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8) 

가치관-스스로 확립한 인생의 기준 

가치관(價値觀)은 가치에 대한 관점을 의미하는 단어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세상과 자신 사이의 접점을 찾는 기준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사용할지, 타인이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면 어떻게 대할지 등의 방법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구스타프 클림트 [목가] 1884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타인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으며, 자신의 기준보다 사회의 기준을 더 중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왜 하고 싶은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결정한 사람의 선택은 자신의 목표에 더 빠르게 다가가게 해준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사회의 인정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한 근거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대표 작품 [키스]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자신이 만든 가치관에 따라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삶을 기획하고 이끌어나갔던 위대한 화가이다.

안전함을 부수는 선택


▎구스타프 클림트 [철학] [의학] [법학]
클림트의 작품 [키스]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목가]가 클림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은 놀랄 수 있다. 낭만적인 모습의 남녀가 황금빛으로 그려졌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고전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목가]와 유사한 작품을 역사 속에서 찾으려 한다면 근육질의 두 남자가 손가락을 서로 마주하고 있는 [천지창조]가 떠오른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 미켈란젤로는 클림트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클림트는 금빛 작품들을 탄생시키기 이전에 고전주의 작품 활동을 했던 작가였다.

그러나 클림트는 아카데믹하고 고전적인 그림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고전주의 미술로 주목받는 젊은 작가였고 비슷한 그림을 그리며 계속 인정받으며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클림트는 과거의 틀과 지금의 자신을 분리했고 변화하기를 선택했다. 그는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오스트리아 극작가 호프만슈탈의 작품을 접했고, 그들이 보여주는 환상과 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역사상 고전주의와 새로운 미술을 모두 시도한 작가는 많았지만, 클림트는 고대미술 화가이자 현대미술가로서 동시에 성공했던 유일한 작가로 기록되었다.

클림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젊은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틀에 박힌 아카데미에서 뛰쳐나온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임종을 지켰을 정도로 그가 아꼈던 대표적인 후배였다.

학문의 한계를 그려드립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8
1894년, 오스트리아 교육부는 클림트와 그의 동료 프란츠 마치에게 빈대학의 천장화를 주문했다. 당시 대학의 4대 학문은 신학, 철학, 법학, 의학이었고, 클림트는 신학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주제를 맡았다. 이 작품은 현재 모두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클림트의 작품은 의뢰인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철학]은 불길한 스핑크스를 등장시켜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철학과 같은 이성은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의학]은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와 산처럼 쌓인 사람들이 죽음에 가깝게 그려져 있어 의학은 결국 아무 힘이 없어 보인다는 평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법학]은 정의의 여신이 아닌 어떤 부조리함이 노인을 심판하는 것처럼 보여 법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완벽한 학문은 없고, 각 학문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인간은 계속 연구한다. 그것이 바로 대학의 존재 이유이고 클림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림으로 옮겼다. 아카데미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클림트는 클라이언트의 기분을 맞추어주는 것보다 자신의 미술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학문의 한계를 드러내며 완벽하지 않는 학문을 직면하는 듯한 이 작품들은 대학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클림트는 이 그림을 끝으로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독창성과 전통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리에게 보낸 편지] 1908
미술을 구성하는 요소를 이야기할 때 ‘독창성과 전통’은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어떤 미술도 과거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이와 동시에 지금의 미술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독창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입체주의를 처음 발표한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은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미술로 평가되었지만, 그 이전에 다각도의 정물화를 그린 폴 세잔이 있었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원근법 없이 그려진 중세미술이 있었고, 정면성의 원리에 입각한 이집트 미술이 있었다.

당시 미술은 새로움을 추구하며 자극적인 것을 계속 보여주려 했지만, 클림트는 전통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만드는 싸구려 예술이 양산되었고, 이러한 저품질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은 다시 자연과 장인정신을 찾게 되었다. 이것이 꽃과 자연을 모티브로 하고 손으로 만든 수작업의 가치를 찾는 아르누보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클림트는 중세 비잔틴 미술의 장식적인 묘사와 값비싼 재료의 사용에서 오는 영험함을 유화 작품에 재현했다. 클림트의 아버지가 금 세공사였기에 그는 남들보다 금을 다루는 기술을 배우기가 쉬웠을 것이다.

중세는 과거의 미술이고, 역사 속 산물이라고만 생각했던 미술계에서 클림트의 금빛 작품은 파격적이었고, 재료의 사용뿐 아니라 완벽한 구도와 색감 표현, 감각적인 패턴은 압도적이었다. 미술작품이 상업화(혹은 제품화)된 개수로 성공을 측정한다면 [키스]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키스]는 단순한 클림트의 개인 작업이 아니었다. [키스]는 클림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한 여인을 위해 그린 사랑의 표현이었다.

오직 당신과는 사랑만을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902
클림트는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괴팍한 성격이었다. 또 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런 클림트가 에밀리라는 한 여성에게 편지를 400여 통이나 보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성(性)에 관련된 주제를 그리기를 좋아했던 클림트는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진 난봉꾼이었고,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에로티시즘에 기반하여 그려져 있다. 남자와 무언가를 하거나 벌거벗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에밀리는 유일하게 그의 그림에서 정숙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여성이다. 그들은 육체관계가 아닌 플라토닉 사랑을 추구했으며 총 27년간 함께했다. 그러나 에밀리에게 다른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클림트는 때론 견디기 힘들었다. 지친 에밀리가 그를 떠났을 때 클림트가 에밀리를 붙잡기 위해 그린 작품이 [키스]이다.

글씨 쓰기를 싫어했던 클림트가 에밀리에게 보낸 편지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것이 하나 있다. 편지지 안에는 클림트가 즐겨 그렸던 아르누보풍 꽃 그림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에밀리에게 보내는 간단한 글귀가 적혀 있다.

“꽃이 없어 꽃을 그려 보냅니다.”

이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어땠을까. 정말 향기가 나는 듯 냄새를 맡지 않았을까. 연인에게 손으로 적어 보낸 마음 한 줄은 그 어떤 말보다 달콤하다. 클림트는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사후에 친자확인 소송 14건이 있었으며 이 중 4건은 받아들여져 양육비가 청구되었다. 그러나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분명히 구분했던 클림트는 이를 평생에 걸쳐 지켜나갔다. 에밀리도 이에 동의했기에 두 사람은 사랑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 형태는 제3자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가치관이 서로 맞았다면 그들은 좋은 사랑을 한 것이다.

인생의 가치관 확립하기

클림트는 자신이 결정한 확고한 가치관과 함께 미술과 사랑의 방식도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살아생전에 성공한 화가로 인정받았으며,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할 수 있었다.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일부는 확실하지만 일부는 아직 비어 있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사업과 일에서는 자신의 목표와 방향이 확실하지만, 연애나 결혼은 채워지지 않아, 다가오는 이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다양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 사이에서 골라도 좋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쭉 적어봐도 좋다. 그다음에는 인생에서 ‘정말 좋은’ 순간이라고 느꼈던 리스트를 만들어본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경험도 좋고, 행복을 느낀 경험도 좋으며, 무엇인가 크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도 좋다. 특히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낀 경험에는 반드시 밑줄을 그어보자. 자신이 타인의 어떤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러움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인에서만 사용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자신의 가치관이 지금의 삶과 일에 부합하는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최종적으로 자신의 삶의 끝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떠올려본다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304호 (2023.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