 왠지 초록 시계를 차고 간 날은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행동심리학자 버러스 스키너(B. F. Skinner)에 따르면, 사람들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피하도록 학습된다고 한다. 이를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라고 부른다. 그는 ‘스키너의 상자’라고 불리는, 실험용 쥐를 위한 특별한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 한쪽에 레버 두 개가 있고, 쥐가 A 레버를 만지면 전기충격이 가해지고 B 레버를 만지면 음식이 주어졌다. 쥐는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A 레버는 전기충격,’ ‘B레버는 음식’이라는 연관성을 학습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쥐가 A 레버를 움직이는 빈도보다 B 레버를 움직이는 빈도가 증가했다. 이처럼 원하는 것을 줌으로써 행동 빈도를 높이는 것을 ‘강화(Reinforcement)’라고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줌으로써 빈도를 낮추는 것을 ‘처벌 (Punishment)’이라고 부른다. 스키너는 음식을 얻는 강화와 전기충격을 주는 처벌로써 쥐를 학습한 것이다. 징크스는 이러한 조작적 조건화로 만들어진다.

보통 때보다 미팅을 잘했거나 시험을 잘 본 날이면 나는 그에 대한 그럴듯한 원인을 찾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보면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평소에 먹지 않던 콩나물국을 먹었잖아’ 또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니까, 초록 시계가 나한테 좋은 기운을 주는구나’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징크스는 이렇게 관계없는 것들 사이에 연관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며, 강화와 처벌을 반복하면서 징크스는 더더욱 강력해진다. 이제서야 콩나물국을 졸업하나 싶더니, 또 다른 징크스의 노예가 되어 있다.

이렇듯 징크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생기는 부담감, 긴장감, 불안감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니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면접에 떨어진 거라고 내부에서 문제점을 찾기보다는, 외부 환경을 탓하는 게 정서적으로 더 쉽다. 반대로 나처럼 중요한 미팅에 들어갈 때 초록 시계를 차고 왔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긴장감을 완화해준다.


따라서 무조건 징크스를 만들지 말라거나 징크스를 깨버려야 한다고 외치는 건 사실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차라리 징크스를 따르는 게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다. 적당한 징크스는 경직된 몸과 긴장을 풀어주고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플라세보 효과처럼 가짜를 진짜로 믿는 것만으로도 진짜 효과를 볼 수도 있을 테니. 대신 자신만의 징크스가 있다면 그 징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징크스 자체에 몰입하기보다는, 그 징크스를 따를 때 느끼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그 자신감으로 징크스를 유연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여인택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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