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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이탈리아/ 로마(Roma) 

카이사르 암살 현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로마는 자그마치 28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가 중첩된 도시이다. 즉, 지구상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이며, 동시에 이탈리아의 수도로서 지금도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도시이다. 이러한 로마에서는 하찮은 골목길이나 버려진 듯한 돌무더기에도 오래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고대 로마 역사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공화정 시대 유적지에서 재현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최후의 순간. / 사진:정태남
고대 로마의 역사는 3개 시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된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전 509년까지 왕정 시대, 기원전 509년에서 기원전 27년까지 공화정 시대,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476년까지 제정 시대, 즉 로마제국 시대이다.

격동의 로마 역사 현장


로마의 중심은 캄피돌리오 언덕이다. 이 언덕 북서쪽으로는 평지가 펼쳐지는데 이 지역의 현재 이름은 캄포 마르찌오(Campo marzio), 옛 이름은 캄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ius), 즉 ‘군신 마르스의 들판’이란 뜻이다. 이 지역은 고대 로마 초기에 로마군 훈련장으로 쓰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에는 ‘라르고 디 토레 아르젠티나(Largo di Torre Argentina)’라는 광장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1900년대 초반에 발굴된 로마공화정 시대 후반기의 신전 유적터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 유적터 일부분은 공화정 후반기에 폼페이우스가 세웠던 로마 최초의 반원형 극장에 속해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와 함께 공화정의 전통을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제1차 삼두정치를 했던 인물이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영토에 해당하는 강대국)와의 전쟁터에서 죽은 후, 폼페이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두 세력 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고, 마침내 기원전 87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로 도망간 폼페이우스를 제거했다.


▎로마공화정 시대의 신전 유적과 그 뒤에 보이는 아르젠티나 극장. / 사진:정태남
로마에서 최고 실력자로 자리를 굳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2월 14일에는 스스로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그는 로마의 숙적 파르티아를 정벌하기로 결정하고는 출정하기 3일 전인 3월 15일에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새로운 원로원 건물이 건축 중이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극장 회랑을 원로원 회의장으로 사용했다.

그가 회랑에 들어서자 한 원로의원이 무엇인가 탄원하려는 듯 다가왔다. 그러자 원로의원 여러 명이 그를 에워싸더니 갑자기 옷자락에 숨겨둔 단도를 꺼내 달려들었다. 평생을 전투 속에서 용맹을 떨쳤던 56세 사나이의 몸에는 순식간에 예리한 칼날들이 꽂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적 폼페이우스를 제거한 후에도 그에 대한 예우로 그의 석상은 그대로 두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아래에서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수수한 외관의 아르젠티나 극장 야경. / 사진:정태남
1808년 로마의 화가 카무치니(V. Camuccini, 1771~1844)는 상상을 통해 이 격동의 순간을 매우 현장감 있게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은 현재 나폴리의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 3월 15일이 되면 이 유적터에서 로마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런 격동의 역사가 스쳐간 유적 사이에는 현재 많은 길고양이가 서식하고 있다.

아르젠티나 극장의 젊은 로시니


▎카무치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적 폼페이우스의 석상 아래에서 암살당했다. / 사진:정태남
이 유적터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극장이 하나 세워져 있다. 다름 아닌 아르젠티나 극장(Teatro Argentina)이다. 이 극장은 오페라 공연을 위해 1732년 1월 31년에 문을 열었으니까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인 셈이다. 바로 이 극장에서 1816년 2월 20일에 로시니(G. Rossini, 1792~1868)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초연되었다. (이탈리아에서 Rossini는 ‘로시니’가 아니라 ‘롯씨니’에 가깝게 발음한다.)

로시니의 오페라 중에서 [세비야의 이발사]는 최고의 희극 오페라로 손꼽힌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스페인의 세비야(Sevilla)를 시빌랴(Siviglia)라고 하기 때문에 이 오페라의 원제목은 [Il barbiere di Siviglia]이다.

이 오페라의 원작은 프랑스의 보마르셰(P.A. Beaumarchais, 1732~1799)의 희곡『피가로의 결혼』이다. 스페인 세비야의 시민 계급을 통해 당시의 특권 계급을 풍자한 이 작품은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세비야의 이발사], 2부는 [피가로의 결혼], 3부는 [죄를 진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1786년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2부에 해당되고, 30년 후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는 1부에 해당한다.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는 1775년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1주일 만에 상황이 반전되어 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이발사이지만 아무리 귀하신 몸이라도 그 앞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하고 이발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당시 억압받던 민중의 눈에 비친 극 중 이발사 피가로의 행동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프랑스혁명은 보마르셰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르젠티나 극장의 화려한 관객석. / 사진:정태남
한편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이전이자 로시니가 태어난 1782년에 이탈리아의 파이지엘로(G. Paisiello, 1740~1816)가 작곡하여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었다. 또 그 후에도 몇몇 작곡가가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사실 당시에는 같은 제목으로 다른 오페라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한편 음악가로서 로시니는 모차르트처럼 보기 드문 천재였다. 그는 악상이 떠오르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악보에 써 내려갔으며, 곡을 쓰는 속도는 숨이 가쁠 정도로 빨랐다. 1816년, 당시 24세였던 젊은 로시니는 새로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했는데 수백 장이 넘는 오페라 악보를 쓰는 데 20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 작품을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초연할 때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은 아마 평생 동안 잊지 못했을 것이다.

노장 파이지엘로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공연 도중에 일부 관중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들은 무대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첫 공연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파이지엘로와 그의 제자들은 새파랗게 젊은 로시니가 파이지엘로의 아성에 감히 도전하듯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한 게 매우 괘씸하고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하여튼 그 사건으로 인해 로시니는 하룻밤에 갑자기 늙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20대 초반의 로시니. / 사진:정태남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두 번째 공연 때 크게 성공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국경을 넘어 1818년에는 영국, 1819년에는 미국에서도 공연되는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파이지엘로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서서히 잊히고 말았지만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한편 유서 깊은 아르젠티나 극장은 현재 연극 공연장으로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세비야 이발사]는 이곳이 아니라 19세기에 세운 후 20세기에 개축한 로마 오페라극장(Teatro dell’Opera di Roma)에서 공연한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303호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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