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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8월 20일, 도나우강의 불꽃놀이 

8월 20일 ‘성 이슈트반의 날’은 헝가리 왕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성인으로 시성된 헝가리 왕국의 초대 왕 이슈트반 1세는 당시 동쪽 비잔티움 제국과 서쪽 교황청 사이의 지정학적 역학관계에서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임으로써 헝가리를 유럽의 일원으로 편입했다.

▎성 이슈트반의 날에 열리는 도나우강의 불꽃놀이. / 사진:정태남
도나우(Donau)강은 영어식으로 ‘다뉴브(Danube)’이다. 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해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비롯하여 동유럽 여러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가는데 그 길이는 장장 2850㎞에 달한다. 옛날 이 강은 방대한 로마제국의 북동쪽 국경선이었다. 헝가리에서는 이 강을 ‘두너(Duna)’라고 한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예로부터 ‘도나우강의 진주’, ‘도나우강의 여왕’ 등으로 불린다. 부다페스트에서 도나우강 주변 풍경의 구심점을 이루는 랜드마크는 강 동쪽의 의사당, 강 서쪽의 왕궁, 세체니 다리이다.


그중에서 세체니 다리는 운치 있고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데, 주탑 두 개는 고대 로마의 개선문 같은 고전적인 형태이다. 이 다리는 19세기 중반 유럽의 앞선 구조역학과 교량건설 기술을 보여주는 현수교로, 일명 ‘쇠사슬 다리’라고도 불린다. 이 다리는 1842년에 착공해 1849년 12월 20일에 개통되었다. 그럼으로써 도나우강 서쪽의 부다(Buda, 현지 발음은 ‘부더’)와 강 동쪽 페스트(Pest, 현지 발음은 ‘페슈트’)가 확실하게 연결되었고, 마침내 1873년에는 부다의 북쪽 오부다(Óbuda, 현지 발음은 ‘오부더’)도 포함하여 ‘부다페스트(Budapest)’라는 이름의 통합된 도시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헝가리에서는 부다페스트를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가장 중요한 국경일, 성 이슈트반의 날


▎페스트 지역 중심광장에서 열리는 축제. / 사진:정태남
부다페스트가 탄생하기 60여 년 전인 1811년의 일이다. 페스트 지역에서 독일어 극장이 새로 세워지고 있었다. 당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어가 공용어였다. 이 독일어 극장 개장을 앞두고 독일 극작가 코체부에(A. von Kotzebue)는 오프닝 행사 축제 공연용으로 독일어 희곡 두 편, 즉 [아테네의 폐허]와 [슈테판 왕]을 썼고 베토벤은 이 희곡 공연을 위한 극음악을 작곡했다. 그중 [슈테판 왕]은 서곡과 부수음악 9곡을 포함해 모두 1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이 곡은 서곡을 제외하고 연주회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슈테판 왕 서곡]의 독일어 제목은 [Musik zu ‘König Stephan’ Op.117. Ouverture]이고 연주 시간은 7~8분 정도다. 한편 독일식 ‘슈테판(Stephan)’은 헝가리에서는 ‘이슈트반(István)’이라고 한다.

헝가리에서 8월 20일은 ‘성 이슈트반의 날’이다. 헝가리 왕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날은 헝가리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자 최대의 축제일이다. 부다페스트 곳곳에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고 다양한 거리음식축제가 열리며 베토벤의 [슈테판 왕 서곡]도 연주된다. 2007년부터는 ‘헝가리 생일축하 케이크’ 만들기 대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성 이슈트반의 날’ 행사의 절정은 부다페스트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이다. 세체니 다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도나우강 상공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것이다. 헝가리에서는 성 이슈트반을 센트 이슈트반(Szent István)이라고 한다. 그럼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마타슈 성당 뒤 어부의 요새 광장에 세워진 성 이슈트반 기마상. / 사진:정태남
먼저 헝가리의 초기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헝가리(Hungary)는 라틴어 표기 Hungaria(훙가리아, 또는 웅가리아)의 영어식 표기이다. 국명에서 Hun-은 로마제국 말기인 기원후 5세기 무렵, 한때 이 지역을 거점으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점령했던 ‘훈(Hun)족’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훈족이 현재 헝가리 민족의 조상이란 뜻은 아니다.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를 머져르오르사그(Magyarország)라고 한다. 오르사그(ország)는 ‘나라’라는 뜻이고 머져르(Magyar)는 헝가리 민족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국내 출판물에서는 보통 ‘마자르’라고 표기한다.

헝가리 왕국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


▎부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세체니 다리와 페스트 지역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 / 사진:정태남
헝가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역사적 사실은 없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헝가리어는 우랄어권의 한 지류인 핀-우그르 어족에 속하고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헝가리 민족은 옛날 아시아와 유럽 동쪽에 걸쳐 광활한 평원에서 살았던 튀르크계 유목민족과 여러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다.

9세기 후반 여러 마자르 부족은 유목 생활에 적합하고 방어에도 유리한 지형을 갖춘 곳을 찾아 떠나 896년경에 도나우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 분지에 터를 잡았다. 그들은 10세기에 들어서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유럽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955년 남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엄청난 패배를 맛보았다. 그 후 11세기를 맞으면서 버이크(Vajk, 997~1038)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그는 프라하의 주교 성 아달베르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세례명이 바로 독일어로 ‘슈테판’, 즉 헝가리어로 ‘이슈트반’이다. 이 이름은 영어로는 ‘스티븐(Stephen)’, 이탈리아어로는 ‘스테파노(Stefano)’인데, 우리말 신약성경에는 ‘스데반’으로 표기되어 있다. 즉, 기독교 역사에서 첫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이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왕관’을 뜻하는 ‘스테파노스(Stefanos)’이니 헝가리 왕국의 초대 왕에 걸맞은 세례명인 셈이다.


▎마타슈 성당과 성 이슈트반 기마상. / 사진:정태남


헝가리 국왕으로서 그의 명칭은 이슈트반 1세이다. 그는 이교도 신앙이 뿌리 깊은 헝가리에 기독교 교세를 확장하다가 성모 승천절인 8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그 후 45년이 지난 1083년 8월 20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이러한 연유로 8월 20일이 헝가리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로 굳어진 것이다. 한편 시성식에 맞추어 그의 유골을 발굴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오른손은 썩지 않고 미라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그의 오른손이 항상 십자가를 잡고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믿었다.


▎화가 벤추르의 그림 [성모 마리아에게 왕관을 바치는 성 이슈트반]. / 사진:정태남


성 이슈트반 기념상


▎영웅광장에 있는 이슈트반 1세 동상. / 사진:정태남
어쨌든 헝가리 역사를 모르더라도 헝가리를 여행할 때 ‘이슈트반 1세’, 또는 ‘성 이슈트반’만 알아도 보이는 것이 상당히 많아진다. 사실 헝가리 곳곳에서 그의 기념상이나 그와 관련된 예술 작품과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예로, 도나우강이 내려다보이는 부다 언덕 위에 자리한 19세기 네오고딕 양식의 마타슈 성당 뒤에 있는 어부의 요새 광장에는 그의 기마상이 성당 뒷면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헝가리의 세종대왕’ 후녀디 마탸슈(Hunyadi Mátyás, 재위 1458~1490)의 이름을 딴 이 성당은 11세기 초반에 이슈트반 1세가 세운 로마 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페스트 지역에 조성된 영웅광장에는 헝가리 흥망성쇠의 역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 14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중 왼쪽에 있는 헝가리 왕 7명 중 첫 번째가 바로 이슈트반 1세이다. 그런가 하면 페스트 지역에서 세체니 다리 부근에는 그에게 바쳐진 대성당 바질리카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대성당 안에 있는 성골함에는 성 이슈트반의 썩지 않은 오른손이 보존되어 있다. 또 대성당 내부에는 헝가리 화가 벤추르(G. Benczúr, 1844~1920)가 이슈트반 1세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있는데, 이슈트반 1세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왕관을 바치는 모습이다. 이는 그가 기독교를 헝가리의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슈트반 1세는 당시 동쪽 비잔티움 제국과 서쪽 교황청 사이의 지정학적 역학관계에서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임으로써 헝가리를 유럽의 일원으로 편입했던 것이다. 이처럼 헝가리는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게 되면서 역사와 문화 발전에 있어서 유럽과 함께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8월 20일 도나우강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이질적인 민족이 유럽 대륙 심장부에 세운 나라 헝가리가 완전한 유럽 국가임을 만방에 천명하는 행사로 보이기도 한다.

- 글·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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