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인데도 만년설과 빙하의 설경이 펼쳐진 알프스산맥. 녹색 초원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있는 산길을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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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가 몰려올 때면 산과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게 제격이다. 여름휴가로 스위스 알프스산으로 열차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열차로 오르는 산이라고는 하나, 백두산이나 한라산보다도 고도가 높은 산이다. 시원한 산속에서 피서를 즐기고, 조그만 기차역에서 목가적 낭만도 경험할 수 있다. 알프스산맥 위에 펼쳐진 만년설과 빙하를 보며 명상에 젖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 비해 알프스산맥의 기후는 상큼한 공기와 쾌적한 기온 덕분에 더위를 피하기 그만이다.아름다운 알프스산맥의 나라 스위스로 출발하기 전에 ‘스위스 패스’를 준비하면 아주 편리하게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기차·버스·보트·파노라마기차 등 여러 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고, 500여 곳에 이르는 박물관 전시회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여행 경비를 아끼는 효과도 크다.스위스 일주여행은 어느 기차역에서나 내려서 근처 마을을 돌아본 후, 다음 기차 시간에 맞추어 또 이동하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동서로 뻗은 알프스산맥과 크고 작은 호수들이 어우러져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만슈어 등이 공용어다.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취리히(Zurich)에 도착했다. 취리히는 스위스 중부 지역에 있는 취리히호의 북쪽 끝에 있다. 철도, 도로 및 항공 교통의 중심지이고, 유럽에서 런던에 이어 두 번째로 경쟁력 있는 금융 센터이다. 또 중요한 교육기관이 많은데, 특히 ETH(에테하)라고 불리는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Zürich)는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으로 유명하다. 2016년 이후 지속적으로 세계 상위 10위 대학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이 대학을 졸업했으며, ETH의 학생 및 교수 출신 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30명이 넘는다.관광선이 오고 가는 아름다운 취리히 호반을 산책하며 스위스다운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이 여행의 백미다.
유럽의 정상, 스위스와 알프스산맥
▎스위스를 상징하는 마터호르산. 하루에도 여러 번 모습과 색깔이 바뀌며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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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가장 붐비는 취리히 중앙역에서 평소 가고 싶었던 생모리츠(Saint-Moritz)를 목적지로 정해 기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산과 호수, 푸르른 숲이 스쳐지나간다.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스위스 전도를 펼쳐놓고 생모리츠까지 가는 중간 역들을 살펴봤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6위인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이 스위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음을 발견하곤 호기심이 발동했다. 언제 다시 리히텐슈타인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호기심은 더 커져 결국 그곳에 들르기로 결정했다. 중간 역인 쿠어(Chur)에 내려서 리히텐슈타인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 했는데, 기차는 없고 버스를 타야 한단다. 이곳으로 가는 버스 요금도 스위스 패스에 포함돼 있어 편리하다.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니 리히텐슈타인 최고 중심지에 닿았다. 그런데 중심가치고는 너무도 조용했다. 안내판을 보니 택시를 호출하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택시를 타고 중심가를 돌아보고 전망 좋은 식당을 찾아 요기를 하며 경치도 즐겼다. 상점에 가니 알프스산에 방목하는 소들이 걸치고 있는 쇠방울 종에 리히텐슈타인이라고 새겨진 리본이 예쁜 꽃으로 장식돼 재미를 준다. 인구 약 3만 명인 리히텐슈타인공국은 서쪽에는 스위스, 동쪽에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국방은 스위스에 의지하고 있고, 제3국에서 스위스 대사가 리히텐슈타인을 대표해 외교 행위를 할 수 있다. 국경 가까이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건설 관련 공구 및 엔지니어링 회사인 힐티(Hilti)사의 간판을 보니 반가웠다. 이 조그만 나라가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한 것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기차에 올라 생모리츠로 향했다. 중간중간 철로를 보수하고 있어 속도가 느려지곤 했는데, 창밖 아래는 그야말로 아찔한 절벽이었다.
1928년과 1948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인 생모리츠는 알프스의 유명한 리조트 타운으로, 해발 약 1800m 고지에 자리한다. 호텔 실내 수영장에서는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 아령을 들고 체조를 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이 들면 이런 곳에 와서 수중 에어로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터호른산 밑에 자리한 체르마트 마을.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은 여름 트래킹과 겨울 스키의 천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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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피츠 나이어(Piz Nair, 3057m) 설산에 올랐다. 여름철인데도 설경이 펼쳐진 산맥을 바라보니 산 아래쪽으로는 녹색 초원과 숲이 어우러져 있고 잔잔한 호수가 보여 알프스 특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 있는 케이블카와 트램을 타고 코르바츠(Corvatsch) 같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알프스의 여름 풍광을 사진에 담았다. 생모리츠는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워 저녁에는 자동차 편으로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마을로 가서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다시 기차를 타고 달려 아름다운 도시이자 알프스산맥을 넘는 교통 요지인 루체른(Luzern)에 도착했다. 유명 관광지인 루체른에서는 성당과 박물관 같은 옛 건물을 많이 볼 수 있고 알프스산맥과 루체른호의 경치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예쁜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지붕이 덮인 나무 인도교인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지붕 다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트러스교이다. 루체른의 상징이자 스위스의 주요 관광 명소인 카펠교를 걸으며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다음 일정으로 해발 3454m에 위치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Jungfrujoch)역으로 향했다. 붉은색 톱니바퀴 산악열차는 험준한 알프스의 바위를 뚫고 만든 터널을 넘어 힘겹게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무려 110년 전인 1912년에 개통된 노선이다. 당시 16년에 걸쳐 역경을 이겨내고 완성한 선로를 보며 인간의 도전 정신과 기술력에 감탄했다.
▎설산을 배경으로 호수가 아름다운 도시이자 알프스산맥을 넘는 교통 요지인 루체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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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요흐역에 도착하니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이라는 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발 3571m에 자리한 스핑크스 전망대에 올랐다. 눈이 조금씩 흩날리는 사이로 알프스산맥이 펼쳐진 거대한 빙하가 시선을 압도했다. 갑자기 나타난 까만 새 한 마리가 알프스 산들을 설명한 안내판 위에 내려앉았는데, 마치 산의 안내를 자처하는 듯했다.스핑크스 전망대에는 우주선처럼 생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관측소도 있다. 이곳에선 빙하학 등 환경 연구가 이뤄진다. 얼음궁전에 들러서 재미있게 조각해놓은 얼음 작품 사이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유럽의 지붕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열차 승무원
▎스위스 산상 기차 여행은 아찔한 높이의 계곡과 터널을 통과하며 멋진 알프스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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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빙하특급(Glacier Express) 열차를 타고 산속을 달렸다. 스위스를 상징하는 마터호른(Matterhorn) 산기슭에 자리해 스위스와 알프스를 찾는 등산객과 스키어들을 반기는 리조트로 유명한 체르마트(Zermatt)로 이동했다. 시시각각 색깔이 달라지고 구름에 의해서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마터호른산을 찾을 때마다 신비로움을 느낀다. 아름다운 체르마트 마을을 산책하다가 저녁에는 알프스 토속 음식점에 들러 구미가 당기는 라클렛(Raclette) 치즈 구이로 식사를 했다.이튿날, 화창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터호른, 빙하천국: matterhorn, glacier paradise’이라는 사인이 있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마터호른산을 마주 보고 있는 클라인 마터호른(Klein Matterhorn, 해발 3883m)을 찾기 위해서다. 케이블카가 정상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 구간은 거의 수직 상승에 가까워 아찔한 스릴을 만끽했다. 정상에 내리면 조그만 터널을 통해서 이동하는데, 30년 전 겨울 처음 찾았을 때 무거운 스키를 메고 터널을 걸으며 산소가 부족해 숨이 너무 가빠서 고생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3883m·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악승강기, 천국의 최고 사진: 3883m·Europe’s Highest Mountain Lift, Best shot of paradise’이라고 적힌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 마주 보는 마터호른산의 위용과 알프스산맥을 이루며 우뚝우뚝 솟은 고봉들은 볼 때마다 가슴 벅찬 감동과 호연지기를 느끼게 해준다. 겨울철엔 이곳에 올라 스위스와 이탈리아 쪽을 넘나들며 여러 번 스키를 즐기곤 했다.여름에 찾는 체르마트도 참으로 멋진 여행 코스다. 케이블카로 중간 정류장까지 내려와서 초록 풀밭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있는 산길을 걸어 트래킹을 즐기며 하산했다. 방목한 소들이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고 가끔 귀엽게 생긴 마멋(marmot)들이 땅속에서 ‘쏙’ 올라와선 경계에 바쁜 모습이 재미있다.눈앞에 보이는 마터호른산 반대쪽은 이탈리아 지역으로, 몬테체르비노(Monte Cervino)산이라고 부른다. 아기자기한 체르마트 마을에는 마터호른 박물관이 있어서 등산가들을 위한 역사와 정보를 제공한다. 이 산속 마을에서는 대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 배터리 차량만 운행된다. 심지어 일부 호텔은 마차도 운영한다.이제 높은 산에서 내려가는 기차를 타고 레만 호수에 자리한 로잔으로 향했다. 장거리 이동 중 여름 트래킹과 겨울 스키로 유명한 크헝-몽따나를 지나쳤다. 예전 어느 겨울에 그곳의 산속 마을을 방문했을 때 현대자동차 판매소를 마주치고는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의 활약에 뿌듯해했던 기억도 난다.어느새 기차는 레만(Léman) 호숫가를 달리고 있다. 시옹성이 있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몽트뢰 호반을 지나 드디어 올림픽의 수도이자 대학과 국제회의의 고장인 로잔(Lausanne)에 도착했다. 로잔은 국제경영개발원(IMD) 최고경영자 과정에 여러 번 참여해 더욱 친숙한 도시다.로잔은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지역에 있는 아름답고 거대한 레만 호반에 자리한 도시로,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스포츠중재재판소, 약 55개에 이르는 국제 스포츠협회를 유치하고 있다. 레만호 반대쪽에 있고, 프랑스의 미네랄워터로 유명한 에비앙(Évian)까지 관광선으로 왕복하면서 호수와 알프스가 어우러진 경치를 보는 것도 멋진 일정이다. 배 요금도 물론 스위스 패스에 포함돼 있다. 로잔에서는 보-리바지 팰리스(Beau-Rivage Palace) 호텔에 여장을 푸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스위스 일주여행의 마지막 도시로 유엔의 유럽본부, 국제적십자본부 등 많은 국제기구가 있는 제네바(Geneva)에 도착했다.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제네바는 취리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춘 도시로 손꼽힌다. 레만호 주변에는 세계적인 시계 회사를 비롯해서 최고급 호텔들이 멋지게 들어서 있다. 여름에 제네바에 오면 145m 높이로 물줄기를 뿜어내는 레만호의 고사분수를 볼 수 있다. 백조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호숫가는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알프스를 떠나 도시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제네바에서 프랑스 초고속 열차인 TGV 편으로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경유해 우리나라로 귀국했다.이번 스위스 일주여행도 몇 가지 기억에 남을 만한 메시지를 선물했다. 첫째, 그림같이 아름다운 스위스의 풍광을 보며 든 생각이다. 스위스 못지않게 산이 많은 우리나라도 그들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나라로 산림을 가꾸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둘째, 기차가 알프스산을 달릴 때 기차 승무원과 함께 나눈 대화이다. 궁금증이 발동해 승무원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나요?” 열차 승무원은 담담하게 “저는 6개 국어를 합니다”라고 말했다.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영어·로만슈어에 마지막으로 지역 사투리까지 구사한다는 대답이었다. 우리나라도 20~30년 후에 온 국민이 4개 국어를 구사하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보다 엄청난 수준으로 국력 신장이 이뤄질 거라 확신한다. 한국어·영어·중국어·일어 등 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모습은 우리의 미래를 이끌 거대한 글로벌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다. 당장 멀리 보고 실행하자!
※ 이강호 회장은…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