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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32) 21세기 장사꾼이 본 위대한 리더 칭기즈칸 

 

아무리 첨단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인간의 본능은 2000년 전이나 800년 전이나 근본적으로는 똑같다.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의 성공 요인을 21세기 기업인의 시선에서 살펴보았다.

킵차크한국의 수도 시라이의 한 초소에서 보초를 서던 몽골 병사가 그만 잠이 들었다. 누구한테 들킨 것도 아니지만 잠에서 깬 병사는 깜짝 놀라 친위대장에게 자백했다. 마침 수도사 일행이 그 병사의 처형식을 구경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가 있었느냐?”고 병사에게 물었다. 그 병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잠든 시간에 적이 쳐들어왔더라면 우리나라가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경계 중에 잠들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병사는 친위대장 명에 따라 그날 바로 처형됐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간 이 스토리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왜 그 몽골 병사는 사형당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졸았다는 것을 자진해서 신고했을까? 본인이 사형을 당하면 엄격한 군령은 유지되겠지만 가족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자기보다 조직을 우선했던 그 병사의 마인드셋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 수하에 있던 장군 수백 명 중에 칭기즈칸을 배신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배신과 이합집산을 밥 먹듯이 하는 유목민의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군기가 매우 엄정하고 칭기즈칸의 보복도 두려웠겠지만, 보복보다는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에 대한 신뢰가 자기 부모 또는 그 이상으로 두터웠을 것이다. 리더와 조직에 대한 신뢰가 엄정한 군기로 발전했기에 자기 생명을 바치더라도 조직에 솔직히 고백하고 처형을 감수하는 행동이 나오지 않았을까?

‘독대’없는 몽골제국의 문화


▎몽골 기마병 부대가 평원지대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20년 가까이 기업경영을 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고객과 조직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고객과 조직 구성원의 신뢰는 무엇보다 투명성이 중요하다. 보초를 서다가 졸았다는 것을 스스로 신고하고 처형당한 몽골 병사와 몽골제국 간에는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을 것이고, 유목민 장군 수백 명이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바쳤다는 것은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의 탁월한 경영 시스템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아무리 첨단기술이 발전하고 인류의 행동양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800년 전의 조직원리와 지금의 조직원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필자는 현대의 세계적인 경영 석학의 이론보다 800년 전, 2000년 전 역사에서 경영의 교훈을 더 많이 얻는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의 말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인물의 살아 있는 현장 경험과 통찰은 더 무게감 있고,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투명한 기업 윤리는 매출이나 이익 못지않게 중요하다. 투명성은 불법 행동을 저지르지 않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하게 행동해도 그 과정이 불투명하면 투명하지 않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의사 결정 과정을 최대한 공개하고 자신의 사익이나 친분 때문에 의사결정이 왜곡되지 않아야만 동료들의 인정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칭기즈칸은 이질적인 혈연관계, 이해관계로 구성된 유목민 조직의 내부 신뢰를 얻어 유라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칸의 게르가 거대한 도시와 같았다고 기록했다. 게르 한가운데 칸이 앉아 있고, 옆에는 참모와 아내들까지 함께 자리해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이는 칭기즈칸에게 ‘독대’가 없었음을 말한다. 독대가 없는 사회에서는 야합이 없다. 칭기즈칸은 합의의 힘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고급 정보를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필요한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했다. 칭기즈칸 이전부터 유목민들에게는 합의의 전통이 있었다. 흉노는 매년 봄에 열린 ‘농성의 대제’에서 선우를 선출하거나 계승을 공식적으로 인준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했다. 몽골의 쿠릴타이가 흉노의 ‘농성의 대제’를 계승한 유목민들의 전통이라고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쿠릴타이는 백제의 정사암 제도, 신라의 화백회의와 비슷한 만장일치 합의기구였다. 몽골제국의 부마국이었던 고려의 왕도 쿠릴타이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몽골제국의 무종은 황제에 오를 때 쿠빌라이의 외손자인 충선왕의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칭기즈칸의 투명경영과 성과보상


▎몽골의 수도 올란바토르에 세워져 있는 칭기즈칸의 기념 동상.
성과에 대한 투명한 보상도 칭기즈칸이 이끈 몽골제국에서 조직원리의 핵심이었다. 칭기즈칸 이전의 유목군대는 전쟁에서 이기면 선착순으로 가축이든 여자든 개인적으로 약탈했다. 약탈 도중에 적군의 역습을 받아 부대가 괴멸되는 일도 많았다. 칭기즈칸 이전에는 약탈물이 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되었으나, 칭기즈칸은 “약탈물은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전투 중에 약탈하는 것을 막고, 전투가 끝난 후에 약탈물을 모아 전투에서 세운 공적에 따라 나눠줬다. 숙부 다라타이로 대표되는 몽골 귀족층은 이런 투명한 보상 시스템에 반발하여 칭기즈칸의 라이벌인 자무카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 약탈물 배분 방식의 변화가 유목민들에게는 프랑스혁명과 비슷한 수준의 엄청난 변화였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귀족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무카와 하급가문, 민중을 대변하는 칭기즈칸은 초원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국 모든 부족민이 차별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는 칭기즈칸 진영이 승리했다.

어린 시절 출신성분 때문에 굶어 죽을뻔하기도 하고, 쥐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던 칭기즈칸은 귀족 중심의 유목민 사회를 성과에 따른, 차별 없는 보상 시스템으로 바꾸면서 하급가문의 지지를 얻어냈고, 이 지지를 바탕으로 유라시아를 정복했다. 심지어 전투에서 전사한 모든 병사의 부인과 고아에게도 일반 병사와 똑같은 몫의 약탈물을 나누어주었다. 이를 통해 부족 내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지원을 확보했고 병사들의 충성심도 더 끌어냈다. 당시 헝가리에서 얻은 약탈물은 수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몽골초원에 사는 전사한 병사들의 가족들에게 정확하게 배달되었다.

지금까지 30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회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망하는 회사 상당수는 투명성에 문제가 있었다. 대표이사의 자금 유용, 임직원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회계 부정, 뇌물 수수, 밀실 인사 등은 모두 정보를 독점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불투명한 관행에서 시작된다. 수천 명에 이르는 입사 지원자들과 인터뷰하면서 투명성 문제로 이직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사장 친척의 전횡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조직이 투명하지 않으면 인재는 떠나간다. 내부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 회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 나가 싸워도 승패를 알 수 없는데 내부 신뢰가 없다면 적 앞에서 분열될 수밖에 없다. 칭기즈칸 수하에 있었던 장군 수백 명 중에 배신한 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칭기즈칸의 위대한 리더십과 투명경영 마인드를 보여준다.

역사에서 잘나갔던 왕조나 정권 대부분이 외부 위협 요인보다 내부 불신과 분열 때문에 망했다. 실력 없이 뒷돈 주고 불투명하게 사업을 일군 회사는 오래가기가 어렵다. 회계 부정도 마찬가지다. 한순간 위기를 모면하려고 회계장부를 조작하면 결국 사실이 드러나고,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투명한 회계는 회계팀만의 일이 아니다. 회계 담당자뿐만 아니라 영업·생산부서까지 회계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에 재무 자료를 적극 활용하면 조직의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회사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회사 경영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은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회사의 경영정보, 전략, 의사결정 과정은 보안 사항이 아니라면 관련된 내부 인원들에게 최대한 빨리 공개해야 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양지에는 세균이 살아남기 어렵다. 부끄러운 일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알려야 될 사실을 숨기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한국 사회도 정보화와 민주화 덕분에 지난 30여 년간 상당히 투명해졌다. 그 덕분에 우리 회사도 사업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지금도 불투명한 시장 관행이 많이 눈에 띄지만 20년 전, 10년 전의 한국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성이 높아졌다. 필자가 기업경영을 하면서 느끼는 한국 사회의 청렴도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고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는 월등히 청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싱가포르를 꼽는데, 필자가 본 싱가포르 사업 환경은 한국에 비해 그다지 청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가청렴도 기준에서는 한국이 전 세계 180여 개국 중에 50위권에 머무는 것은, 언론의 메아리 효과에 따른 부패인식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청렴도를 측정하는 부패경험률로 보면 한국은 선진국들과 대등한 수준이며, 민주화항쟁 이후 김영란법 제정 등 법과 제도가 보완되고, 정보화 선진국으로서 정보공개를 강화해 이를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도 뒷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대형 고객사 담당자의 요구를 거절해 수백억대 거래를 놓치고 입찰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적도 많았다. 한국 사회가 지난 30여 년간 점진적으로 투명해져왔지만, 여전히 미진한 공공부문, 재벌 지배구조 등에서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더 깨끗하고 사업하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800년 전, 13세기의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에서 배워야 한다.

수평적 문화에서 얻은 강력한 리더십

한국은 사회적 자본이 부족해 갈등이 심해지고 소모적인 갈등이 지나친 비용을 유발하는 나라가 되었다. 인구 100만~200만 명으로 1억~2억 명 인구를 정복한 칭기즈칸은 누구 못지않게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고 탁월한 리더십과 전략, 조직력으로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오늘날 연결된 세상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몽골제국의 탁월한 시스템은 그와 몽골제국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전 몽골족이 똘똘 뭉쳐서 이뤄낸 결과물이다. 병사들과 똑같은 텐트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동고동락하고, 목에 힘주지 않고 사병들에게 자기 이름을 부르게 하며 가까이 다가가고, 밀실 담합을 지양하고, 쿠릴타이라는 회의체에서 합의해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약탈물을 전쟁에서 세운 공에 따라 공정하고 분배해서 멀리 고향집 앞마당까지 정확히 배달해주는 칭기즈칸의 투명경영에 몽골족은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심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21세기 초반의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신뢰와 합의를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기업경영 환경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환경·노동·정치 등 사회 각 부문에서 갈등 비용이 점점 늘어난다. 21세기 한국의 리더들은 800년 전 칭기즈칸에게 배워야 한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212호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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