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0) 

쉼-나아가기 위한 충전의 시간 

휴대폰 배터리가 15% 남았다고 경고를 하고, 이어 5%밖에 안 남았다고 경고하면 우리는 충전기를 찾아 배터리를 다시 채운다. 이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한다.

▎에드바르 뭉크 [귀가하는 노동자들] 1914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잠을 자고 나면 또다시 바쁜 아침이 찾아온다. 눈 비비고 일어나 씻고, 움직이고, 활동하고, 밥 먹고, 사람 만나고, 밥 먹고, 집에 와서 씻고 잠들고…. 이 스케줄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하여 나이가 들어서까지 지속된다.

핸드폰 배터리가 15% 남았다고 경고를 하고, 이어 5%밖에 안 남았다고 경고하면 우리는 충전기를 찾아 배터리를 다시 채운다. 핸드폰이 꺼지는 위기에 처하지 않기 위함이다. 운전 중 주유 경고가 뜨면 발 빠르게 근처 주유소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한다.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되고 고갈되었을 때, 사람 역시 충전이 필요하다. 고갈된 에너지는 맛있는 음식으로 채워지기도 하고,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으로 초기화되기도 하고, 푹 자고 편안히 이완됨으로써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도 한다. 고갈된 에너지를 공급하는 이 모든 행위를 통틀어 우리는 ‘쉼’이라고 부른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

저녁 6시가 지나면 지하철역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도로 위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이 가득하다. 퇴근 시간대를 피해 움직이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튿날 스케줄이 있거나 저녁 약속이 있기도 한 상황에서 퇴근 시간대 움직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하다.

작품 [절규]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그림 속에는 어두운 녹색이 자주 등장한다. 뭉크가 5살이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 13살에 돌아가신 누나, 26살에 돌아가신 아버지, 32살에 죽은 남동생, 그리고 총에 맞아 사망했던 사랑했던 연인을 그림 속에 그려낼 때도 뭉크는 녹색을 사용했다. 미술치료 현장에서는 녹색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녹색이 상징하는 에너지가 이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녹색은 편안함과 휴식을 상징한다. 즉, 불안이 많은 사람일수록 녹색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작품 [귀가하는 노동자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녹색으로 그려져 있다.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오늘을 불태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뭉크 특유의 직관적인 감정 표현으로 생생히 드러나 있다. 100년도 더 된 그림이지만 이 장면이 낯설지만은 않다. 어쩌면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난 뒤에 집으로 들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이 그림에 보일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평등한 시간들


▎조르주 쇠라 [그랑자르트섬의 일요일 오후] 1884
저서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독일 심리학자 아들러(Alfred Adler)는 한 개인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벽돌’이라는 단어로 통칭했다. 외모, 능력, 성격, 재산, 학벌, 부모, 친구, 연인, 인맥, 건강 등 이 모든 것이 벽돌이다. 누군가는 벽돌을 아주 많이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해 벽돌을 만들기도 한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벽돌은 다 다르며, 누군가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많은 벽돌을 쌓아놓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인생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런데 벽돌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 사실 벽돌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벽돌로 지어질 집의 모습이다. 벽돌을 쌓아놓기만 하고 정갈하고 튼튼한 집을 짓지 못한다면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고, 벽돌을 조금 적게 가지고 있다 해도 잘 사용하여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들러의 심리학은 ‘사용의 심리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벽돌 중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것이 있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의 벽돌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며, 이 중 자신을 위한 쉼과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자 의지이다. 프랑스의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Georges-Pierre Seurat)는 색을 작은 단위인 점으로 세분화해 하나의 그림에 재조합한 점묘화의 대가이다. 그의 대표작 [그랑자르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파리 센강에 있는 섬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 왼쪽 아래에 누워 있는 노동자부터 오른쪽에 있는 귀족, 중간에 보이는 가족과 강아지까지, 이곳은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파리 시민들의 공간이다.

심리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시간이 없어서’ 쉬거나 힐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너무 바빠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시간이 넘쳐나서 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자신의 일이 있는 바쁜 현대인들 중 휴식이 삶의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쉼과 휴식은 우리 삶에서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너무 많은 일이 먼저 처리해달라고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쉼’은 억지로 해야 한다. 굳이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핸드폰 배터리 충전기를 의식적으로 꽂는 것처럼,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센강을 찾은 파리 시민들처럼 자신에게 휴식의 시간을 일부러 선사해야 한다.

온전한 쉼의 충전력


▎오귀스트 르누아르 [잠자는 소녀] 1880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Auguste Renoir)가 그린 [잠자는 소녀]의 주인공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낮잠을 청하고 있다. 무릎에 앉은 고양이가 슬며시 올려놓은 앞발을 왼손으로 꼭 쥔 채, 이 둘은 달콤한 꿈나라로 떠나는 중이다. 소녀와 고양이는 피곤함과 고민거리를 내려놓고, 이 다음을 위해 잠깐의 재정비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일본의 게임개발사 캡콤이 출시한 게임 ‘바이오 하자드’는 주인공이 무기를 들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레버넌트들을 처리해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주인공이 사용하는 무기에는 특수한 기능이 있는 파츠들을 넣을 수 있는데, 그중 ‘충전사격’이라는 파츠가 있다. 이 파츠는 다시 A, B, C로 나뉘는데, A는 사격 버튼을 1초간 눌렀다 떼면 대미지가 30~75%, B는 2초간 눌렀다 떼면 대미지가 60~150%, C는 3초간 눌렀다 떼면 대미지가 100~200% 상승한다.

적들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서 1초라도 빨리 한 발이라도 더 총을 쏘는 것과 시간을 들여 에너지를 모았다가 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낫다는 기준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총을 쏘지 않고 충전하는 것이 결코 손해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온 위급 상황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쉼도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감이 코앞인 상황이 아니라면, 쉼은 더 나아가기 위해 장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쉬는 것을 불안해하고, 쉬는 것을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 시간이면 이걸 더 할 텐데’라며 쉬는 자신을 한심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쉼은 다음 스텝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자 무거운 짐들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다.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무얼 하며 쉬었냐는 질문에 ‘책을 보며 쉬었어요’, ‘영화를 보며 쉬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심리치료실에 방문한 내담자들이 이렇게 대답하면 그것은 책을 읽은 것이며 영화를 본 것이지 온전한 쉼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주일에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쉼’을 수행해보라는 숙제를 내어준다. 100% 순수 농도의 쉼을 경험한 사람들이 ‘쉼’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 잠깐 멈추어 충전하는 것의 힘을 깨달은 덕분이다.

나를 위한 공급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3
세잔(Paul Cezanne)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다. 서양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5대 사과가 있는데, 자연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뉴턴의 사과, 그리스신화를 이해하기 위한 파리스의 황금사과,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아담과 이브의 사과,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빌헬름 텔의 사과,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세잔의 사과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세잔은 살아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이기도 하다.

세잔의 작품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2011년 2억5000만 달러에 판매된 그림이다. 카드놀이는 유럽에서 농민들이 주로 즐겼던 소박한 놀이문화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무거웠던 삶을 나누는 모습이다. 지친 하루를 보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채움이 된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그림 속 농민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 분명 있어야 한다. 일에 치여 사느라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면, 나 자신을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며 즐길 거리를 찾는 것도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났던 일들도 있을 것이다. 보고 싶었던 사람과의 만남,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 훌쩍 떠나서 보고 싶었던 바다, 읽고 싶었던 책, 하루를 통으로 비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등, 생각만 하던 것들을 자신의 스케줄 속에 채워 넣어보면 어떨까. 쉼의 가치를 생각하며 그 시간을 보낸다면 휴식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충전의 시간임을 깨달을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08호 (2022.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