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예술적 창조와 수학적 문제 해결의 순간에 작동하는 우연성 

예술을 창조하는 순간과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에 위대한 예술가와 수학자는 어떤 심리 상태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적·지적 사유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의식하고 온전히 통제할까. 만약 의식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나 수학자가 되려는 이들은 뭘 해야 할까. 행운을 기대해야 하나?

▎수학계 최고 권위상으로 평가받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7월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과학원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및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필즈상(Fields Medal)을 받았다. 필즈상은 세계수학자대회(ICM: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에서 4년마다 수여하는데,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올해 이 대회는 지난 7월 5일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렸다. 최근 4년간 이룬 수학적 업적들의 평가와 그에 따른 시상이 이 대회에서 주로 하는 일이다.

허 교수는 동아사이언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단어와 문장을 발화했다. 수학적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우연’을 거론했다.

그가 생각하는 우연이란 어떤 걸까. 허 교수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생각하는데, 지난주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해법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능, 지식처럼 주어진 조건은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는 일들이 항상 일어난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결국엔 우연인 것 같다.”(위 기사) 우연히 어떤 생각이 난다는 이야기는 자기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자각이자 솔직한 보고이다. 나에게는 이런 자각을 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한 허 교수가 참으로 훌륭해 보였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이런 무능력은 사실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자신의 통제력 밖에 있는 이러한 우연적 상황 혹은 상태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우리 두뇌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종류의 랜덤 커넥션이 일어날 텐데, 이게 어떠한 패턴으로 일어나는지에 따라서 우리가 소위 이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것 아닐까.”(위 기사) 우리 뇌는 뉴런이라 불리는 뇌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은 동시 발화함으로써 연결된다. 허 교수가 말한 커넥션(connection)이다. 연결 상태는 짧은 순간에도 끊임없이 바뀐다. 뉴런 연결의 지속적 변화가 우리의 정서, 감정, 의지, 생각, 예술적·학문적 영감, 의식 등 다양한 마음 상태를 낳는다. 허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연결은 임의로(randomly) 이루어진다. 그런데 임의라는 표현은 아직 그 안에서 어떤 질서나 패턴을 파악하지 못해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일 것이다. 영국 수학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임의로 보이는 대표 사례인 주사위 던지기가 실은 예측할 수 있는 결정론적 시스템임을 증명하려는 여러 수리과학적 노력이 역사적으로 있었음을 자신의 책(한국어 번역본: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2016, 반니)에서 소개했다. 뇌과학자들이 언젠가는 뉴런 연결의 임의성을 필연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계수학자대회는 필즈상 말고도 다른 상들을 수여한다. 그중에는 수학의 실용화를 이끈 학자에게 주는 ‘가우스상’이 있다. ‘가우스상’은 독일의 저명한 수학자 가우스(Friedrich Gauß, 1777~1855)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20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아다마르는 가우스가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 잘 몰랐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수학 분야에서 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가우스는 이전에 알던 것 중 어느 것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Hadamard, J. 1945. An Essay On The Psychology of Invention in The Mathematical Field. New York: Princeton University Press. p. 15). 아다마르는 또 다른 수학자 푸앵카레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프랑스인 푸앵카레(Henri Poincaré, 1854~1912)는 풀리지 않는 어떤 수학적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지친 나머지 그 문제를 잠시 잊기 위해 지질학 탐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타고 왔던 버스에 발을 올리는 순간 어떤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르더니 수년 묵은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이디어는 마치 섬광처럼 갑작스레 그의 마음속에서 번쩍였는데, 놀라운 것은 그전까지 해왔던 고민이 그 순간의 아이디어와 관련해서는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같은 책, 13쪽). 아다마르가 언급한 또 다른 위인은 프랑스의 시인 라마르틴이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 1790~1869)은 1830년과 1848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정치인이자 낭만주의 시인이었는데, 그는 시의 요소들을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상황에 종종 처했다고 보고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시인은 어떤 자기 성찰도, 자의식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같은 책, 17쪽). 라마르틴처럼 푸앵카레도 갑작스러운 번개의 섬광처럼 자신이 문제로 삼았던 것들이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서 그냥 풀려버리는 상황을 겪었다(같은 책, 13쪽).

푸앵카레의 경험은 특히 유명해서 여러 사람이 그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국의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버스에 타기 이전까지의 푸앵카레가 자신을 괴롭혔던 수학적 문제를 잠시 잊고 있었고, 그런 그의 무의식(unconsciousness)을 “창조적이지만 완벽하게 숨겨진 자아에 의해 수행된 매우 복잡한 문제들의 [해결을 향한] 배양·부화 상태(incubation of hugely complex problems performed by an entire hidden, creative self)”라고 묘사했다(Sacks, O. 2017. The river of consciousness. New York: Alfred A. Knopf, p. 144).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해결


▎6월 18일(현지 시간)까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 퍼포먼스홀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한예종)
올리버 색스는 배양·부화 상태의 실체를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색스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런 상태를 설명하거나 규명하지 못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 과정에 포착되지 못한 무의식적 사유 과정은 아직은 설명되지 못한 우리 마음의 블랙홀이다. 허준이 교수는 이런 블랙홀이 위대한 수학자들의 세계에서는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수학자 대부분은 자신이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허준이 교수가 말한 우연은 설명되지 못한 마음의 블랙홀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단어일 수 있다.

202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펜로즈도 푸앵카레에 대해 한마디 했다. 푸앵카레가 버스를 타던 그 순간 그에게 섬광처럼 갑작스레 번쩍였던 그 놀라운 생각은 완벽하게 형성된 의식의 세계였다. 다만 그것은 그 이전에 그가 가졌던 매우 긴 숙고의 순간들을 전제로 한다(Penrose, R. 1989. The emperor’s new mi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 419). 펜로즈는 1989년에 이렇게 이야기했고, 위인들이 가졌던 매우 긴 숙고의 순간들이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는 그 이후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허준이 교수의 우연(?)한 성공은 그가 보낸 매우 긴 숙고의 순간들을 전제로 한 것이다.

19세기의 푸앵카레는 물론, 21세기의 허준이도 모두 노력가였다. 두 사람은 어느 순간에,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던 순간에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노력의 열매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언제 열매를 맺을지 잘 모른다.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17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굉장히 심란하고 당황스럽다”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그 이유는 그가 우승할 것으로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푸앵카레가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시점을 알았다면 그는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람 쐴 겸 탐사 혹은 소풍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창조적 순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모르는 것은 예술가, 특히 작곡가들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가 했다는, 사실은 그의 말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다음의 말은 마음의 블랙홀 상태를 잘 묘사했다. “기분이 좋을 때, 마차를 탈 때나 맛있는 식사 후 산책할 때, 혹은 잠 못 이루는 밤중에, 무수한 악상이 내 마음속으로 몰려온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걸까? 나는 모른다. 내 의도와도 상관없다.”

나는 이 마음 상태를 관찰자의 것으로 본다.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에 참여하지 못하는 관찰자는 자신에게서 떠오르는 생각들의 저자가 아니다. 그 생각들은 단지 그들에게 일어날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그들 안에서 어떻게 제시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관찰자들은 그 생각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이런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경험을 토로했던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작품의 씨앗은 종종 갑자기,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 씨앗들은 상상할 수 없는 힘, 속도와 함께 뿌리를 내린다. 마음의 토양에서 씨앗들은 폭발한다. 뿌리와 함께 잎, 잔가지, 꽃들이 순식간에 피어난다. 그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요동치고 몸부림치며 비틀어진다. 나는 그것들을 간신히 받아쓸 뿐이다.”(Brown, D. 2007. Tchaikovsky. New York: Pegasus Books, p. 207). 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인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는 영혼(spirit)이 그를 움직일 때 작업을 한다고 썼는데(Oates, Stephen B. 1987, William Faulkner. New York: Harper and Row, p. 96), 그 영혼이 무엇이건 시인은 그것을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제할 수 있었다면 그는 그것이 자신을 움직일 때만이 아닌, 다른 순간에도 글을 썼을 것이다. 시인은 그 영혼의 작동 기제는 더더욱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이콥스키와 포크너, 푸앵카레와 가우스, 라마르틴과 허준이, 임윤찬 등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 이들은 그 일을 할 때 단독 주체가 아니었다. 그 일들은 다른 요인들과 함께 해결된 것 같다. 그 다른 요인들은 이들을 둘러싸고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모든 것이다. 이들은 성공의 순간에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잠시 머물다가는 그릇 같다. 생각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다니며 점차 풍성해지는 것이 신기하다. 마음이 맑은 날에는 제가 거대한 구조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것이 잘 느껴진다.” 허준이 교수의 말이다. 내 안에 다른 이들이 들어와 있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내가 있다. 임윤찬 안에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있었다.

성공의 순간, 그 성공을 거둔 이는 성공의 주체일까, 미리 정해진 상황의 수혜자일까. 두 가지 다 아닐까. 위대한 예술가와 수학자가 되려는 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해야 하며, 그런 일을 함으로써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야 할 것이다. 그러고는 행운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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