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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쉼의 경계선 

휴가를 잘쓰는 리더 

친구가 고민을 털어놨다. 주말에 일을 안 하는 건 당연하지만 금요일 이후에 직원이 이메일을 안 보는 바람에 토요일에 중요한 고객 미팅이 잡혀 있던 경영자가 미팅 장소와 시간이 바뀐 것을 몰라서 엉뚱한 장소에 가서 2시간을 허비하고 오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월요일까지도 연락이 안 되었던 그 직원은 퇴근 이후에 이메일이 와서 몰랐다고 하고, 경영진은 쉽게 풀 수 있었던 문제가 복잡해져서 주말에 고생을 한 것이다. 워라밸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쉼과 휴가 시간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틀과 경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기회가 될 수 있고 불분명한 스트레스 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리더로서 휴가와 쉼에 관한 선을 어떻게 긋는 게 제일 효과적인지 고민이 많아진다. 미국도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고 오래 일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쉼과 휴가에 관한 좋은 습관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2017년 미국여행협회가 미국 직장인의 휴가 사용법을 연구한 결과, 제대로 사용되지 않은 휴가 일수가 무려 한 해 7억500만 일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2017년 연구한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쉬지 않음으로써 창의력, 행복, 효율성을 잃고 번아웃으로 고생한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계속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유럽에서 일할 때 처음으로 휴가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때는 점심시간도 아껴가면서 일하고 프로젝트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많이 맡는 태도가 항상 더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년 전에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에서 일할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동료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일을 딱 멈추고 식사를 즐겼고 휴가를 가면 정말 연락이 안 됐다. 퇴근하면 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싫어하는 미국, 반면 친구들을 만나면 직장생활 이야기만 하던 한국에서의 경험은 전혀 달랐다. 낯선 워라밸 문화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이게 왜 열심히 일하는 것 만큼 중요한지도 배우고 또 호기심을 갖게 됐다. 쉼과 휴가를 어떻게 이용해야 유연하고 조직 통솔력을 갖춘,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휴가에 관한 고민을 복지로 해결하려고 했다. 프랑스 법률은 30일 휴가를 무조건 보장해주지만, 미국은 그런 보장을 해주지 않으므로 복지로 해결할 방안을 궁리한 것이다. 넷플릭스, 구글, 메타(페이스북), 링크드인, 소니 등 대형 기술기업들이 점점 ‘무제한 휴가 정책’, 다시 말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유급휴가(Unlimited Paid Time Off)를 제시하면서 휴가에 대한 제한을 풀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휴가를 무한으로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눈치가 보였다. 정말 이 날짜와 이 시간에 내가 없어서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내가 협업과 역할을 못 하는 팀원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휴가를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휴가를 냈다고 해도 “급하면 이메일이나 문자를 줘요” 하는 자동 이메일 회신을 세팅해놓고 휴가를 간다. 결국 휴가를 갔다와서도 더 지친 상태로 다시 출근을 한다. 휴가 내내 긴장하고 대기하고 걱정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돌아와서는 밀린 일을 하니 일이 더 늘어나서 더 스트레스가 큰 것이다. 무제한 휴가는 여전히 유행하는 복지 혜택 중 하나지만 완벽한 답이 아님을 보여준다.

리더라면 쉬는 게 더 쉽지 않다. 필자도 경영자와 창업자로서 이 고민을 많이 했다. 창업자이다 보니 규정상 휴가에 제한은 없다. 내가 몇 시부터 일을 하는지 관여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쉬기가 쉽지 않았다. 리더이자 책임자인 내가 휴가 가고 쉬면 회사는 어떻게 되지? 일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휴가를 내고 쉬면 이기적인 건가? 혹시 내가 쉬는 사이에 중요한 프로젝트와 관련된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괜찮다고 하는 마음에 휴가를 미루고 연기하게 되고 어느새 한 해가 또 지나가버린다. 그러다 보니 일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순간도 일을 놓지 못하는 상황(Leaders are always on)이 벌어진다. 일을 더 하게 되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해야 할 일이 늘 산더미인데 휴가를 떠나는 건 리더로서 책임감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돌아보니 핵심은 항상 기대였다. 잘못된 기대가 우리를 실망하게 하고 더 힘들게 했다. 필자가 습관적으로 본 여름휴가와 쉼에 관한 기대가 바로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요새 미국에서는 많은 경영진이 더 적극적으로 휴가를 제대로 진행하려고 더 노력하고 있다. 잘못된 기대를 쌓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제대로 된 쉼을 실천하고 돌아와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푹 쉬고 돌아왔을 때 일이 많이 쌓여 있어 부담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리더들은 철저하게 몇 달 전부터 휴가 계획을 세워서 일체 답을 안 하고 선명한 역할 분담으로 연락이 두절돼도 시스템이 가동하도록 준비를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휴가 중(Out of Office)’ 자동 이메일 답장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따라서도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필요한 정보가 자동으로 나가게 되어 있어야 한다. 휴가 중 연락이 닿아야 하는 상황이나 이 기간에 일을 어떻게 대신 처리하는지 상대방이 어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쉼과 휴가에 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과 습관을 바꾸는 것이 결정적이다. 회사의 성장 계획만 세우지 말고 조직원의 휴식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리더와 팀이 되는 것이 중장기적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빌 게이츠는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일주일은 조용히 산속에 가서 혼자 구상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 시간에는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도 절대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 일주일 동안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책도 읽는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 중요한 사건이 있을 수도 있지만 빌 게이츠는 이 시간을 미리 준비하고 주변 사람들도 아무리 중요한 일이더라도 기다렸다 진행을 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습관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간 쉼을 갖게 된 빌 게이츠는 많은 책을 읽고 공부와 생각을 통해서 더 큰 발전과 혁신을 이루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안고 온다고 한다.

기대에 관한 관점을 바꿔보면 어떨까. 주말에 일을 하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쉴 수 있기 위해 또는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해두는 습관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토요일에 경영진 약속이 있으니 퇴근 전에 미리 확인해줘요”라는 지시만 했어도 혼란의 해프닝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이든 직장인이든 이렇게 장기적 관점에서 조금씩 습관을 바꾸면 우리는 쉬는 날에 충분히 쉬고 돌아와서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니카 H. 강 이노베이터박스 대표는…글로벌 500대 기업, 고등교육기관, 정부 및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실행 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문화 변화, 리더십 개발, 팀빌딩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구글, NBC유니버설, 삼성전자, 펩시코, 트위터, 존스홉킨스대학교, 미국 정부 등 다양한 업계의 고객사와 일하고. 백악관, 아쇼카 체인지메이커(Ashoka Changemakers), 전국여성기업위원회(WBENC) 등으로부터 인정(Recognition)을 받은 창의 교육 전문가다.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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