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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기업가들이 ‘걸보스’ 시대의 끝을 환영하는 이유 

 

글로시에 CEO 에밀리 와이즈의 사임으로 또 한 차례 젊은 여성 설립자들을 향한 부고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견뎌내면서 유리 무대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있다.
2021년 10월, 렌트 더 런웨이의 공동 설립자 제니퍼 하이먼은 설립한 지 12년 된 패션 구독 회사를 170억 달러 가치로 기업 공개했다. 하이먼이 보유한 지분 5.1%의 가치는 거의 490만 달러가 됐다. 이 41세 CEO는 역사상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상장한 미국 여성 25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렌트 더 런웨이의 IPO는 회사 CEO뿐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운영책임자(COO)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다.

하이먼은 팀 내의 주요 여성 인력과 두 딸을 데리고 분홍색 색종이가 날리는 가운데 나스닥 상장을 축하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이가 모두 여성인 이 순간에도 하이먼이 기피할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걸보스(Girlboss)’다.

하이먼은 “사람들은 어쩌다가 소셜미디어 팔로워가 많아진 여성이 기업을 설립한 사례 두세 개를 보면서 거짓 서사를 만들어냈고, 이를 ‘걸보스’의 시대라고 불렀다”며 “그런 시대는 존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있었다.

이제 기피 대상이 된 이 해시태그의 기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세였던 유통 브랜드 내스티 갤의 설립자 소피 아모루소는『#걸보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아모루소는 8년 동안 내스티 갤을 운영하며 이베이 스타트업에서 투자금 4000만 달러를 유치하고, 60개국에 고객을 두고, 로스앤젤레스 멜로즈 애비뉴에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한 기업으로 키웠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에서 18개월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에 힘입어 아모루소는 다른 여성 기업인과 인터뷰하는 팟캐스트 ‘걸보스 라디오’를 론칭했다.

하이먼이 걸보스 현상을 의식하는 이유는 지난 5월, 글로시에 설립자 에밀리 와이즈(37)가 육아휴직을 위해 CEO직을 사임하고 회장직에 오를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와이즈의 뷰티 사업은 걸보스 담론이 사회에 확산되는 동안 18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제이크루(J.Crew)가 타일러 헤이니의 설립 2년 차 스포츠 의류 기업 아웃도어 보이스(Outdoor Voices)를 ‘추천 브랜드’에 포함한 것도 이 시기였다. 헤이니는 2015년 가을 오스틴에 아웃도어 보이스의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당시 27세였던 헤이니는 제너럴 캐널리스트, GV, 제이크루 전 CEO 미키 드렉슬러 등 투자자로부터 6000만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그해 워비파커 출신의 젊은 인재 스텝 코리와 젠 루비오가 스마트 수하물 업체 어웨이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코리는 2018년 11월 포브스 표지를 장식했고, 회사는 2019년 14억 달러로 가치를 평가받았다. 어웨이가 설립되고 1년 뒤 오드리 겔먼이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 더윙을 설립했다. 더윙 회원들에게는 퇴근 후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힐러리 클린턴 등 특급 연사들의 강연이 제공됐다. 포부가 큰 여성들이 연간 최대 2700달러를 내고 더윙에 가입했으며, 이 브랜드는 2020년 팬데믹이 닥치기 전까지 4000만 달러 가치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혜성처럼 등장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끈 각 여성들은 ‘걸보스’라는 칭송을 받았다. 대체로 젊고 매력적인 백인 여성들이다. 이들의 잘나가던 브랜드가 몇 년 사이에 곤두박질치자 고소해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걸보스]는 아모루소의 내스티 갤 브랜드를 띄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2016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듬해 부후(Boohoo) 그룹에 2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피치북에서 2014년에 산정했던 기업가치 8600만 달러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아웃도어 보이스 설립자 헤이니는 2020년 초 리더십을 공격받았다. 동료들이 기자에게 헤이니가 “변덕스럽고 제멋대로”라고 몰래 알린 것이다. 그해 3월 헤이니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비슷한 시기에 코리와 겔먼의 리더십도 언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2020년 팬데믹이 절정일 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회사 CEO직에서 물러났다.

와이즈가 지난 5월 글로시에 CEO직을 사임할 때, 걸보스 시대에 대한 부고는 이미 작성된 지 2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렌디한 밀레니얼 기업의 얼굴로 꼽히던 와이즈의 사임은 여성이 직접 만든 브랜드를 떠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분석과 평론에 새 불씨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직 현업에 있는 여성 기업가들은 이런 평가가 혁신적이고 성장률이 높은 기업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불공정하며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한다.

‘ 걸보스의 죽음’?

물류 기업 시포(Shippo)를 설립해 2017년 포브스 30세 미만 30인으로 선정된 로라 베렌스 우는 “여성 설립자가 물러나면 기사에 ‘걸보스의 죽음’이라는 식의 제목이 달린다”며 “하지만 남자들은 어떤가? 남자들이 그러는 경우는 너무 많아서 별일도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제목이 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는 와이즈가 물러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CEO 사임 계획을 발표한 플렉스포트 CEO 라이언 피터슨(41)을 언급했다. 피터슨이 물러난다고 남성 CEO의 미래에 대한 분석 글이 1000개씩 쏟아지지는 않지만, 여성 설립자가 물러나면 “여성 설립자 전체에 대한 논의로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걸보스는 ‘여성 권리 신장’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시작됐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성 기업인에게 해가 되는 주홍글씨로 바뀌었다. 이 거들먹거리는 이름은 투자자들이 여성 기업인의 회사를 능력이 아니라 성별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러트거스대학의 크리스틴 사이렛 언어학과 교수는 “뭔가를 ‘보스’라고 하는 순간, 우리 여성은 여전히 남들이 만든 어떤 이미지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보이보스’나 ‘남성보스(Maleboss)’라는 말은 없다”며 “이런 말은 보스가 있고, 그다음에 걸보스가 따로 있다는 듯한 인상을 모든 사람에게 심어준다. 여성 기업인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남성들의 세계 속에 있는 ‘걸’이다”라고 말했다.

걸보스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소피아 아모루소는 지난 6월 초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걸보스를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모루소는 잊을 준비가 된 듯하지만, 렌트 더 런웨이의 젠 하이먼이나 그 외 포브스가 인터뷰한 다른 설립자들은 여전히 걸보스 시대의 잔해와 씨름하고 있다.

하이먼은 “때로는 언론에서 여성 설립자나 걸보스의 전성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며 “이런 사고방식은 여성으로서 투자금을 모으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현실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릴라 코스그로브(31)가 그런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2017년 코스그로브는 치과 교정 업체 캔디드를 공동 설립하고 치아 교정기 업계의 워비파커가 되고자 했다. 그 후 코스그로브가 유치한 투자금은 1억5000만 달러다. 다른 여러 CEO와 마찬가지로 지난 2년 동안 코스그로브는 자신의 회사를 소비자 직판 브랜드에서 치과의사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B2B 모델로 전환해야 했다. 코스그로브는 미국 대법원이 임신 중지 허용 판결을 뒤집은 직후 포브스 인터뷰에서 “지금 이 세상에서는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물며 기업 설립자는 말할 것도 없다”며 “그런데 심지어 여성이면 자본과 지원에 접근하기가 그보다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금 중 단 2%만 여성 설립자에게 돌아간다. 유색인종 여성 설립자에게 가는 투자금은 겨우 0.2%다. 이 수치는 미투 운동과 타임즈업(미국의 성범죄 및 성차별 대항 운동)이 미국의 담론을 크게 바꿔놓은 뒤에도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최근 조직과학 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2100개 스타트업 중 여성이 설립하고 초기 투자 라운드에서 여성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은 기업은 다음 라운드에서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더 적었다. 연구자들은 초기 단계 투자가 유망한 아이디어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아니라 성별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보여주기식 투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성 리더에게만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가운데 최대 규모(관리 자산 규모 3억 달러)인 리싱크 임팩트의 헤이디 파텔 총괄 파트너에 따르면 ‘걸보스’라는 단어는 이러한 환경의 부산물이다. 투자자가 여성 설립자에게 투자하면서 안전성을 확보하고 싶은 경우, 유명 인사에게 투자하는 것은 개인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더 많은 자금을 끌어보으는 수단이 된다. 파텔은 “소비자 사업에서 아주 독특한 현상”이라며 “마케팅과 영감을 주는 스토리 라인이 중요하다. 이는 젊은 여성 소비자들에게 소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름이 보여주듯 젊음을 강조하는 걸보스는 MZ세대를 겨냥한 용어다. 그러나 2022년 포브스가 선정한 자수성가 여성 부자 순위에 오른 상위 5명의 자산 가치는 300억 달러가 넘으며, 모두 1948년 이전에 태어났다. 평균 연령이 60세인 이들은 그 누구도 스스로를 걸보스라 칭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아웃도어 보이스 설립자 헤이니는 자신이 한 번도 ‘걸보스’라 불린 적이 없고 스스로 그렇게 칭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헤이니는 와이즈가 사임을 발표한 뒤 인스타그램에 “나는 나 자신을 걸보스와 연결지은 적이 없다. 이제 기자들은 이 테마를 이용하여 클릭 수를 높이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썼다. 헤이니는 2021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 설립자인 점이 도움이 됐다. 나는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했고, 이는 막 성장하는 고객 커뮤니티와 직접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투자 유치의 관점에서도 도움이 됐다.”

추앙 후 끌어내리는 ‘취소 문화’

헤이니를 비롯한 여성 설립자들을 띄워준 긍정적 언론은 그들의 실패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는 여성 리더를 일단 띄워준 뒤 말이나 행실을 잘못하는 사람을 찾아 끌어내리는 ‘취소 문화(cancel culture)’의 밑거름이 됐다.

젊은 여성 설립자와 CEO 다수는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 한다. 스마트 정수기 업체 베비(Bevi)를 설립해 2014년 포브스 30세 미만 30인에 선정된 일라이자 벡튼(38)은 인터넷에 연결된 정수기를 미국 전역의 사무실 4000곳 이상에 배포하면서 95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벡튼은 “나는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나는 내 일이 좋고, 가족, 친구, 고객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업무에 몰두하며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주의를 빼앗긴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알렉사 허시펠드도 이렇게 주의를 빼앗는 일을 피하는 기업인 중 하나다. 디지털 사무용품 업체 페이퍼리스 포스트의 공동 설립자인 허시펠드는 직원 100명을 두고 자신의 플랫폼에 사용자 1억7500만 명을 끌어들였다. 피치북에 따르면 페이퍼리스 포스트의 기업가치는 2018년 마지막 투자금 유치 당시 1억1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허시펠드는 벡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개인 브랜드를 홍보하려 하지 않는다.

허시펠드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IT 업계의 여성으로서 어떤 일을 할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내가 걱정하는 건 우리 제품, 회사, 일자리다. 이런 자리에 올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책임을 짊어지는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소외된 10대 청소년을 위한 정신 건강 코칭 플랫폼 마인드라이트 헬스의 설립자 애슐리 에드워즈(31)는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걸보스 시대의 교훈을 한층 뼈저리게 느꼈다. 최근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를 비롯한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 180만 달러를 유치한 에드워즈는 “내가 흑인 여성으로서 해낸 일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면서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시포로 10억 달러 가치평가를 받은 로라 베렌스 우는 소셜미디어를 포함해 대부분의 미디어를 거부한 덕분에 걸보스 지뢰 상당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미디어는 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며 “미디어를 사업상의 우선순위나 CEO로서 내 관심사와 결부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다수의 나이 든 고위 경영진이 걸보스 시대 이후의 여성들에게 하는 조언과 일치한다. 애니타 카마이클 로버츠는 군인 출신으로 실리콘힐스 캐피털의 설립 파트너이자 포브스 선정 50세 이상 50인 중 한 명이다. 로버츠는 나이와 인종 때문에 한 번도 걸보스라는 칭호에 시달리지 않았다. 실제로 업계에서 53세 흑인 여성이 수백만 달러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로버츠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보스는 그 방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무관하다”고 말했다.

- 렌트더런웨이 CEO 제니퍼 하이먼(왼쪽)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퀵북 커넥트’ 행사에서 저널리스트이자 소비자 기술 전문가인 케이티 린덴돌과 비즈니스 구축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 해시태그로 보는 트렌드 - 소피아 아모루소가 회고록 『#걸보스』를 출간한 2014년, 이와 동일한 해시태그를 단 영상이 틱톡에서 60억 회 이상 조회됐고, 인스타그램에는 관련 게시물 2600만 개가 올라왔다. 또 #걸보스는 지난 8년 동안 트위터에서 450만 회 이상 사용됐으며 그중 약 절반은 2021년에 나왔다. 저명한 여성 설립자들이 끌어내려진 순간이었다.

- MAGGIE MCGRATH, ALEXANDRA STERNLICHT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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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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